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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342화 (342/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342화>

    ***

    동래.

    “누가 뒤에서 내 욕하나.”

    누가 뒷담화라도 늘어 놓는 건지, 귀가 간지럽다.

    독백과 함께 경덕은 귀를 후비적거렸다.

    “형님 뒤에서 벼르고 있는 사람이 어디 한 둘 일까.”

    빈정거림에 경덕은 인상을 찌푸렸다.

    “언제 왔냐?”

    “낮엔가. 아침 배로 왔소.”

    “이건 아우인지 원수인지······.”

    “굳이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원수겠지. 왜, 옛말에 그런 말도 있잖소. 전생에 원한을 진 사람들이 현생에 형제로 만난다.”

    “금시초문이다.”

    “하여간 무식해서 말이 안 통해, 말이.”

    화가 욱하고 올라왔지만 가까스로 참아냈다.

    숭덕이 놈과 언쟁을 해봤자 손해 보는 사람은 늘 정해져 있다.

    “됐고, 알아 보라는 건 어떻게 됐냐?”

    “하겠다는 사람은 있는데······.”

    “있는데? 왜, 무슨 문제라도 있냐?”

    “삯을 좀 더 쳐달라는데?”

    “얼마나 더?”

    “형님이 제시한 게 1년에 6석이었잖수.”

    “그랬지.”

    “10석 달래.”

    “뭐, 10석? 이런 날강도 같은 놈들이 다 있나!”

    “거, 왜 재작년이었나? 전하께서 왜놈들 고용한 적 있지 않았었소.”

    기억을 더듬는 건지 상념에 잠긴 표정의 경덕이 머잖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기억난다. 한데 지금은 해체 되지 않았더냐? 그게 왜?”

    말 많고 탈 많던 왜인부대의 계약기간은 2년.

    그들은 조직 되자마자 얼마 안 있어 남해정토군에 배속됐다.

    배속되자마자 원정을 떠났고, 거기서 크고 작은 활약을 했다.

    당연히 상왕 전하의 눈에 띄었고, 일부는 상왕 께서 기거하시는 금군으로 뽑히거나 또 다른 일부는 봉해위에 편입되면서 해체가 됐다.

    “그때는 1년에 8석 받았었대.”

    “8, 8석? 이런 날강도 같은 자식들이 다 있나.”

    “1년에 8석 받던 사람들이 6석 제시하니 귓등으로라도 들을 리가 있나. 하겠다는 사람들은 좀 있는 편인데 다들 8석 안 주면 안하겠다고 합디다.”

    경덕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어차피 놀고 있는 소종도 왜놈들 아니냐. 놀고 있는 놈들 주제에 부려주겠다는데 넙죽 절을 하지는 못할망정··· 쯧쯧.”

    “놀기는. 요새는 또 바쁘던데?”

    “소종도가 말이냐?”

    “박다에서 상인들이 많이 찾아오잖아. 아무래도 박다의 왜상들 입장에서는 동래 보단 말이 조금이라도 통하는 대마도가 더 나았겠지. 그래서 그런가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붐비던데?”

    값어치라는 것은 결국 공급과 수요에 의해 결정된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급은 넘쳐나고, 수요는 부족하던 소종도가 반대의 상황이 됐다면 과연 6석 가지고는 택도 없을 것 같다.

    “제기랄. 가뜩이나 돈 들어갈 곳 태산인데······.”

    “전하께서 내탕전으로 10만석이나 융통해주셨다면서?”

    “인마. 너는 그렇게 감각이 없냐?”

    “···?”

    “10만석이 큰 돈은 맞는데 배 구하는 돈만 해도 이게 얼마냐. 또 배를 구하면 배는 뭐, 자동으로 움직인다더냐? 뱃사람들도 구해야 돼. 이것도 돈이지. 거기다가, 배를 한 척만 구해? 최소한 세 척은 갖고 움직여야 될 테고 이것만 해도 천문학적인데 저 망망대해를 무장 하나 안 하고 간다는 건 또 어불성설이지. 무장도 해야 돼. 무엇보다, 한 번에 바로 성공하면 좋겠냐마는 시행착오 할 각오도 해야지. 그런 거 다 감안하면 10만석 가지고 되겠냐?”

    “아··· 그렇겠네. 못 해도 2~30만석은 있어야겠구만.”

    “더 있어야 돼. 최소 40만.”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경덕에 숭덕은 눈을 동그랗게 치켜 떴다.

    “4, 40만석? 난 10만석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전초기지 만든다 하지 않았더냐. 전초기지는 뭐, 내가 만들어 놓고 여기로 오세요. 하면 다들 와서 머물러 준다더냐?”

    “노비 사서 만들 심산이구만?”

