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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미드필더-3화 (3/225)
  • < 3. 뚝 떨어진 아이 >

    “바, 방금 봤어?”

    종철이 첫 마디를 더듬으며 중얼거린 것을 들은 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멋지게 들어갔네요. 힘은 별로 실리지 않았지만 구석으로 정확하게.”

    “아니. 난 공의 궤적을 물은 게 아니야. 차는 폼을 봤냐고.”

    “차는 폼이요?”

    뜬금없는 소리에 철우가 기우뚱 기울어진 눈동자로 종철을 바라보았고, 종철은 크게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왼발의 디딤발, 오른발의 스윙 그리고 이어지는 팔로우 스루(Follow Through). 모든 동작들이 엄청 부드러웠잖아!”

    “그랬나요?”

    종철이 높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에 철우는 입맛을 다시며 뒷목을 긁적였다.

    “그래봐야 운 좋게 하나 넣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감독님께서 FC수원을 상대로 넣었던 프리킥 골처럼요.”

    “이 자식아. 그때 그건 운이 아니었다고 몇 번을 말해? 아니, 그 전에! 골은 운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자세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신념에 찬 듯, 확고한 어조로 말을 이어가면서도 운동장에 서있는 아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종철이 계속해서 말했다.

    “저건 둘 중에 하나야. 타고 났던가, 아니면 지독하게 노력을 했던가.”

    “기껏해야 초등학생인데. 지독하게 노력할 시간이나 있었겠어요?”

    “그럼 타고 난거지.”

    “흐음.”

    종철의 계속되는 칭찬세례에 철우가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중얼거렸다.

    “조사했을 때 그런 학생은 없었는데···.”

    “어이, 이동하자.”

    철우가 흘린 조그마한 혼잣말을 듣지 못한 종철이 고갯짓으로 운동장 근처에 위치한 스탠드를 가리키며 말했고, 그런 종철을 향해 철우가 머리칼을 긁적이며 물었다.

    “뭐하시려고요?”

    “뭐하긴 뭘 해. 관찰해 봐야지.”

    자신의 뒤를 쫓아 따라오는 철우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여전히 아이에게만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내며 종철이 조그맣게 속삭였다.

    “그리고 진짜라면 무조건 입부시켜야지.”

    ***

    사악, 사악.

    공을 바닥에 내려놓고 왼발을 디딜 장소를 고르면서 재혁이 숨을 다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뒤로 세 보 물러난 다음 공의 위치와 골대를 확인했다.

    ‘어떻게 찰까?’

    공의 위치는 아크 왼쪽.

    오른발 프리키커라면 누구라도 좋아할 위치다.

    벽을 넘겨 골대 왼쪽 구석을 노리고 찰 수도, 제대로 회전을 주어 감아서 골키퍼의 손이 닿지 않는 골대 오른쪽 구석을 노릴 수도 있는 위치였다.

    ‘감아보자.’

    슈팅을 시도할 방향을 정한 재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땅에 붙이고 있던 발들을 천천히 떼기 시작했고, 정확히 공의 왼쪽에 디딤 발을 놓은 후 오른발 인프론트로 공을 강하게 때렸다.

    과정, 자세, 그리고 슈팅을 시도하는 순간의 임팩트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지만 딱 한 가지가 부족한 것을 깨달은 재혁이 공이 발에서 멀어지는 순간 입술을 구겼다.

    ‘발목이 밀렸다.’

    감아 차는 슈팅은 공에 확실히 힘을 실어 차지 않으면 어중간한 슈팅이 될 뿐이다. 그리고 그 힘은 발목에서 나온다.

    안타깝지만 지금 재혁의 몸은 겨우 초등학교 6학년생. 공에 힘을 실어줄 발목 힘이 모자랐기에 공은 그가 예상했던 것과 달리 허공을 깎지 못하고 그대로 붕 떠서 골대를 때리고 튕겨져 나오고 만 것이다.

    아주 조금만 더 깎였다면 어떻게든 골대 안으로 들어갔을 텐데.

    재혁은 아쉬움에 혀를 차더니 멀리서 구르고 있는 공을 줍기 위해 달려갔고, 그런 재혁을 향해 누군가 소리쳤다.

    “재혁아! 같이 축구하자니까 왜 계속 혼자서 공만 차?”

    “어? 아니, 그게···.”

    “얼른 와. 애들 다 기다리잖아.”

