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군으로 살어리랏다-359화 (359/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359화>

    ***

    「···하므로 중원(中原)이 혼란하니 역적 진(陳)도 이때를 틈 타 발호하여 요동의 관민들을 핍박하였다. 그런데도 요동 등지의 수령방백(守令方伯)들은 역적 무리의 기세에 눌려 백성이 울부짖고, 살려달라 애원해도 일체 들은 척도 않고서는 전장으로 나아가지 않았으며, 오히려 요동도사 손경 같은 모리배는 역적 진의 복심(腹心)을 자처하며 백성들을 침해하였으니 불충의 죄를 면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차마 불충을 저지를 수 없고, 백성의 애원을 외면 할 수 없어 의병을 일으켰는데 지금에 이르러 난리는 종결 되었어도, 난리로 인해 전곡이 부족하게 되었으니 추위와 굶주림에 허덕이는 자들이 많음에도 이를 구원하지 못 하니 황상의 은혜를 입은 본 왕이 금주, 개주, 복주, 요양, 철령, 심양, 광녕 등지에 진휼청(賑恤廳)을 설치하여 황상의 보살핌이 있기 전까지 어려움이 있는 자들을 어루 만질 것이다. 이를 듣고 알지어며, 도움이 필요한 요동의 백성들은 진휼청을 찾도록 하라.」

    복주 사람 득칠(得七)은 방문(榜文)을 읽으면서 답답한지, 가슴을 탕탕 두들겼다.

    자학하는 득칠의 모습이 의아한 지, 방문 앞을 기웃거리고 있던 행인들 중 한 명이 물었다.

    “왜, 그러시오?”

    “왜 그러긴. 보면 모르시오?”

    예의 행인은 방문을 흘기다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내가 까막눈이라서······.”

    “글이 좀 기오만 짧게 요약하자면 글쎄, 조선왕이 구휼미를 베푼다지 않소.”

    “그럼 저 군사들이 구휼미 때문에 온 군사들인 거요?”

    행인이 멀찍이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조선군들을 가리키며 묻자, 득칠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겠지.”

    “우리 나라 위장(衛將)들은 뭘 하고 조선이 구휼을 한단 말이오?”

    “그러니 내 복장이 터진다는 말이지.”

    푸념거리가 퍽 많았는지 득칠은 아예 자리를 깔고 앉았다.

    득칠을 따라 행인도 자리를 잡았다.

    “복장이 왜?”

    “아니, 생각 해보시오. 아무리 폐하께서 조선왕에게 요동왕이란 왕작을 내려주셨다고 해도, 결국 이국의 제후 아니오? 자, 이게 무슨 말이냐. 그, 형 씨는 어디 사람이오?”

    “나? 복주 사람이지.”

    “그래, 복주 사람인 형 씨더러 오늘부터 금주사람 해라. 하면 오늘부터 형 씨가 금주 사람이 되는 거요?”

    “아니지.”

    “내 말이 그 말이오. 아무리 요동왕에 제수가 됐다고 해도 근본은 이국의 왕이고, 이국의 제후요. 근데 위장 놈들은 대체 뭘 하고 있길래 코빼기도 안 비치고 제후가 구휼미를 베푸냐 이 말이외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역적들이 창궐했을 때도 코빼기도 안 비쳤잖소. 그거랑 같은 맥락 아니겠소?”

    이번에도 복장이 터지는지, 득칠은 애먼 가슴을 탕탕 두들겼다.

    “내가 또 그거에 대해서는 이틀 밤낮을 새서라도 말할 수가 있소이다.”

    “맺힌 게 많나보구만?”

    “맺힌 거? 내가 난리통 때 관군들 때문에 죽다 살아났소이다. 안 맺힌 게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관군 때문에 죽다 살아났단 말이 제법 자극적이었는지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던 주변인들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에 잠시 멈칫거린 득칠은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인지 막힘없이 속내를 털어놨다.

    “막말로다가 이번 난리 때 관군들이 한 게 뭐가 있었소? 응? 성에 틀어 박혀가지고는 코빼기도 안 비쳤소. 여기까지면 내가 말을 안 해. 피난 온 우리 가족더러 역적 놈들 끄나풀이라면서 죽이려고 했다니까? 이게 말이 되오? 칠순 잡순 내 아비가 무슨 힘이 있어서 산 넘고, 물 건너서까지 끄나풀 짓을 한다고··· 도중에 조선군이 중재해줘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죽을 판이었었소.”

    이게 시작이었다.

    “나도, 나도!”

    여기저기서 증언(?)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내가 그래서 우리 막내 아들 내외랑 같이 피난 가고 있는데 때마침 도적 놈들하고 맞딱뜨렸지 뭐요? 아··· 이제 죽었구나 싶은데 글쎄, 거짓말처럼 조선군이 나타났소. 이 도적들이 꽁지 빠져라 도망치는데, 그 꼴을 여러분도 봤어야 했소.”

