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절름발이 최씨 >
꼬리를 잃은 트레일러들과 중형 버스들이 즐비한 주차장.
포장이 되지 않아 자갈과 흙먼지가 사방에 널려있는 주차장의 한켠에서 꼬깔콘 몇 개를 세워놓고 공을 차고 있는 중년들이 여럿 있었다.
“야야, 제대로 막아라!”
“패스할 틈을 주지마! 이거 술내기야! 절대 지면 안 돼!”
“어어, 뚫렸다! 몸으로 막아!”
투박한 몸짓으로 축구공을 차고 있는 중년들은 비록 기술은 좋지 않을지언정, 승리를 향한 열정과 근성으로 구슬땀을 흘리면서 골을 넣기 위해 분주히 발을 놀렸다.
6 대 6.
크기도 실제 축구장의 반에 반 정도 될법한 경기장 위에서 각자 목청을 돋궈 소리를 내지르던 중, 공이 한 차례 허공으로 크게 튀었고, 곧 두 명이 떨어지는 공을 향해 발을 내밀다가 부딪치면서 바닥을 내뒹굴렀다.
“끄, 끄악!”
“아이고, 김씨!”
“내, 내 정강이! 끄으으윽!”
“괜찮소?”
부딪치던 쪽 중, 정강이를 강하게 얻어맞은 김씨가 양손으로 다리를 부여잡고 흙바닥을 뒹굴었고, 그런 김씨를 사람들이 둘러싸면서 걱정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그를 부축했다.
잠시 공을 멈추고 김씨를 살피던 사람들은 벌써 부어오르는 김씨의 정강이를 보곤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녀? 뼈에 금이라도 간 거 같은디.”
“병원은 무슨 병원. 그 돈이면 코 삐뚤어지게 술이나 쳐마시고 얼음 대는 게 나아.”
“하긴. 괜히 덤탱이라두 쓰면···.”
“그나저나 이래서야 김씨는 못 뛰겄는디? 누구 다른 사람 뛸 놈 없으?”
다른 내기도 아닌 저녁 술내기.
이대로 파하기엔 다들 아쉬웠기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김씨를 대신할 사람을 찾았는데, 그런 중년인들의 눈에 다리를 절뚝이며 슬그머니 어디론가 걷고 있는 남성이 들어왔다.
눈을 부라리던 중년인이 남성을 향해 대뜸 소리를 내질렀다.
“어이, 최씨! 시간 괜찮으면 같이 공이나 차지?”
“뭐? 여기서 최씨를 끼겠다고?”
“절름발이 최씨를 넣어서 어쩌자는 겨? 축구는 발로 하는 거잖어! 날이 더워서 대가리가 드디어 돌아버렸나?”
“응? 최씨? 같이 하지?”
중년인의 소리에 주위 사람들이 비명을 내질렀으나, 중년인은 여전한 얼굴로 최씨라는 남성을 향해 물었고, 최씨는 발을 멈추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저 못 뜁니다.”
“괜찮어. 내 팀에서 골키퍼라도 봐주더라고. 서있는 건 할 수 있을 거 아녀?”
“에잉, 최씨 넣을 거면 내가 딴 팀으로 가부린다! 술값 아끼려고 내기에 꼈는데, 독박 쓰긴 싫으야!”
“아따, 이 성격 급한 친구야. 어차피 즐기자고 하는 건디, 성깔 좀 죽여야.”
“···.”
최씨라는 사람을 앞에 두고 다른 사람들이 수군거렸으나, 중년인은 오히려 동료들을 다독이며 최씨에게 재차 물었고, 최씨는 결국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면 골대만 막고 있겠습니다.”
“그려, 그려. 그거면 돼.”
결국 꼬깔콘 두 개 사이에 자리를 잡고 서게 된 최씨와 그런 최씨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사람들은 부상으로 김씨가 빠지면서 멈췄던 축구를 다시 시작했다.
퉁, 퉁, 뻐엉!
온갖 요란한 몸짓으로 공을 차면서 흙먼지가 날리기 시작한 경기장을 가장 뒤편에서 멍하니 바라보던 최씨, 최재혁이 손을 휘휘 내저으며 눈썹을 모았다.
‘축구라. 얼마 만에 하는 거람.’
무릎과 발목이 박살나면서 축구장 근처로는 단 한 번도 다시 고개를 돌리지 않았던 재혁.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동네 아저씨들 술값 내기에 껴있는 자신을 내려 보면서 실소가 흘러나오려 했지만, 애써 참아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게 바로 현실이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청소년 대표에 프로 지망 0순위의 유망주였다고 해도, 다리가 아작 난 순간부턴 다 끝이지.’
