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군으로 살어리랏다-307화 (307/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307화>

    ***

    UFO!

    아, 진짜 외계인이 있니 없니 하는 문제는 차치하자.

    기록 된 역사 이후 최초로 외계인과 조우한 왕.

    이게 중요한 거거든.

    게다가 사람에게는 공명심이 있다고 하잖아?

    이게 점잖게 표현해서 공명심인 거지, 요샛말로 하면 관종이다, 관종.

    근데 나도 왕이 되고 나서 관종끼가 좀 생겼는데 이게 뭐라고 표현해야 되나.

    적절한 비유는 아닌 것 같긴 한데··· 옛날에 형님이 역적들 다스리면서 늘 하시던 말씀있잖아.

    비유1. 역적 XX이는 본인이 조금이라도 용기가 가상하고 충정이 깊다는 걸 후세에 알리기 위해 직언을 도구로 삼았다. 저놈을 참해라!

    비유2. 역적 XX이는 후세에 조금이라도 기인으로 보이기 위해 망발을 일삼고 있으니 살려둘 가치가 없다, 참하라!

    모가지가 잘리고 싶다는 건 아니고, 요점은 기인이다.

    밑줄 쫙.

    몇 백년 뒤의 후손들이 날 기인으로 평가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뭐랄까, 지랄하고 자빠졌네의 세종대왕 같은?

    왜 그런 평가를 바라냐고?

    밥 먹는데 이유가 있나.

    굳이 찾자면, 재밌을 것 같아서?

    물론 후대의 평가를 내가 뒤지고 난 뒤에 어떻게 확인하겠냐마는 생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잖아.

    이미 난 보위에 오르고 제법 많은 업적을 쌓았다.

    일단 스포츠 방면에선 당구장을 만들었다.

    영토 부분에서는 내가 원해서 한 건 아니었지만 오키나와를 꿀꺽해서 국토가 늘었다.

    국격?

    도발한 여진족을 기병대 파견해서 모조리 섬멸시켜버렸다.

    그리고 또 뭐가 있지?

    하도 많아서 기억이 안 나는데 좌우지간 이런 업적들만 보면 후대의 사람들은 역사에 흔히 있는 평범한 왕으로 기억하게 될 테지만 UFO, 그것도 외계인과 조우한 왕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거다.

    그러니 흥분을 안 할 수가 있겠어?

    좌우지간.

    조울증도 아니고, 숙연했다가 갑자기 흥분을 한 내 반응이 이상 했던 건지, 아니면 정말 걱정이라도 됐던 건지 대신들 중 절반이 날 따라왔다.

    내 거둥을 말렸던 김전도 예외는 아니었다.

    깍두기(?)들 여럿 데리고 가려니 길이 좀 지체 될 수 밖에 없었다.

    청숫골이 한강 너머에 있다 쳐도, 배 타고 가는 시간까지 넉넉잡아 2~3시간이면 갈 거리인데 4시간이 꼬박 걸려 버린 것이다.

    어쨌든 4시간만에 도착한 청숫골은 이미 수많은 인파들이 몰려 있었다.

    강변에는 UFO 추락을 보고 조군들이 배를 타고 구경 나온 건지, 조운선들도 몰려 있었고 일반 나룻배들도 엄청 몰려 있었다.

    이들에 대한 통제는 봉해위의 위사들이 하고 있었는데 내가 행차하니 홍해 갈라지듯 그 많은 인파가 갈라졌다.

    “저긴가?”

    현장 책임자(?)에게 묻자 책임자인 위사는 읍을 하며 말했다.

    “그렇사옵니다, 전하.”

    “확인은 해봤는가?”

    “예, 해봤사온데······.”

    나는 뒷말을 이으려는 위사의 말을 냉큼 잘라냈다.

    이건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과 같은 거다.

    선물이 뭔지 미리 알면 김 빠진달까?

    내가 확인하고 싶었다.

    “됐네, 내가 확인하지.”

    “···예.”

    나는 한껏 부푼 기대감을 안고 추락 현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UFO!

    내 UFO!

    UFO라고 생각한 그 물체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오히려, 초가집 위에 내리 꽃히듯 꼬라박힌 물체는 UFO가 아니라······.

    “열기구잖아?”

    김이 확 빠지던 그때.

    “스승님.”

    누군가 날 불렀다.

    날 스승님이라 부를 녀석은 많지 않다.

    기껏해야 석평이나 경덕이 정도.

    고개를 돌리니 과연 넝마가 다 된 옷을 걸치고 있는 경덕이 보였다.

    “너 여기서 뭐하냐?”

    ***

    좋다 말았다.

    물론 UFO일 가능성은 애당초 희박했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간사해서, 혹시나··· 내게도 그런 행운이··· 하는 생각이었는데 고작 열기구라니······.

    쪽팔리게시리.

    물론 쪽팔림은 나만의 몫이고, 대신들의 몫은 성토였다.