    “그래야지. 근데 요새 또 노비 몸값이 좀 올랐어야지.”

    “얼마나 하는데?”

    “젊은 녀석들은 26~32가마니 정도 하고, 나이 좀 찬 녀석들은 16~22가마니 정도 하는 것 같더구나.”

    “많이 오르긴 했네. 왜 올랐대?”

    “삼남에서 관에 신고 받고 개간 하거나, 관에서 따로 개간하는 땅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노비 몸값 역시 공급과 수요의 원칙이 적용됐다.

    나라에서 삼남의 제방을 쌓고, 관개 시설을 확충하면서 농지로 개간하는 황무지가 비약적으로 늘게 됐다.

    그런데 반해 농사 짓는 사람은 한정됐으니 다른 수가 있겠나.

    노비라도 구해서 농사 짓게 해야지.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노비 몸값이 치솟았다.

    “어쨌거나 어떡할 거요?”

    “뭘?”

    “그 왜인들. 고용 할 거냐고 말 거냐고.”

    탐사가 1년 안에 끝나면 크게 부담 가진 않겠지만, 최소 3년은 걸릴 대장정이 될 터였다. 백명만 구해도 벌써 2400석이 훌쩍 넘는데, 여기에 먹는 거 입는 거··· 또 혹시 죽는 사람이라도 나오면 그 보상금까지.

    확실히 부담 가는 금액이긴 했다.

    다만.

    “해야지. 오랑캐 만나서 불귀의 객이 되느니 돈 좀 쓰는 게 낫지. 8석 준다 하고, 데려 오거라.”

    “알겠소.”

    숭덕이 물러가자,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경덕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머지 경비는 어떻게 구한다.”

    라고 고민하던 그때였다.

    숭덕이 돌아왔다.

    “형님! 형님!”

    “응? 귀신이라도 봤더냐? 뭘 그리 호들갑이냐.”

    “상왕 전하께서 돌아오고 계시다는데?”

    ***

    “1년만인가······.”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반년만이옵니다······.”

    휙!

    “부원수는 이 흥을 깨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듯 하다.”

    “어인 말씀이시온지.”

    “내 반년만인 걸 몰라서 그랬겠냔 말이다.”

    “아.”

    “무릇 사람은 쓸데없는 감상에 젖을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거늘··· 칼만 잘 다룬다고 해서 무사라면, 똑같이 칼을 쓰는 거골장(백정)과 무사의 차이가 무엇이겠는가. 바로, 화조풍월(花鳥風月)을 즐김과 즐기지 않음이라. 이것이 바로 거골장과 무사의 차이니라.”

    “···송구하옵니다.”

    장임은 썩 쓸만한 부관이었다.

    빠릿하고, 무략에도 능하고, 일신의 무위도 뛰어나다.

    요즘 같이 쓸만한 무관이 전무한 시대에는 단비 같은 존재랄까.

    이처럼 가르칠 게(?) 많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주의토록 하라.”

    “···예.”

    “그나저나 제법 많이들 나왔구나.”

    신무정왜군이 귀국 한다는 소식이 이미 동래와 부산진 일대에 파다하게 퍼진 것 같았다.

    대장선 갑판에서 바라보고 있는데도 구름떼 같이 모인 인파가 마치 파도처럼 일렁거린다.

    그리고 잠시 후.

    신무정왜군 선단이 부산진에 당도하자, 관리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한 두 번 겪는 사람이야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것이었지만, 백돌 장군은 이미 수차례 겪은 환영 인파였다.

    “장군, 승전을 감축 드리옵나이다.”

    “승전을 감축 드리옵나이다!”

    특히 이런 말들은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었다.

    “당연한 일에 감축까지야··· 여기 부원수의 공이 컸다.”

    대충 손사래 치며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객사였다.

    그리고 머잖아 첨사 윤성경의 안내를 받아 객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장을 풀고 노곤해진 몸 뉘인지 얼마쯤 지났을까?

    “장군. 손이 찾아왔사옵니다.”

    “손님이?”

    “예.”

    “올 사람이 없을 텐데, 누구라더냐?”

    “서경덕이라 하면 알 것이라 하였나이다.”

    진성의 제자를 어찌 모를까.

    지금은 과학기술사에서 녹을 받고 있는 걸로 아는데 그런 위인이 왜 한양과 동떨어진 부산에 있는지 의문이었다.

    이유가 어찌됐건 적절하던 찰나였는데 잘 됐다.

    “들라하라.”

    잠시 후, 경덕이 두 손에 뭔가를 바리바리 싸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게 무엇인가?”

    “일단 승전을 감축드립니다, 장군.”

    “이거 성균관의 그 당돌했던 선비님께 감축 인사를 받으니 몸둘 바를 모르겠구만.”