    홀로 반대편 골대에서 프리킥을 연습하고 있던 재혁에게 또래 친구, 세훈이 다가와 말을 붙이더니 그를 이끌고 다른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고, 세훈에게 팔목이 붙잡힌 재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친구를 따라 발을 움직였다.

    다른 친구들과는 항상 거리를 두고 지냈으나 세훈과는 그럴 수 없었던 사실을 떠올리니 더더욱 친구의 말을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과거,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아이들 사이에서 사회적인 신분에 대한 자각이 차츰 생겨날 때.

    가난과 부모님이 안 계시는 재혁을 편견 없이, 그리고 한결 같이 대해준 친구는 세훈이 유일했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세훈의 아버지가 국내 스포츠 용품 회사로 유명한 ‘케이 브랜드’의 사장이라는 사실을 알려졌을 때에도 세훈은 전과 같이 자신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칭얼거렸고, 재혁이 사고를 당해 다리가 망가졌을 때에도 동창회에서 유일하게 그를 찾았던 친구였던 것을 기억하면 더더욱 그에게 붙잡힌 손목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결국 아이들이 뭉쳐서 팀을 가르고 있는 장소까지 재혁은 끌려왔고, 순서에 맞춰 팀이 갈리면서 세훈과 같은 팀이 되어 경기 준비에 나섰다.

    “너 뭐할래?”

    “나 차범수! 우리 아빠가 차범수가 최고랬으니까 난 차범수 할래.”

    “그래? 그럼 난 고주영. 너는?”

    “난 호나우두. 브라질이 더 짱이야.”

    ‘아직 애는 애구나.’

    포지션이 아니라 자신들이 좋아하는 선수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각자 뛰고 싶은 자리를 말하는 것이 딱 초등학생의 그것이었다.

    아니, 사실 동네 꼬마들이 지금 무슨 자각이 있겠는가.

    그저 뛰고 차는 걸 좋아해서 축구를 하는 것일테니, 재혁은 그러려니 이해하면서 아이들이 모두 떠들 때까지 공을 가지고 가벼운 발놀림으로 리프팅을 했다.

    10번, 20번까지는 무리 없이 찰 수 있었으나 역시 몸이 완성되지 않아 그 다음부터는 밸런스가 무너지는 것을 느끼곤 재혁이 아쉬움에 혀를 찼는데, 그런 재혁을 옆에서 지켜보던 세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와. 너 언제 그렇게 늘었냐?”

    “어? 그냥 집에서 연습하다보니까.”

    “그래? 호오, 그럼 나도 이제 집에서 연습이나 해볼까.”

    그렇게 말하면서 세훈이 재혁이 그랬던 것처럼 발등으로 리프팅을 시도했으나, 3번도 채 성공하지 못하고 공을 떨어뜨리면서 머리를 긁었다.

    그런 두 사람을 향해 가운데 자리를 잡고 서있던 아이가 재혁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재혁이 너는 뭐할꺼야?”

    “나?”

    발밑으로 굴러오는 공을 발바닥으로 잡아내면서 재혁이 친구들을 향해 간단히 대꾸했다.

    “나는 미드필더.”

    ***

    겨우 초등학생들이 차는 동네 축구였다.

    20명 넘짓 모여서 다들 생각 없이 즐겁게 뛰어 놀기 위해 차는 그런 축구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흙더미 속에 묻혀 있다고 하더라도 보석은 빛을 받으면 그에 합당한 빛을 발하는 법이다. 그리고 재혁이라는 보석은 축구공이라는 빛이 그의 발에 놓일 때면 찬란하게 빛을 뿜었고, 그 때문에 종철과 철우는 매순간 눈이 부시는 것을 느꼈다.

    특히 종철은 입을 크게 벌리고 침까지 떨어뜨릴 기세로 재혁을 빤히 바라보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린 다음 철우에게 말했다.

    “쟤 누군지 알아?”

    “아뇨. 처음 보는 꼬마네요.”

    “하지만 분명 우리 학교 학생인 건 맞지?”

    “종이 울리고 학교 건물에서 뛰쳐나왔으니, 분명 그렇겠죠.”

    철우의 말에 종철이 고개를 무겁게 끄덕이더니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잡자.”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선수를 스카우트하기 위해서 말이다.

    ***

    “어어, 공 간다!”

    “막아, 막아!”

    “왜 저쪽에 아무도 없어?”

    “아, 또 들어갔잖아! 골키퍼 뭐해?”

    ‘그야 공을 따라 우르르 몰려다니니 그렇지.’