U-19 국제 대회에서 있었던 자신을 향했던 살인 태클을 떠올리면서 재혁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 태클 하나에 다리가 망가졌고, 동시에 그의 운명도 같이 망가져버렸던 것이다.
재활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지경이었으니. 당시 의사의 말은 그에게 사형선고와 같았다.
어디서 커리어라도 쌓았었더라면 코치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현실은 너무도 가혹했고, 결국 나이를 먹은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나마 할 줄 아는 운전을 통해 밥을 벌어먹는 것일 뿐이었다.
뻥!
“어어, 공막아!”
회상에 잠겨있던 중, 갑자기 공이 바람소리를 내며 퉁겨지더니 재혁이 서있는 꼬깔콘 사이 틈바구니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상대팀에서 공 좀 찬다고 자부하는 중년이 때린 기습 슈팅이었다.
제법 힘이 실렸는지 낮게 깔려서 정확히 구석을 향하고 있는 공.
재혁은 모은 미간 사이로 이동하는 공을 끝까지 노려보면서 왼발을 뻗어 발등으로 공을 받아냈다.
투웅!
“?!”
슈팅을 때렸던 중년인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눈동자에 물음표를 떠올렸다.
분명 들어갈 것이라 예상했던 사람들은 헛바람까지 삼키며 켁, 이라는 단발마를 흘렸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재혁은 태평하게 공을 트래핑한 후 조심스레 발밑으로 굴렸다.
‘아무리 주 발이 아닌 왼발이라지만, 이 정도는 받아 낼만 하지.’
꽤 오랜 만에 공을 만졌음에도 공이 발끝에 닿는 그 순간 잊고 있던 감각이 살아남을 느끼면서 재혁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떠올렸다가, 바로 지워버렸다.
이미 자신의 것이 아닌 축구를 위해 웃다니.
그 낯선 감정에 이를 간 재혁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전방을 살폈다.
일단 골키퍼를 맡아주기로 했으니, 제 역할은 해야 하리라.
곧 그의 눈에 가장 먼 곳에서 수비의 압박을 받지 않는 위치에 서있는 팀 동료가 보였고, 재혁은 곧장 공의 밑동을 왼발로 깎아 차면서 패스를 시도했다.
뻐엉!
원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재혁이 정확히 노렸던 동료를 향해 날아가는 공과 그런 패스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본인들도 모르게 비명을 뱉었다.
“뭐, 뭐야! 저 패스!”
“마, 막아라! 슈팅 때리게 두지 말어!”
황급히 공과 사람을 쫓아 이동하기 시작한 사람들이었으나, 이미 패스는 동료의 발밑에 떨어졌고, 재혁의 패스를 손쉽게 받을 수 있었던 중년 팀 동료는 곧바로 공을 밀어 차며 비어있는 꼬깔콘 사이로 공을 밀어 넣었다.
데굴데굴 굴러가는 공을 막연하게 바라보던 상대팀 골키퍼와 달리, 재혁의 팀 동료들은 골을 확인하기 무섭게 소리를 내지르며 환호했다.
“크야! 이걸로 이제 2:4여! 2골만 더 넣으면 동점이야!”
“좋아, 좋아. 잘 넣었어, 박씨. 그리고 최씨도 굳 패스였소!”
재혁을 불러 팀에 넣었던 중년인이 골을 넣은 동료와 재혁을 향해 함박웃음을 보이며 소리쳤고, 두 사람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마주쳤다.
어찌나 세게 쳤는지, 얼얼한 손바닥을 재혁이 내려보며 입술을 핥짝였다.
‘누군가랑 손을 마주친 게 얼마만이더라.’
매일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집에 가서 홀로 지내는 방안에서 잠에 들던 재혁은 스치고 지나간, 투박했지만 따뜻했던 체온을 기억하며 손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펼쳤고, 슬그머니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2:4라. 비기려면 2골, 이기려면 3골.’
비록 전과 같이 천연 잔디가 깔린 경기장에서 뛰는 게 아니었으나, 지금의 재혁도 그때와 비교했을 때 승부욕만큼은 지지 않을 상태였으니.
‘무조건 이긴다.’
오랫동안 꺼져있던 가슴에 불을 지피며 승부욕을 태웠다.
***
“슛, 슛! 골! 골이야!”
“결국 역전해서 이겨부렸다야! 크으, 오늘 술값은 굳었다!”
