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군으로 살어리랏다-348화 (348/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348화>

    ***

    약간 후회 된다.

    구출 작전 펼칠 때 펼치더라도, 굳이 친정해가면서 까지 펼칠 필요는 없을 텐데 괜히 친정에 나선 것 같달까?

    다 와서 뱃머리 돌릴 수도 없고······.

    아, 그도 그럴 것이 북정군 부원수로 활약한 경험은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

    당연하거든.

    부원수로 참전할 때는, 비록 사람 얼굴 가죽도 산채로 벗겨버린다는 여진족을 치러 가는 거긴 했어도 전투에 직접 참여할 일은 없었다.

    후방에서 물자만 잘 대면 됐으니까.

    사정은 박원종의 난이 터진 때도 같다.

    아무리 패악무도한 역적들이라고는 해도 성종대왕의 적자인 날 해하진 않을 거란, 뭐랄까.

    근자감?

    그런 게 있었거든.

    근데 지금은 다르다.

    비록 1만이 넘는 군대가 시위한다지만, 적진 한복판에 숨어 들어 가는 것도 아니고 아주 대놓고 들어가고 있다.

    그러니 긴장이 안 돼?

    되지.

    근데 이상한 건 말이지.

    “흠. 이번엔 내가 이긴 듯 하구나. 칠땡이다.”

    “아··· 이거 죄송해서 어쩌죠.”

    “뭐가?”

    “보다시피 전 삼팔광땡인데··· 이렇게 된 거, 이번 판은 소질이 진 걸로 할까요?”

    “진 걸로 치다니! 내 사전에 거짓 승리는 없다! 속히 패 돌리거라.”

    “네.”

    죽이 척척 맞는 저 두 사람.

    형님과 개똥이.

    저 두 사람은 어째, 긴장은커녕 놀러온 것 같단 말이지.

    절레절레.

    “저긴가?”

    두 사람 보고 있으면 오히려 긴장한 내가 이상해지는 기분이었다.

    두 사람을 일별하고 길라잡이에게 물었다. 저 멀리 성보가 하나 보였다.

    “금주는 아니옵고 망해보(望海堡)이옵니다.”

    저기가 망해보라면 다 온 셈이었다.

    망해보는 금주와 대략 80리(30km) 거리였는데 상륙지로는 이만한 곳이 없었다.

    바다가 강기슭과 연결 되어 있어서, 내륙까지 쭉 타고 올라가기가 용이했고 그만큼 대규모 병력이 상륙하기도 좋았다.

    이변이 없다면 천동의 감사군도 1~2일 내로 이 망해보를 지나칠 테니 배후를 안정시켜 줄 필요도 있었고 말이다.

    “어찌 하올까요?”

    형님과 개똥이와는 달리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유담년이다.

    유담년의 말에 망해보를 바라봤다.

    예상대로 소수의 수비군만 있는 것 같았다.

    속전속결로 끝내야 할 상황에 소수의 수비군 때문에 시간을 지체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상륙하라 이르세요.”

    “예!”

    곧 대장선에서 신호연을 띄웠다.

    참고로 수군들은 신호연으로 신호를 주고 받지 않았었다.

    지금처럼 신호연 체계가 확립 된 건, 남해정토군이 원정간 이후의 일이다.

    소수의 선박들로 이뤄진 함대야 깃발로 신호를 주고 받기 어렵지 않지만, 수십척~수백척으로 이뤄진 함대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던 모양이다.

    게다가 난중이라는 가정까지 한다면 신호는커녕 중구난방이 될 가능성이 커보였는지 형님이 아예 새로 뜯어 고치셔서 보급시켰다.

    아무튼 신호를 받은 전선들이 차례로 상륙을 시도했다.

    얼핏 보기에 포혈이 나있어서 화포가 배치 된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포격은 없었다.

    포격이 없으니 거리낄 건 없었다.

    가장 먼저 2연대를 태운 선단이 등사하(澄沙河) 강기슭을 타고 올라갔다.

    강기슭까지 올라갔음에도 역시나 포격은 없었다.

    깊숙이 들어왓는데도 포격이 없는 걸 보면, 정규군이 아니라 화포에 익숙지 않은 것 같았다.

    아니면 준비가 안 됐거나.

    뭐가 됐건 우리로선 땡큐지.

    결국 구흥군은 적의 저항이라고는 1도 받지 않고 상륙에 성공했다.

    전군이 상륙하는 데에 걸린 시간은 반나절.

    그런데도 망해보에선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미리 보내둔 척후들에 의하면, 그 규모는 가늠 할 수 없어도 분명 성에 수비군이 있긴 하단다.

    “근데 왜 대꾸가 없어?”

    안 싸울 거면 서로 힘 빼지 말게 나오라고 사자를 보내려는데.

    “전하. 저길 보시옵소서.”

