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군으로 살어리랏다-305화 (305/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305화>

    ***

    평안도 관찰사 윤금손(尹金孫)에게 보고를 하자마자 출동한 천동의 기병대는 사흘 만에 파저강역에 도착 할 수 있었다.

    파저강 너머에 장사징가의 권속에 있는 부락이 있다면, 파저강에서 동쪽으로 5리(2km)쯤 떨어진 곳에는 연변진에 귀화한 번호의 부락도 있었다.

    기병대가 험준한 장백산맥을 통과해 사흘 만에 파저강역에 도착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번호 부락의 길안내 덕분이었다.

    길안내를 맡은 인물은, 귀화한 뒤에 박고로(朴古魯)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30호 정도 되는 작은 부락의 추장이었는데 천동은 박고로의 도움을 받아 이곳에서 하루 정도를 노숙하고, 바로 다음날 도강했다.

    도강하고 7~8리(약 3km)쯤 진군했을까.

    작은 부락이 있었다.

    변경 지방에서는 잦은 국지전이 있었다.

    조정에 보고가 올라가는 국지전도 있었고, 올라가지 않는 국지전도 있는데 어쨌건 변경에 복무 한다는 건, 죽음을 각오하고 살아야 한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언제 번호가 적호로 돌변할지 모르고, 적호가 번호로 돌변할지 모른다.

    설령 번호라 해도 안심 할 수 없고, 적호라 해서 적개 할 수 없다.

    여진의 족속들은 교활하고 영악해서 조금만 생계가 힘들어지면 복면을 쓰고서라도 일대를 약탈하니까.

    때문에 변경의 각 진보에서는 가까운 부락과 그 일대의 부락들을 잦은 정탐으로 정리해두곤 했는데, 연변진도 예외는 아니었다.

    “토로다(土老多) 부락인가?”

    상왕 전하의 북벌 감행 이후 잠잠한 여진족이었지만, 그렇다 해서 국지전이 없었던 건 아니다.

    변경은 늘 살얼음 같은 분위기였다.

    연변진에서는 달에 2~3차례씩 정탐을 파견하곤 했었다.

    물론 정탐을 한다 해서 모든 부락을 파악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위쪽 상황이 어찌 되는지 정도는 가늠 할 수 있었다.

    토로다 부족은, 원래는 파저강 상류에 살던 족속들인데, 어찌 된 일인지 남하하게 됐고 독자적으로 살다가 장사징가의 세가 커지자 그 권속에 든 부락이었다.

    천동은 기록지를 살펴봤다.

    이 기록지는 보통 여진족에 사신으로 파견되거나, 정탐병들이 남긴 기록물을 대거 정리해서 만든 일종의 첩보지였다.

    기록이 맞다면 토로다 부족의 호수는 25호였고, 칼을 들 수 있는 전사의 수는 3~40명 남짓 밖에 안 됐다.

    “어찌 하올까요?”

    부관의 물음은 저 부락을 초토화 시킬지 길을 우회해서 갈지에 대한 물음에 가까웠다.

    고민 할 것도 없었다.

    대(對) 여진 전략의 첫 번째는 회유였다.

    밀무역을 묵인해주는 회유이든, 관작을 내리는 회유이든.

    어쨌건 대 여진 전략의 첫 번째 조건은 회유에 있었다.

    하지만 일단 적호들이 도발을 감행해 국지전이 발생하거나, 적호의 부락에 쳐들어가 전투가 발생하면 이 전략은 대폭 수정된다.

    초토화다.

    부락의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참살한다.

    그 가옥은 모조리 불태워버리고, 부락의 전답 역시 모두 사용 할 수 없게 불태워버린다.

    변경에 부임하는 관장이나 변장들은 이점을 늘 주지해야 했다.

    이건 천동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록 천동이 정식적으로 무과에 급제해 연변진에 부임한 건 아니라지만 천동은 근 20년을 속된 말로, 변경에서 굴러 먹었었다.

    대립군 시절에도 전투가 발생하면 적진은 무조건 초토화시켰다.

    싹을 잘라 버리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잔인한 일이고, 잔혹한 일일 수도 있지만 살려 두는 여진족은 늘 후환이 됐다.

    실제로 대립군 시절 부임한 어떤 권관은 마음이 약해 적 부락을 소탕할 때 소극적으로 임하다, 이듬해에 복수를 하겠답시고 쳐들어온 부락의 전사들에게 진성 앞에서 사지가 찢겨 죽은 적도 있었다.

    이게 아니어도 초토화 작전은 주변 여진족들에게 경고가 될 수도 있었다.

    너희도 언제든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경고.

    그러니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경고.

