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2화 (2/225)
  • < 2. 단잠 >

    끼이익, 철컹.

    녹이 슬어 듣기 괴로운 소리를 내면서 철문이 닫혔다.

    한줌의 빛도 스며들지 못하는 반지하.

    그곳에 평생 머무르고 있는 축축한 공기를 재혁이 코로 마시면서 손을 더듬어 전등을 켰다.

    곧 그의 눈에 아침에 어질렀던 방의 모습이 그대로 들어왔다.

    잠시간 멍하니 뒤집어진 이불을 내려 보던 재혁은 발을 옮겨 설거지가 쌓인 개수대로 향했고, 조용히 그것들을 헹궈내기 시작했다.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아 찬물로 거품이 낀 그릇들을 닦아낸 다음 대충 널어놓던 재혁이 이번에는 이불들을 정리하기 위해 발을 옮기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젠장할. 그거 좀 찼다고 바로 저리다니···.”

    오른손을 뻗어 부들부들 떨고 있는 무릎과 종아리를 움켜쥐던 재혁이 이를 갈았다.

    그저 제자리에 서서 공만 몇 번 찼을 뿐인데.

    직접 사용한 왼발보다 디딤 발이 되어 주었던 오른쪽 다리가 사정없이 몸을 떨며 비명을 지르고 있던 것이다.

    한동안 저린 다리를 주물러서 풀어주던 재혁이 어이가 없어 실소를 흘렸다.

    “큭큭···. 나 최재혁이 20년이 지났을 때 이런 골방에서 썩어가고 있을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생각이나 했겠냐고!”

    쿠웅!

    결국 더 이상 분을 참지 못하고 바닥을 주먹으로 내려친 재혁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다리가 망가진 후 한 번도 울지 않았건만, 오늘만큼은 서러움에 북받쳐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미친놈처럼 소리 내어 울던 재혁의 뇌리로 20년간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가기 시작했다.

    태클을 당하는 순간 느꼈던 고통.

    응급차 안에서 다시는 공을 찰 수 없을 것이라 본능적으로 느꼈던 공포.

    그리고 의사의 입을 통해 전해진 현실.

    하지만 무엇보다 참기 힘들었던 것은 하나뿐이었던 할머니의 죽음과 동생의 가출이었다.

    손자와 손녀만 바라보며 살아가시던 할머니는 재혁의 몸이 망가진 것에 자신이 더욱 힘을 내겠다며 늦은 밤까지 리어카를 끄시다가 차에 치여 도로변에서 싸늘하게 몸이 식으셨고, 동생인 재희는 더 이상 이런 생활은 지긋지긋하다며 18살이 되던 해 사라져 버렸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진 재혁과 달리 공부하는 머리가 좋아 전교 순위권을 다투던 모범생이었던 재희였기에, 그런 동생의 가출이 준 충격은 도저히 믿기 힘들 정도였다.

    허나 이 모든 것이 모두 그에게 일어났던 일들이었으니.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기억을 연신 더듬으면서 재혁이 피가 흐를 정도로 입술을 꾹 깨물었다.

    “결국 신은 없었던 건가···. 나같이 밑바닥에서 어둥버둥 거리는 사람에겐 신조차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건가···.”

    만약 그때 태클만 피했더라면.

    아니, 그 전에 어떻게든 다리만 정상이었다면···.

    “아니면 적어도 절름발이만 아니었다면···.”

    재혁은 계속해서 일어날 수 없는 가정들을 홀로 되뇌며 이불을 움켜쥐고 고개를 처박았고, 그렇게 눈물로 이불솜을 적시다가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사고를 당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이루지 못했던 꿀맛 같은 단잠에 말이다.

    그러다 문득 눈을 떴을 때.

    “어라···?”

    자신이 누워있던 곳이 곰팡이가 가득한 반지하 방이 아님을 깨닫고 재혁이 당황한 목소리를 흘렸다. 그런데 낯선 것은 방뿐만이 아니었다.

    “응? 우리 강아지 벌써 일어났누?”

    “···하, 할머니?!”

    “아직 해도 안 떴는디, 벌써 일어나면 어쩌야? 키크려면 푹 자야된다야.”

    재혁이 이불을 밀어내고 몸을 일으켰을 때, 문지방너머에서 허리를 쭈그리고 있던 재혁의 할머니, 정말숙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재혁을 살피며 물었으나 재혁은 할머니의 말에 쉽사리 답할 수 없었다.