    망해보의 성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백기를 든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겁에 질린 모습이 역력한 이들은 백기를 든 채 우물쭈물 나와서는 날 보자마자 무릎부터 꿇었다.

    그런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허무하다.

    이건 내 생각보다 너무 쉬운데?

    ***

    금주위 망해보.

    이곳 망해보가 자리한 망해과(望海堝)는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명승지였다.

    동으로는 창해가 펼쳐져 있고, 남으로는 벚꽃 정원(櫻花園)이 길게 뻗어 있다.

    봄만 되면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예술이었다.

    원래라면 이런 명승지인 망해과에 자리 잡고 술판을 벌인다는 건, 모승표(毛承表)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불혹의 나이인 모승표는 하호(下戶)였다.

    본인 소유의 전답은커녕 남의 땅 빌어 농사 짓기도 빠듯한 삶을 사는 하호.

    남의 땅이나 빌어먹는 팔자에 명승지는 웬말이고, 명승지에서 술판은 웬말이겠는가.

    그저 입에 풀칠만 할 수 있어도 감지덕지한 일이었다.

    모승표의 삶에 변화가 생긴 건, 약 1년 전.

    개주의 진우영이 금주를 점령하러 왔을 때였다.

    도적떼 두령에 불과했던 진우영 역시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

    소작농이었고 입에 근근이 풀칠하던 신세였으니까.

    그런데 그는 단시간에 장군이 되었고, 영웅이 되었다

    바로 저거였다.

    이리 살아봤자 미래는 뻔했다.

    지금처럼 가난에 절은 채, 살다 죽겠지.

    그것보다는 진우영처럼 장군이 되고 싶었다.

    아니, 장군은 안 된다 하더라도 그 옛날 그 아비를 매질했던 백호의 지위 정도는 갖고 싶었다.

    생각을 정리하자마자 곧바로 진우영에게 몸을 의탁했다.

    그리고 몸을 의탁하자마자 몇 차례 공을 세우게 됐다.

    그 결과.

    백호의 지위가 아니라 천호가 된 승표였다.

    승표는 보잘 것 없는 자신을 천호에 임명한 은혜를 베풀어주신 데 더해 이 망해보를 맡긴 진우영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사백명이 넘는 수하와 함께 이 망해보를 맡겼을 때만 하더라도 그 충심에는 변함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정말로 목숨을 내걸어서라도 진 장군을 보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광록도(广鹿岛) 방면에 수백척의 군선들이 나타나기 전까진 말이다.

    처음에는 왜구인 줄로만 알았다.

    착각이었다.

    조선군이었다.

    제후국인 조선이 왜 이 금주 땅에 모습을 드러냈는지는 모르겠지만, 군선의 수가 수백척이었다.

    시골 촌부에 불과했던 승표는 이런 규모의 선단은 본 적이 없었다.

    정말 두 눈이 휘둥그레질, 바다를 까맣게 메워버린 선단이었다.

    그 선단을 보자 감히 전의를 불태울 수 없었다.

    진우영에게 했던 충성 맹세?

    내 코가 지금 석잔데 그 딴 게 다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그러는 사이.

    조선군의 군선은 등사하 강기슭을 타고 올라와 상륙을 시도했다.

    몇몇 호전적인 수하들이 화포라도 쏴서 저지 해야 되는 거 아니냐 조언했다.

    순간적으로 살짝 혹했지만, 혹한 것도 질서정연하게 상륙하는 조선군의 위용을 보노라니 바로 사라졌다.

    조선군은 정말로 질서정연했다.

    그러면서도 망해보 수비군들과는 다른 군기가 있어 보였다.

    빠르게 상륙해 교대로 거점부터 확보하는 모습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무지렁이 촌부에 불과한 승표였지만, 한 가지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들은 절대 오합지졸이 아니다.

    저들을 상대한들 남는 건 개죽음 밖에 없다.

    이대로 죽을 순 없었다.

    비록 출세는 좀 하고 싶었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목숨을 내걸 만큼 하고 싶은 건 아닌 것 같았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승표는 망설임 없이 성을 나섰다.

    ***

    망해보 성주인 모 씨가 성을 통째로 갖다 바쳤다.

    감히 천군(天軍)에게 대들 수 없었다나 뭐라나?

    립서비스인 건 알지만, 저들에겐 그만큼 조선군이 강맹해보인 모양이었다.

    뭐, 어쨌든 싸우지 않고 성을 얻었으니 고마운 일이지만.

    망해보 근방에는 너른 벌판이 있었다. 그 벌판에 감사군도 기다리고, 196척의 전선도 지킬 겸 기지를 세웠다.

    기지를 세우는 동안 혹시 적이 나타나진 않을까 싶었는데 웬 걸.

    적은 코빼기도 안 보였다.

    기분 좋아져서 모 씨에게는 상으로 백미 2석을 하사했다.

