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군으로 살어리랏다-351화 (351/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351화>

    ***

    자금성 봉천전.

    엄숙해야 할 봉천전에는 한바탕 소란이 일고 있었다.

    “폐하! 번국으로서의 법도는 술직(述職)에 있사옵니다. 술직이 무엇이겠사옵니까?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 할지라도 그 일을 보고 할 의무를 이름이옵니다. 그런데 지금 요동의 일이 보통 일이겠사옵니까? 이는 사변(事變)이옵니다. 제후가 사변을 일으켰으니 어찌 하찮은 일이겠으며, 이를 좌시 할 수 있겠사옵니까?”

    동각대학사 양정화.

    “폐하께서는 소신의 말을 어찌 받아들일지 생각만으로도 두렵고 황공하오나 지금의 일에 이르러 아뢰지 않을 수가 없나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일도 과정이 깨끗하지 않으면 아름답지 않은 법이옵니다. 그 옛날 주(周)나라 말기에 온천하의 제후들이 입조하지 않다가 제나라 위왕만이 홀로 입조하므로 천하에서 의롭게 여겼는데, 이를 통해 상고하자면 칙지(勅旨)를 공경히 받드는 것이 제후의 도리요 천하의 질서를 바로 잡는 일임을 알 수가 있는 것이옵니다. 그런데 지금 동국(조선)의 일을 보소서. 감히 통고도 없이 군선을 몰아 상륙하였으니 백여년 사대의 예가 과연 이러할 수 있단 말이옵니까?”

    이부좌시랑 왕오(王鏊).

    “그렇사옵니다. 특히 조선은 대대로 충정이 돈독하였고 예의를 공손히 지켜서 다른 오랑캐들과는 차별하여 대우했는데 이처럼 갑자기 군대를 몰고 나타나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사옵니까? 왕이 불순한 뜻이 없다 할지라도 상국이 혼란한 틈을 타 군대를 상륙시켰으니 어찌 우리나라를 침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언 할 수 있겠사옵니까? 이는 상국의 위엄과 관계된 바이니, 바라건대 황상의 호령으로 조선군을 물리게 하고 정 돕고자 하는 뜻을 밝힌다면 물자를 대게하여 뜻에 부합하도록 하소서.”

    이부상서 장채(張彩).

    대신들의 성토에 가뜩이나 신경이 곤두서 있던 후조는, 신경질적으로 귀를 후벼팠다.

    “너희가 짐이란 말이냐?”

    “폐하! 어찌 그런 두려운 말씀을 하시옵니까?”

    “잔 말이 많으니 하는 소리가 아니더냐?”

    “···”

    후조는 말없이 고개를 떨구는 대신들을 노려봤다.

    “그대들의 우려를 모르지 않는다. 허나 이부상서의 말처럼 조선은 대대로 충정을 돈독히 한 나라다. 특히 상왕은 짐과 함께 박다(하카타)까지 원정을 가서 적왜를 소탕한 적이 있는데 이로 말미암아 상고하자면 군신의 의리와, 전우로서의 예가 함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폐하. 요동총병 개원에 의하면 조선군이 망해보와 금주를 점령하여 웅거하고 있다 하니 더 이상은 의리로서만 판단할 문제가 아니오라······.”

    이부시랑 시승(柴昇)에 후조는 버럭 역정을 냈다.

    “감히 성언을 토막 낸단 말이냐!”

    “···”

    “어디 네놈이 대답해보아라! 조선왕은 짐과 군신의 의리가 있는 동시에 전우의 예도 함께 있는 곳의 임금이다. 또한 백여년 사대의 예를 지켜왔고, 자질구레한 일에도 사신을 보내와 칙지를 공경하게 받들었다. 그런 나라인 조선이 배반하여 군대를 상륙시킨 일이 상식적이란 말이냐, 상국을 구원하러 왔다는 추측이 상식적이란 말이냐?”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폐하, 주나라 무왕이 혁명한 일을 상고해보시옵소서. 주나라 무왕은 곧 상나라 주(紂)의 아들 무경(武庚) 제후로 봉한 일이 있사옵니다. 무경은 성실히 무왕을 받드는가 했는데 얼마 안 되어 무왕을 배반하였사옵니다. 이뿐이겠사옵니까? 주나라가 약해진 틈을 타 제후인 정나라는 지금 조선처럼 군사를 출동시켜 주나라의 곡식을 모조리 짓밞게했사옵니다. 이를 두고 본다면 제후란 맹신할 수가 없는 것이옵니다. 바라건대 왕을 조천케 하고, 크게 꾸짖어 군사를 물리도록 하소서.”

