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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325화 (325/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325화>

    ***

    “자네는 어디서 왔나?”

    전라도 나주 사람 금복은 웬 험상궂게 생긴 이의 질문에 바짝 긴장부터 했다.

    열아홉 평생 동안 나주 땅을 벗어나 본 적이 없던 금복이었다.

    그런 금복이 난생처음으로 나주 땅을 벗어나, 다른 곳도 아니고 무려 나랏님이 계시는 경성에 오게 됐다.

    아버지께서 어찌나 걱정을 하셨던지, 그가 떠나는 전날까지도 서울 사람들 조심하라 신신당부를 하셨을 정도였다.

    그런데 험상궂게 생긴데다, 초면이기까지 한 상대가 말까지 걸어왔으니 긴장을 안할래야 안 할 수가 있나.

    “나, 나주에서 왔는데요.”

    “나주? 나주 어디?”

    “말하면 아세요?”

    상대는 눈을 한차례 껌뻑거리더니 해맑게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지. 아, 난 아산에서 왔네. 아산 알지?”

    절레절레.

    “몰라?”

    “네.”

    “나주에서는 뭐하다 왔는데 아산을 모르나?”

    “농사요.”

    “농사만 짓던 농군이 이런 험한 일은 왜 자원을 했어?”

    초면인 상대에게 복잡한 가정사까지 늘어 놓을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털어놓지 않으면 끈덕지게 달라붙어서 귀찮게 할 것 같았다.

    “제 밑으로 줄줄이 동생만 다섯입니다.”

    “자네까지 하면 여섯?”

    “네. 근데 거기다가 조실부모한 사촌 동생 셋이 군입으로 또 들어와 있어서요.”

    “아홉··· 흐음.”

    상대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군입 하나 줄이기 위해 군대에 가는 일은 대단한 사연도 아니었다.

    과장 조금 더 보태서, 지금 이 공터에 어리버리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자들 중 절반 이상은 아마 부모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원한 이들일 터였다.

    “어린 나이에 고생이 많구만. 아, 나는 해구라고 하는데 편하게 해삼이라고 부르게. 별명이 해삼이니까.”

    “금복입니다.”

    “금복이.”

    해구와 금복이 통성명을 끝내자마자 누군가 공터를 찾았다.

    “높은 분이라도 오시나? 군관 나리들 군기가 바짝 들어가는데?”

    금복은 이 무관학교란 곳에 입교하면서 훈련병이라는 신분을 부여 받았다.

    현시간부로 훈련병이란 신분을 부여 받았다고 말해준 게, 해구가 말한 군관 나리들이었다.

    본인들은 교관이라나?

    군관이나 교관이나 금복에게 높은 분인건 매한가지지만, 공터를 찾은 분은 그런 분들도 벌벌 떨게 만드시는 분인 건 확실해보였다.

    더군다나 그 복색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새빨간 주립에 홍철릭.

    이곳에 계시는 군관 나리, 아니 교관 나리들이 청철릭에 전립(戰笠), 차림인 걸 감안하면 인상적이면서도 특이한 건 확실했다.

    이상한 건 그게 끝이 아니었다.

    홍철릭은 홍철릭이되, 보통의 철릭과 달리 가슴팍에 문양이 새겨져있었다.

    일반적인 철릭에 문양 따위는 없는 걸 감안하면 역시 특이한 철릭이었다.

    “저 문양이······.”

    뭔고 미간을 좁히던 금복은 화들짝 놀랐다.

    금색 실로 수놓은 용문(龍紋)이었다. 용문이 분명했다.

    산간벽지인 나주에서 상경했고, 평생 글이라고는 담 쌓고 살았던 금복이었지만 그런 그도 한 가지 사실은 알고 있었다.

    용문이 새겨진 옷을 입을 수 있는 분은 극히 제한적이란 사실을.

    “저, 전하!”

    생각이 거기에 미친 그때.

    누군지 모를 사람이 부복하며 소리쳤다. 그걸 시작으로 공터에 모인 수백의 훈련병들이 일제히 부복했다.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던 용문의 주인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너희는 내가 임금으로 보이느냐?”

    수백명이 모인 자리였지만, 그중 단 한 사람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힐끔거리면서 평생 가도 뵙기 힘든 용안을 눈에 담으려 안간힘들이었다.

