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군으로 살어리랏다-312화 (312/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312화>

    ***

    一.

    <편전에서 노산군의 왕호 추복을 명하다>

    「세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조께서 정난(靖難)한 일을 후세에 이르러 정난이라 한다지만 실은 혁명(革除)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끝내 끔찍한 죽임을 당한 노산의 최후로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무릇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은 후세에라도 신원하여야 하니 폐주라고 다르단 말인가? 비록 《예경(禮經)》에 이르기를 ‘폐출 된 사람의 일은 따로 거행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있다만 노산은 부덕하여 폐위 된 것이 아니라 세조 대의 간신들의 은밀한 협잡에 의한 것이었으니 지금에 와서 대의를 바로 세우려는 것이고, 또 지금 이 일은 국가로서는 더할 수 없이 중대한 일로서, 오직 금상 전하께서 노산의 일을 당대에 매듭 지으려는 일념이 하늘에 통하여 가당한 일이 된 것이다. 금상 전하께서 본인에게 정사를 일임하셨으니, 본인이 이르건대 노산의 왕호를 추복한다. 이는 천세에 이르도록 바꿀 수 없는 정론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시었다.

    정덕 3년 4월 28일 중용월보 주필 김구오.

    二.

    <노산의 왕호 추복이 적절치 못 하다는 의견에 대한 금상 전하와 상왕 전하의 말씀>

    지금 세간에 노산의 추복이 적절치 못 하다는 의견이 제기되니 이를 들으신 온양의 금상 전하께서 비망기를 내리시길,

    “영을 두 번 내리게 하지 말고, 속히 추복해라.”

    하셨고 상왕 전하 또한 이르시기를,

    “천자나 왕실의 처사가 사삿집과 같을 수가 없다. 하물며 지금 주상의 영에 왈가왈부하는 것들은 그 저의가 의심 된다. 혹 옛날 이극균과 윤필상 같은 역신들처럼 주상의 말에 조금이라도 반론을 제기하여 후세에 기인(奇人)으로 보이기 위함인 것이냐? 이르건대, 주상의 영이 바로 서지 않는 것은 사판(벼슬아치의 명부)에 이름 올린 자들의 부덕이다. 역적 윤 가와 이 가처럼 낙인 찍히고 싶지 않다면 알아서들 처신하라.”

    하였으니 두 전하의 은혜가 참으로 하해와 같다.

    정덕 3년 4월 30일 중용월보 주필 김구오.

    三.

    <노산군의 묘호를 짓고 시호를 추상하다.>

    「세자께서 의정대신과 육조판서, 관각당상(館閣堂上)과 의정부의 서벽(西壁)들을 불러 연일 노산군의 일을 논하였는데 마침내 그 시호가 결정되니, 마음이 바르고 정신이 순수한 것을 순(純)이라 하고, 나라 걱정을 크게 하며 인자로운 것을 정(定), 다투지 않음을 안(安), 어진 사람을 존경하고 의리를 귀히 여김을 공(共), 백성을 사랑하여 다스리기를 좋아한 것을 익(翼), 정의를 지켜 굴복하지 않음이 경(景)이니 순정안공익경(純定安共翼景) 대왕이라 하였다. 묘호가 논의 됨에 따라 좌의정 임사홍이 말하기를,

    “노산은 성선주문(聖善周聞)하여 일찍이 성스럽고 착한 것이 두루 알려졌다 하니 묘호에 선(宣)자를 넣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이 말을 온양의 금상 전하께 전하자, 전하께서 비망기를 내려 명을 내리시길,

    “노산군은 끝끝내 예의를 지켰고 부르기도 단(端)자가 편리하니 단종이라 하는 게 좋겠다.”

    하시니 대신들이 의견을 좇아 단종이라 하였다. 능호는 장릉(莊陵)이며, 부인 송씨의 예 역시 이에 준하게끔 시행되었다. 명이 선포되고 세인들이 놀라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금상 전하의 덕을 칭송하였다.」

    정덕 3년 5월 2일 중용월보 편집장 조광조.

    四.

    <영월에 많은 비가 내리다>

    「강원도 관찰사 임유겸(任由謙)이 치계하기를,

    “관내에 다른 지역은 해가 떠있는데 영월에만 많은 비가 내리니 기이한 징조이므로 치계합니다.”

    하였는데 과연 관찰사의 말이 지당하다. 비와 가뭄이 자연의 조화에 불과하다지만 어찌 시기적절하게 영월에만 많은 비가 내린단 말인가? 실제로 이 소식을 접한 세인들 역시 입을 모아 말하기를 왕호가 추복된 단종이 울고 계시다는 말을 하였으니 이는 그른 말이겠는가? 생각건대 폐주의 억울함까지 없게 하려는 우리 전하의 덕이 참으로 밝고 또 밝다.

    정덕 3년 5월 4일 중용월보 편집장 조광조.

