< 7. 프리킥 >
참 신기하게도 때리는 슈팅들이 족족 원하는 방향을 향해 날아가 골대 구석에 박히고 있었다.
여태까지 축구를 하면서 이랬던 적이 있었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던 재혁은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프리킥에 자신이 있긴 했지만 오늘처럼 생각했던 대로 공이 날아갔던 적은 없었던 것이다.
‘아니, 딱 한 번 있었구나.’
처음으로 U-17 축구 국가대표에 선출이 되었을 때, 중국을 상대로 치렀던 데뷔전에서 찼던 프리킥.
데뷔전이라는 생각에 정신없이 경기를 치르다가 골대에서 25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얻은 프리킥을 재혁이 차게 되었는데, 아무런 생각 없이 찼던 공은 벽을 넘어 중국 골키퍼의 장갑을 피해 왼쪽 구석에 자로 잰 듯이 꽂혀 들어가 한국에 선취점을 안겨주었다.
자신이 차고도 얼떨떨해 동료들이 등을 두드리기 전까진 실감하고 있지 못했던 바로 그 프리킥이 오늘의 느낌과 그나마 비슷했다.
다만 그때와 지금이 다른 점은 몇 번을 차도 감각이 생생하다는 것과 다음번에 차도 성공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하다는 것이었다.
대체 왜 이런 차이가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품고 재혁이 바닥을 내려 보던 중 바닥에 찍힌 발자국을 확인하고 눈동자를 반짝였다. 그리고 공이 없는 상태로 프리킥을 차는 자세를 취해보면서 허공에 발길질을 하다가 아! 하고 탄성을 흘렸다.
‘자세가 변했어.’
과거의 몸과 비교해 프리킥을 차다 보니, 발목이 밀린다는 생각에 디딤발의 위치를 조정했는데, 그 때문에 왼발의 위치와 오른발이 공을 차는 각도가 미세하게 변했던 것이다.
게다가 전에 비해 아직 사용할 수 없는 힘이 아닌 임팩트로 차는 습관을 들이다보니 슈팅의 정확도도 같이 올라갔다.
예상치 못했던 발견을 재확인해보기 위해 재혁은 골망 안에서 구르고 있던 공을 얼른 집어와 바닥에 내려놓았고, 길게 숨을 삼키고 천천히 뱉으면서 공을 찰 구석을 노려보다가 한 발, 두 발, 공을 향해 달려가다가 디딤 발을 놓음과 동시에 오른발을 휘둘러 공을 찼다.
뻐엉!
가죽 때리는 소리와 함께 정확히 인프론트에 닿으면서 공이 그의 발을 떠났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낮게 흘리면서 허공에 곡선을 그렸다.
정확히 재혁이 머릿속에 상상했던 아름다운 곡선을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골망을 철썩이며 종착점에 도달했던 공이 그물에 걸려 바닥에 떨어졌다.
퉁, 퉁.
흙바닥을 구르고 있는 공을 먼 거리에서 바라보면서 재혁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자신에게 새로운 무기가 추가되었다.
프리킥이라는 확실한 무기가 말이다.
***
한 달이라는 시간.
언뜻 길게 느껴질 수 있겠으나, 준비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았던 이들에겐 그 어떤 기간보다 짧았다는 생각이 드는 한 달이었다.
특히 강철우 코치의 경우에는 그 시간의 흐름이 다른 이들보다 강렬하게 다가왔으리라.
임종철 감독이 자리에 앉아 있다가 슬쩍 고개를 돌려 강코치의 얼굴을 살피곤 쯧쯧, 혀를 찼다.
“피곤하면 들어가서 좀 쉬지? 면도도 좀 하고.”
“···아닙니다. 오늘까진 자리를 지켜야죠. 어차피 마무리 단계입니다.”
덥수룩한 수염, 광대까지 내려올 기세의 다크서클.
그런 강코치의 모습을 보면서 종철은 안타까웠지만 동시에 대견했다.
‘촉박할 수 있었을 텐데, 세 학교의 전력 보고를 모두 깔끔하게 정리해줬어.’
대회가 개막일에 가까워질수록 전력 노출을 우려해 가능한 가진 패들을 숨기려는 팀들이 많았는데, 강코치는 그것을 꿰뚫어보기 위해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모두 정찰에만 쏟아냈던 것이다.
혹시 있을 상대 학교의 새벽 훈련을 확인하기 위해 잠을 설치기 일쑤였고, 이따금 늦은 저녁까지도 차에서 대기하면서 만약 있을 예비 훈련에 대비했다.
그러길 한 달.
매일 죽지 않은 것이 용하다며 강코치를 마음속으로 응원하던 종철에게 마침내 그가 완성된 보고서를 제출했다.
수면 부족으로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묵직한 보고서를 건넨 강코치는 힘이 다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가장 위에 있는 게 영동초에 관한 겁니다. 주로 훈련하던 포메이션, 그리고 선수진에 대한 정보들을 정리해놓은 거니 사전 지식이 없어도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뒤로 경기 일정에 맞춰 순서대로 정리해두었으니, 쭉 읽어보시면 됩니다.”