마지막으로 공이 꼬깔콘 사이로 지나치자 두 팀으로 나뉘었던 중년인들 사이에 희비가 엇갈렸다.
재혁과 같은 팀이었던 사람들은 신이 난 목소리로 손을 허공에 던졌고, 적팀이었던 중년인들은 허망한 얼굴로 바닥을 구르는 공을 노려보았지만 그런다고 결과가 달라질 리는 없으리라.
다들 오늘 안줏거리와 함께 집에 기어갈 만큼 마셔보자고 의를 다지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서 재혁은 슬그머니 몸을 빼내고 있었다.
그런 재혁을 발견한 중년인이 소리쳤다.
“어이, 최씨! 최씨도 같이 가야지?”
“죄송합니다만, 전 괜찮습니다. 전 빼놓고 즐겁게 마시십쇼.”
“무슨 소리여? 오늘 수훈갑이 빠져서야 쓰나?”
“정말 괜찮습니다. 저 술 못하거든요.”
“술을 못해야? 그럼 안주라도 먹고 가!”
중년인이 거듭 재혁에게 소리를 내지르며 함께 하자고 권했으나, 재혁은 마지막까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리를 떠났다.
결국 재혁을 붙잡지 못하고 입맛만 다시게 된 중년인은 아쉬움에 머리를 긁적이다가 몸을 틀었고, 그런 중년인을 향해 여러 사람들이 달려들어 물었다.
“뭐여? 최씨는 안 온대?”
“괜찮다구 하더니 그냥 집으로 가부렸어.”
“그래? 아니 그런데···, 절름발이면서 무슨 공을 저렇게 잘 차?”
처음에는 최씨가 끼면 다른 팀으로 가버리겠다고 협박을 늘어놓던 중년인이 신기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아니, 신기할 수밖에 없으리라.
재혁이 참여하면서 모든 분위기가 바뀌었으니까 말이다.
골대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었음에도 뿌리는 패스마다 정확히 동료를 찾아 날아갔고, 이따금 상대팀이 매섭게 때린 슈팅도 가볍게 걷어 내거나 가슴으로 트래핑하는 모습은 일반적인 절름발이가 보여줄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던 것이다.
특히 마지막에 밀어 넣는 골을 어시스트 한 패스는 경기장 바닥을 가르고 정확히 동료의 오른발을 쫓아 날아갔으니, 골의 9할 이상은 재혁의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직까지도 재혁이 보여준 모습을 믿기 힘들다는 듯, 눈을 껌뻑이고 있는 중년인을 향해 남성이 쯧쯧 혀를 차며 대꾸했다.
“몰랐어? 저 친구 청대 출신이여.”
“뭐? 청대? 그 청소년 대표인가, 뭐시기인가 하는 그거? 축구 청소년 대표?”
“그렇다니까. 뭐 대부분 모르는 것 같지만 난 저 친구가 처음 여기 왔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열심히 뛰느라 마른목을 축이기 위해 남성이 말을 멈추고 물병을 벌컥였고, 그런 남성의 곁에 선 다른 중년인들이 계속해서 그에게 물었다.
“뭔디? 어떻게 알고 있었는디?”
“그야 내가 경기장에 구경까지 가봤으니까 알지. 당대 최고의 유망주. 공간 이해력 최고, 기술도 최고. 흠이라면 어려서 완성이 안 된 몸정도였는데, 하필이면 그럴 때 태클로 다리가 아작이 나버려가지고···.”
“헐. 그 말 들으니 나도 기억이 날 거 같네. 그 친구 아니여, 천재 미드필더 최재혁! 당장 유럽으로 날아가도 될 선수라고 하도 사람들이 귀 따갑게 떠들어서 나도 이름이 기억이 나네!”
“여태 잊고 있었으면서 기억이 나긴 개뿔.”
남성이 오두방정을 떠는 중년인을 향해 헛손을 날리다가 혀를 다시면서 아쉬운 눈길로 재혁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결국 그런 거지. 아무리 뛰어났어도 이젠 다 잊혀져 버린 과거의 망령인 거여.”
“과거의 망령이라···.”
“그럼 망령 때문에 이긴 것이니 이 내기는 무효로 해야것지? 세상에, 청대를 팀에 넣을 생각을 한 괘씸한 놈한테는 술이 아까워야!”
“무슨 소리여! 내기는 내기지! 얼른 이모네 국밥집으로 가자고!”
방금까지 재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년인들의 머릿속에서 재혁의 존재는 순식간에 잊혀졌다.
마치 오늘날, 어느 축구 팬도 그를 기억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 1. 절름발이 최씨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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