    “이놈이 아예 실성을 했구나. 어찌 조선을 무경에 빗대고, 온화낙맥(溫禾洛麥)의 정나라에 빗댄단 말인가? 이는 네놈이 실성치 않고서야 내뱉을 수 없는 말이다. 너는 지금 제후란 맹신 할 수 없는 존재라 했다만, 그럼 내신(內臣)은 믿을 만한 족속들이란 말이냐? 고금의 일을 생각하면, 역란은 제후로부터 일어나기 보다 내신들로 인해 일어났으니 네놈의 논리를 따지자면 신하란 족속들이야 말로 믿을 수 없는 존재란 말이 되는 것이다. 네놈이 문자 깨나 익혔기로서니 감히 짐을 가르치려 드는구나.”

    “···”

    “상국을 전복시키려 한다는 것도 상식 밖의 논리지만, 총병에 의하면 상륙한 조선군은 1만이라 하였다. 비록 철기(鐵騎)가 3천기다만, 이 정도로 상국을 전복 시킬 수 있단 말이냐? 너희의 논리는 참으로 무례하고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말을 토해낸 후조는 연신 씩씩거렸다.

    물론 대신들의 우려는 이해한다.

    가뜩이나 혼란한 정국 속에 조선군이 말도 없이 상륙을 했으니, 역적보고 놀란 가슴 조선군보고 철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몰아가는 것도 정도가 있고 조심하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모두 들으라!”

    “···”

    “조선은 상국을 배반할 나라가 아니다. 지금껏 지극한 예로 섬겨왔는데 이제와서 배반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지만, 고작 1만의 군대를 상륙시켜 배반한다는 것은 이치에 부합하지 않는 말이다. 사신도 없이 군대를 상륙 시킨 점 때문에 미심쩍어하는 것 같지만, 적도들이 요양성을 함락시켰다. 육로의 길이 막혀버린 셈이나 다름 없으니 어찌 육로로 사신을 보내오겠는가? 해로로 보내는 일 밖에 없지만 사세가 긴박하니 부득이하게 상국을 구원하기 위해 군을 보낸 것이 틀림없다. 지금 이 시간부로 조선의 일로 왈가왈부 하는 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군신의 정을 도륙내는 간신으로 간주 할 것이니 그리 알라!”

    요동에 상륙한 조선의 일은 불문에 부친 후조는 하북과 하남의 일을 논했다.

    조선은 필시 요동을 구원하러 온 것이다.

    그렇다면 명조의 입장에서는 한숨 돌리는 셈이 된다.

    명이 제아무리 대국이라지만, 전선이 수 군데나 된다면 신경도 분산 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하남, 하북, 섬서, 산동, 요동.

    이 다섯 군데 전선에서 요동이 빠진다면, 전선을 한 개 더 줄일 수 있는 동시에 다른 곳에 총력을 집중 할 수 있게 된다.

    그나마 요동은 산해관이나 영원성 같은 요충지가 있지만, 하북이 문제다.

    하북왕이라 참칭한 역적 수괴 놈이, 무슨 자신감 인진 몰라도 감히 천진위(지금의 톈진시)까지 함락시키겠다며 기웃거리고 있으니 하루 속히 하북의 일을 매듭 지어야만 했다.

    무엇보다, 조선 덕에 요동에서 신경을 끄게 됨으로써 한 가지 일을 벌일 수 있게 됐으니······.

    “요동총병에게는 서두르지 말고 조선군과 협력하라 이르고, 지금 하북의 역적을 소탕하는 일이 지지부진하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장군을 갈 수도 없으니, 짐이 참람한 역적 무리를 친히 소탕 할 것이다. 하북에 방문(榜文)을 붙여 역적 무리의 사기를 꺾도록 하라.”

    바로, 친정이었다.

    ***

    그 시각 요양성.

    요동총병 개원이 긁어 모은 광녕군이 출병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면서, 가뜩이나 긴박했던 요동의 정세는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게 됐다.

    일찍이 진우영에게 내투했던 관인들도 쑥덕거리면서 이탈 할 기미를 보이고 있었으니,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른 그 정세란 급박한 정도가 아니었다.

    급박한 정세였지만, 진우영에게 이따위 일들은 사실 근심 축에도 끼지 못 했다.

    광녕군?

    연전연패를 거듭했던 광녕군의 사령관 개원이었다.

    이미 수차례 패전한 패장 따위를 두려워할 까닭도 없거니와, 패잔한 부대를 백날 긁어 모아봤자 조정의 후원이 없다면 그 수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출병한 광녕군의 수도 고작 7천.

    이쯤되면 구색 갖추기식 출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정에서 광녕성에 틀어박힌 총병관을 경질해야 한다는 말이 나돌았을 테고, 이 소식을 접한 총병 개원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출병에 나섰겠지.

    등떠밀려 출병한 군대가 적극적일 리는 만무.

    차일피일하면서 시간을 지체 할 게 뻔 했다.

    그러니 광녕군의 출병은 근심 축에도 끼지 못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건 달랐다.

    “그, 그게 무슨 말이냐? 금주가 함락되다니!”

