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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304화 (304/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304화>

    ***

    “뭐라구요?”

    내가 언성을 높이며 되묻자, 소식을 가져온 도승지 권균은 제 잘못이 아님에도 쩔쩔맸다.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언성이 안 올라갈래야 안 올라갈 수가 없었다.

    “이것들이 죄를 자복한 게 아닙니까?”

    나는 얼마 전, 평안도에 사람을 보내 도을치와 장사징가에게 상경령을 내렸다.

    도을치는 순순히 언제 상경하면 되냐는 소식을 보내왔는데 반해 장사징가는 곧 농번기이므로 상경 할 수 없다는 답서를 보내왔단다.

    이건 죄를 스스로 자인하는 꼴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오나 이 또한 심증이 될 순 있어도 물증이 될 순 없사옵니다.”

    요즘은 잠잠하신(?) 대사헌 김전이다.

    “본인이 떳떳하면 상경을 거부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장사징가의 답서가 무례했다거나 논리에 부적합하진 않지 않겠사옵니까.”

    여진족이라고 모두 수렵 생활을 한다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대다수 부족들은 반농반목으로 생계를 이어나간다.

    농번기에는 그쪽 동네도 바빠질 테니, 상경을 못 하겠다는 말이 아주 억지는 아니란 말이었다.

    하지만 참기에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못 참겠다.

    이건 뭔가 장사징가의 수에 놀아난 것 같잖아.

    “이번에 참으면 나중에는 또 어떤 이간책을 쓸지 모릅니다.”

    나는 지금 놈들을 박살 내고 싶었다.

    심증만 있지 않냐고?

    내가 전에 말했지?

    우리 선왕들은 심심찮으면 위쪽 동네 박살 내는 게 취미였다고.

    심증? 심증이 뭐야, 여진족이 소요를 일으켰다는 장계가 조정에 날아들면 그 날이 바로 전쟁 개시 일자였었다.

    그에 반해 나는 심증 씩이나 되는 증거는 있으니 군을 동원하기에 무리는 없다.

    없는데······.

    “하오나 이제 곧 우리나라도 농번기이옵고 특히 삼남에는 모내기 법으로 인해 조정 전체가 바빠질 것인데 전쟁까지 일으킨다면 민심이 흉흉해질 것이옵니다.”

    보다시피 대사헌이 반대한다.

    어떻게 하면 대사헌을 설득 할 수 있을까?

    라는 주제로 고민해봤다.

    원칙주의자인 대사헌을 설득 시키는 방법은··· 정공법 밖에 없으려나.

    “그럼 실종자들은요?”

    “예?”

    “말이 실종자지, 모두 납치 된 게 유력하지 않습니까? 이 사람들은 구원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텐데 모두 외면하란 말씀이십니까?”

    정공법으로 동정심 유발작전을 써봤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오히려 연변진은 대부분 형님의 치세 시절 죄 지은 이들을 죽이는 대신 이주 시킨 곳인데 죄인들 구하자고 농사를 망칠 순 없다는, 잔인하지만 어떻게 보면 논리적인 대답만 돌아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난 놈들을 박살 내고 싶다.

    원래 외침이 있는 건 나라가 만만해서다.

    지금 시국에 언급하긴 지극히 조심스럽지만, 유구국이 왜 형님 손에 멸망 됐겠나?

    솔직히 말해서 유구국의 국력이 강력했어봐.

    형님도 출정을 망설였을 거다.

    막말로 만만한 나라였다, 유구국은.

    우리나라?

    물론 여진족들 입장에서 우리나라는 절대 만만찮은 나라가 아니다.

    10년에 한 번 꼴로 군사를 동원시키고 쑥대밭을 만들어 버리니 어떻게 만만한 나라겠나.

    하지만 인식이란 건 무섭다.

    이런 일을 겪고도 가만히 있는다면, 서서히 이 나라는 만만하다는 인식이 생길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데.

    그래서 더 박살을 내고 싶은 것이다.

    이게 얼마나 흉악한 짓이냐면, 이 흉계에 우리가 걸려 들어갔으면 우린 애꿎은 순호(順胡)을 잃을 뻔 했다.

    순호를 잃는다는 건, 적호를 잃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신뢰의 실추를 말하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 나라 이미지에 똥칠을 했다는 거지.

    그래서 박살을 내고 싶은 건데 안 된다니······.

    ‘다른 방법 없나.’

    일단 정공법은 씨알도 안 먹혔다.

    편법을 써야 되겠는데, 편법이라.

    라는 고민을 이어나가던 그때였다.

    나는 참 이런 잔머리 쪽은 비상하게 발달한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아주 적절한 편법 하나가 떠올랐거든.

