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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343화 (343/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343화>

    ***

    동호대장군의 장례는 후하게 치러졌다.

    설사 나라의 대부가 죽더라도 이만큼 후하게 장례 치러주지는 않았을 터였다.

    대장군의 죽음을 애석해 했던 후조는 심지어 3일간 모든 국정을 중단시키고 조정의 대신들이 대장군을 애도하게끔 만들었다.

    그래도 황제는 황제라고, 약조는 지키는 후조였다.

    3일 후.

    대장군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두문불출하던 후조가 편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충신이 갔으니 짐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구나. 누가 대장군처럼 한결같이 짐의 곁을 시위했겠는가 말이다.”

    며칠만에··· 아니, 원정 기간까지 포함하면 십수개월만에 편전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한다는 소리가 뜬금없는 충신 타령이었다.

    충신 타령에 대신들을 당황하게 만든 것도 잠시.

    “가장 시급한 사안이 무엇인가?”

    얼이 나가 있던 대신들은 일 하겠단 의사를 보이는 후조에 반색했다.

    “시급한 일이야 한 두 가지가 아니옵니다마는, 먼저······.”

    “시급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반문하는 후조에 화개전대학사(華盖殿大學士) 유건(劉健)은 아차 싶었다.

    이럴 땐, 일단 엎드리는 게 상책이었다.

    “소, 송구하옵니다.”

    “지금 경의 말을 찬찬히 곱씹어보면 역심을 품은 것 같다.”

    “여, 역심이라니··· 두려운 말씀이시옵니다.”

    “경은 방금 시급한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라 말했는데, 그 말은 즉슨 짐이 국정에 소홀하기 때문에 나라가 어지럽다는 말이 아닌가? 그게 역심이 아니면 무엇인고?”

    “폐, 폐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얼어붙은 분위기 속에 대신들이 가타부타 말 한 마디 없이 후조의 눈치만 살필 즈음.

    한참이 지나 후조가 대소했다.

    “푸하하! 농이었소. 1년만에 정사를 돌보게 됐으니 무거운 분위기를 좀 풀어보고자 농을 했거늘 어찌 이리도 진지하게들 받아들인단 말이오. 사람 무안하게.”

    도처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자, 그래서 가장 시급한 일이 무어라고?”

    “각지에서 들끓고 있는 반란이옵니다.”

    “반란.”

    “예. 각지에서 대왕이라 참칭한 도적 무리만 벌써 열이 넘사온데, 가장 큰 세력이 하북왕이라 참칭한 농민기의군의 수령 유육, 동로대왕이라 칭한 제언명(齊彦明), 하남패왕이라 자칭한 왕팔(王八), 그리고 요동왕을 참칭한 진우영이옵니다.”

    “과연 시급한 일이구나.”

    “무엇보다 우려 되는 것은 하남에서 진왕(秦王)이라 자칭한 양호(揚虎)와 하북왕이라 칭한 유육이 내통을 하고 있다는 것이옵니다.”

    “계속하라.”

    “하북의 유육만 해도 그 세력이 벌써 4만이온데, 양호 역시 그 휘하에 5만의 군세를 가지고 있으니 합이 벌써 9만이옵니다. 이들이 하남, 하북을 동시에 어지럽힌다면······.”

    “바야흐로 나라에 위난(危難)이 닥치겠구나.”

    맞는 말이긴 했지만 차마 긍정은 못 하겠는지, 유건이 시선을 회피했다.

    “하남과 하북의 일도 일이지만, 이보다 더 시급한 일은 요동이옵니다.”

    이번에는 이부좌시랑 왕오였다.

    “말해보아라.”

    “하남과 하북은 반군의 세가 비록 10만에 육박한다 할지라도, 섣불리 움직이진 못 하는 형세이오나 요동은 다르옵니다. 벌써 요동총병 개원이 수차례 패퇴했으니, 이 반군들의 기세가 가히 하늘을 찌를 지경이옵니다. 이들이 자칫 요양으로 진격하고, 요양을 함락시키기라도 한다면······.”

    “요동이 역적 놈들의 수중에 넘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군.”

    “그렇사옵니다.”

    “하면 어디부터 막는 게 급선무인가?”

    “단연 요동부터 막는 것이 상책일 것이옵니다.”

    귀국 후, 지금까지 정사를 팽개치고 동호대장군의 죽음을 애도했던 후조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왕오가 말한 연유를 모를 만큼 아주 무능하지만도 않았다.

    요동이 떨어지면 그 다음은 어디겠는가?

    조선일 리는 없고, 요동과 지척인 황성일 가능성이 컸다.