    “···하면서 이제 진짜 끌려 가겠구나 싶었다니까? 근데··· 거기서 딱 조선군이 나왔소. 나와서는 무슨 일이 있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냉큼 여기 도적 놈들이 우릴 끌고 가고 있소! 소리치니까, 바로 태도를 돌변해가지고 달려드는데 어휴. 마흔 평생 그렇게 간 떨린 적은 처음이요. 호랑이한테 물려갔다 살아 돌아온 기분이라니까?”

    증언은 곧 불만으로 이어졌다.

    “말이 나왔으니 나도 한 마디 덧붙입시다. 솔직히 말해서 다 굶어 죽을 판 아니었소? 추수라도 다 끝나고 피난을 왔으면 또 몰라. 여기 있는 사람들 태반은 세간살이 조금 챙겨가지고 역적 진 가놈 피해서 남쪽으로, 서쪽으로, 동쪽으로 피난 온 거 아니요. 다 굶어 죽을 뻔 한 거 누가 구해줬어? 조선군 아니었소.”

    “내 말이 그거요. 위장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니까. 평소에 거들먹거리기도 아주 왕처럼 거들먹거리던 작자들이 말이야. 막상 난리통에는 코빼기도 안 비쳐, 지금 같은 때에는 구휼도 안 해. 이게 무슨 경우란 말이요.”

    너도나도 성토를 벌이던 주민들의 불만은 이내 조선군에 대한 찬양(?)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런 분위기는 복주에서 뿐만이 아니라, 진휼청이 설치 된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

    역적 진 가 세력을 피해 세간 정도만 챙겨서 해주~금주까지 피난온 왕팔의 형편은 좋다고는 볼 수 없었다.

    아니, 좋다고 볼 수 없는 게 아니라 오늘, 내일 하는 실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떻게 고향 땅에서 이곳 금주까지 뫼셔온 부모님도, 평소라면 잔소리에 잔소리를 거듭할 텐데 먼 길 오면서 수 일을 굶주리기까지 해서 기력이 쇠할대로 쇠하셨는지, 거친 숨만 몰아쉬고 계셨다.

    아내라고 다르진 않았다.

    아직 한창 때라지만 평소 유약했던 왕팔의 아내는 어제부터 오늘까지 말 한마디도 못 하고 있었다.

    솔직히 왕팔 자신도 움직일 기력이 남아 있는 건 아니었지만, 밑으로 자식이 네 명이나 줄줄이 달려있었다.

    기력이 있어서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고, 기력이 없다고 움직이지 못 하는 게 아니었다.

    뭐가 됐건 부모님, 그리고 처자식 아사 안 시키려면 움직여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힘에 부쳤다.

    이리 저리 구걸을 해봤지만, 구걸 하는 사람이 왕팔 본인만 있는 것도 아니고 수십명, 수백명이나 되다 보니 그마저도 쉽진 않았다.

    게다가 난리통에 선뜻 본인이 가진 것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도 많지가 않았다.

    “하.”

    얼마를 굶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사흘을 내리 굶었던 것 같다.

    그나마 어제까지는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느낌이라도 있었는데 사흘째 되는 오늘은 아무런 느낌도 없다. 그저 이따금씩 배를 바늘로 콕콕 찌르는 느낌 정도?

    움직여야 했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리와 등이 땅에 달라붙은 것 같았고, 시야는 점점 좁아졌다.

    이게 죽어가는 거구나.

    이제 죽는 거구나.

    자신이야 죽어도 상관없다만, 부모님은?

    처자식은?

    가족들 생각에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이 또록- 흘러내린 그때였다.

    “이보시오, 이보시오. 괜찮으시오? 정신 좀 차리시오.”

    안간힘을 써서 눈을 떴다.

    파르르 떨리는 시야 사이로 이국적인 복색을 한 군인이 보였다.

    ***

    말했다시피 지금 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전후 복구였다.

    일단 기아 문제는, 완전한 해결은 아니더라도 얼추 해결이 됐다. 완전한 해결은 옥황상제가 와도 못 해낸다.

    인간이 갖는 본능 중 가장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게 변화할 우려가 있는 식(食)이 대충이나마 해결이 돼서인지 혼란스럽도 치안 문제도 얼추 잡혔다.

    사실 여기에는 조선식 호패를 발급하게 한 게 주효했는데, 20만석을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무상 배급하기로 마음 먹었어도 일시에 풀기란 요원한 일에 가까웠다.

    조선이 무슨 천조국도 아니고 말이지.

    게다가 나는 이 20만석을 무상 배급하면 우리 F4의 맴버(?)이기도 한 정덕제가 언젠가 중원의 일을 해결하고서 돌려줄 거란 생각을 막연하게 하고 있었는데, 슬슬 그게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

    한마디로, 어쩌면 절반도 못 돌려 받을 수도 있다는 뜻이지.

    그만큼 명나라 내부 사정이 혼란한 모양인데, 톈진성에 친을 친 정덕제가 아직도 성을 함락시키지 못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결국 20만석을 못 돌려 받을지도 모르는데 그럴 거라면 최대한 요긴하게라도 써야지 않겠나?

    호패 발급은 그 과정에서 생긴 일이다.