    “주상 전하 천세! 천세! 천천세!”

    “천천세!”

    한 달 간 온천욕은 질리도록 즐겼다.

    어디 온천욕만 즐겼겠는가?

    격일로 형님이랑 사냥도 나갔고, 위사들을 불러 축구도 했다.

    왕이 된 후로는 구중궁궐에 갇혀 당구 외의 취미 생활이 없어서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인 상태였는데 모두 해소한 계기가 됐다.

    밤이 되면 사냥으로 쌓인 피로를 온천욕으로 풀었고, 가끔은 여울이랑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니, 오죽 재밌었으면 형님은 나랑 같이 환궁 안 하시고 한 달 더 묵고 오시겠답시고 남으실 정도였을까.

    근처에 사냥터 있지, 사냥하고 나면 온천 기다리지··· 형님 입장에선 이만한 휴양지가 또 없었겠지.

    좌우지간, 그렇게 잘 놀다가 형님은 남겨두고 환궁하는 길이었다.

    7일간의 대장정(?) 끝에 배다리를 타고 마포나루 강변에 도착 할 수 있었다.

    도착했는데 웬 걸.

    이건 뭐 리셉션도 아니고 수천은 모인 인파들이 모두 두 손을 번쩍 들어올리면서 천세를 외치고 있다.

    어안이 벙벙해진 건 당연지사다.

    “농번기라 한창 바쁠 텐데 왜들 저러고 있답니까?”

    궁금해져서 마중 나온 우의정 채수에게 물었다.

    “단종의 일 때문인 듯 하옵니다.”

    “단종의 일?”

    “예. 전하께서 온양에 계시면서 노산군의 왕호를 추복하라 명하시고, 친히 단종으로 묘호를 짓게 하신 뒤로 민심이 감복하고 있사옵니다.”

    아, 물론 여론이 좋다는 소린 온양에서 들었다.

    애당초 노산군, 아니지. 이제 단종이다.

    단종은 백성들의 화두에 자주 오르 내리는 역대 임금 중 하나였다.

    적법한 절차로 왕위에 올랐에 올랐지만 그 최후는 끔찍했잖은가.

    그래서 그런지 단종이 저 세상 사람이 된 지 50년 밖에 안 됐음에도 경기도나 강원도에서는 그를 주인공으로 한 민담도 성행할 정도였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단종의 민담만 7개가 넘으니 말 다 했다.

    근데 환궁 길에 이렇게 많은 백성들이 마중을 나와서 천세를 외쳐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만큼 단종에 대한 백성들의 동정 여론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따지고 보면 나는 거창한 의도 씩이나 갖고서 왕위를 회복시켜준 게 아니라, 그냥 불쌍해서 해준 건데 양심에 찔린다.

    뭐,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백성들의 칭송이 싫지만은 않다.

    천세 소리는 경복궁에 돌아가고 나서도 한참 동안이나 들려왔다.

    ***

    북경에서 서쪽으로 50리(里) 거리에 위치한 완평현(宛平縣).

    “아니, 또 말입니까?”

    유육(劉六)의 반문에 완평현 지현(일종의 현감) 왕성(王性)은 민망한 표정으로 하늘을 쿡쿡 찔러보였다.

    “낸들 어쩌겠는가. 고자 놈들의 세상이 된 지 오래지 않은가?”

    “하지만 벌써 저번 달에만 단주(지금의 북경시 방산구 일대)를 4차례나 다녀왔습니다. 한데 또요?”

    “미안하게 됐네. 우리 완평현에서 말을 가장 잘 타는 건 자네들이지 않은가. 필히 서른을 차출하라는데 이 완평에 자네들 같은 무사가 있어야지.”

    “저번달에만 3명이 죽었소이다, 3명이!”

    발끈한 건, 유육의 아우인 유칠(劉七)이었다.

    “그래서 못 가겠다?”

    “못 갑니다! 아니, 안 갑니다!”

    “허. 지금까지 자네들 뒤 봐준 게 누군데 이제와서 내 청을 거절한단 말인가?”

    “뒤를 봐주긴 누가 뒤를 봐줬다는 거요?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덕 본 건 우리보다 지현 나리지 않으시오?”

    “뭐가 어쩌고 어째! 아무튼, 가든 말든 자네들이 판단할 문제고. 나는 분명히 가라 했네. 차후에 문제 생기면 책임은 자네들 몫일세. 그럼. 커흠.”

    왕성이 멀어져가자, 유칠이 펄쩍 뛰었다.

    “형님! 왜 가만 있으십니까? 우리가 호구도 아니고, 아니··· 호구를 떠나서 관군도 아닌데 도적 놈들 토벌을 왜 우리가 해야 한답니까, 대체!”

    도적 토벌.

    요즘 명나라는 예전만 못 했다.

    황제는 일체의 정사를 팽개친 채 표방에서 노름하며 지내는 일이 잦았다. 황제가 처리 할 정사는 환관들의 몫이었다.

