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4화 (4/225)
  • < 4. 첫 번째 목표 >

    “축구부에서 축구를요?”

    “아까 공차는 모습을 스탠드에서 쭉 지켜보았단다. 너에겐 재능이 있어. 그걸 단순히 친구들과 즐기는 축구에서만 보여주기엔 난 너무 아쉽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축구부에서 진지하게 축구를 할 생각이 없는지 너에게 묻고 싶은 거다.”

    “감독님. 너무 급하신 거 아니에요? 초등학생을 상대로 그렇게 진지한 말투라니···.”

    철우의 말에 종철은 아랑곳하지 않고 뜨거운 눈길로 재혁을 바라보았고, 그런 종철의 눈빛을 받으면서 재혁은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초등학생을 상대로 한 말 치고는 너무도 진지하고 무겁다.

    아마 평범한 초등학생이었다면 바짝 얼거나, 울면서 자리를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재혁은 보통의 초등학생이 아니었기에 종철의 진지한 눈빛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고, 여러 가지 상황들을 떠올려 보면서 머릿속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들을 저울질 해보았다.

    ‘과연 초등학교 축구부에 들어가는 게 나에게 득이 될까?’

    솔직한 말로 지금 자신이 제대로 뛴다면 대적할만한 초등학생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아직 몸이 완성되지 않았고, 기술도 다듬어지지 않았다고 재차 투덜거렸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19살이었던 자신과 비교했을 때 부족한 것이었으니.

    신체조건이 같은 초등학생들과 비교한다면 한두 단계가 아닌 수십 단계는 높은 수준일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자신이 초등학생들과 섞여서 뛰는 것이 과연 어떠한 이득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점이었다.

    ‘막말로 장학금도 안 주잖아.’

    체육 특기생이라는 부분이 초등학교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니 그에 관한 항목이 있을 리 만무했고, 그렇다면 어떠한 조건에서도 자신에게 득이 될 것이 없겠다는 생각에 재혁이 무어라 답할지 마음을 정하고 천천히 닫고 있던 입을 벌리려고 할 때.

    침묵하고 있던 종철의 입이 먼저 열렸다.

    “너보다 어린 나이 때부터 축구를 시작한 친구들이 많긴 하지만, 너 정도라면 그 차이는 언제든지 좁힐 수 있을 거다.”

    “아뇨. 제가 걱정하고 있던 건 그런 게 아닌데요.”

    “그럼 뭐가 걱정이지?”

    “제 또래들과 축구를 해서 제가 득을 볼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를 모르겠어요.”

    “득을 볼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모르겠다···?”

    재혁의 솔직한 답을 조용히 되뇌던 종철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이 꼬마는 축구를 단순히 놀이로 보고 있는 게 아니란 말인가?

    저 나이에 벌써 득과 실, 그리고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다고?

    얼핏 이해가 힘든 재혁의 답에 종철이 혼란에 빠진 것처럼, 그의 옆에 서있던 철우도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또래들과 같이 운동을 하면 즐겁기도 하고, 또 건강에도···.”

    “잠깐.”

    철우가 말하려던 것을 종철이 손을 뻗어 끊은 종철이 예의 진지한 얼굴로 재혁을 마주보았다.

    그는 더 이상 꼬마를 상대하는 것이 아닌, 진지한 자세로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선수 한 명을 대하는 태도로 말을 이었다.

    “우리 축구부에서 운동을 한다면 난 네게 미래를 선물할 수 있다.”

    “어떤 미래요?”

    “축구라는 운동을 통해 성공할 수 있는 미래.”

    “그 정도는 저도 생각했어요. 구체적으로···.”

    “일단 그 시작은 차범수 유소년 축구상.”

    “!”

    몇 번인가 들어본 적이 있는 시상에 대한 이야기를 종철이 꺼내자 재혁이 느낌표를 눈동자에 담아 그를 바라보았고, 재혁의 얼굴에서 흥미를 읽을 수 있었던 종철은 입가에 작은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네가 우리 축구부에 합류해준다면 나는 네가 그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축구선수로서 시작할 수 있는 아주 확고한 발판을 마련하는 거지.”

    차범수 유소년 축구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후, 구체적으로 그에 대한 설명을 재혁에게 해주었던 종철은 대화를 오래 끌지 않았다.

    재혁에게도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자리를 떠나기 전, 재혁에게 자신이 한 말을 이해했냐고 물었던 종철은 재혁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럼 재혁아. 나는 답변을 기다리마. 내게 연락을 하고 싶거든, 체육 선생님께 찾아가면 될 거다.”