“고생했어.”
“그럼 저는 좀···, 자겠습니다···.”
마지막 말을 끝으로 컨테이너 구석에 위치한 소파에 드러눕더니 코를 골기 시작한 강코치를 딱한 얼굴로 바라보던 종철은 의자에서 일어나 운동장으로 향했다.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가기 전 몸을 풀고 있는 선수들 사이에서 종철이 재혁을 향해 손짓을 보냈고, 짝을 이루고 있던 동료에게 패스를 건넨 재혁이 자리를 벗어나 종철에게 다가왔다.
“부르셨어요?”
“이거 받아라. 강코치가 밤낮으로 고생하며 준비한 거다.”
“꽤 묵직하네요.”
손에 들린 보고서를 훌훌 넘겨보는 재혁을 향해 종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묵직한 만큼 도움이 될 거야. 미리 읽어봤는데 세세한 부분들까지 자세히 적혀 있으니까.”
“그럴 것 같아요.”
실제로 관찰하면서 선수의 습관까지 기록해놓은 보고서였으니, 분명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재혁은 종철에게 집에 가지고 가도 괜찮냐고 물었고, 그런 재혁의 질문에 종철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 재혁이 보고서를 가방에 넣어두기 위해 발걸음을 움직이려고 하자, 멀어지기 전 종철이 재혁에게 물었다.
“그런데 개막전이 이틀 밖에 안 남았는데, 그때까지 다 머릿속에 넣어둘 수 있겠어?”
“제가 공부는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닌데요.”
보고서를 팔랑거리면서 곁눈으로 흘겨보던 재혁이 고개를 돌려 종철을 똑바로 마주보며 답했다.
“축구하고 관련된 건 자신 있어요. 당장 내일까지 영동초에 관한 건 전부 머릿속에 넣어두고 오겠습니다.”
자신감이 잔뜩 깃든 목소리로 답하고, 다시 등을 돌리고 가방이 있는 곳으로 향하기 시작한 재혁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종철의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이번 대회는 역시 기대가 돼.’
그렇게 시간이 흘러 개막전이 찾아왔다.
***
아무리 같은 지역에 속한 초등학교들이라고 해도 학교에 따라 언론의 관심이 다른 법이다.
특히 해당 초등학교에 잠재적 유망주가 세 명이나 속해있다면 단순히 신문 기사 한 줄이 나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대한축구협회장, 장문구가 차 안에서 보조석에 앉아 있는 남성에게 물었다.
“방송국에서도 촬영을 왔겠지?”
“당연하죠. 한국 축구의 미래들이 보여주는 첫 경기가 아닙니까? 방송 3사에서 온 것은 물론, 가능한 해외 언론도 몇 군데 포섭해서 풀어놨습니다. 사실 국내 언론보다 어디 유럽 지역 신문지에서 한 줄 뽑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습니까?”
“잘했군. 역시 미리 먹여놔야 일을 한다니까.”
장문구가 고개를 주억이며 창밖으로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눈에 담으며 생각에 잠겼다.
국내 언론의 흐름이 좋지 않았다.
최근 성인 대표 팀은 연이어 졸전을 펼치며 무승부를 기록하거나 간신히 1-0승리를 취하기 일쑤였고, 그에 대한 책임론이 서서히 국내 팬들 사이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팬들의 비수는 처음엔 감독을 향했고, 그 다음은 그 뒤에 있는 협회를 노렸다.
당연히 협회장의 위치에 있는 그를 향한 비난도 적지 않았다.
‘그러니까 오늘 확실히 이목을 끌어야 해. 이만한 선수들을 내가 성장시키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려야 한다, 이 말이지.’
영동초에 속한 세 명, 박민기, 김호준, 최준.
이미 국내 축구 팬들 사이에선 한 번 이름이 널리 알려진 유망주들이었다.
이들이 얼마나 뜨겁게 활약하느냐에 따라 자신을 향한 비난의 정도가 바뀔 것이고, 이는 내년에 있을 협회장 연임 투표에 영향을 미칠 게 분명했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온갖 잡념들을 품고 있던 장문구에게 보조석의 남성이 도착했다고 알려주었고, 장문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차밖으로 빠져나왔다.
그의 눈에 운동장 위에서 경기를 준비 중인 두 팀과 언론사 기자들이 잔뜩 모여 있는 것이 들어왔다.
***
“임감독.”
“채감독.”
운동장 가운데서 만난 두 감독이 가볍게 손을 뻗어 악수를 나누었다.
둘 사이에 펼쳐진 분위기는 전혀 가볍지 못했지만, 일단 둘은 서로를 웃으며 환영했다.
꾸욱, 오른손에 힘을 주어 작게 흔들어 보이던 영동초의 채용우 감독이 종철을 향해 물었다.
