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강점은 허리 >
“올해 우리의 강점은 허리다.”
“대뜸 그게 무슨 소리에요?”
두 팀으로 나눠진 축구부 아이들의 연습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종철이 중얼거렸고, 그의 바로 옆에서 경기를 기록하고 있던 철우가 물었다.
종철은 여전한 얼굴로 팔짱을 낀 채로 경기장을 노려보면서 철우의 질문에 답했다.
“재혁이 뛰는 거 보이지? 역시 저놈은 물건이야. 시야부터 시작해서 기본적인 능력도 좋아. 하지만 가장 대단한 점이 뭔지 알아?”
“뭔데요?”
“다른 선수들을 이용할 줄을 알아.”
거기까지 말을 끝냈던 종철이 슬그머니 손을 뻗어 재혁의 팀이 공격하는 상황을 가리켰다.
센터서클 위쪽에서 공을 받은 재혁을 중심으로 역습이 이어지고 있는 장면이었다.
재혁은 자신에게 공이 오기 무섭게 원터치로 흐름을 멈추지 않고 빠르게 패스를 찔러 넣어 같은 팀 동료 공격수에게 공을 연결해주고 있었다.
매우 일반적인 역습 루트였기 때문에 철우는 무엇이 대단한 것인지 바로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종철은 그 모습을 보고 씨익 웃었다.
“저 녀석의 첫인상을 기억하고 있지?”
“네. 나이에 맞지 않게 기가 막힌 슈팅을 때렸죠.”
“저게 다 준비 과정이야.”
준비과정?
대체 뭘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을 이어갔던 철우가 다시 고개를 돌려 경기장을 찾았을 때, 공격수에게 닿았던 공이 다시 재혁의 발을 향해 돌아오고 있었다. 수비수들의 압박이 거셌던 탓에 어쩔 수 없이 안전한 곳을 찾아 패스를 돌린 것이다.
느릿하게 흙바닥을 구르면서 자신에게 굴러오는 공을 노려보던 재혁은 가뿐하게 발 안쪽으로 공을 받았고, 살며시 공을 앞으로 밀면서 동시에 기습적인 슈팅을 시도했다.
정확히 발등에 공을 얹어 때린 슈팅은 매서운 공기 소리와 함께 허공을 가르더니 한치의 오차도 없이 골대 구석을 찌르고 날아갔다.
철썩!
골망을 때리고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진 공을 모두가 놀란 얼굴로 바라보고 있을 때, 임종철 감독은 뿌듯한 미소를 보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에게 올 찬스를 확실하게 살리기 위한 과정 말이지. 연속된 패스로 공간을 열고, 상대 수비에게 선택지를 강요한다. 가장 기본이 되는 행동들이지만, 이 기본을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들은 프로에서도 드물지.”
“그럼 다른 선수들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동료들을 의미한 거였습니까?”
“아니. 단순히 동료만이 아니야.”
철우의 질문에 종철이 가뿐히 고개를 가로 저은 뒤 답했다.
“말했잖아, 상대에게도 선택을 강요한다고. 이건 상대 선수의 심리까지 이용하고 있다는 소리라고. 최재혁이라. 앞으로가 기대가 되지 않을 수가 없군.”
“!”
“첫 경기가 채용우 감독의 영동초였지? 오랜 만에 그 인간 낯짝이 구겨지는 걸 구경할 수 있겠어.”
기분 좋게 활짝 웃어보이던 종철은 연신 고개를 주억이며 재혁의 활약을 계속 지켜보았다.
녀석이 있기 때문에 4강, 아니. 우승도 불가능한 도전이 아닐 것이다.
‘아니. 실패하면 이건 전적으로 내 탓이지. 이런 선수를 데리고 올라가지 못한다면 말야.’
거기까지 생각을 떠올린 종철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수가 능력을 보여줬으니, 이젠 자신이 일을 할 차례였다.
그렇게 모든 훈련 일정이 끝이 나고 선수들이 하나, 둘 씩 집으로 돌아갈 때.
“재혁아. 너는 나랑 잠깐 이야기 좀 하자.”
임종철 감독이 가방을 들쳐 메고 운동장을 빠져나가려던 재혁을 붙잡았다.