    “네. 말씀 고맙습니다.”

    “강코치, 가지.”

    “네? 아, 예.”

    재혁과 악수를 나누기 무섭게 자리를 떠나는 종철을 보고 당황한 듯, 말을 더듬던 철우가 그의 뒤를 황급히 쫓으면서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확답을 받지 않고 그냥 떠나십니까?”

    “똘똘한 아이야. 그런 아이에게 답을 하루 만에 강요하는 건 옳지 못 해. 동기 부여에도 부정적이고.”

    계속되는 진지한 종철의 말에 철우가 신기하다는 얼굴로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감독님이랑 어울리지 않네요.”

    “뭐가?”

    “진지한 모습이라던가, 생각이 깊어 보이는 말씀들이요. 저는 재혁이라는 아이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으실 줄 알았거든요. 아니면 협박을 하던가.”

    “인마, 나도 어른인데···.”

    “하지만 그런 모습들을 보니 역시 감독님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슴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며 중얼거리는 종철의 말을 철우가 씩 웃으면서 끊은 뒤, 끊었던 말을 바로 이었다.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 사이에서 우리들이 좀 굴렀습니까?”

    “지난 일은 묻어둬.”

    칙, 엄지로 라이터 부싯돌을 긁어내며 불을 붙인 종철은 깊게 빤 연기 한 모금을 천천히 뱉으면서 작은 목소리로 뇌까렸다.

    “다만 앞으로 있을 일들이나 신경 쓰자고. 우리들이 상대해야 할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협회 놈들이 아니라 진심으로 축구를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니까.”

    ***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재혁은 바닥에 내려두었던 가방을 다시 짊어졌고, 발길을 돌렸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는 종철과 나누었던 대화를 복기했다.

    ‘차범수 유소년 축구상이라.’

    차범수 유소년 축구상을 확고한 발판이라고 표현한 종철의 말에는 틀림이 없었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 중, 상을 받지 못하고 성장한 선수들도 물론 있겠지만, 상을 받은 선수들 중 크지 못한 선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상은 혼자 받는 게 아니다.

    팀과 함께 축구를 하고, 계속해서 승리를 쌓아갈 수 있어야 사람들의 눈에 띄어 후보군에 오를 수 있을 것이고, 그래야만 입상이 가능할 것이리라.

    운동장 흙바닥을 걸으면서 재혁이 생각이 이어졌다.

    어떻게 할까?

    고민은 있었지만, 사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던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축구를 통해 성공하기로 마음먹은 상황이다.

    취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은 열어두는 편이 좋았다.

    게다가 차범수 유소년 축구상은 초등학생일 때가 아니면 받을 수 없는 상이었으니, 현재 초등학교 6학년인 재혁에게는 단 한 번만 주어진 기회였다.

    ‘초등학생 리그라. 어떤 부분을 따로 준비하는 게 좋을까? 체력을 조금이라도 키워둘까? 아니면 기술? 킥? 전부다 성장시키면 좋겠지만, 내 몸이 신체적으로 뛰어난 편이 아니니···.’

    “재혁아.”

    “어, 세훈아. 아직 안 갔어?”

    모두들 떠나고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던 운동장에서 세훈이 부른 것에 재혁이 놀라 되묻자, 세훈이 땀으로 뭉친 머리칼을 긁적이며 답했다.

    “처음보는 아저씨들이랑 같이 있길래 걱정이 돼서.”

    세훈의 말을 들은 재혁이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어린 녀석이 생각 외로 기특한 구석이 있었네?

    과거를 더하면 아들뻘 되는 녀석이 자신을 걱정해주었다는 말에 재혁이 이내 생긋 웃더니 멈췄던 발을 움직이며 말했다.

    “이상한 사람들 아니래. 우리 학교 축구부 감독님이랑 코치님이시라더라. 나보고 축구할 생각 없냐고 물어보셨어.”

    “우리 학교에 축구부가 있었어?”

    “너도 몰랐지? 나도 몰랐어.”

    “야구부나 다른 운동부에선 장비들 많이 산다고 아빠가 그랬는데, 축구 용품은 하나도 안 나가서 있는 줄 몰랐네.”

    “···.”

    과연 스포츠 브랜드를 운영하는 집안의 아들다운 생각 방식이구나.

    축구부의 실력을 먼저 고려했던 자신과 달리 재정 상태에 대해 고민을 하다니. 역시 나이에 맞지 않는 녀석이라고 재혁이 작게 웃으면서 계속 걸었는데, 그런 재혁을 향해 세훈이 또 한 번 말했다.