    환관들이 정사를 공명정대하게 처리하면 모르겠지만, 고자 놈들이 일처리를 똑부러지게 할 리가 만무했다.

    부정부패가 만연해졌고, 세금을 이중으로 징수하는 일도 잦아졌다.

    각지에서는 도적이 창궐하고 반란이 일어났는데 그건 황제가 사는 황도 인근이라 해서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황도 인근이기 때문에 도적 토벌에 더 열을 올리고 있는 시점이었는데, 때문에 각 현에는 할당량이 주어졌다.

    이곳 완평현 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할당량을 군사들만으로 채우기는 역부족인지라 사냥꾼들의 협조도 구할 수 밖에 없었다.

    유육과, 유칠 형제가 바로 그 사냥꾼들이었다.

    완평현 지현 왕성의 청을 받고 토벌대에 합류한 게 벌써 21차례였다.

    왕성이 또 갔다 와야겠다는 단주에는 저번달만 4차례를 다녀왔고.

    그런데 또 가란다.

    가서 또 관군 대신 도적들을 토벌하란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막돼먹진 않았다.

    처음에는 그래도 일용할 식량과 도적들의 수급마다 얼마씩의 은자도 줬었다. 그런데 지금은 일체의 식량도 지급되지 않았다.

    토벌에 소요되는 경비는 모두 사비로 처리해야 되는 문제였다.

    게다가 도적 토벌이란 게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일단 토벌에 나갔다 하면 한 둘은 무조건 죽는다.

    눈 먼 화살에 맞아 죽고, 도적놈들한테 칼 맞아 죽고, 굶주리다 낙오 돼서 죽고, 야생동물 만나서 죽고.

    그런데 사람이 양심이란 게 있지, 또 가라고 등떠미는 건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 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렇다고 거역 할 수도 없잖으냐.”

    유육도 갑갑하긴 매한가지였다.

    한참 사냥철이었다.

    산에 올라 덫을 설치하고 사냥한 사냥감들을 내다 팔아도 모자랄 시간에 목숨 걸고 도적 토벌이나 하고 있으니 갑갑한 정도가 아니라 미치고 펄쩍 뛸 정도였다.

    하지만 관의 말을 거역 할 수도 없었다.

    이웃 마을에서는 도적 토벌에 차출되길 거절했다가, 마을 전체가 반역향으로 낙인 찍혀 역토벌 당한 일도 있었다.

    이게 아주 과거의 일이 아니라 올 2월에 있었던 일이었다.

    “그럼 어쩌게? 또 나가겠단 말입니까?”

    “내 다시 한 번 지현 어른을 뵙고 오마.”

    “아니, 그렇게 당하시고도 모르십니까, 형님? 그놈이 우릴 생각이나 할 것 같냔 말입니다.”

    “그래도 사정을 하면 이해해줄지도 모르지.”

    “어후! 답답하긴!”

    답답한 듯 가슴을 쾅쾅 두들겨대는 유칠에, 육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에 올랐다.

    “아직 멀리 안 가셨을 테니 얼른 다녀오마. 어제 잡아둔 토끼나 손질해두고 있거라.”

    “갈 거면 같이 갑시다.”

    “뭔 험한 꼴을 당하려고. 토끼나 손질 해두고 있어.”

    “씁. 뭐, 알았소. 다녀오십쇼.”

    고개를 끄덕인 육은 말허리를 가볍게 걷어찼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왕성의 일행이 보였다. 육은 일행을 불러세웠다.

    불러세우자, 왕성은 기분 나쁜 표정으로 육을 흘겼다.

    “볼 일은 방금 다 본 것 같은데 무슨 일이냐?”

    “나리, 이번 토벌만 어떻게 배제시켜주십시오.”

    “안 된다고 말했을 텐데?”

    “칠 아우의 말처럼 나리께서도 저희가 필요하시지 않습니까? 그래도 저희가 한 번 나가면 도적 놈들 수급 서넛은 거뜬히 베어와 바치는데 이번 한 번을 눈 감아주지 못 하십니까?”

    “으음.”

    “스물 한 번 씩이나 나리가 토벌대에 합류하라면 군말없이 합류하지 않았습니까? 이번 한 번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던 왕성이 머잖아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그럼 선심 한 번 쓸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리!”

    긁적긁적.

    “대신에.”

    “···?”

    “자그마한 정성을 보여준다면 흔쾌히 선심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저, 정성 말입니까?”

    “그래, 정성.”

    “하, 하지만 나리께서도 아시다시피 저희가 이번에 토벌에 차출돼서 딱히 수입이랄 게 없었습니다. 입에 풀칠하기도 버거운······.”

    “그럼 할 수 없지. 약속된 날에 약속된 곳으로 오시게.”

    자기 할 말만 하고 떠나버리는 왕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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