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군으로 살어리랏다-352화 (352/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352화>

    ***

    가끔 사극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면 이런 장면이 등장할 때가 있었다.

    장대 위에는 빨간색 두정투구와 두정갑을 착용한 지휘관이 있다.

    차분하게 장대 너머를 살피던 지휘관의 시선에 누가 보더라도 CG 처리한 게 확실해 보이는 수만 대군이 들어온다.

    차분해보이던 지휘관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색에 질린 표정과 함께 허둥거리면서 성문을 닫아라! 소리친다.

    지금 내 심정이 그래.

    비록 장대 너머에 CG 입힌 수만대군은 보이지 않지만, 사극에 등장한 지휘관들처럼 소리치고 싶었다.

    성문을 닫아라!

    제기랄.

    내가 지금 귓구멍이 어떻게 된 게 아니라면, 3만 대군이 남하하고 있단다.

    3만이면 요동군의 주력이 우리를 상대하려고 남하하고 있다는 말이나 진배가 없었다.

    소식을 가져온 척후병의 주리를 틀면서, 어디 임금을 기만하냐, 바른대로 고하라! 윽박지르고 싶지만 그런다고 현실이 바뀌진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사극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면 이런 장면도 자주 나왔던 것 같다.

    허허벌판.

    마상 위에 있던 지휘관이 강기슭 너머 대군이 모습을 드러내자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말에서 낙마까지 하며 소리친다.

    퇴각하라! 속히 퇴각하라!

    라고.

    시청자 입장에서는 욕 했는데, 지금은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퇴각하라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후후. 3만이라니··· 이거 쉽지 않겠군.”

    나는 퇴각하고 싶은데 형님은 진격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말로는 쉽지 않다고 하는데, 칼은 왜 빼드는 건지······.

    “···”

    모두들 합죽이가 된 것처럼 말들이 없다.

    “왜, 말들이 없는 것인가? 적도들이 남하하고 있다지 않은가 말이야.”

    이 상황을 은근히 즐기는 사람은 장내에 형님 밖에 없는 것 같다.

    “전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오, 우상.”

    “···아뢰기 어려운 말씀인 건 아오나 이만 퇴각함이 어떨는지요?”

    “그게 무슨 말인가?”

    대답은 유담년이 했다.

    “지금은 퇴로가 확보되어 있는 상황이옵니다. 하지만 3만의 대군이 금주와 그 일대를 포위하기 시작한다면, 퇴로 확보가 어려울 것이옵니다. 물론 조정의 일개 문무관이 도원수의 직임을 받고서 웅거하고 있는 것이라면, 퇴각부터 염두에 둘 필요가 전혀 없겠으나 이곳 금주에는 두 전하가 계시옵니다. 제때 퇴각하지 못 해 두 전하께서 사로 잡히기라도 하시는 날에는 국가의 대의가 무너지는 것이니 어찌 퇴각을 직언드리지 않을 수 있겠사옵니까?”

    그래, 그래.

    유담년 말이 딱이다.

    왕이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포로로 잡히면 그게 다 손해다.

    두 왕의 몸값이 얼만데?

    그러니까, 그럴 일 없게 퇴각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미 성으로 피신한 조선인들도 6천명이나 되니 이만하면 소기의 성과는 거둔 셈이었다.

    그리고 형님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일국의 왕으로 계셨다

    매사에 감정적으로만 행동하는 건 아니란 말이었다.

    유담년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아셨는지, 고개를 끄덕거리신 것이다.

    “병판의 말이 맞다. 퇴로가 막혀 적도에게 두 임금이 사로 잡힌다면 그 무거운 짐은 고스란히 세자가 지게 될 것이다. 주상의 뜻은 어떠하냐?”

    나는 당근빠따 찬성이다.

    “소기의 목적도 달성했고, 성내의 백성들도 불안해 하는 듯 하니 병판의 말대로 이만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 그게 좋겠구나.”

    결론이 도출되자 철수를 서둘렀다.

    복주 인근까지 척후 활동에 나선 척후들을 불러들이고, 각지에 수색을 나선 별동대와 수색대 또한 불러들였다.

    이틀 후부터는 아예 피신시킨 백성들을 자원자에 한해 배에 태워 차례, 차례 의주로 보내기 까지 했다.

    육로로 회군해야 할 천동의 감사군도 슬슬 왔던 길로 되돌아 보낼 채비를 했다.

    그렇게 백성들도 모두 피신시키고, 철수 준비가 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즈음.

    불러들인 척후병들이 복주에서 돌아왔다.

    그런데 그들이 전한 소식에 우리는 당혹을 금치 못 했다.

    “복주, 쌍도, 북신구, 남신구 일대의 한인과 조선인들이 피난길에 올랐사옵니다!”