    “그래서 하기로 했어?”

    “생각을 좀 해본다고 했어.”

    “들어가 봐.”

    세훈이 대뜸 던진 한 마디에 재혁이 고개를 돌렸고, 재혁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한 세훈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 축구 잘하더라. 우리 아빠가 그랬어. 축구 잘하는 사람은 공을 쫓아가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공을 쫓아가게 만든다고. 오늘 네가 한 패스들이 딱 그런 느낌이었어. 애들이 네가 준 패스만 쫓아서 이리저리 뛰어다녔잖아? 그러니까 잘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말을 끝내고 부끄러웠는지 뺨을 긁적이고 있는 세훈을 보면서 재혁은 그를 따라 웃었다.

    역시 예나, 지금이나 좋은 녀석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세훈의 말에 고맙다는 말로 답을 한 재혁은 학교 운동장 구석에 설치되어 있는 시계를 확인하고 황급히 몸을 움직이려 했다.

    “아, 그런데 나 동생 데리러 가야 해서 먼저 갈게! 내일 보자!”

    “잠깐, 잠깐만! 이거 너 가져.”

    멀어지려는 재혁을 향해 목소리를 내던 세훈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그것을 재혁에게 건네주었고, 세훈이 손에 쥐어준 물건, 축구화를 내려 보던 재혁이 이내 고개를 들어 세훈을 향해 물었다.

    “이거 네 축구화잖아? 이걸 왜···.”

    “난 어차피 집에 가면 많아. 너 축구부 들어가면 앞으로 축구할 때 운동화 말고 축구화 신어야 할 거 아냐? 그러니까 그거 쓰라고. 딱 세 번 밖에 안 신었어. 그러니까 새 거랑 똑같은 거야. 그거 신고 축구 열심히 해야 돼! 그럼 난 간다!”

    고맙다는 말을 전하기도 전에 후다닥 자리를 떠나 반대편으로 달려가는 세훈의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재혁이 이내 빙그레 웃었다.

    이번 생에서 만큼은 꼭 좋은 친구로 마지막까지 함께 하고 싶은 녀석이었다.

    ***

    학교 운동장을 빠져나와 근처 놀이터로 향하니 재희가 친구들과 놀고 있는 것을 찾을 수 있었던 재혁은 동생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해가 다 진 시간에서야 집으로 돌아온 두 사람을 할머니는 웃으면서 반겨주었고 얼른 저녁 먹을 준비를 하라며 둘에게 씻으라 했다.

    동생은 데운 물을, 자신은 미지근한 물로 손과 발을 닦고서 방으로 돌아오자 식탁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저녁거리가 올라와 있었다.

    “와! 닭이다!”

    “할머니 이거···.”

    신이 난 재희가 후다닥 자리에 앉는 것에 비해, 재혁은 여전히 주방에서 달그락거리고 있는 할머니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그런 재혁을 쳐다보지도 않고 할머니가 중얼거렸다.

    “고물상 할배가 값을 잘 쳐줬으야. 새끼들 먹으라고 이씨 할망구가 고기도 싸게 줬구. 얼른 식기 전에 묵어. 그래야 얼른 자고 내일 또 학교가제.”

    “할머니는 안 드세요?”

    “나는 이미 묵었어. 배부르니께 너들 얼른 묵으야.”

    여전히 허리를 숙이고 달그락거리고 있는 식기를 재혁이 슬쩍 훔쳐본 후 입술을 앙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그릇에 묻어있는 고춧가루와 간장 자국.

    아마 우리들이 오기 전에 이미 저녁을 먹었다는 할머니의 식사 거리였을 것이리라.

    괜히 눈물이 흐를 것 같았던 재혁은 애써 감정을 다잡으면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손에 쥐었다.

    ‘할머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꼭 성공해서 좋은 음식, 좋은 옷으로 대접해 드릴게요.’

    “오빠! 이거 엄청 맛있다!”

    “응. 그치? 진짜 맛있네. 할머니 잘 먹겠습니다!”

    재희가 철없이 배시시 웃는 것에 재혁도 동생을 따라 웃으며 할머니께 재차 고맙다고 소리를 쳤고, 그런 손자, 손녀들을 향해 할머니는 그려, 그려라는 말만 반복하면서 설거지를 계속 했다.

    다음 날, 해가 뜨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난 재혁은 누구보다 먼저 집을 나서 축구공을 가지고 학교로 향했다.

    < 4. 첫 번째 목표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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