    금복도 예외는 아니었······.

    “거기, 너!”

    “흐읍!”

    다른 사람들처럼 용안을 눈에 담으려 안간힘이던 금복은 나랏님과 눈이 마주쳐버리고 말았다. 눈이 마주친 정도가 아니라 호명까지 당했다.

    헛바람을 들이킨 금복은 어찌할 바를 몰라하다가 머리를 더 깊숙이 조아렸다.

    “저, 저, 전하! 죽을 죄를 지었사옵니다!”

    “죽을 죄 안 지었으니 고개를 들어라.”

    금복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자, 어느 새 나랏님이 그의 목전에 와있었다.

    금복은 또 임금님과 눈이 마주칠새라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고개를 들라니까 자꾸 고개를 조아리네.”

    “죽여주시옵소서!”

    “안 죽일테니 일어나거라.”

    쭈뼛거리던 금복은 어명을 운운하는 임금님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희 모두 고개를 들고 나와··· 너는 이름이 무엇이냐?”

    “그, 금복이라 하나이다.”

    “금복이를 바라보거라!”

    모두가 군관 나리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고개를 들었다.

    “너희가 제대로 보았다! 난 이 나라의 임금이다!”

    “···”

    “그럼 너희는 누구더냐?”

    “···?”

    “너희는 모두 소모사(召募使)들을 따라 모병에 자원했다. 그래서 이 무관학교에 입교를 했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럼 너희는 누구냐?”

    “···”

    “군인이다. 비록 아직 훈련을 받는 훈련병의 신분이지만, 명에 죽고 사는 군인이 된 것이다. 금복이라 했느냐?”

    “그, 그, 그렇사옵니다, 전하.”

    “너는 뭘 하다 입교를 한 것이냐?”

    “노, 농사를 짓다 왔사옵니다.”

    “농사.”

    “···예.”

    “그래, 너희들 중에는 여기 이 금복이처럼 농사를 짓다 온 사람도 있을 테고, 산에서 삼을 캐다 온 심마니도 있을 것이며, 어디 관아에 속해서 심부름을 하거나 대갓집에 하인으로 일하면서 삯을 받던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희의 과거가 어쨌건 그 사실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

    “너희가 진사댁 자제였건, 뒷골 백정 놈의 아들이건, 강너머 사는 사공 놈집 아들이건. 중요하지 않단 말이다. 너희 과거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너희 모두 군인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

    “군인은 명에 죽고 명에 산다. 상관이 명을 내리면 그게 역적질이 아닌 이상 따라야 하는 것이고, 상관이 명을 내리면 목숨을 내놓아서라도 그 명을 완수해야만 하는 것이 바로 군인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그리고 말했다시피 너희는 군인이다.”

    “···”

    “나는 너희에게 임금이 아니라 이 무관학교의 교장으로서, 상관으로서 첫 명을 내릴 것이다. 군인이 된 이상 너희는 따라야 한다. 할 수 있겠느냐?”

    “예.”

    “목소리가 작구나, 할 수 있겠느냐!”

    “예!”

    “너희에게 상관으로서 내릴 첫 명은 내 말을 따라 하는 것이다.”

    말을 따라한다?

    금복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명령 씩이나 되는 건지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게 왜 명령 씩이나 되는 것인지는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자, 따라한다. 임금님 개새끼!”

    “···!”

    다른 훈련병들도 놀라기는 매한가지겠지만, 금복의 놀라움은 더 컸다.

    바로 나랏님 옆에 서있었으니까.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임금님을 개새끼라 부르라니?

    그게 첫 명이라니?

    하지만 놀랄 건 아직 더 남이 있었다.

    “이역 시발놈!”

    왕명(王名)까지 거론됐다.

    피휘(避諱)라는 말이 왜 생겼겠나?

    아니, 피휘를 떠나서 양반님네들은 진짜 친한 사이가 아니면 이름으로도 안 부른다 알고 있는 금복이었다.

    하물며 그저 그런 선비님들 이름이 아니라, 왕명이었다.

    상전의 이름도 함부로 입에 올렸다가는 치도곤을 당하는데, 말했다시피 왕명이다, 왕명.