    진우영의 역적도당들이 대거 남하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망설이던 복주 일대의 주민들이 피난길에 오른 것이었다.

    문제는 그 수가 자그마치 수천이었다.

    지휘부로서는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는 문제였다.

    철수하자니 저 수천명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 할 수 없게 된다.

    여태 괜찮지 않았냐고?

    그건 우리가 오기 전까지였다.

    역적들 입장에서도 민심의 이반은 막아야 할 테니 노골적으로 백성들을 학대하고 폭압 할 순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뜬금없이 조선군이 왔고, 그 조선군에 수천명의 백성들이 몸을 의탁했다. 또 수천에 달하는 이들이 본인들을 피해 피난길에 올랐다.

    수천에 달하는 저들 모두를 주살하진 않겠지만, 상당수는 목숨을 잃거나 남자들 같은 경우 강제로 징병할 가능성이 컸다.

    고민은 길었지만 결단은 짧았다.

    “잔류합시다.”

    나도 설마 내 입에서 성문을 닫아라, 속히 퇴각하라.

    라는 말 대신 이런 말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몰랐는데, 사람이 양심이란 게 있지.

    애꿎은 사람들 버리고 도망 갈 순 없을 것 같다.

    그랬다간 평생을 후회할 것 같거든.

    그런 의미에서······.

    힐끗.

    “임 사관이라고 했던가?”

    구석에 찌그러져서(?) 글을 끄적거리던 사관이 고개를 조아린다.

    요즘으로 치면 종군 기자 같은 개념이겠다.

    그러고 보면 참, 전쟁 나간 임금 따라와서 고생이 많은 양반이다.

    “예, 전하. 기사관 임추(任樞)이옵니다.”

    “그래, 임 사관. 아무튼 그, 최대한··· 알지?”

    “그게 어인 말씀이시온지······.”

    “그걸 꼭 내 입으로 말을 해야 하나? 군신의 도리가 어찌 그런단 말인가? 척하면 탁이고, 탁하면 척이지.”

    “···”

    “크흠, 멋있게 써달라는 말일세. 아, 이 말 했다는 건 사초에 남기지 말고.”

    뜻밖의 부탁에 얼이 나가 있던 임추가 고개를 조아린다.

    “아, 예.”

    기왕 잔류하기로 마음 먹은 거.

    역사에 멋있게라도 남아야지.

    하, 내가 생각해도 졸라 멋있는데 후세 사람들은 얼마나 멋있게 생각할까나?

    상상된다, 상상 돼.

    《중종실록(中宗實錄) 1510년 11월 29일》

    「···하므로 상이 말씀하시길,

    “멋있게 써달라는 말이다.”

    하였다.

    또 이르시기를,

    “아, 이 말을 했다는 건 사초에 남기지 말라.”

    하셨으니 사초를 작성하는 소관은 사관에게 있음인데 굳이 사국(事局)을 이르신 까닭을 알 수 없어서 글로 남긴다.」

    ***

    잔류를 결정했다.

    이게 약간 그림이 이상하게 그려진 것 같긴 한데··· 뭐, 어쨌든 이제 진우영의 요동군과는 일전을 피할 수 없게 된 셈이나 다름이 없었다.

    일이 이 지경이 됐지만, 무조건 이겨야만 했다.

    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다행히 유리한 면이 둘이나 있었다.

    먼저 계절.

    이제 곧 겨울이 시작된다.

    공수를 떠나 혹독한 추위를 겪게 될 테지만, 특히 공성군 입장에선 더 죽을 노릇일 것이다.

    다음은 시간이었다.

    아직 적의 본대가 복주에 도달했다는 소식은 없었다. 3만 대군의 남하이니 이래저래 시간이 걸리는 것이리라.

    이 시간을 허투루 쓸 순 없었다. 이 공백을 이용해 조정에 잔류를 통보했다. 통보와 동시에 보급과 증원을 요청했다.

    순탄하다는 가정 하에, 한양~선사포까지는 이틀 노정이다.

    다시 선사포~금주까지는 4~5일 노정이니, 아슬아슬하게 적이 금주를 포위하기 전까지 보급과 증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보급품으로는 포환, 화약, 약재, 양곡 같은 군수 물자를 요청했고, 증원군으로는 오위 정예 갑사와 의원들을 요청했다.

    조정에서는 당혹스러워 하는 기색을 보이면서도 4천의 증원군과 백여명의 의원들을 보내주었다.

    이로인해 수성군의 몸집은 1만1천에서 1만5천으로 불어났다.

    다만 몸집만 불어났다고 아주 유리해진 것도 아니었다. 우리에게 불리한 것도 있었다.

    우린 금주의 지형에 어두운 편이었다.

    저 옛날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처럼 적을 수몰 시킬 수도, 강감찬의 귀주대첩처럼 적을 협곡으로 유인해서 섬멸 시킬 수도 없었다.