    아니, 이 상황 자체를 믿을 수 없었다.

    분명 오래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눈앞에 멀쩡히 살아계시다니. 당시 없는 돈으로 직접 장례를 치렀던 재혁이기에 할머니가 살아 계시다는 것을 도저히 믿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알던 것보다 조금이나마 젊은 모습으로 자신을 지켜보는 할머니라니.

    잔뜩 굽었던 허리는 약간이나마 펴져 있었고, 얼굴의 주름도 곱절은 적어보였다.

    마치 그가 초등학생 때 보았던 모습처럼 말이다.

    그런 재혁의 놀람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옆에서 들린 조그마한 목소리에 재혁이 고개를 돌리더니 눈을 크게 떴다.

    “우웅···.”

    “재, 재희까지···!”

    가난이 지겹다며 사라져 버린 동생, 최재희.

    그런 동생이 이불을 꼭 말아 쥐고 그의 곁에서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본 재혁은 헛바람을 삼키며 동공을 떨었으나, 재혁을 이상하게 여기면서 할머니가 그에게 물었다.

    “매일 보는 동생이 뭐가 그리 신기해야? 재혁이도 조금이라도 더 눈 붙이고 있어. 할미가 이따가 깨워줄테니께.”

    “아, 아뇨. 잠 다 깼어요. 화,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아직 어두우니께 발밑 조심혀.”

    할머니의 말에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재혁은 몸을 일으키고 조심스레 화장실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 나갔고, 그런 재혁의 뒷모습을 빤히 지켜보던 할머니는 다시 고개를 틀어 눈앞에 놓인 음식을 준비하면서 혀를 찼다.

    “무슨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얼굴이 핼쓱해져서는···. 에휴, 안 되것다. 오늘 저녁엔 닭이라두 한 마리 삶아야 쓰것어.”

    ***

    “오빠, 같이가~.”

    “어, 응.”

    생각에 잠겨 걷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재희와의 거리가 벌어졌고, 아직 책가방이 무거웠던 재희가 재혁을 향해 칭얼거렸다.

    재희의 목소리를 쫓아 고개를 돌렸던 재혁은 동생이 쫓아오길 기다리면서 또 한 번 침을 삼켰다.

    ‘꿈이 아니야.’

    할머니도, 재희도, 그리고 자신도.

    모든 것이 그가 초등학생 6학년 때로 돌아왔다.

    어떻게 된 일인지, 혹은 어쩌다 벌어진 일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학교를 가기 전 그의 뺨을 어루만져 주시던 할머니의 온기는 따뜻했고, 지금 자신의 옷자락을 붙잡고 따라오는 동생도 환상이 아니었다.

    혹시 다시 잠에 들면 깨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으나 화장실을 다녀온 후 잠시간 잠에 빠졌다 깼을 때도 모든 것이 그대로라는 것을 확인하고 재혁은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은 지금 과거로 돌아왔다고.

    허나 왜? 어째서?

    ‘혹시 진짜 신이 내 말을 듣고···.’

    “오빠, 내 말 듣고 있어?”

    “어, 응?”

    “이것 봐. 또 안 듣고 있었지! 나빴어! 할머니한테 이를 거야!”

    그보다 3살 어린 여동생 재희가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볼을 잔뜩 부풀리며 삐진 것처럼 소리치더니 재혁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고 가슴께에 팔짱을 껴버렸고, 그런 귀여운 모습의 재희를 옆에서 바라보던 재혁이 작게 웃으며 동생에게 물었다.

    “아니야. 듣고 있었어.”

    “진짜? 또 재희 놀리는 거 아니야?”

    “오빠가 재희를 왜 놀려?”

    “그러면 얼른 말해줘! 학교 끝나고 또 축구하러 갈거야? 그러면 재희도 친구들이랑 좀 놀다 오게.”

    축구.

    동생의 입을 통해 전해진 단어를 듣는 순간 재혁의 심장이 요동쳤다.

    다시는 할 수 없을 것이라, 또 잊고 살아야 할 것이라 믿고 있었던 축구를 다시 할 수 있는 순간이 온 것이다.

    재희의 질문에 재혁은 곧장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축구, 다시 해야지.”

    ***

    ‘임종철 감독님. 잘 알고 계시죠? 올해가 마지막입니다. 결과가 없으면 연장도 없어요.’

    “이 망할 새끼들이. 지들 맘대로 마지막을 정하고 있어? 나가려면 내가 내 발로 나간다, 새끼들아!”