    뭐냐면 말이지?

    “아, 그러고 보니 형님의 귀국 예정일이 언제였지요?”

    “내달 초이옵니다.”

    “내달 초면 3월 초중순?”

    “예.”

    “쓰읍, 괜찮을까요?”

    “어인 말씀이시온지?”

    “장사징가의 일화를 들은 형님께서 북정을 감행할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

    먹힌 것 같다.

    편전이 쥐죽은 듯 고요해진다.

    대사헌 김전도 한 방 얻어 맞은 표정이고.

    형님은 한다면 하는 위인이란 걸 나나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안다.

    특히 형님은 오랑캐의 일에는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신다.

    옛날에 북정 때도 그랬었고.

    “신 대사헌 김전 아뢰옵니다.”

    “아, 예. 말씀하십쇼.”

    “신이 찬찬히 생각을 해보매, 과연 성상의 분부가 지당하신 면이 있는 듯 하옵니다.”

    “어떤 부분에서 말입니까?”

    “연변진에 이주 된 이들이 모두 죄 지은 이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을 외면한다면 어느 백성이 나라를 믿고 따를 수 있겠사옵니까?”

    “대사헌께서 웬 일로 맞는 말씀만 하십니다. 군사가 존재하는 건, 이런 때를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농번기라고 해서 납치 된 백성을 외면 할 수도 없는 것이고, 자칫 더 큰 화가 일어날까 두려워서 백성을 외면하면 어느 백성이 나를 믿고 따르겠습니까? 연변진 만호 민천동에게 이에 대한 전권을 하사하니, 이 일을 소상히 파헤쳐서 납치 된 백성들을 구원 할 수 있게끔 조치를 취하라 하십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군말없는 대신들을 보니 형님 찬스 가끔 이용해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잘 먹힌다.

    ***

    먼지 바람을 일으키며 초원을 내달리던 수백기의 인마(人馬)는 멀리 강 하나가 시야에 들어오자 일제히 말고삐를 잡아 당겼다.

    “워워.”

    선두에서 내달리던 사내가 하마하자, 다른 기병들 역시 모두 따라 내렸다.

    사내는 고삐를 대강 부관에게 건네주고는 저벅저벅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흔히 파저강이라 불리는 강이었다.

    강물은 무척 맑았다. 사내는 강물에 머리를 박고 미친 듯 세안했다.

    아직 강물이 찼지만 속이 뻥 뚫릴 정도의 시원함 정도였지, 춥진 않았다.

    “족적이 여기서 끊겼구만.”

    중얼거린 사내는 몸을 돌려 누군가에게 다가갔다.

    예의 누군가는 이국적인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특히, 다른 이들과는 다른 형태의 털모자가 인상적이었다.

    “이름이 보르진이라고?”

    사내, 아니.

    연변진 만호 천동이 털모자 사내에게 묻자 사내는 뭐가 두려운지 넙쭉 부복부터 하고 봤다.

    “오랑캐의 습성을 버리고 예를 알기 위해 귀화한 세월이 10여년이옵니다. 그 이름 또한 10여년 전에 함께 버렸으니 박이진(朴李璡)이라 불러주소서.”

    “하면 박 추장이라 부르지.”

    “감읍한 일이옵니다.”

    고개를 조아린 이진에, 천동은 강 너머를 가리켰다.

    “박 추장. 족적이 여기서 끊겼는데 그대가 보기엔 어떠한가?”

    “확언은 드릴 수 없지만 장사징가(蔣舍澄可)의 소행일 가능성이 큰 듯 하옵니다.”

    “근거는?”

    “아시다시피 도을치(都乙赤)와 장사징가는 이 파저강 하나를 맞대고 있는 족속들이옵니다. 지금 이곳이 도을치 족속의 영역이고, 저 파저강 너머는 장사징가의 영역인 셈이옵지요.”

    “그건 내 안다. 근거를 물었다.”

    “추장인 도을치가 머무는 곳은 이 파저강과는 거리가 있사옵니다. 도을치의 족속들이 연변진 백성들을 끌고 갔다면, 그 족적이 이 파저강까지 이어질 게 아니라 서남쪽의 우라산(오녀산)으로 이어져야 맞사옵니다.”

    “도을치가 노예들을 바로 팔아 넘겼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더냐?”

