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군으로 살어리랏다-339화 (339/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339화>

    “이상하지 않어?”

    어두컴컴한 사당 안.

    따분한지, 하품을 늘어놓던 강삼이 말했다.

    “뭐가?”

    “아니, 그렇잖나. 왜 하필 사당에 쑤셔박나 그래?”

    “또 쉰소리 하려고?”

    강삼이 밑밥(?)을 깔자 순남이 피식거리며 말을 받았다.

    기분이 나쁠 법도 하건만, 강삼은 자세를 바로하며 분위기를 잡았다.

    “내가 얼마 전에 이웃 마을 갔다가 들었는데 말이여?”

    “들었는데?”

    “아, 글쎄. 하카타에 조선군이 왔다지 뭔가?”

    앞전에는 순남만 피식거리며 비웃었지만, 이제는 강삼을 제외한 여섯 모두가 비웃었다.

    “올해 들은 소리중에 제일로 우습구만.”

    “조선군이 여긴 뭘 한다고 오나?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사람 참.”

    “와도 사신이나 왔겠지, 뭐.”

    “정말 조선군이 왔다고 똑똑히 들었다니까?”

    “누가? 이웃 마을이라면··· 그 왜인놈? 이름이 뭐였더라.”

    순남이 기억을 더듬자, 옆에 쪼그려 앉아 풀뿌리를 와그작, 와그작 씹어대던 석춘이 말했다.

    “허풍쟁이 토마(斗真) 말하나 보구만.”

    “아, 그래. 토마! 그 토마한테 들은 건 아니고?”

    “아니.”

    “그럼 누구한테 들었는데? 이웃마을에서 토마 말고 자네가 말 섞을 사람이 누가 있다고······.”

    “아, 누구한테 들었는지가 중요한가? 조선군이 왔다는 게 중요하지.”

    “그래, 그래. 왔다고 쳐. 한데 그게 뭐? 뭐가 어쨌단 말인가?”

    “자, 봐. 왜 우릴 여기 사당에 쑤셔 박았겠나? 한 두 명이면 모르겠는데 일곱명이나?”

    “태수 놈이 잡아갈까봐 그랬나 보지.”

    아직 아카촌에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따금 태수들이 조선인 노예를 화살 받이로 끌고 간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던 순남이었다.

    주민들 입장에선 당연히 마을의 공통재산인 노예를 숨기려 들 테고 말이다.

    “아니, 이츠키가 그랬잖나. 이제 여기는 전쟁도 다 끝나서 끌려 갈 일도 없을 거라고, 근데 무슨 화살 받이로 끌고 가?”

    “우린 왜놈들 물정도 잘 모르잖은가. 뭐, 다시 전쟁이라도 터졌나 보지.”

    “아, 거 참 답답하기는. 조선군이 분명하다니까! 정말로 조선군이 하카타에 온 걸세. 암, 그러고 말고.”

    아예 확신하듯 말하는 강삼에 순남은 피식거리며 조소했고, 풀뿌리를 씹어대던 석춘은······.

    “참말로 조선군이 온 거면······.”

    언제 끌려왔는지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았다.

    다만 입방정이 문제인 강삼이 18년 전 끌려왔으니 최소 18년은 넘었다.

    20년? 30년?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역시 기억도 나지 않는다.

    부모형제의 얼굴은 당연히 잊혀진 지 오래였고, 부모형제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데 고향에 남겨두고 온 처자의 얼굴은 어찌 기억하랴.

    흐릿하게 기억은 나는데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조선군이 온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도 확신 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조선군이 왔고, 조선군이 데려 간다면 따라 가야 되는 건지.

    따라서 고향에 간다 한들 이미 정 붙이고 살고 있는 여기만 할는지······.

    아무리 그래도 여기 보다는 고향 땅에 묻히는 게 나을는지······.

    막연하게 고국이고 고향이니 가고는 싶은데, 이미 알 만한 사람도 없을 테니 가서 고독하게 죽는 게 아닌가 두렵고 혼란스러웠다.

    “자네들은 고향 마을 기억하나?”

    나만 이런 건가.

    나만 비정상인 건가 싶어 은근하게 물어봤다.

    강삼을 가리키며 낄낄 거리던 순남이 문득 던져진 화두에 멈칫거리더니 고개를 가로 저었다.

    “마을 어귀에 돌장승이 하나 있던 건 기억이 나는데··· 그거 말곤 어땠더라. 개울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아니, 강이었나?”