    임금님 이름은 함부로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 입에 담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불경이고 불충인 것이다.

    근데 왕명을 입에 담는데 모자라 그 이름을 욕되게 하라니··· 이건 금상전하와 선대왕 전하를 덩달아 욕보이는 짓임에 다르지 않았다.

    산간벽지의 무지렁이인 금복 조차 그 사실을 알고 있는데, 자리한 수백명의 훈련병들이 그 사실을 모를 리 만무했다.

    “죽여주시옵소서!”

    누군가의 선창은 곧 떼창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나랏님께서는 단호하셨다.

    오히려,

    “박 교관!”

    “예, 전하.”

    “따라한다. 이역 시발놈.”

    모두의 시선이 박 교관이란 군관 나리에게로 옮겨졌다.

    만인의 시선을 한몸에 받은 박 교관은, 그 시선을 만끽이라도 하듯 잠깐의 텀을 두고 소리쳤다.

    “이역 시발놈!”

    모두가 눈을 질끈 감았다.

    감히 왕명을 입에 담는데 모자라, 욕보였으니 모가지가 잘려도 열댓번 잘려 나갈 일이다.

    그런데······.

    “아주 잘 했다.”

    잘 했다니.

    “말했다시피 군인은 명에 죽고 산다. 설령 천제를 욕보이고, 염라대왕을 욕보이는 명을 상관이 내려도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군인이고, 군인의 존재 가치다. 너희도 저기 박 교관과 똑같은 군인이다. 따라하라! 임금님 개새끼!”

    “···”

    따라하란다고 따라할 머저리가 있을 리 없었다.

    모두가 머뭇거리고 있자, 나랏님이 고개를 획 돌리더니 금복 자신을 바라보았다.

    “금복이!”

    “에, 예, 전하!”

    “너 또한 이제는 군인이다. 따라하거라, 이역 시발놈.”

    금복의 얼굴이 곧 울상이 됐다.

    “전하,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너는 군인이라 하지 않았더냐. 상관에게 절대복종 하는 것이 바로 군인이다. 따라하거라, 임금님 개새끼!”

    “저, 전하! 죽여주시옵소서!”

    “어허! 국법은 지엄하고, 그 지엄한 국법보다 지엄한 것이 바로 군법이거늘, 네가 내 명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나는 너를 군법으로 처리 할 것이다! 따라하라! 이역 시발놈!”

    울상이 된 금복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이, 이······.”

    “옳지.”

    “···역 시, 시, 시······.”

    “시발놈! 네가 공자 같은 성현이라도 되느냐? 임금인 나도 천박한 욕을 입에 올리는데, 어찌 그리 망설인단 말이냐!”

    “이역··· 시발놈······.”

    이제 죽었다!

    금복은 눈을 질끈 감았다.

    오라를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나랏님은 그의 어깨를 두들기며 격려해주셨다.

    “잘 했다. 너는 상관의 명을 군인으로서 처음 수행했다. 자! 너희 모두 따라하라, 임금님 개새끼!”

    금복이 임금님을 욕보이고도 아무런 질책도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은 것인지, 곧이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임금님 개새끼 하는 소리들이 새어나왔다.

    “모두들 잘 했다! 너희는 군인으로서 상관의 명을 수행한 것이다. 군인이란 그 어떠한 명도 수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번 일로 뼈에 새기고 몸에 새겼을 터이니, 장차 너희가 전장터에 나가 상관이 설사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 들란 명을 내려도 그것이 아군을 위한 일이라면 오늘을 떠올리며 기필코 수행하라. 자, 모두들 교관들을 따라 이동한다.”

    ***

    요즘 나는 무관학교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었다.

    정사는··· 솔직히 말하면 승정원에서 그 날 안건들을 학교로 가져다 준다.

    갑자기 문제 생기거나, 내 결재가 시급한 일이 생기면 대신들이 알아서들 찾아오고 말이지.

    나는 내 영혼을 갈아 넣었다 표현 할 만큼 훈련병들 훈련에 신경을 썼다.

    일전에 봉해위의 위사들을 훈련시키면서 아쉬웠던 부분들은 이번에 보강해서 훈련 시킬 수 있었고, 위사들을 훈련시키면서 보다 효과적이었던 훈련은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서 당시 보다 효율성을 높였다고 자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점이 하나 있었으니······.