    “만호께서는 백성들이 납치되자마자 군사를 이끌고 출동했다 들었사옵니다. 군사들의 추적을 받는 와중에 노예를 끌고 도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옵니다. 또 도을치 부족은 옛날에 상왕 전하께서 북정을 감행하시고 이 일대로는 코빼기도 안 비치고 있는데 반해 장사징가는 그 이후로 조금씩 남하해서 이 일대 지리에 빠삭하니 도망하기에도 유리했을 것이옵니다. 그러니 누구의 소행이냐 물으신다면 장사징가의 소행이 유력하단 말씀을 드릴 수가 있는 것이옵지요.”

    “흐음.”

    천동은 얕게 침음했다.

    조정에는 누구의 소행인지 확답 할 수 없고, 장사징가와 도을치 부족 둘 모두 의심 된다는 장계를 올렸었지만 사실 천동 역시 장사징가의 소행 가능성을 유력하게 보고 있었다.

    대립군 세월과 연변보 권관 세월, 그리고 이제는 연변진 만호까지.

    북방에서 근 20년을 여진족과 칼을 맞대며 살았던 천동이었다.

    조정의 그 누구보다 여진의 습성에 빼박하다 자신 할 수 있었는데 확실히 박 추장의 말대로 도을치 부족은 이 일대 지리에 빠삭 할 수가 없다.

    파저강 일대는 활동 영역도 아니거니와, 도을치 부족은 장사징가 부족과 충돌을 피하기 때문에 알아서 이 일대로는 코빼기도 안 비친다.

    그런 도을치 부족이 뭐가 아쉬워서 연변진의 백성들을 납치했겠나.

    게다가 도을치 부족은 박 추장처럼 조선에 내투한 완전한 번호는 아니었지만, 간간이 입조하면서 조공을 바치는 순호(順胡)중 하나였다.

    이번에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자신의 장계를 받아본 조정에서 장사징가와 도을치를 불러 들였는데, 깜짝 놀란 도을치는 지체없이 연변진에 사람을 보내와 언제 상경하면 되냐는 물음을 해올 정도로 순종적인 편이었고, 반대로 장사징가는 이제 곧 농번기기 때문에 상경 할 수 없다는 답변을 보내올 만큼 통제가 쉽지 않은 족속이었다.

    이처럼 도을치 부족이 이런 짓을 벌였을 가능성은 적은 반면 장사징가가 이런 흉계를 꾸몄을 가능성은 높은 편이었다.

    무엇보다 도을치 부족이 터 잡은 곳은 바로 얼마 전까지, 장사징가 휘하의 부족들이 터를 일구고 살던 곳이었다.

    상왕 전하의 북정으로 모두 내쫓기고, 그 빈 자리를 도을치 부족이 꿰찬 셈이었으니 장사징가의 입장에선 열불이 터질 일이었다.

    하지만 함부로 경거망동 할 순 없었을 테니 이간책을 썼을 가능성이 크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망설일 이유가 없어 보였다.

    “수고 많았다. 우린 강을 넘을 것이니 그만 돌아가도 좋다.”

    “예.”

    박 추장이 돌아가고, 그의 곁으로는 부관이 다가왔다.

    “나리. 정말 도강 할 생각이시옵니까?”

    천동이 고개를 끄덕이자, 부관의 표정이 사색에 질려갔다.

    “하오나 나리. 조정의 명도 받지 않고 파저강을 넘는 것은······.”

    “전하께선 이미 실종자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내라는 비답을 내리셨었다. 실종자들이 파저강 너머로 끌려간 게 분명해 보이는데 망설일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단호한 천동에 부관은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뜻을 굳힌 천동은 일단 회군했다.

    도강할 마음을 먹긴 했어도, 막무가내로 도강을 할 순 없었다.

    파저강 일대에 빠삭한 순호나 번호를 길라잡이로 데려와야 했고, 보급 문제와 적진의 병력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여부도 확인해야 했다.

    다행히 이 모두는 금방 해결이 됐다.

    박 추장처럼 파저강 일대에 살다 연변진으로 귀화한 여진족이 있었고, 적진의 병력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역시 최근에 장사징가의 부족으로 전령을 보내면서 그 전령을 통해 기록하게 해뒀었다.

    장사징가의 부족은 농한기에는 주로 사냥이나 약탈로 부족의 생계를 이어나간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최근에 장사징가의 부족에 다녀온 전령 역시 부족에 남정은 기백에 불과했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고 말이다.

    만반의 채비를 갖춘 천동은 연변진에 이어 정북진, 우록진, 호례진, 무창진의 진군 중에 기병만을 동원 받았다.

    연변진의 기병까지 합하면 도합 600에 이르는 병력이었다.

    그 이후에는 평안도 관찰사에게 병력 동원을 알리는 보고와 장계를 함께 올렸다.

    그리고 2월 24일.

    천동은 총 613명의 병력을 이끌고 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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