    “전하!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옵니다! 열기구를 비행하는 일은 전하께서도 안정상 문제 될 것을 우려하시어 엄금하신 사안인데 감히 지금 이 서경덕이란 자는 뚝섬에서 청숫골까지 비행하여 추락까지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가벼운 일이겠사옵니까?”

    대사성 이점이다.

    “그렇사옵니다. 다행히 빈 가옥에 떨어져 인명을 해치지는 않았지만 만약 도성 한복판에 추락을 했다면 그 불이 어디까지 번져 갔겠사옵니까?”

    이건 대사헌 김전이고,

    “추락 당시에도 불이 붙고 있었는데 이를 청숫골 백성들이 황급히 우물 물을 길러서 껐다 하니, 자칫 불이 옮겨 붙기라도 했다면 청숫골 전체가 전소 될 수도 있는 일이었사옵니다! 부디 서경덕을 벌하소서.”

    다시 대사성 이점이다.

    보다시피 불이 날 뻔한 걸 성토하고들 계신다.

    물론 성토 할 만도 하다.

    21세기도 화재에 엄청 민감하지만, 여긴 더 민감하다.

    대부분 잘 연소되는 목재 건축물들이기 때문에 한 번 불이 나면 일파만파로 퍼져나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도 벌을 줄 생각이었다.

    경덕이와 그 아우인 숭덕의 의도는 내가 모르는 바 아니다.

    특히 호기심 충만하고 은근히 관종끼가 있는 경덕이로서는 열기구라는 좋은 재료를 썩히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래도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다.

    “경들의 말이 맞습니다. 내 따끔히 혼을 내야겠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에, 그래서 말인데요. 공조 속아문으로 관아를 하나 신설했으면 하는데.”

    대신들이 눈을 끔뻑거렸다.

    벌과 갑자기 업급한 관아의 상관관계를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어인 말씀이시온지요?”

    “그 이번에 죄지은 서경덕이는 경들도 알다시피 내가 아주 잘 아는데, 그놈은 자유로운 영혼이라서 어디 한군데 묶여 있는 걸 병적으로 싫어합니다. 어디 묶여 있기만 합니까? 정시 등청에 정시 퇴청··· 이거 내가 해봐서 아는데, 곤욕입디다. 그놈 입장에선 나보다 더한 곤욕일 겁니다.”

    “···전하 그게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서경덕을 벌주라는 말씀은 방화의 예를 적용 할 순 없어도 이에 비견 될 만한 벌으로 하여금······.”

    “예예, 무슨 말씀이신지는 다 아는데. 그래도 나름 기특하지 않습니까?”

    “죄인이옵니다, 전하!”

    “죄인이긴 한데 그래도 내가 엄금한 열기구를 시험 비행하지 않았습니까? 목숨까지 걸어서 나라에 보탬이 되려 한 거구요. 그래서 딱 생각해보니, 이 기회에 백성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발명품과 나라에 도움이 될 만한 발명품을 연구하는 관아를 신설하면 좋겠단 생각이 든 거고··· 자유로운 영혼이 그 관청의 실무 책임자로 있게 되면 그게 또 벌이란 생각도 들었고요.”

    얼탱이 없어 하는 이점을 일별한 채 관아 이름을 생각해봤다.

    21세기에서 비슷한 기관을 찾으라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도가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비슷하면 좋겠지.

    “자, 그럼 관아 이름은··· 공조 속아문으로 해서, 과학기술사가 좋겠군요. 관장은 공조판서가 하되, 실무 책임자는 음··· 종오품 별제(別提)를 둬서 실무를 처리하도록 하면 되겠구요. 어떻습니까?”

    서경덕을 벌 줘라 -> 벌 줄게 -> 관아 신설.

    도저히 연관성을 찾을 수 없었는지 대신들은 여전히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근데 따지고 보면 늦은 감이 있는 관아 신설이다.

    기술이란 건 천대해서 되는 게 아니고, 어느 한순간에 기초도 없이 또렷한 성과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처럼 주먹구구식으로 기술 개발이 이뤄지면, 이건 진짜 아닌 거지.

    “그리고 별제에는 이 서경덕이를 제수 하도록 하겠습니다. 저기, 뭐야. 빈청에서는 관아를 어디에 만들면 좋을지 의논해서 알려주십시오.”

    “하지만 전하! 서경덕은 죄 지은 인물이고, 아니··· 그걸 떠나서, 한 번도 과거에 급제한 적이 없는 위인이옵니다! 그런 위인을 갑자기 발탁해서 몇 개의 품계를 뛰어넘어 기용한다면 나라의 기강이 어찌 문란해지지 않겠사옵니까?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전례도 있잖습니까.”

    “예?”

    “대립군이었던 김억수가 장군이 된 일이나. 대립군이었던 민천동이 몇 자급을 뛰어 넘어서 만호가 된 일이나··· 또 누가 있더라. 당장 생각은 안 나는데, 아무튼 많았잖습니까.”

    논리라곤 1도 찾아 볼 수 없는 무논리인 건 알았지만 원래 조선은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

    “아니, 뭐 선왕도 하신 일을 나는 못 한다고 하면 양위해도 되구요.”