    금주의 함락 소식이 전해지기 전까지 진우영과 수뇌들이 걱정하는 건, 광녕군 따위가 아니었다.

    진격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

    이 진격로를 어떻게 설정하냐에 따라 향후 요동군의 향방이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남쪽의 거점 봉황성을 치느냐.

    북쪽의 거점인 심양 등지를 치느냐.

    고심 끝에 수뇌부는 심양을 치기로 결정내렸다.

    이미 요양성은 손아귀에 넣었다. 거기에, 심양과 철령까지 수중에 넣으면 봉황성은 자연히 허리가 끊긴 형국이 된다.

    고립 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야 뻔하니 봉황성 보다는 심양을 손에 넣는 게 효율적이란 판단이었다.

    그런데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금주가 함락됐단 소식이 전해졌다.

    연전연승을 거두면서 생긴 자신감에 찬물을 끼얹는 격인 동시에 경악을 금치 못 할 일이었다.

    “누구냐? 설마 조정에서 나섰단 말이냐?”

    “그게··· 조선군인 듯 하옵니다.”

    “조선··· 군?”

    “예.”

    잠깐 멈칫한 수뇌부가 술렁거렸다.

    조선군이 왜?

    라는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다.

    우영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조선은 계획에 없는 나라였다.

    “조선군이 함락시킨 거라면··· 하면 마 지휘(指揮)는? 마 지휘는 어찌 되었다더냐?”

    “그것까진··· 송구하옵니다.”

    “허, 무 태사. 이리되면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 아니오? 조선군이 광녕군과 손잡고 후미라도 친다면 후일을 도모 할 수 없게 되오.”

    “흐음.”

    침음한 무충흠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의 손경을 흘겼다.

    “손 도사(都使)께서는 혹 들은 바가 없으십니까?”

    “내가 들은 게 뭐가 있겠소? 나도 금시초문이오.”

    “금시초문이라는 데에 그 목을 거실 수 있습니까?”

    “뭐요? 무 태사! 이 사람도 전하께 충성을 맹세 했소이다. 무례는 삼가시오.”

    “크흠. 복주에서 왔다고 했더냐?”

    전령이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하옵니다.”

    “금주를 함락시킨 조선군의 동태는 어떻더냐?”

    “의아한 게 조선인을 구출하고 있사옵니다.”

    “조선인을?”

    “예. 원군으로서 온 것이라면 당장 북진해서 수비가 허술한 복주를 쳤을 텐데, 소인이 오기 전까진 금주에 틀어박혀 조선인을 구휼하면서 양곡을 축내고 있었사옵니다.”

    충흠은 그 이후로 전령에게 이것저것을 캐물었다.

    조선군의 규모, 공성 장비, 조선측 지휘관 등등.

    그리고 한참 동안 골몰했다.

    “계획이 크게 틀어진 듯 합니다, 전하.”

    한참이 지나 내뱉은 말에 우영은 탄식을 내뱉었다.

    “어찌하면 좋겠소?”

    “후미에 적을 둘 순 없습니다.”

    “조선군을 치자는 말이오?”

    “예.”

    “하지만 광녕군과 심양군은 어쩌고 말이오?”

    “요양성은 천혜의 요새입니다. 비록 손 도사께서는 전하의 덕치를 받기 위해 성을 갖다 바치셨습니다만, 천혜의 요새인 이 요양성을 광녕군과 심양군이 넘진 못 할 것이옵니다.”

    “근거는?”

    “연전연패를 한 총병입니다. 지금도 조정의 영에 등떠밀려 출병을 한 데다 심양군과 합군 할 수도 없는 형세이니 요양성을 공략하려면 홀로 나서야 하는데 이미 기세가 꺾인 광녕군이 그런 무리수를 감행 할 리가 없사옵니다. 하지만 조선군은 다르옵지요.”

    “듣고있소.”

    “지금이야 금주에 틀어박혀 있지만, 복주의 수비가 허술하단 사실을 알게 되면 북진할지도 모르옵니다. 이 복주를 내주게 된다면 물자의 보급에도 무리가 생기니, 전쟁을 길게 이어나 갈 수가 없게 되는 것이옵니다.”

    “조선군이 관건이다?”

    “예. 복주와 금주의 전답을 요양성으로 옮길 수가 없으니 조선군이 관건인 것이옵니다. 금주를 탈환하셔야만 하옵니다. 보급 없는 군대는 비적떼에 지나지 않사옵니다.”

    곰곰이 생각하던 우영은 일리가 있다 판단했는지 곧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영 뿐만이 아니라 막하의 장수들 생각도 같았다.

    요동군이 지금껏 승승장구 할 수 있던 원동력은 결단력과 빠른 실행에 있었다.

    결단을 내렸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우영은 요양성에 문렴을 성주로 한 6천의 수비군을 남긴 채, 군을 정돈해 남하했다.

    3만에 육박하는 대군의 남하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