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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356화 (356/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356화>

    ***

    전투는 끝이 났다.

    총 전투 기간은 불과 열흘도 안 될 정도로 짧았고, 후방에 있었던 나였지만 그런 나도 느낄 만큼 전투는 상당히 치열했다.

    피해도 상당했다.

    요동군의 투석기 공격에 금주성 성곽은 멀쩡한 곳을 찾기 어려웠다.

    이걸 보수하는 데에만 보름은 족히 걸리고, 넉넉잡아 한 달은 걸리지 않을까 싶다.

    성벽이라고 다를 쏘냐.

    피아 구분 없이 기괴한 몰골로 내걸린 시체들.

    트라우마 생길까봐 차마 내려다보진 못 했지만, 그 수를 세기도 힘들 만큼이라 하니 이 시체들을 치우는 것도 고된 작업이 될 것이었다.

    난중에 적의 화공으로 3만석에 달하는 군량미도 한 줌 재가 되었다.

    그 외에도 아직 보고 조차 되지 않은 자잘한 피해들이 많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피해는 사람과 관계 된 피해였다.

    “311명이 전사했사옵고, 중상자는 아직 분류 중이옵니다.”

    전후 처리는 내 몫이었다.

    전쟁을 진두지휘했던 형님은 열 흘 가까운 기간 동안을 긴장 속에 보내서였는지, 전쟁이 끝나자마자 뒤처리는 나한테 맡기고 골아 떨어져버렸다.

    전사자 보고를 하는 허침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함께 비교적 안전한 후방에 있었던지라 전후 처리도 함께 하고 있었다.

    “그럼 총 전사자는 347명이겠군요.”

    36명은 민간 피해자였다.

    모두들 후방에 물러나있었지만, 적의 화공과 투석 공격에 명을 달리한 자들이기도 했다.

    “···예.”

    적어도 내가, 서면이든 구두든.

    보고로 받았던 전사자들 수로는 가장 많다고 할 수 있는 수였다, 647명은.

    하지만 왜일까?

    이상하리만치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고개를 돌렸다.

    피곤에 절은 병사들 얼굴에 한 줌 안도가 서려있었다.

    딱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어쩌면 저 모습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전하, 끌고 왔사옵니다.”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아서 새삼 내가 사이코패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던 그때.

    군관1이 포승줄로 꽁꽁 묶은 누군가를 데려왔다.

    예의 누군가는, 얻어 터질대로 얻어 터졌는지 입술은 부르터지고 오른쪽 광대뼈는 함몰 돼서 성한 얼굴이라고는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나를 보자마자 무릎 꿇었다.

    며칠 전, 사자로 와서 별 같잖은 소리로 날 우롱했던 우승상 호상균이었다.

    호기롭고 자신만만하며, 위풍당당하기 까지 하던 며칠 전의 모습과는 달리 지금은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호상균은 날 보자마자 울며불며 뭐라 소리쳤는데, 굳이 통사의 통역을 듣지 않아도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살려달란 말이겠지, 뭐.

    “어떡하올까요?”

    애걸복걸하는 호상균에 허침 할아버지가 물었다.

    “선물로 쓰죠, 뭐.”

    “선물이요?”

    “요양성에 보낼 선물이요.”

    물론 포장(?)하기 쉽게 몸과 머리는 분리가 돼서 도착하겠지만.

    아, 요양성에 갈 선물은 당연히 호상균만 있는 건 아니다.

    수습 중에 자결한 채 발견 됐던 진우영, 마찬가지로 자결한 채 발견 된 책사 무충흠, 난중에 생포 된 왕황기 등등.

    이들의 수급도 같이 보낼 생각이었다.

    “일이 이렇게 까지 흘러 갈 줄은 신은 미처 몰랐사옵니다.”

    나와 함께 시선을 나란히 하고 있던 허침 할아버지가 문득 말했다.

    “나라고 알았겠습니까? 몰랐죠.”

    “앞으로는 어쩌실 참이시옵니까?”

    일하기 싫어서 의주에 왔다가, 우연히 피난 오는 조선인들에 즉흥적으로 배를 몰고 금주에 왔고, 그러다가 또 어쩌다 보니 금주와 그 일대를 차지하게 됐다.

    딱히 앞으로란 게 있을 턱이 없었지만.

    “진우영을 격퇴 했다는 소식에 우리에게 몸을 의탁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질 겁니다. 일단은 복주까지 올라가서 피난민들 좀 받고 생각해보죠.”

    어쩌다 보니 금주를 차지하게 됐고, 또 어쩌다 보니 진우영을 명나라 장수들이 아니라 우리 조선이 격퇴했다.