“듣기론 간당간당 하다면서?”
“벌써 거기까지 소문이 났나?”
“다른 누구도 아니고 임감독의 이야기면 이 지역에서 관심이 안 갈 사람이 있겠어?”
명백한 비웃음의 의미가 담긴 미소.
하지만 종철은 그런 채감독의 미소에 흔들리지 않고 그를 따라 웃어주며 말했다.
“이사회에서 4강까지 가라더군. 안 그러면 모가지래.”
“4강?”
종철의 입에서 흘러나온 단어를 되뇌던 채감독이 이내 더욱 길어진 입 꼬리로 그를 맞으며 웃었다.
“그게 가능하겠어? 그냥 자리 내놓으라는 말이랑 다를 바가 없구만?”
“뭐, 조별 예선을 1위로 통과하면 혹시 모르는 일이지. 그러니까 가능하면 좀 봐 줘.”
“하하하! 나도 그러고 싶은데 축구를 내가 하나? 우리 선수들이 하지.”
봐달라는 종철의 말에 큰소리로 목소리를 내 웃으면서 채감독이 슬쩍 눈짓으로 훈련 중인 영동초 선수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보이지? 차세대 유망주들답게 지는 걸 지독하게도 싫어하더라고. 미안하지만 그건 좀 힘들겠어.”
“후우, 그런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최선을 다 해보는 수밖에.”
“그럼 경기 끝나고 다시 보자고. 방송사부터 시작해서 신문 기자들까지 계속 취재 좀 하게 해달라고 말들이 많아서 오래 대화를 못 나누겠네. 뭐, 경기 끝나면 그땐 몇 마디 더 나눠줄게.”
마지막 말을 끝으로 자리를 떠나는 채감독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종철이 어깨를 으쓱였다.
여전히 재수 없는 놈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다행이었다.
재혁이라는 사기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는 선수를 통해 경기에서 이겨도 죄책감 같은 게 들리 만무했으니까.
종철도 슬쩍 고개를 돌려 몸을 풀고 있는 재혁을 살핀 뒤 싸늘하게 웃으면서 자리를 떠났다.
“똑같게도 저 녀석도 지는 건 지독하게 싫어하는 것 같거든.”
경기는 선수들이 한다는 말.
종철은 그 말을 경기가 끝나고 똑같이 되돌려 주리라 마음먹었다.
그렇게 다시 원정 석으로 돌아온 종철이 박수를 쳐 몸을 풀고 있던 선수들을 한데 모았고, 곧 재혁을 포함해 20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그의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빤히 아이들을 살펴보던 종철이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첫 경기다. 비록 시드에서 밀려서 처음 3경기를 모두 원정에서 치러야 하지만 너무 부담 가질 필요는 없다. 사실 홈경기나, 원정경기나 응원해주는 사람이 없는 건 마찬가지잖아? 그러니까 오히려 다행이지.”
“감독님! 무슨 말이 그래요?”
“맞아. 우리 엄마는 맨날 응원해주러 오신단 말예요.”
“어허, 어른이 하는 말은 끝까지 들으라는 말 모르냐?”
칭얼거리는 몇몇 아이들을 향해 으름장을 놓은 종철은 큼큼,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끊었던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이어질 원정 3경기에서 우리가 모두 이긴다면 어떻게 될까?”
“네?”
갑작스런 종철의 말에 아이들이 동시에 말끝을 높였고, 그런 아이들을 향해 종철이 말을 계속 했다.
“그때가 된다면 사람들의 관심도 높아질 것이고, 마침내 열릴 첫 홈경기에서 우리를 응원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아지겠지?”
“오, 그러고 보니···.”
“그럼 그땐 아빠도 와서 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나는 삼촌!”
“흐흐, 나는 혜진이 보고 구경하러 오라고 해야지.”
종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은 서로를 향해 목소리를 내며 누가 응원하러 올 수 있을지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고, 종철은 자신이 한 말 덕에 아이들의 사기가 조금이나마 높아졌다는 것을 느끼곤 예의 미소를 보이며 상황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오늘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자. 그리고 이기자. 그럼 이제부터 전술 설명에 들어간다. 이미 몇 번이고 반복 했던 이야기지만, 흘려듣지 말고 머릿속에 제대로 집어넣고 경기 내내 잊지 말고 기억하고 있도록!”
“네!”
종철이 전술 판을 꺼내자 아이들이 힘차게 대답한 후 눈동자를 반짝이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그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던 재혁도 멍하니 종철이 설명하는 전술을 듣고 있다가 한 줄기 상념을 떠올린 뒤 고개를 털었다.
‘할머니를 모시고 오는 건 더 큰 경기에서야. 겨우 초등학교 조별 예선에 모시고 와선 안 될 말이지.’
할머니가 계시지 않는 자리에서 절대 질 수 없다고, 재혁은 속으로 다짐을 되뇌면서 열의를 불태웠다.
< 7. 프리킥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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