    다양한 작전 계획을 세우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말이었다.

    물론 지형에 어둡다고 낙담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최대한 군사들을 보내거나 주민들의 정보를 취합해 주변 지형, 지물을 파악하는 한 편, 피난 간 백성들이 미처 수확 않고 버린 전답들을 불태웠다.

    그리고 복주에서 군을 정돈하던 요동군이 출병했다는 소식이 전달된 건, 청야전술 같지도 않은 청야전술로 일대의 전답들을 모두 불태워버렸을 즈음이었다.

    3만 대군이라지만, 복주~금주까지 열흘이면 도착 할 것이었다.

    부족한 곳은 서둘러 수축 공사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진우영의 요동군이 당도했다.

    ***

    영화에서는 대군의 진군을 아주 간단하게 묘사하고는 했다.

    컴퓨터 그래픽이 분명해 보이는 병사들이 창을 꼬나 든 채, 철컥철컥 이동을 한다.

    그러고는 풀샷이 잡히면서 대군의 모습을 숨 죽이며 지켜보는 수비군이 비친다.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연출 기법이긴 하지만, 단언컨대 그 연출은 잘 못 됐다.

    제작자들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창을 꼬나 든 병사를 묘사 할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지축에 포커스를 맞춰야 했다.

    그래서 이를 지켜 보는 수비군들로 하여금 숨 죽이는 모습을 묘사 했어야 했다.

    귀에 묵직하게 때려 박히는 군홧발 밞는 소리.

    바다의 끝없는 수평선럼, 끝이 보이지 않는 행렬.

    삼만대군이 움직이며 일으키는 철컥철컥, 갑주 마찰음.

    이 모든 게 인상적이었지만 특히나 인상적인 건, 지진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지축이 흔들리는 일이었다.

    이게 3만 대군을 목격한 내 소감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슬픔을 겪지 않은 사람은 슬픔을 이해 할 수 없고, 아픔을 겪지 않은 사람은 아픔을 이해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3만 대군을 겪지 못 한 사람은 3만 대군의 위용을 알 수가 없다.

    잔류를 결정했던 20일 전의 내가 그랬다.

    “생각보다 일찍 당도했구만.”

    “하루라도 더 빨리 금주를 탈환하고자 하는 듯 하옵니다.”

    “음, 그래 보이는구만. 하긴 제놈들 입장에선 눈엣가시 같을 테지.”

    “전위와 우위의 부대를 특히 조심해야 할 듯 싶사옵니다. 좌위와 중위는 군기가 해이해보이지만, 전위와 우위는 각이 잡힌 것이 쉽지 않을 듯 하옵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포혈을 추가하길 잘 했구만. 포격은 중위와 좌위 위주로 때리는 것이 가한 듯 한데, 그대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전위와 우위는 전열을 무너뜨리더라도, 그 기세가 사그라들지 않을 듯 하지만 중위와 좌위는 달라보이니 두 군데 위주로 포격을 쏟아부어 전열을 무너뜨림이 이로울 듯 하옵니다.”

    그런데 순조롭게 돌아가는 수뇌부의 작전 회의를 보고 있노라면, 나만 3만 대군의 위용에 전의를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의견을 주고 받고 있다.

    특히 형님은 상기 된 표정이신데, 지금껏 수차례 원정을 나갔던 형님도 3만대군을 상대하는 건 처음이라 그런 것 같다.

    잔류를 결정하면서 최악의 경우에 상왕과 금상, 두 명이 포로로 잡히는 것보단 한 명이 잡히는 게 낫다면서 형님에게는 귀국을 종용 했었는데 형님이 마다하시면서 남으셨다.

    그때는 두 명 다 잡히면 쪽박 차는 거라 투덜거렸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형님이 귀국 안 한 게 신의 한수 같다.

    얼어붙은 나는 형님처럼 자연스럽게 제장들을 지휘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데··· 주상은 어찌 말이 없는 것이냐?”

    “저는 왠지 가만히 있는 게 돕는 것 같습니다.”

    빈 말이 아니다.

    사람은 분수를 알아야 하고, 스스로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

    혹자는 본인의 한계를 규정 짓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라 하지만, 한계를 넘어서는 일은 외려 오만이다.

    하물며 수만명의 목숨이 걸린 일에,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다 생각하는 것은 사람 목숨 가지고 장난질 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내 한계는 여기 까지다.

    3만 대군이 포진한 모습만 보고도 겁부터 먹은 내가, 아무렇지 않게 수비군들을 진두지휘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괜히 설쳐서 팀 분위기를 해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게 좋아보인다.

    그렇게 나는 나대로, 제장들은 제장들 대로 수성 준비를 해나가는 그때.

    “전하! 적이 사자를 보내왔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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