    하북과 하남의 일도 급한 건 마찬가지지만, 황성이 함락 될 가능성이 있는 일보다 급선무일 수는 없었다.

    “요동부터 막아야 한다면 조선에 원병을 청하는 것은 어떠한가?”

    “조선이 원병을 보내 줄 지도 의문이긴 하지만 사태가 아무리 급박하기로서니 상국으로서 후국에게 원병을 청하는 것은, 자칫 후국에 빌미를 내줄 수 있는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조선이 어찌 원병을 아니 보내 주겠는가? 필히 원병을 보내줄 것이거니와, 또한 자칫 후국에 빌미를 내줄 수 있는 일이라니? 그 말을 하는 저의가 무엇이냐?”

    “저, 저의라니 당치도 않사옵니다, 폐하.”

    “나는 조선의 왕과 전장을 함께 누볐다. 옛날의 시에도 전장을 함께 누빈 정은 골육의 정과 같다 하였거늘, 왕이 나의 청을 거절하랴?”

    “황송하옵니다.”

    근신전 대학사(大學士) 이동양(李東陽)이 고개를 조아리고 물러난 그때였다.

    “폐하! 폐하!”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실각한 유근을 대신해 후조의 총애를 받고 있는 제독동창(提督東廠, 동창의 우두머리) 마영성이었다.

    “폐하! 크, 큰 일 났사옵니다!”

    “무슨 일인데 이리도 무례하단 말인가.”

    “요, 요양성이··· 요양성이······.”

    ***

    스스로를 요동왕이라 참칭한 진우영의 조상은 조선인이었다.

    고조 할아버지는 강계 사람이었고, 토병으로 만포진에서 군복무를 하다 탈영을 했다.

    고조부가 탈영해서 정착한 곳이 개주(蓋州)였으니 우영의 출신지 역시 곧 개주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우영은 고조부가 조선인이었다고 해서 본인을 조선인이라 생각지는 않았다.

    그는 그저 평범하게 농사 짓다, 가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도적질 하던 개주 사람일 뿐이었다.

    그런 그가 도적질(?)을 본업으로 삼게 된 것은 우연에 불과했다.

    3년 전, 흉년이 들어 초근목피로 목숨을 연명하는 마을 사람들이 많아졌다.

    오지랖 넓은 우영은 이를 참다 못 해, 마을 사내들을 모아다가 주변으로 도적질을 나갔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업으로 삼게 되었을 따름이었다.

    처음에만 하더라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도 한다는 생각의 도적질이었는데, 생각보다 자질이 있는 건진 몰라도 점점 휘하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사람이 모이니 욕심이 생겼다.

    어차피 이대로 토벌되면 죽는 목숨이었다.

    이대로 아무 것도 못 하고 죽을 바에야 이름이라도 떨치고 죽자.

    일개 도적떼 우영은 휘하에 천여명의 도적들이 모였을 즈음, 탕지보(湯池堡)를 함락시켰다.

    이 역시 우연이었다.

    개주에서 봉기한 우영의 도적떼는 세가 늘어날수록 관군에 쫓기는 일이 많아졌고, 산으로 피신 할 수 밖에 없었다.

    탕지보는 관군에 쫓기다 이대로 앞뒤로 포위 당할 바에, 배수진을 친다는 마음으로 공격에 나서 얻어 걸린(?) 곳이었다.

    얻어 걸린 이 탕지보가 요동왕 진우영을 만들었다.

    탕지보를 시작으로 요주(遼州)를 수중에 넣을 수 있었다.

    두 개의 성보를 수중에 넣으니 일대에 위치한 탑산보, 해주, 개주 등을 함락시키는 건 훨씬 손쉬웠다.

    4개 성보를 수중에 넣게 되자, 그 밑으로는 더 많은 군사와 백성들이 모이게 됐다. 그의 명성을 듣고 성을 통째로 갖다 바치는 자들도 생길 정도였다.

    처음에는 분명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생각으로 봉기했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안일하게 굴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운이 잘 따라줘서 여러 성보를 수중에 넣고, 방심한 요동총병까지 격파 시키며 연전연승을 거둘 수 있었지만, 앞으로까지 그러리란 보장이 없었다.

    이젠 생각없이 움직이기 보다, 움직일 때 움직이더라도 세세한 작전을 수립하고 움직여야 했다.

    지금처럼 말이다.

    “개원이가 수차례 패퇴했으니, 패전의 책임을 물고 좌천되진 않겠사옵니까?”

    “하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말이 없는 걸 보면, 조정에서 아직 신망을 잃지 않은 듯 하다.”

    무지렁이 촌부에 불과했던 우영이었지만, 이제는 제법 그럴싸한 호걸의 태가 났다.