    그랬으니 이러다 보면 또 무슨 수가 생겨도 생기겠지.

    이런 낙관적인, 될대로 되라지 왕의 말이 불안해서였을까?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본국의 일도 헤아리심이 온당할 줄로 아옵니다. 비록 지금 세자 저하께서 대리를 맡고 계시다지만, 세자의 지위로는 국가의 일을 처리 할 수 있는 데 한계가 있으니······.”

    허침 할아버지의 잔소리라면 잔소리요, 걱정이라면 걱정이었다.

    다만 이 말에 대답한 건 내가 아니었다.

    “영상은 그점은 걱정말라. 내가 돌아가 일을 볼 것이니.”

    푹 주무셨는지 기지개를 켜며 다가오는 형님이다.

    “저, 저, 전하께서 말이시옵니까?”

    오늘 아침은 해가 서쪽에서 떴나?

    오죽 했으면 말까지 더듬는 허침 할아버지시다.

    “왜, 내가 이런 말을 하니 어색한가?”

    “신이 어찌 감히··· 아니옵니다.”

    “맞는 듯 한데?”

    “아, 아니옵니다.”

    “걱정말라.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니.”

    “하면 어찌···?”

    신하가 왕의 의중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묻는 건 무례 정도로 끝날 일은 아니다.

    나랏밥 수십년 먹은 허침 할아버지가 그점을 모를 리 없었지만, 그런 허침 할아버지가 이런 질문을 할 정도였으면 그만큼 충격이었단 뜻일 것이다.

    뭐, 나도 마찬가지고.

    “크흠. 그냥, 뭐··· 세세한 것 까진 알 필요 없다.”

    저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거 보면, 따로 목적이 있는 것 같긴 한데 그 목적이 뭔질 모르겠다.

    정말로 순수한 의도로 자원하신 건가?

    어쨌든 이래주시면 나야 땡큐지.

    막말로 돌아가서 처리할, 그리고 처리해야 할 행정 업무가 한 두 가지가 아닐 테니까.

    ***

    문렴은 진우영과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다.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은 시절부터 함께 했으니 평생을 함께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었다.

    그래서, 서로 뜻이 맞든 안 맞든 늘 어울려 다녔다.

    도적떼를 조직할 때도 그랬다.

    문렴은 도적질을 내켜하지 않았다. 관군에 토벌되는 건 금방이라 여겼고, 두려운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우영과 함께 했고, 그 결과는 지금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들떴다. 너무도 들떠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산간벽지의 일자무식인 문렴이 어딜가서 이런 대우를 받겠으며, 어딜가서 장군 소리를 들어나 보겠는가?

    하지만 왜, 옛날 어른들이 사람은 분수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입이 닳도록 말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문렴 본인은 장군의 그릇이 아니었다.

    그건 친구 우영도 마찬가지다.

    분수에 맞지 않은 옷을 입으니 그 결과가 무엇이던가?

    문렴은 눈앞에 목함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저 목함 안에는 그의 평생지기의 수급이 담겨 있었다.

    입은 쩍 벌린 채, 혀는 쭉 빠져나와 있는 기괴한 모습의 수급.

    -장부가 한 번 태어나 역사에 이름 한줄 남긴다면 어찌 그 죽음이 헛되겠는가?

    이런 말을 달고 살았던 벗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덧 없는 일이었다.

    차라리 도적질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래 수탈 당하고, 저리 착취 당할 바에야 들고 일어나자는 생각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고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저 가만히, 옛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혈기에 취하지 말고 가만히 있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런 꼴은 당하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후회란 아무리 빨라도 늦은 법.

    “자네도 한 잔 들게.”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문렴이 술잔에 술을 가득 따라 목함 앞에 두었다.

    그러고는 술을 병째로 들이켰다.

    “자네 꼬라지와 내 꼬라지를 보게. 내 이럴 줄 알았네.”

    문렴은 넋두리를 안주 삼아 술만 벌컥 들이켰다.

    “내 이제 어찌하면 좋겠는가?”

    문렴은 본인의 한계를 잘 알았다.

    그는 힘깨나 쓰는 장사였다.

    몸은 우람한 편이었고 체구도 비대 했으니, 처음 보는 사람들은 산채의 채주가 아니냐 우스개 소리를 할 정도였다.

    하지만 거기까지.

    딱 거기까지였다.

    머리는 좋다고 말할 수 없었고, 뭔가를 응용하는 일에도 젬병이었다.

    따지고 보면 지금의 지위에 오른 것도 순전히 우영의 최측근이었기 때문이었다.

    혼자의 힘으로 이런 큰 성의 성주가 된다는 건, 감히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랬으니 앞으로의 일이 걱정 될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는 우영이 하자는 대로 했고, 우영이 하라는 것만 했으니까.