    양위 패를 너무 자주 써먹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만큼 효과 직빵인 게 없어서 그렇다.

    “···신들이 잘 의논하여 의견을 종합해서 주달하겠나이다.”

    “아, 그리고 대장군은 지금 어디쯤 왔답니까?”

    여기서 말하는 대장군은 물론 형님이다.

    3월 초중순이 귀국 예정일이었고, 예정일에 딱 맞춘 3월 9일쯤 부산진에 입항했다는 보고를 받았었다.

    지금이 12일이니 아마 지금쯤이면 경기도 이천 쯤에는 와있을까 하지 않아서 던진 질문이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이천에 있는 천미천(지금의 청미천)을 오늘 오전에 넘으셨단다.

    내일에는 도착 할 것 같았다.

    ***

    형님이 드디어 돌아오셨다.

    장장 10개월에 걸친 원정을 끝내고서 말이다.

    갈 때 이백돌이었기 때문에 올 때 역시 이백돌의 예로 형님을 맞았다.

    이제는 개선 의례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보훈청에서 개선식을 열었고 대장군 이백돌을 치하했다.

    이백돌을 치하하고 난 뒤에는 잠깐 연회를 베풀었고, 모두 고주망태가 되도록 마셨다.

    그리고 다음 날.

    형님은 대장군 이백돌이 아닌 상왕 이융으로서 편전에 드셨다.

    오키나와의 상황을 대신들에게 설명도 할 겸.

    또 데려온 인질을 어찌 할지 논의도 좀 할 겸.

    상왕과 현왕이 함께 편전에 들었다.

    당연히 가장 상석에는 형님이 앉으셨고, 나는 예전에 형님이 설치해주셨던 원좌를 재설치해서 그 자리에 앉았다.

    여담인데, 나는 이 자리가 제일 편한 것 같다.

    형님이 앉은 저 왕좌는 좀 많이 불편해.

    천상 2인자 체질인가?

    좌우지간 오키나와 안건은 별 탈 없이, 아주 평탄하게 논의가 시작됐다.

    형님에 의하면 오키나와의 현 상황은 약간 일촉즉발이란다.

    일단 남겨두고온 조선군들 덕에 치안이 그럭저럭 유지가 되는 상태지만, 언제 불이 붙을지 모르겠단다. 그나마 불행중 다행인 점은 대다수 호족들은 조선에 우호적이래나?

    형님은, 호족들을 더 끌어들일 겸 여진족들에게 주는 관작처럼 그들에게도 관작을 줘서 위로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일리가 있는 말씀이셨기에 이견은 없었다.

    다음 안건은 인질 부분이었다.

    인질이 뭔 말이냐면, 쇼신과 그의 아들이다.

    쇼신의 투항을 받은 형님은 아주 적법한(?) 절차를 밞아서 쇼신에게 국새를 인도받아 오키나와 왕위에 올랐고, 이 보고를 조정에서 전해듣자마자 깜짝 놀란 우리는 이계동을 관찰사로 삼겠다는 뜻을 담은 연락선을 급히 파견했었다.

    형님도 자칫 명나라와 외교적으로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하셨는지, 오키나와 왕위는 다시 내게 양위하셨다.

    일단 법적으로는 오키나와와 조선이 양립하는 게 아니라, 오롯하게 조선에 편입된 게 된다.

    인질은 이 과정에서 발생했다.

    쇼신은 나라를 갖다 바친 게 된다. 게다가 일국의 왕이었다.

    함부로 참할 수는 없었다.

    그 나라에 남겨두면 자칫 화라도 생길까봐 인질로 끌고 오긴 했는데, 어떤 예로 대우해야할지 결론이 도출되질 않았다.

    형님은 그냥 대부의 예로서 대하자는 의견을 개진하셨고, 김전은 망국이라 하지만 그래도 일국의 왕을 대부로 대하는 건 이치에 어긋난다며 왕자군으로 대우하자는 의견을 개진했다.

    그렇게 한참 두 의견이 대립하던 그때였다.

    우당탕탕!

    바깥이 소란스러워지는가 싶더니 상선이 편전에 들었다.

    “전하! 큰 일 났사옵니다.”

    끔뻑끔뻑.

    “어떤 전하를 말씀하십니까?”

    “아··· 금상전하를 이름이옵니다.”

    “뭡니까?”

    “도을치가 산적떼에게 습격을 당했다고 하옵니다.”

    알다시피 나는 도을치한테 상경령을 내렸었다.

    그 도을치가 상경을 하다가 산적떼에게 습격을 당했나 보다.

    이런 일은 사실 왕왕 있는 일이다. 어명을 받잡고 내려간 암행어사들도 산적떼에게 습격받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하물며 북쪽 땅에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는다.

    최대한 냉정을 유지한 채 어디서, 어떻게 습격을 당한 거냐고 물으려는데 왠지 싸-한 기분이 들었다.

    “상선. 도을치가 어인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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