    도적떼 시절부터 함께 한 벗, 문렴(文斂)에게도 자연스레 하대를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우리로서도 그게 더 나을 것이옵니다.”

    “그런가?”

    “예. 알려진 바로는 요동 도사(도지휘사사) 손경(孫景)과 작전 수립에 있어서 갈등이 있는 듯 하옵니다.”

    “갈등?”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대답은 이 요동군의 책사 역할을 맡고 있는 무충흠(武忠欽)이 했다.

    “관군을 어찌 부릴지에 대한 갈등인데, 개원이는 다시금 군사를 규합해서 곧바로 남하하길 원하고, 도사 손경은 관군이 수차례 패퇴한 적이 있으니 신중을 기하길 바라는 듯 하옵니다.”

    “흠. 지금 총병관 휘하에 모인 군사가 얼마나 되지?”

    “긁어 모을대로 긁어 모아 5천이 채 안 될 것이옵니다.”

    “5천이라.”

    “그래서 말이온데······.”

    “편히 말해보시오.”

    “이대로 요양까지 진격 하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요양까지?”

    “예. 어차피 요양을 치지 않고서는 요동을 차지 했다고 할 수 없으니 언젠가는 부딪힐 일이옵니다. 차라리 총병 곽진이 군사를 더 모으기 전에 지금쳐서 요양을 수중에 넣는 것이 이롭지 않겠사옵니까?”

    “내 생각도 무 책사와 같긴 하오만 요양을 치면 조선이 움직이지 않겠소?”

    요양은 요동의 심장부 같은 곳이었다.

    그런 곳이 함락된다면 조선의 입장에서도 좌시하진 않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조선까지 움직이면 요동군의 적은 또 늘어나는 셈이니, 우영으로서는 걱정이 아니 들 수가 없었다.

    “전하의 우려를 모르진 않사오나 지금이 적기이옵니다. 기세가 올랐을 때 요양까지 함락시킨다면, 과연 요동 전체를 수중에 넣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옵니다.”

    “듣고보니 무 책사의 말이 일리가 있습니다, 전하.”

    충흠에 이어, 문렴도 거들었다.

    “잠깐 고민좀 해봅시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우영은, 이틀이 지나서야 결단을 내렸다.

    요양까지 진격하기로.

    진격을 결정하기 까지가 어려웠지, 막상 결단을 내리고 나서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진격하는 그 기세도 파죽지세 같았다.

    기세 덕인지 탑산보~요양까지 진격 하는데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았고, 약 보름 뒤.

    진우영의 요동군이 요양성 앞에 파진했다.

    ***

    사람은 참 간사한 동물이다.

    이 말을 나이가 들면서 참 뼈저리게 느낀다.

    어렸을 때에는 이해하지 못 한 말들이 나이가 들면 비로소 이해 될 때가 있다.

    왜, 그런 말도 있잖은가.

    부모 마음은, 부모가 돼야 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시점에서 가장 와닿는 말은 이거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누가 지은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옳은 말이다.

    정말로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왜냐면, 온화하다 못 해 호구스러웠던 내게 분노조절장애가 뭔지를 여과없이 느끼게 해주고 있으니까.

    「···그래서 이번에도 못 갈 것 같구나.」

    이건 부산에서 올라온 형님의 서신이다.

    형님이 귀국한 지도 어언 20일이 지났다.

    예정대로라면 보름 전에는 왔어야 맞는 일이지만, 20일이 지나도록 형님은 부산에 계신다.

    그래서 개선식도 연예인들 대리 수상 하듯, 장임이 주체가 됐다.

    그 좋아하는 개선식도 마다하고 부산에서 경덕이랑 짝짝꿍 중이라니··· 그래, 여기까진 그럴 수 있다.

    있는데······.

    「···한데 사할린이 북해국이란 말은 어찌 아니 한 것이냐? 내 서 별제에게 듣고 어찌나 놀랐는지 모른다. 서 별제 말에 의하면······.」

    경덕이 놈은 왜 형님 옆에서 펌프질 했는질 모르겠다.

    이번 만큼은 형님의 귀국을 손꼽아 기다렸다.

    정말 손꼽아 기다렸다.

    아닌 게 아니라 황이한테 섭정 맡기는 건 대신들이 내켜하지 않으니, 형님한테 잠깐 맡기고 머리 좀 식힐 겸 여울이랑 바다 보고 오려고 했거든.

    그랬는데, 경덕이 놈이 옆에서 펌프질 하는 바람에 휴가 계획이 물거품이 됐다.

    제길.

    이렇게 된 이상, 나도 어쩔 수 없다.

    ‘삐뚤어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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