    순남 뿐만이 아니었다.

    그나마 가장 최근인(?) 13년 전쯤 끌려온 생춘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 마을은 바닷가에 인접해 있었는데··· 그리고, 어··· 그리고 또 뭐더라. 아! 당산나무에 벼락 맞은 흔적이 있었을 거요. 댕기머리 하고 다닐 땐 벼락 맞은 당산나무에서 천년묵은 여우가 산다고 해서 어찌나 무서웠던지······.”

    “마을 이름은? 마을 이름은 기억하나?”

    “우리 마을은 뒷산에 시누대가 그렇게 많았소. 그래서 마을 이름도 시누대골 인가 그랬었소.”

    “생춘이는 그렇다 치고 순남이 자네는? 자네는 기억하나?”

    “나도 마을 이름은 안 잊었지. 우리 마을은 봄이 되면 꽃이 아주 흐드러지게 폈소. 그래서 옛날부터 꽃말이라고 불렸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마을 이름이 됐다고 들었소. 꽃말······.”

    본의 아니게 일곱 명 모두 회상에 잠긴 그때였다.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러자 대표로 강삼이 슬쩍 밖을 내다봤다.

    “감시 하던 것들 다 어디 간대?”

    “왜? 없어?”

    “하산하는데?”

    “하산?”

    강삼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까 까지만 해도 사부로의 말에 철통같이 사당을 경계하던 왜인들이었다.

    근데 무슨 단체로 소피라도 누러 가나··· 열댓명이 우르르, 하산하고 있었다. 아니, 하산하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구르다시피 해서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도망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긴가민가해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저긴 뭔가?”

    강삼은 눈을 부릅떴다.

    조선말이었다. 조선말이 분명했다.

    뭐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반사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다.

    그리고 마주한 것은 젊은 조선 장수였다.

    장수를 보자마자 눈물이 터져나왔다.

    왜 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눈물이 터져나왔다.

    강삼은 한참을 목놓아 엉엉 울었다.

    ***

    하카타 조선군 군영.

    391명.

    밑도끝도 없는 수였다.

    이 밑도끝도 없는 수의 사람들이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년 동안 말도 통하지 않는 오랑캐의 나라(夷國)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현실을 마주하자 가슴이 미어지는 기분이었다.

    “나의 부덕의 소치구나······.”

    오랑캐의 나라에서 온갖 멸시와 핍박을 받으며 종살이 했을 391명의 무구한 백성들의 지난 나날이 자연히 그려졌다.

    왜구가 침략했을 때에는 우리 군사를 간절히 기다렸을 터였다.

    그래서 더, 끝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는 우리 군사에 망연자실했을 터였다.

    왜구에 끌려갈 때에는 나랏님을 죽어라 울부짖었을 터였다.

    그래서 더, 이들이 가엽고 본인이 한심했다.

    군사의 목적은 외침을 대비해 있는 것이고, 나라의 목적은 백성이 생업을 평안히 하기 위해 있는 것인데 이 둘 모두를 지키지 못 한 것이 아니던가.

    미안하고 또 미안한 마음에 감히 저들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저들을 눈에 담는 순간, 지극한 자책에 시달릴 것 같았다.

    지극한 자책에 시달릴 순 없었다.

    그래서, 대신 다른 걸 마주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

    진중한 분위기의 상왕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런 상왕의 질문에 감히 왜인 따위가 말을 않고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허! 전하께서 하문하셨거늘 어찌 입을 꾹 다물고 있단 말인가?”

    털썩!

    왜인이 넙죽 엎드렸다.

    “사, 사부로라고 하옵니다.”

    “네가 적촌(아카촌)의 촌장이라 들었다. 어이하여 너희 마을에 조선인이 일곱이나 있는 것이냐?”

    극한의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목숨을 구명받고자 하기 위함인지.

    사부로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시립해 있는 오키후사에게 옮겨갔다.

    차분하게 상황을 지켜보던 오키후사는 그런 사부로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뭐라 중얼거렸다.

    “흥방(오키후사)이 말하길, 기회를 주시면 왜구의 잔당인 저 촌장 놈을 단칼에 베어버리겠다 하옵니다.”

    “놈을 죽임하고자 함이 나의 목적이 아니다. 다시 묻겠다. 어이하여 너희 마을에 조선인이 일곱 씩이나 있는 것이냐? 그리고 너희는 어이하여 그들을 종처럼 부린 것이냐?”

    사부로가 머리를 땅에 쳐박았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또 질문했지만 대답은 한결 같았다.