    중앙에서 흘러나온 공을 반대쪽 빈 곳으로 밀어주고 나서 그게 골까지 이어지는 것을 지켜보던 재혁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결국 동네 축구였다.

    공이 가는 곳에 아이들은 몰려다녔고, 그저 근처에서 공이 튕겨 나오길 기다리면 그걸 가지고 빈 곳으로 연결해주면 그가 해야 할 모든 일들이 끝이 났다.

    물론 드리블로 몇 명을 제친다던가, 직접 몰고 나가 슈팅을 시도할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 그가 하는 것은 친구들과 하는 즐거운 동네 축구였으니.

    ‘자기 발전과 개발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혼자서 훈련하는 편이 나을 거야. 아직까지는 말야.’

    과거 제대로 된 축구를 시작했던 것도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부터였다.

    그것도 2학년 여름 방학 때부터 말이다.

    그 전까지는 단순히 또래 아이들과 운동을 하는 것을 좋아할 뿐이었으나, 재능을 알아본 중학교 축구부 감독님을 통해 진지하게 축구를 대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나이별 대표 팀에까지 승선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축구에 모든 것을 쏟아내고 싶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기본기랑 신체 단련. 그 외에도 준비해야할 게 많아.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이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게 너무 많으니까.’

    정말 짧았던 전성기라 부를 수 있을 시기에서 다른 대표 선수들보다 축구에 늦게 입문했던 재혁이 가지고 있던 정말 강력한 무기.

    상황에 따라 머리보다 먼저 근육이 반응하는 순간적인 움직임들이 바로 그것이었고, 그걸 습득할 수 있도록 훈련을 도와주었던 감독님이 바로 중학교 축구부 감독님이셨다.

    재혁은 중학교에 진학하기까지 남은 1년간 최대한 신체 능력을 키우고, 또 그때처럼 근육에 움직임을 각인 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려면 당분간 혼자서 축구를 해야 할 테니. 세훈이한테는 미안하지만 같이 즐기는 축구는 오늘이 마지막이다.’

    방금 자신이 밀어준 패스로 골을 넣고 친구들과 손을 마주치며 즐거워하고 있는 세훈을 빤히 바라보던 재혁은 슬그머니 등을 돌리고 다시 재개될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센터 서클 뒤편을 향해 걸어갔고, 그런 재혁의 뒷모습을 세훈은 빤히 바라보았다.

    ***

    6 대 2.

    동네 축구는 과연 동네 축구다운 점수 차를 기록하면서 끝이 났다.

    이긴 아이들은 신이 난 얼굴로 방방 뛰면서 웃었고, 진 아이들도 아쉽지만 다음엔 꼭 이기겠다며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저녁밥이 준비되어 있을 집을 향해 돌아갔다.

    뉘엿뉘엿 몸을 숨기려는 해를 바라보던 재혁도 슬그머니 바닥에 떨어뜨려 놓았던 가방을 다시 챙겨들기 위해 걸어갔는데, 누군가 그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꼬마야. 우리 학교, 중앙 초등학교 학생이지?”

    “네?”

    낯선 남성 두 명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재혁이 경계하면서 되묻자, 철우가 한 보 앞으로 나서며 손을 내저었다.

    “놀라지 마.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니까. 나는 중앙초 축구부 코치인 강철우라는 사람이고, 이분은 거기서 감독을 맡고 계신 임종철이라는 분이야.”

    “축구부 코치님과 감독님이요?”

    뜻밖의 사람들이 다가온 것에 재혁이 고개를 기우뚱 기울였고, 기억을 더듬었다.

    다니던 초등학교에 축구부가 있었던가? 게다가 코치와 감독이 따로 있을 정도라면 분명 단순한 부활동이 아니었을 텐데.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떠올리려고 노력해 보아도 축구부와 관련된 소식은 하나도 떠오르는 게 없었고, 그런 재혁의 반응을 보면서 종철이 큼큼, 목을 가다듬으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에 대해 모를 수도 있지. 우린 학교에서 고용된 사람들이라 축구부에 가입한 학생들이 아니면 자주 만나질 않았으니 말이야.”

    “아뇨. 그 전에, 축구부라는 게 있는 지도 몰랐는데요?”

    “···그것도 우리 잘못이겠지. 잘 알려지지 않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꽤 상처를 주는 말을 툭 뱉은 재혁과 시선을 맞추면서 종철이 진땀을 흘렸으나, 그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재혁에게 재차 말을 붙였다.

    “아무튼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마. 축구부에서 축구를 해볼 생각은 없니?”

    < 3. 뚝 떨어진 아이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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