***
철컥, 드르륵.
컨테이너에 걸려있던 자물쇠를 풀고 문을 연 종철이 먼저 안으로 들어가 불을 켰고, 그 뒤를 재혁과 철우가 따라 들어왔다.
가장 안쪽에 대충 세워져있는 책상과 의자를 향해 걸어간 종철은 풀썩 자리에 앉았고, 재혁을 향해서 건너편 의자에 편히 앉으라 했다.
재혁이 살짝 기울어진 철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자 끼익, 거리는 불안한 소리가 울렸지만 종철은 익숙하다는 듯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준비한 종이 뭉치를 재혁에게 건네며 말했다.
“아이들이 있는 곳에선 따로 말하지 않았지만, 이 자리에서 확실히 말하자면 네가 우리 팀의 전력이면서 전술이다. 하지만 축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지. 그걸 펼쳐봐.”
감독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재혁은 천천히 종이 뭉치의 첫 장을 넘겼고, 눈에 들어오는 글귀들을 확인하곤 이마를 긁적였다.
“같은 팀 축구부원들의 프로필인가요?”
“단순한 프로필이 아니야. 걔들이 어떤 걸 잘하고, 주로 사용하는 발이라던가, 플레이 성향 같은 것도 적혀 있어. 일종의 선수별 플레이북이지.”
재혁에게 답해주며 습관처럼 담배를 집으려다가 쯧, 혀를 찬 뒤 생수를 벌컥인 종철이 말을 계속 이었다.
“허리에서 공을 배급해주고, 팀을 이용해 플레이를 할 네게 아주 주요한 정보가 될 거야. 아무래도 팀에 합류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숙제가 필요하겠지. 그 외에도 추가적인 정보는 강코치가 준비해놨으니, 강코치에게 물어보면···.”
“흐음.”
빠른 속도로 종이를 읽어 내려갔던 재혁이 종철의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보며 말했다.
“제가 파악하고 있던 거랑 크게 차이가 없는데요?”
“뭐, 뭐라고?”
재혁이 남긴 한 마디에 종철이 놀라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고, 재혁은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책상 위에 내려놓으면서 멈췄던 말을 이었다.
“방금까지 같이 운동을 하면서 가능한 친구들은 다 살펴봤어요. 거진 2시간 가까이 같이 운동을 했잖아요? 눈으로 익힐 수 있는 특징들은 모두 익히려고 노력했죠. 말씀하신 것처럼 팀을 이용해 플레이를 해야 하니, 팀원들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선 다른 누구보다 제가 더 잘 알고 있어야 하니까 말예요.”
“!”
“추가로 말씀드리자면 장점만 보고 있던 게 아니라 좋지 않은 습관 같은 단점들도 계속 살피고 있었어요. 제가 만약 상대팀이라면 이런 식으로 공략할 것이다, 같은 부분들을 말이죠.”
재혁의 말을 듣는 내내 종철은 자신이 지금 정말로 초등학교 6학년생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혼란에 빠졌고, 그것은 뒤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철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두 사람이 어지러움을 느끼고 있던 것과 달리, 재혁은 자신이 머릿속에 정리해두었던 것들을 하나둘 꺼내 두 사람에게 전해주었다.
“저랑 같은 팀에서 왼쪽 풀백을 보는 친구는 항상 전력을 다해 뛰더라고요. 그랬다간 공격수의 옆으로 빠지는 움직임을 쫓아가기 힘들어요. 페이스 배분을 확실히 익혀야겠더라고요. 센터백을 보던 4번 친구는 습관적으로 다리 사이를 크게 벌리던데, 중앙을 지켜야 할 센터백으로서 매우 안 좋은 습관이에요. 그거 못 고치면 엄청 뚫릴 겁니다. 그리고···.”
장점뿐만이 아니라 단점까지 속속들이 꿰고 있는 재혁을 앞에 두고 종철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겨우 하루, 그리고 2시간 정도를 같이 운동한 정도로 선수들을 이만큼이나 파악하고 있다니.
‘정말 타고난 천재인가?’
옛날에 패스 몇 번을 주고받으면 동료의 성격까지 파악할 수 있다던 어떤 선수의 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자 종철은 재혁이 그런 부류의 선수가 아닌가, 라고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털었다.