    그런데 우영이 죽은 지금.

    아니, 무 태사마저 세상에 없고 하다못해 자신을 늘 견제하던 왕황기마저 없는 지금.

    지금은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 했다.

    복수를 해야 할지, 투항을 해야할지.

    “답을 주게, 이 친구야. 복수를 하기엔 내 머리가 너무 돌 같고, 그렇다고 투항을 하자니 자네도 알다시피 내 원체 겁이 많잖은가. 어떻게 해야 하나?”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일까?

    “해답을 알려드리리까?”

    대답이 들려왔다.

    깜짝 놀란 문렴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곧 피식 웃었다.

    “마 백호 이놈, 기척 좀 내고 다니거라. 놀라지 않았느냐.”

    몇 달 전, 금주에서 거둬들인 약관의 청년으로 지금은 문렴의 부관중 하나였다.

    “해답을 알려드리리까?”

    “자꾸 해답 타령이느냐. 됐고 너도 한 잔 받거라.”

    “···”

    “어허, 한 잔 받으래도?”

    호통에 못 이긴 듯 마 백호가 한 걸음, 두 걸음 다가왔다.

    “앉거라. 내가······.”

    “장군, 송구합니다.”

    “응? 뭐가 말······.”

    서걱!

    문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살가죽 베는 소리가 분명했다.

    그런데 이 소리가 왜 갑자기 난단 말인가?

    그리고 왜 또 몸은 앞으로 기운단 말인가?

    ‘어어?’

    의아함에 대한 답이 풀리기도 전에 의식이 흐릿해져갔다.

    ***

    내가 운이 좋은 걸까, 아니면 명나라가 운이 좋은 걸까?

    알다시피 전투는 일단 대첩으로 기록됐다.

    아군 전사자 311명.

    적군 전상자 5,461명.

    이정도면 압도적인 정도가 아니라 경이로운 수준의 교전비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계사적으로다가 이례없을 대첩 말이다.

    게다가 막상 도착하고 보니 복주도 무주공산이었다.

    뭐, 정확히 말하면 진우영이 한 오백명 정도 수비 병력으로 빼놓고 남하한 터라 탈영병을 제외하고 오백명 조금 못 되는 수가 있긴 했지만, 그들이 진우영에게 무슨 대단한 충성심이 있어서 목숨 걸고 저항을 했겠나?

    하이패스 단말기는커녕 고속도로도 없는 시대인데 하이패스를 경험 했을 정도니 말 다 했지.

    그런데 지금 봐라.

    “그러니까, 이게 요양성주의 수급이라고?”

    일부러 요양성에 진우영이나 호상균 등의 수급을 보냈다.

    너네도 이렇게 될지 모르니 겁 먹으라고, 이렇게 되기 싫으면 항복하라고.

    상황을 낙관적으로 점친 것도 사실이다.

    이러다 보면 또 무슨 수가 생겨도 생기겠지, 라고.

    그런데 설마 요양성에서 내분이 발생할 줄은 몰랐다.

    아닌 게 아니라 아직 요양성에는 5천의 수비군이 남아 있다는 정보가 있었다.

    그마저도 원래 병력은 6천으로, 기껏 모은 병력을 요양성에 꼬라박은 총병 개원이 천명을 줄여줘서 5천이었다.

    듣기로 요양성은 천혜의 요새라고 들었다.

    위로는 태자강을 끼고있고, 성벽의 높이는 고개를 들어오려야 할 정도로 높으니 공성군 입장에서는 공략하기 쉽지 않고, 수성군 입장에서는 수비하기 용이한 성이란 말이었다.

    5천이 적다면 적을 순 있지만, 지형지물을 잘 이용한다면 승리를 낙관 할 순 없는 형세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진군도 복주까지만 했던 거였는데······.

    “문렴의 수급이 맞단 말이지?”

    전생에 이렇게 운이 좋았었다면 로또가 아니라 파워볼에 당첨이 됐었을 것 같다.

    그만큼의 행운 같아서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되물었지만 눈앞의 수급은 요양성주의 것이 맞았다.

    그 말은 즉슨, 요양성도 무주공산이 됐단 말이었다.

    또 엄한 놈이 반란 일으키기 전에 차지하는 게 중요했고, 나는 숭재 씨를 지휘관으로 삼아 요양성에 보냈다.

    적의 매복이 있다거나, 이 모든 게 반란군의 쇼였다던가 하는 이변은 없었다.

    숭재 씨는 요양성에 무혈입성했다는 소식을 곧 보내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명나라에서 보낸 사신도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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