    따라서 변경에 오래 복무한 북방군일수록 여진에 대한 적개심도 높았지만 일단 국지전이 발생하거나 적 부락을 소탕할 일이 생기면 적지는 무조건 초토화 시켰다.

    말했듯, 천동도 예외는 아니다.

    “우회해서 돌아갔다가 발각 되면 낭패가 따로 없고, 설렁설렁 처리 했다가는 복수를 하겠답시고 설칠 수 있으니 싸그리 정리하지.”

    “알겠사옵니다.”

    천동은 일단 정탐병을 파견했다.

    1시진 뒤 정탐병이 돌아왔는데, 부락민 모두가 부락에 모여 있는 것 같다는 말을 전해왔다.

    흩어져 있으면 오히려 낭패다.

    이때가 적기다.

    천동은 망설임없이 기병대를 출진시켰다.

    두두두두-.

    기마의 말발굽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갑작스런 소란에 토로다 부락의 전사들이 뛰쳐 나왔지만 부락민들 모두 채비가 안 된 상태에서 기병을 맞딱뜨렸다.

    게다가 613명 VS 40명.

    수적으로도 열세였다.

    승패는 이미 정해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더욱이 여진족이 제아무리 정예롭다지만, 그건 그 정예로운 여진족을 하루가 멀다하고 상대하는 북방군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이런 소규모 부족의 부락민들 보다는 북방군의 실력이 더 출중 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전사를 참살하기 까지 걸린 시간은 일식경 남짓.

    그 와중에 아군의 사상자는 가벼운 타박상과 찰과상을 입은 부상자 넷이 전부였다.

    사로잡은 포로도 남녀노소를 포함해 96명에 달했다.

    “네가 토로다렷다?”

    물론 이 부락의 추장인 토로다도 그 포로 중 하나였다.

    “···”

    “내 알기로 너는 조선말을 할 줄 안다 들었는데 어찌 대답이 없단 말이냐?”

    여진족은 그 체계가 속된 말로 난잡했다.

    장사징가의 권속에 있다 해도 어느 부락은 조선말을 배워 조선과 교역을 하기도 했고, 또 어느 부락은 조선에 적대적이라 조선군이 보이는 즉시 살을 쏘기도 했다.

    또, 꼭 그게 아니어도 조선말을 할 줄 아는 이들이 몇 명 씩은 있었는데 토로다가 그 중 하나였다.

    “고려(조선) 놈들은 철천의 원수와도 말을 섞는단 말이냐?”

    “고려가 망한지가 언젠데 네놈들은 우릴 아직도 고려라 부르느냐. 못 돼 쳐먹은 족속 같으니.”

    “퉤! 돼지만도 못 한 고려놈.”

    토로다가 뱉은 침에 의해 천동의 군화가 더럽혀졌다.

    천동이 기가 찬 듯 군화를 내려다보고 있자, 천동의 부관은 칼을 빼들고는 토로다와 함께 무릎 꿇려진 노파를 단숨에 베어넘겼다.

    노파는 비명 소리 한 번 내지 못 하고, 모로 쓰러졌다.

    “묻겠다. 이전에 연변진에 쳐들어와서 우리 백성을 납치해간 것이 장사징가의 소행이더냐?”

    “고려놈 똥꾸멍이나 핥는 도을치 놈들의 소행이겠지.”

    “네 부락민들을 모두 죽일 셈이냐?”

    “내 아비와 할아비가 너희 고려군에 죽었다. 내 아들 넷 역시 너희 고려 놈들에게 죽고, 내 아내는 너희 고려 놈들에게 능욕 당한 채 죽었으니 이 부락에 너희 고려 놈들에게 원한이 없는 이가 어디 있겠으며, 원수에게 아첨하여 목숨을 구걸할 이들이 어디 있단 말이냐?”

    “내 동무와 전우들 역시 너희 오랑캐들에게 죽었다. 몇 년 전에는 나와 함께 대립서던 전우들 수십이 죽었고, 내가 가던 진보들 마다 과부 보는 일이 어렵지 않았으니, 원한은 네놈들만 있더냐? 내 마지막으로 묻겠다. 장사징가가 연변진 백성들을 모두 어디로 끌고 간 것이냐?”

    “퉤!”

    나직하게 한숨을 내쉰 천동은 손을 까닥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시위에 살을 걸고 있던 사수들이 일제히 시위를 당겼다.

    공터는 금세 아비규환이 되었다.

    비명과 비명이 난무하는 아비규환.

    어미는 자식이 살을 맞을까 품에 꼭 안고 죽어갔고, 노인은 손주를 지키려 품에 꼭 안았지만 모두 허사였다.