    내친 김에 소원도 들어주겠다 하고 물어보니 그냥 고향에 가서 하던대로 농사나 짓고 싶단다.

    당장 풀어줄 순 없었다. 좀 협조를 하면 풀어주겠다고 하고, 협조를 구했다.

    “이 동막령(垌幕嶺)에도 수십호가 사는 줄 알고······.”

    “여기 호골(弧汨)에도 아마 수십호가 살 거고······.”

    “아! 그러고 보니 이 근방 반장곡(盘長谷)에도 수십호 몰려 사는 걸로······.”

    협조란 다름 아니라 조선인 거주지나, 조선인이 살고 있는 곳의 정보를 제공 받는 일이었다.

    이건 현지인이 아니면 잘 모르는 정보니까.

    모 씨의 정보는 제법 도움이 됐다.

    망해보와 가장 가까운 조선인 거주지라는 반장곡에 1개 중대를 보내 확인해 보니 조선인 26가구가 살고 있었다.

    그들을 구출하고 나니 천동의 감사군이 도착했다.

    먼 길 달려온 감사군이었다.

    사람도 사람이지만, 말도 지쳤을 테니 쉬게 하고 금주에 척후를 보냈다.

    모 씨의 말에 의하면 요양성에 한 방 화력을 집중하느라, 후방은 신경을 크게 못 써서 금주성에 있는 수비군이라야 겨우 2천도 안 된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았다.

    척후에 의하면 모 씨의 말처럼 수비군도 적지만 모두 오합지졸 같단다.

    야습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지 밤에도 불을 피우거나, 심지어 외곽 경계를 서는 초병도 없는 수준이란다.

    이 정도면 잡숴달란 소리였다.

    상륙하기 전까지만 해도 친정을 후회 했는데, 이 정도 오합지졸들이라니······.

    친정 후회한 게 후회 될 지경이다.

    어쨌건 금주의 병력이 오합지졸이래도 증원되면 골치 아팠다.

    망해보 기지에 2천명의 구흥군을 남겨서 혹시 모를 적침에 대비해 196척의 배들을 지키게 하고, 망해보에 상륙한지 사흘 지난 10월 26일.

    나머지 9천명과 함께 금주로 진격했다.

    망해보~금주까지 맨몸으로 강행군을 한다면 하루면 도착했겠지만, 화포와 공성 장비 운반 때문에 꼬박 나흘이 걸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무런 훼방도 받지 않고 금주에 도착 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금주에 도착하자마자 군을 정돈하고, 갑동의 격뢰군을 포진시켰다.

    그래도 금주의 적장은, 망해보 모 씨처럼 어쩌다 발탁 된 케이스가 아닌지 모 씨처럼 싸우지도 않고 투항하는 모습을 보여주진 않았다.

    성곽의 적병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도 보인 걸로 봐서, 싸울 의사가 확실해보였다.

    물론 싸울 때 싸우더라도, 투항을 권유하는 글 정도는 보내야 했다.

    글은 형님이 쓰겠다고 떼(?)를 쓰셔서 형님이 쓰게 했다.

    「···이르건대 전투가 벌어지고 나서 애매한 시점에 애매하게 투항하려거든 차라리 투항하지 말라. 애매한 시점에, 애매하게 투항하면 포로로 잡은 너희의 머리가죽을 벗기고, 팔팔 끓는 가마솥에 쳐넣으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느냐.」

    형님이 쓰신 글이다.

    뭐, 그럴싸한 것 같기도 한데.

    다만 형님의 바람(?)대로 투항은 없었다.

    무력으로 성을 함락시켜야 했다. 물론 걱정 따위는 없었다.

    작전은 수립됐다.

    더 세우고 할 작전이랄 게 없었다.

    나는 전군에 전투 준비를 하달했다.

    그리고 잠시 후.

    “모든 채비가 끝났사옵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격뢰군들의 화포는 전진 배치되었고, 화포 주위를 팽배수와 살수들이 지키고 서있었다.

    그 한가운데의 진형에는 개전 동시에 성벽을 넘을 운제(사다리차) 8좌(座)와 충차 3대, 분온차 6대, 목만 4대 등이 대기하고 있었다.

    또한 감사군들은 전위, 좌위, 중위로 나뉘어 3개 방면에서 진형을 갖춰 대기 중이었으니 이 모두 내 손짓 한 번이면 저 성을 향해 달려들 터였다.

    환도를 빼들고,

    “전군······.”

    뜸 들이며 호흡을 골랐다.

    모든 이목이 나한테 집중 된 기분이었다.

    그 시선을 받자 가슴이 연신 쿵쾅거린다.

    둥! 둥!

    고수들은 전의를 북돋기 위해 아주 늦은 템포로 북을 쳐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수들의 북치기가 클라이막스에 이르렀을 즈음.

    “공격하라!”

    내 환도가 금주성을 향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