    죽을 죄를 지었다.

    이 이상 캐묻는 건 의미가 없어 보였다.

    융은 귀찮다는 듯 손짓했다. 흥방이 사부로를 데리고 장내를 빠져나가자, 장임이 말했다.

    “어찌 살려 두시옵니까? 놈이 소싯적 왜구로 활동하면서 우리 백성을 끌고 간 정황이 명백하옵니다. 혹 자백이 마음에 걸리시는 거라면, 신이 고신을 해서라도 자백을 받아내겠사옵니다.”

    “왜인에게 고신을 가해 자백을 받는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오나······.”

    “나도 저놈을 찢어 발기고 싶다. 백번이고 천번이고 찢어 발기고 싶다. 하지만 마다하는 이가 있으니 내 어찌 실행에 옮기랴.”

    “···”

    휘이잉-.

    순간 한차례 바람이 일었다.

    바람과 함께 장막 한꺼풀이 펄럭거렸다. 그리고 펄럭거린 장막 바깥으로 삼삼오오 모여 앉아 시시덕거리고 있는 일곱명의 백성들이 보였다.

    “얼른 돌아가야겠구나. 귀국을 서두르도록 하라.”

    ***

    자리에 드러누워 《설공찬전》을 읽어나가던 황은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오자 벌떡 일어났다.

    숙부 전하께서는 이따금 동궁을 찾아 들여다보는 일이 잦으셨다.

    숙부 전하일지도 몰라서, 옷매무새를 가지런히 정돈하고 어지럽게 바닥을 뒹굴고 있는 방침(方枕)을 정리했다.

    “저하, 과학기술사 별제(別提) 서경덕 들었사옵니다.”

    황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전하는 아니었다.

    “들라하라.”

    “저하, 신 과학기술사 별제 서경덕 문후(問候) 드리나이다.”

    “아, 서 별제. 앉으시오.”

    다른 이들 같으면 앉으란 말에 진짜 앉지 않고 한 두 번 정도는 튕겼겠지만, 경덕은 앉으라면 앉았다.

    그것도 제법 편하게 앉았다.

    “찾아 계시다 들었사옵니다.”

    “과기사의 일이 바쁘다고 들었는데 혹 내 실수를 한 거요? 그렇다면 미안한 일인데······.”

    “아니옵니다. 이제 막 퇴청하려던 참이었으니 마음 쓰지 마소서.”

    “다행이구려. 다행인데··· 그, 내가 서 별제에게 긴히 부탁이 있소이다.”

    짐작 가는 게 있는지 한차례 피식 거린 경덕은 소매에서 뭔가를 꺼냈다.

    지도였다.

    다만 일반적인 지도는 아니고 천하도였다.

    “이거 때문이시지요?”

    “맞소. 그때 하필 숙부 전하께서 찾아 오셔서 흐름이 끊기지 않았었소? 서 별제가 괜찮다면은 계속 들었으면 하는데······.”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만, 차라리 전하께 부탁을 올림이 어떻겠사옵니까? 저도 전하께 들었으니 저보단 전하께서 더 정확히 알고 계시옵니다.”

    “전하께서는 천하의 재미난 이야기를 내가 듣게 된다면 아바마마처럼 떠돌까봐 좀처럼 얘기를 안 해주시오.”

    숙부 전하는 꼭 양위를 해주고 싶어 하셨다.

    그 마음을 황이라고 어찌 모르겠냐만, 가끔은 도가 지나칠 만큼이나 양위에 집착을 하셨다.

    그런 맥락에서 ‘천하의 재미난 이야기’도 숙부 전하께서는 잘 해주지 않으셨다.

    그러니 어째야겠는가?

    꿩 대신 닭이라는 말도 있듯이, 그쪽 방면(?)으로는 숙부 전하 다음으로 빠삭한 사람에게 들어야지.

    물론 그게 서 별제였다.

    “흠. 어디까지 얘기 드렸었지요?”

    반면 경덕은 눈을 반짝거리는 황의 청을 감히 거절 할 수가 없었다.

    마지못한 척 운을 떼는 경덕에, 황이 반색했다.

    “동북의 나라였소. 동북 오랑캐의 땅 너머에도 또 다른 오랑캐가 산다는 말까지 해줬었소.”

    “아, 거기까지 말씀 드렸군요. 신 또한 스승님께 들은 것인데 그러니까, 여기서 동북으로 수백, 수천리 떨어진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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