    한 알, 한 알 소중히 배급하기 위해서.

    중복 배급 받는 사람이 없게 하기 위해서.

    뭐, 그런다고 해서 100% 중복 배급을 가려낼 수 있는 건 아니긴 하지만 조금은 방지 할 수 있었다.

    어쨌든 호패가 발급 되다 보니 어수선한 틈을 타서 왈패 짓을 하던 사람들도 일부 해결이 되면서, 치안 문제가 잡혔다.

    일석이조의 효과인 셈이었다.

    하지만 기아 문제를 얼추 해결 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를 매듭 지은 건 아니었다.

    전란 때문에 아전, 그러니까 실무진들이 부족했다.

    기아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이리 흩어지고, 저리 흩어진 실무진들을 모으기도 힘들었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닌 건 알지만 그렇다고 실무진을 단순히 글만 안다고 해서 뽑을 수도 없었다.

    행정 업무라고는 1도 모르던 사람들 갖다가 써서 무슨 일 낼지도 모르고, 그러다 보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지도 모르고, 더더군다나 말도 안 통하고.

    고민하고 있다가 진성대학이 떠올랐다.

    진성대학의 졸업생들이라고 해서 행정 업무에 빠삭하단 건 아니지만, 애당초 진성대학을 만든 목적은 성균관 꼰대들에 대응해서 실생활에 도움 되는 학문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백면서생 보다는 낫다는 말이다.

    얼른 조정에 뜻을 알렸다.

    대학 재학생이나 졸업생들 중에 자원을 받게 했는데 여든 여덟 명이 자원을 했다.

    사실 이 정도 숫자도 요동이라는 거대한 땅을 다스리는 중간 관리자 급으로는 택도 없지만 이만한 게 어디겠나.

    당장 데려와서 실무에 투입시켰다.

    그러다 보니 이젠 또 관장(官長)이 문제네?

    요동 지역 대부분은 위소로 되어있었다.

    철령위 산하에 십수개의 성보가 있고, 거기에 천호니 백호니 하는 관리들이 있는 식인 것이다.

    이 통치 방법이 잘못 됐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요동의 지리적 환경을 생각한다면 효율적이다.

    단, 이것들이 내 말을 철저히 따랐을 경우에.

    위소의 산하에 있는 수십, 수백개의 성보에 있는 천호와 백호 같이 군직에 있는 관리들은 지금 당장은 내 말을 잘 따르는 편이었다.

    위장들은 비협조적이긴 하지만, 일단 하급 관리에 가까운 그들로서는 봉황성 지휘 전작세가 어떻게 깨지는지 풍문으로 들었든, 직접 눈으로 봤든 했을 테니 나와 조선군을 대하는 태도는 내 생각보다는 조심스러운 편이었다.

    하지만 내가 돌아가고 나서까지 그러리란 보장은 없었다.

    안 돌아가면 되지 않냐고?

    차라리 저주를 퍼붓지, 왜?

    대충 마무리 되는대로 돌아갈 거다.

    그리고 돌아가고 나서 하급 관리들이, 조선인 관리들 말에 지금처럼 따라줄 거란 보장은 없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겠지.

    관장은 이를 위해서다. 하급 관리들 사이에 알력이라던가 갈등이 있을지 몰라도, 일단 윗대가리를 조선인으로 꽃아 놓으면 수직 관계인 이상 무슨 저항을 하겠나?

    물론 모든 위소와 그 산하에 있는 성보 모두의 지휘관들을 갈아치우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럴 수도 없거니와, 그랬다가는 명나라와의 관계도 불편해진다.

    대신, 요처의 관장들만 좀 조선인으로 바꿨다.

    물론 이 일 역시 반발이 없었던 건 아니다. 명나라 관리들의 반발이 엄청 거셌다.

    근데도 진행 될 수 있었던 건, 요동 주민들 덕이다.

    요동 주민들의 조선에 대한 태도가 엄청 살가웠다.

    뭐랄까, 일제 때 독립군을 대하는 조선인? 6.25때 미군을 대하는 한국인?

    뭐, 완전히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비슷한 태도였다.

    주민들이 지지하니, 주민들 버리고 도망가거나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았던 명나라 관리들이 목소리를 내긴 어려웠다.

    이런 지지에 힘입어서 금주, 해주, 복주, 요양, 광녕 등지의 요처에는 조선인을 관장으로 삼을 수 있었다.

    아무나 데려오면 권위가 서지도 않을 테고, 명나라 관리들이 따르지도 않을 것 같아서 공적으로는 예흥청 장관이고, 사적으로는 풍원위 즉, 부마인 숭재 씨를 도원수에 대응하는 요동도평상사(遼東到平常使)라는 임시 관직을 신설해 제수했다.

    의리없게 너가 할 일 숭재 씨한테 떠넘기고 이제 어떡할 거냐고?

    어떡하긴 뭘 어떡해?

    뭐 빠질대로 일 할 만큼 일 했으니 이제 돌아가서 왕 타이틀 반납해야지.

    솔직히 이만하면 할 만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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