    깡!

    학교 건물을 빠져나오면서 바닥을 굴러다니던 찌그러진 음료수캔을 발로 걷어찬 종철이 이를 갈았고, 그 모습을 계단에 걸터앉아 지켜보던 남성이 뺨을 긁적이며 물었다.

    “결국 까였어요?”

    “올해 결과를 내놓으시란다. 최소 4강.”

    종철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남성, 철우가 기겁했다.

    “켁. 무슨 4강이에요? 3년 전에 대진 운이 좋아서 8강까지 갔던 걸 실력으로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착각을 착각인 줄 알고 있으면 그게 착각이겠냐? 저건 자신감이야. 근거 없는 자신감. 망할, 유니폼이랑 공 몇 개도 간신히 지원해주면서···.”

    모래 운동장을 터덜터덜 걷기 시작한 종철의 옆으로 철우가 달라붙었고, 종철은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주변에 같은 조로 편성된 초등학교들이 어딘지 몰라서 저러는 거야? 3회 연속 우승을 한 소정초, 인프라 지원 빵빵한 대정초, 그리고 차세대 무섭게 뜰 녀석들이 셋이나 있는 영동초랑 한 조라고. 이건 조별 예선도 통과가 힘든 상황인데···. 그런데 4강을 가라고?!”

    뻥!

    이번에는 운동장을 굴러다니던 축구공을 종철이 냅다 걷어찼고, 제법 원만한 포물선을 그린 공이 골망을 철썩이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 철우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감독님 아직 안 죽었네요. 역시 국대 데드볼 스페셜리스트답습니다.”

    “대표 경기 한 번 뛰고, 딱 한 번 프리킥을 찼을 뿐인데. 이 자식아, 나 놀리냐?”

    “그래도 그 한 경기에서 전담 키커였잖아요. 그럼 대단한거죠.”

    악의없이 계속해서 아픈 곳을 찌르는 철우를 곁눈질로 흘겨보던 종철은 이내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털어낸 다음 물었다.

    “아무튼 일단 결과는 내야 돼. 어떻게든 조별 예선만 통과하면 일단 뭐든 되겠지. 적어도 조 2위까지만 가서 지역조로 넘어가기만 하면 희망은 있어. 같은 조 놈들은 당분간 안 만날테니까.”

    “매우 희망적인 생각이시네요. 역시 존경합니다.”

    “그래서, 알아보라는 애들은 어떻게 됐어?”

    천천히 걸어 그늘진 곳을 찾아 이동한 종철이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물었고, 철우는 손을 휘휘 내저어 혹시 날아올 연기를 흐뜨리며 답했다.

    “날쌘 애들은 이미 다 육상부에서 빼갔어요. 키 큰 녀석들은 배구, 농구. 오히려 축구부에 있던 애들이 다른 곳으로 넘어가버렸죠.”

    “뭐?! 누가 넘어갔는데?”

    “현승이요. 축구보다 야구가 더 좋다면서 어제부로 옮겼어요.”

    “현승이가 빠지면 안 되지! 그나마 패스할 줄 아는 놈이 걔밖에 없는데!”

    빼액, 소리를 내지르던 종철은 이내 기운이 탁 풀리는 느낌에 어깨를 늘어뜨리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른 운동부로 아이들이 넘어가는 것도 못 막아주면서 무슨 놈의 4강?

    당장 다시 이사장을 향해 달려가 멱살이라도 부여잡고 싶었던 종철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욕설을 내뱉으면서 이를 갈았다.

    결국 올해의 운명도 조별 예선 탈락인가. 그리고 그게 내 마지막이 되겠지.

    그런 생각을 떠올리면서 아직 반도 태우지 않은 담배를 구두바닥으로 비벼 끈 후 쓰레기통에 던져 넣던 종철의 눈에 일단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빠져나와 축구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뛰쳐나오는 게 들어왔다.

    그러면서 은연 중 자신도 모르게 한탄 섞인 어조로 중얼거렸다.

    “에휴, 쟤들 중에 어디 쓸만한 녀석이 없으려나.”

    “아마 있었으면 또 다른 운동부에서 채갔겠죠.”

    “그걸 내가 몰라서 하는 소리겠냐? 그냥 해본 소리다, 해본 소리. 하여간 이놈은 도통···.”

    철썩!

    “?!”

    순간 축구공이 골망을 치는 모습을 본 종철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 2. 단잠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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