    “원접사는 누가 좋겠습니까?”

    “전하께오서 분부하셔서 신들이 빈청에 모여 의논을 해봤사온데, 이번 일은 이례적이지 않겠사옵니까?”

    확실히 황제가 입조(?)하는 것이니 이례적이다 못 해 경천동지할 일에 가깝다.

    실제로 황제의 입국 의사가 형님의 서신을 통해 전달되고, 그게 신문으로 배포 됨에 따라 팔도가 들썩였었다.

    제후인 우리 나라의 왕이 명나라 조정에 입조하는 것도 상상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형님이 입조 한다고 했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을 지경이다.

    사대를 하는 건 하는 건데, 굳이 일국의 임금이 입조까지 할 필요가 있냐는 논지 때문이었다.

    그랬는데, 이번에는 황제의 입국이다.

    들썩이는 수준이 아니라 얼마 동안은 팔도가 열광의 도가니였다.

    중용월보의 조 사장은 이번 일을 기회로 삼았는지, 월보의 개념도 잊고 일보로 신문을 배포시켰다.

    모두 선전을 위한 일보였다.

    무슨 선전이냐고?

    금상전하의 덕치가 창성하니 황제가 치하하기 위해 입국한다는 둥··· 황제가 동국의 예의에 감동하여 친히 왕림 한다는 둥··· 내막을 알고 있는 내가 듣기엔 민망한 내용의 신문들이었다.

    물론 민망할 땐 민망하더라도 굳이 배포를 막진 않았다.

    조 사장의 말대로 황제의 입국은 확실한 선전이었으니까.

    내가 어제도 말했지?

    왕이 돼서 알 게 된 것들이 있다고.

    또 하나 말하자면, 권위다. 나는 권위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왕이 되고 나니 은근히 권위에 신경을 쓰게 되더라니까?

    근데 조 사장의 선전은 이 권위에 확실한 도움이 됐다.

    그 누구도 해내지 못 한 황제의 입국을, 아니 상상조차 못 한 황제의 입국을 성사(?)시킨 왕이었으니 정통성 면에서는 태조 이성계 저리가라 할 정도가 됐다고나 할까?

    뭐, 어쨌든 이게 무관학교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생긴 단점은 당연히 아니고.

    “예. 이례적입니다.”

    “해서, 삼정승들이 원접사로 하여금 의주에까지 나아가는 것이 어떤가··· 하는 의견이 나왔고 이를 중론으로 삼게 되었사옵니다.”

    “삼정승들을 말입니까?”

    “그렇사옵니다.”

    “의정 분들 모두 괜찮으십니까?”

    허침, 임사홍, 채수.

    모두 노구였다.

    노구의 몸으로 의주까지 간다는 건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세 분 모두 괜찮다는 의사를 곧 밝혀왔다.

    “그럼 세 분을 원접사로 하여금 의주에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하옵고 전하.”

    “예.”

    “무관학교 말이옵니다.”

    “말씀하십시오.”

    “그 존재가 폐하의 귀에 들어간다면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수 있으니 그 존재는 알리지 않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사홍 아저씨의 말마따나 그게 좋을 것 같긴 하다.

    황제가 나나 우리 조선에 호의적이라고 해도, 그래서 제아무리 군사를 키우는 목적이 왜정에 동원하기 위함이라고 해도, 여러모로 불쾌하긴 할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오늘 안건은 이게 전부고.

    자, 눈치들 챘을까?

    무관학교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생긴 단점.

    눈치를 챘다면 군필이고, 못 챘다면 미필일 것이다.

    “저기, 하옵고 전하.”

    “예.”

    “이걸 주달해야 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사옵니다만······.”

    “괜찮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전하께서 언사가 많이 바뀌 신 듯 하오니 신들로서는 걱정이 아니 될 수가 없나이다.”

    “제 말투 말입니까?”

    “예.”

    “이상합니까?”

    “이상한 건 아니온데, 전하의 언사가 딱딱하게 바뀌니 하관들 사이에서 말들이 있는 듯 하나이다.”

    “경들이 그렇게까지 말씀들 하신다면 다시 예전처럼 고치겠습니다. 자, 그럼 이만 모두 물러들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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