‘내가 계속 초등학생 선수한테 감탄만 하고 있어서야···.’
아무리 대단한 아이라고 할지라도 아직은 초등학생. 그리고 그런 초등학생을 다뤄야 하는 것이 바로 지금 감독인 자신이었다.
종철은 재혁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물었다.
“우리 팀 선수들의 단점들은 나도, 강코치도 어느 정도 파악은 하고 있었어. 다만 실력의 편차라는 이유 때문에 아직까지도 고쳐지지 못한 부분이 많지. 아직 시간이 한 달 정도 남았으니, 다들 차차 나아질 거야.”
“한 달이라. 흐음, 알겠습니다. 그 정도 시간이면 촉박하긴 하지만, 보완은 가능한 시간이겠네요. 그리고 저도 따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될 것 같고요.”
“공부?”
공부라는 말에 종철이 되묻자 재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설마 같은 팀원들의 정보만 외우라고 하시려던 건 아니었겠죠? 당연히 상대 팀들에 대한 공부죠. 이건 제가 전혀 모르는 정보이니, 감독님과 코치님께서 준비해서 알려주셔야 해요.”
“그, 그렇지. 준비해줘야지.”
“그러면 정리되는 대로 저한테 알려주세요. 전 이제 동생 데리러 가야 해서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오늘 훈련 고생하셨습니다.”
시간을 확인하기 무섭게 재혁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종철과 철우를 향해 예의바르게 작별 인사를 건넨 다음 컨테이너를 떠났다.
허나 재혁이 떠났어도 종철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멍하니 닫힌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달 동안 같은 팀원들의 프로필을 익히는 것만으로도 벅찰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지.”
“그러게 말입니다.”
종철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철우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숙제를 내주려고 했는데 도리어 자신들이 숙제를 받고 말았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어깨를 으쓱였지만,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철우는 이후 정보를 준비하겠다고 자리를 떠났고, 홀로 남게 된 종철도 포메이션을 포함해 전술적 상황을 준비하기 위해 전략지를 꺼내다가, 이내 피식 실소를 흘렸다.
“역시 우리 팀의 강점은 녀석이 있는 허리야.”
***
일요일이다.
학교를 가지 않는 날임에도 재혁은 여느 날처럼 새벽부터 일어나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방을 빠져나오기 전, 슬쩍 주위를 살핀 그의 눈에 할머니와 재희가 아직까지 단잠에 빠져있는 것이 보였다.
재혁은 둘을 향해 작게 고개를 숙여 보인 다음 조용히 집을 빠져나와 축구공을 가지고 운동장을 찾았다.
일단은 가벼운 리프팅으로 몸을 푼 재혁이 정면에 골대를 앞에 두고 호흡을 골랐다.
축구에서 골이 터지는 상황은 단순히 필드 플레이에만 기반을 두는 게 아니다.
상대 팀이 반칙을 범하면 경기가 멈추고 방해를 받지 않고 찰 수 있는 프리킥이 주어지는데, 이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득점할 찬스를 만들 수 있었으니. 재혁은 오늘 자신의 무기를 보다 날카롭게 갈고 닦기 위해 운동장을 찾은 것이다.
지난 며칠간 가능하다면 발목 훈련을 집중적으로 소화한 이유가 바로 이것에 있었다. 슈팅에서 기본이 되는 힘은 바로 발목에서 나오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은 초등학생 수준의 근력이야. 무회전 프리킥을 연습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겠지.’
임팩트만큼이나 힘이 확실히 실려야 빠른 속도로 공이 날아가는 무회전 프리킥.
익힌다면 분명 최고의 무기가 되어줄 것이 분명했지만, 이것을 익히는 것은 조금 더 몸이 성장한 후의 일이 될 것이다.
오늘은 무엇보다 정확도.
재혁은 자신이 차는 공이 정확히 원하는 장소로 빠르게 날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프리킥 연습을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공을 찼을까.
자신의 발을 떠나 큼직한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는 공을 보면서 재혁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졌다.
‘뭐지? 공이 왜 이렇게 잘 나가?’
< 6. 강점은 허리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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