    “화살은 모두 회수하고, 살아 남은 것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조리 베어 넘기도록 하라.”

    잔인한 명령이었지만, 기병대는 망설임 없이 생존자들을 베어넘겼다.

    살아 남은 토로다 부락민은 전무했다.

    토로다 부락을 초토화 시킨 천동은 한시진 가량 휴식을 취한 채, 행군을 이어나갔다.

    그 과정에 3개의 부락이 더 발견됐다.

    투항을 하든 저항을 하든.

    3개 부락의 말로는 토로다 부락의 말로와 똑같았다.

    기병대가 거친 3개 부락에서 생존자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렇게 닷새 뒤.

    천동의 기병대는 장사징가의 부락 인근에 도착 할 수 있었다.

    ***

    오늘은 축제 날이었다.

    장사징가의 노모가 올해로 여든 한 번째 생일을 맞았기 때문이었다.

    효심이 깊은 장사징가는 노모의 여든 한 번째 생일을 맞아 축제를 열었다.

    부락의 남녀노소 모두가 웃고 떠들며 축제를 즐겼다.

    장사징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탐 나간 수하가 돌아오기 전까진.

    “뭐, 어디가 당해?”

    “아가무(阿加茂) 부락입니다.”

    “도을치 놈들인가? 아니지, 도을치 놈들이 예까지 기어 들어 올 리가 없지. 조선군의 소행인가?”

    “예. 아무래도 그 수법이 조선군 같습니다.”

    “같다는 뭔가! 그래서 조선군이란 거야, 도을치 놈들이란 거야!”

    장사징가의 호통에 소식을 가져온 수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합니다. 조선군입니다.”

    퍽!

    “놈들이 아가무 부락까지 쳐들어올 동안 네놈은 뭘 했단 말이냐!”

    “소, 송구합니다. 워낙 신출귀몰하고 재빨리 움직인 터라 미처······.”

    “그걸 변명이라고!”

    퍽!

    “윽.”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른 장사징가였지만, 애꿎은 데 분풀이 할 여유는 없었다.

    아가무 부락은 그의 족제(族弟)가 추장으로 있던 곳이었다.

    당연히 그의 권속에 속해 있었고, 지리적으로는 이 부락과 고작 25리(10km) 거리 밖에 안 됐다.

    물론 아가무 부락과는, 부락 사람들이 흔히 진령(榛嶺)이라고 부르는 높은 고개를 넘어야 했지만 전원 기병으로 이뤄졌더라면 그마저도 불과 한시진도 안 걸릴 터였다.

    일단 진령 고개를 넘기만 하면 아가무-장사징가의 부락 사이에 있는 금문평(金文平)이라는 평야를 통과하기만 하면 되니까.

    “제기랄!”

    조선군이 이리 빠르게 움직일 줄은 몰랐지만, 설령 움직인다 해도 이리 손쉽게 당할 줄은 몰랐다.

    뒤늦은 후회였지만, 지금은 한가로이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었다.

    장사징가는 축제를 중단시키고, 망루의 초병에게 고둥(螺)을 불게했다.

    축제 분위기에 흠뻑 취해 있던 부락이 일순 혼잡해졌다.

    노약자와 아녀자들은 재빨리 부락의 공동창고로 모여들었고, 창과 칼을 들 수 있는 남정들은 모두 무기를 쥐어든 채 마을 어귀로 모여들었다.

    아니, 모여들고 있을 때였다.

    뿌우우우우-!

    뿌우우우!

    부락의 초병이 부는 고둥 소리가 아니었다.

    정체불명의 고둥 소리였다.

    “속히 말에 올라라!”

    적이 분명했다. 적이 벌써 부락에까지 짓쳐 든 거라면 속히 말에 올라 상대해야 했다.

    장사징가 역시 서둘러 말에 올랐다.

    그리고 그가 막 말에 올라탔을 무렵.

    두두두두두두-!

    말발굽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이대로 있다가는 눈 뜨고 당할 판이었다.

    “어귀에서 싸울 순 없다, 모두 출진하라!”

    평야로 나가야 했다.

    마을 어귀는 좁은 오솔길로 이어지다, 마을로 연결 된 형태였다.

    좁은 오솔길에서는 부락 전사들보다 중무중한 조선군을 상대 할 수 없을 터였다.

    평야로 나가야 한다. 나가서, 궁기병으로서 놈들을 상대해야 했다.

    옳은 판단이라 할 수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축제가 문제였다.

    모두 한껏 풀어진 상태였고, 만취 상태다 보니 행동이 평소보다 배는 굼 뜰 수 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야차와도 같은 조선군이 들이닥쳤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