    “이건 승전을 감축드린다는 차원에서 드리는 선물이옵니다.”

    자고로 선물 마다하는 사람 없는 법.

    백돌 장군도 마찬가지였다.

    “호오, 선물?”

    금보따리를 풀어보자, 웬 나무 상자 하나가 나타났다.

    “장군께서 특별히 꽈배기를 즐겨 드신다 하여 어렵게 마련 한 것이옵니다.”

    “아니, 이 귀한 걸··· 하하하. 사람 됨이 역시 주상 전하의 수제자 답구나.”

    “나머지 것도 풀어보시지요.”

    6개월 넘도록 꽈배기 맛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6개월 만에 본 꽈배기에 시선이 팔릴 수 밖에.

    꽈배기에 눈 돌아가 있던 백돌 장군은, 경덕의 다그침에 나머지 보따리도 풀었다. 나머지 보따리에도 역시 나무 상자가 나타났는데, 상자 뚜껑을 개봉하자······.

    “지도? 지도가 아닌가?”

    지도가 나타났다.

    “지도는 지도이온데, 좀 더 자세히 보시지요.”

    “천하도?”

    천하도가 분명했다.

    “맞사옵니다.”

    “한데 이걸 왜?”

    경덕은 잠시 뜸을 들였다.

    무릇 장사치의 투자란 약간의 허구가 가미 되어야 하는 법.

    이번 탐사대의 투자를 받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약간의 허구가 가미 되어야 했다.

    물론 허구가 약간 가미 된다고 해서 기군망상은 절대 아니었다.

    기장망상이라면 모를까.

    “장군. 이 사할린에 보시면 아마도 금은이 매장 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광산이······.”

    경덕은 투자를 받기 위해 약간의 허구를 가미한 채,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

    경덕이 기군망상 말고, 기장망상을 하던 그 시각, 북경.

    쾅!

    “지금 그게 무슨 말이란 말이냐!”

    십수개월만에 귀국한 후조가 연신 씩씩거렸다.

    분에 못 이겨 씩씩거리던 후조의 시선이 곧, 다섯 황제를 모신 원로 중의 원로라 해서 오조공(五朝公)이라고도 불리는 마문승(馬文升)에게 닿았다.

    “입이 있으면 말을 해보란 말이다! 짐이 없는 사이 나라 꼴이 어찌 이리도 개판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죽여주시옵소서, 폐하.”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문승에,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쾅쾅쾅!

    “어찌··· 어찌 대장군이!”

    비통해하는 황제에 대신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황제의 진노는 도처에서 창궐한 도적떼 때문이 아니었다.

    차라리 도적떼와 반란군에서 비롯된 진노라면 감당이라도 가능하지, 이건 뭐······.

    아닌 게 아니라 황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 황성 일대에 태풍이 온 일이 있었다.

    태풍의 여파로 표방의 건물이 붕괴한 적이 있었는데 하필이면 그 건물에 후조가 총애(?)하는 동호대장군이 있었다.

    당연히 건물의 잔해에 깔린 동호대장군은 즉사.

    후조의 분노는 바로 이 동호대장군의 사망에 있었다.

    “설령 역도들에게 자금성이 함락 될지언정 대장군은 잘 보필했어야 할 게 아니던가! 대장군이 압사 당할 동안 너흰 뭘 했느냔 말이다!”

    “주, 죽여주시옵소서!”

    계속해서 날뛰었지만 한 번 치솟은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화를 내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압사 당한 대장군의 시신을 발견하고, 모셨던 어마감(御馬監) 태감 김의(金義)에게는 후하게 상을 내릴 것이다. 그리알라.”

    “예, 폐하.”

    “하면 모두 물러들 가라.”

    노골적인 축객령에 대신들이 쭈뼛거리며 장내를 빠져나가려던 그때였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폐하.”

    이부좌시랑 왕오(王鏊)였다.

    후조는 눈살을 찌푸렸다.

    “물러나란 짐의 말을 듣지 못 하였는가?”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어찌 동호대장군의 사망에만 안타까워 하시고, 나라의 시정(是正)에는 관심이 없으시나이까? 지금 요동에서만 하더라도 요동총병 개원이······.”

    거수와 함께 왕오의 입을 틀어막은 후조가 손사래쳤다.

    “그건 내 차제에 논하라 하지 않았더냐! 요동의 문제도 문제지만, 너희들은 어찌 동호대장군의 죽음을 애석해하지 않는단 말이냐? 요동의 문제는 동호대장군의 차례 문제를 매듭 지은 연후에야 논할 것이다. 그리 알라.”

    단호한 후조에 대신들은 한숨을 내쉬면서 물러났고,

    “어쩐다.”

    후조는 동호대장군의 장례를 어찌 치를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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