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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297화 (297/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97화>

    ***

    쇼신은 화들짝 놀랐다.

    “뭐라, 궐기?”

    “예!”

    심장이 거세게 요동쳤다.

    ‘설마······.’

    아닐 거다.

    조선군이 궐기 했을 리가 없었다.

    순찰사 이계동이 이끌고 있는 군사들은 고작 오백명 남짓.

    제아무리 정예롭다 한들 기껏 오백 군사들의 궐기가 큰 타격을 주진 못 한다.

    “이계동이 무슨 궐기를 했단 말인가. 착오가 분명하다.”

    쇼신이 본 이계동은 신중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도발에는 묵묵부답이다가, 뜬금없이 군사를 일으켰을 리가 없다.

    이건 착오다.

    그래, 착오가 분명하다.

    “전하······.”

    애써 현실을 부정하는 쇼신이었지만 순찰사군의 궐기를 알린 안곤(安昆)은 톡톡히 보고 들었다.

    도미쿠스쿠에서 전고(戰鼓)가 연달아 울려 퍼지더니 금세 그 일대가 화마에 덮친 것을.

    “전하. 조선군이 갑자기 궐기한 것이 의아한 일이긴 하오나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막지 않는다면 그들의 기세가 더욱 불타오를 것이옵니다. 특히 도미쿠스쿠는 왕성과 근접해 있고, 항(港)으로 바로 짓쳐 들 수 있는 지역이니 만일 항구를 점령한다면 각처의 근왕병들은 오직 육로로 모여 들어야 할 것이옵니다. 바라건대 속히 용단을 내리소서!”

    안곤의 아버지 우미가 사신으로 대국에 건너가고, 그 다음으로 쇼신을 보좌하고 있는 또 다른 삼사관 시타하쿠(蔡鐸)였다.

    “참말이라면··· 참말 조선군이 궐기 한 것이라면 어찌해야 한단 말이오? 경도 조선군의 위세는 진작 보지 않았소이까.”

    시타하쿠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금상은 사직을 중흥시켰고 종묘를 안정시켰다.

    따라서 그 누구도 금상이 성군이란 사실을 부정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 정책이란 과격했고 호족의 지지를 받지 못 한 것들이 태반이었다.

    일례로 금상은 불교를 이용해 신녀들의 권한을 억제시켰었다.

    호족의 자제들을 무력으로써 볼모로 잡아, 각처의 호족들이 발호하지 못 하게끔 막았다.

    이러한 사실들은 역대 어느 군왕들도 하지 못 한 업적중 하나였지만 보다시피 과격했다.

    이런 정책들처럼, 금상의 대(對) 조선 정책도 과격했고 대담했다.

    여태 과격하고 급진적인 정책으로 성군이라 불린 금상이니, 딱히 무리는 아니지만 조선은 불교로 억제시킬 수 있는 신녀들도 아니었고, 무력으로써 자제들을 볼모로 잡아 발호를 억제 시킬 수 있는 호족들도 아니었다.

    보다 유화적인 태도를 취했어야 맞았다.

    아무리 조선에 약점이 있다 한들, 그래서 그 약점을 아국이 쥐고 있다 한들 굽히고 들어갔어야 맞는 일이다.

    금상은 명나라를 믿고 계셨지만, 명은 류큐보다 조선을 우선시한다.

    똑같은 사안을 명 황제에게 진주(아룀)한다고 해도, 명 황제가 똑같은 대답을 들려줄 리가 없다. 그런데도 사태를 낙관적으로 관망하고 계셨으니 본인을 포함한 중신들의 불찰이요, 불충이었지만 일단은 궐기한 조선군을 막는 게 중요했다.

    “조선군은 고작 오백이옵니다. 정예롭다 한들 오백의 수로는 왕성을 넘지 못 할 것이옵니다. 필히 교류하던 호족들과 연계하려 할 테니 그 자제들은 모두 궁성으로 불러들여 감시케 하시고, 각지에서는 격문을 띄워 왕성으로 불러들이시옵소서. 고립 된 조선군이 더 이상 나아갈 길은 없을 테니 이 근왕병들로 하여금······.”

    시타하쿠가 냉정을 잃은 쇼신에 비교적 침착하게 다음 수를 조언하던 그때였다.

    우당탕탕!

    대전으로 무장한 차림의 장수 하나가 들어왔다.

    류큐군 선장(일종의 제독) 테이켄(鄭賢)이었다.

    “지금 나하항에 다수의 군선들이 몰려 들었다는 급보이옵니다!”

    “구, 군선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아연실색을 넘어 실의에 잠긴 쇼신을 대신한 시타하쿠의 질문이었다.

    “갑자기 항구 너머로 수십척의 함대가 나타났사온데 왜선인지 남만선인지 구분은 안 가오나 그 형태를 보아 조선의 군선 같사옵니다. 일단 피아 구분이 안 되는지라 대치 중인 상황인데 일촉즉발의 상황인지라······.”

    웅성웅성.

    조선의 군선 같다는 테이켄의 말에 대전이 시끌벅쩍해졌다.

    ***

    제2차 남해정토군은 9월 28일 서울을 출발해 10월 19일 부산진에 도착 할 수 있었다.

    부산진에 도착한 남해정토군은 이틀간 부산진영에 머물며 여독을 풀었다.

    그리고 21일.

    1차 남해정토 당시 맹활약을 펼쳤던 왜맹선 5척과 그 사이 새로 건조 된 왜맹선 3척, 원정에 앞서 약간의 개조를 거친 대맹선 73척이 하나의 선단(船團)을 이뤄서 출항했다.

    순수 전투병력만 4,896명.

    장수들의 수행과 보급 및 진지 건설을 맡는 역부들이 3,061명.

    여기에 진성이 호위를 위해 고용했던 외인부대 276명.

    1만에는 못 미치지만 가히 대군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8천명 이번 원정에 동원됐다.

    바다는 이번 원정을 응원이라도 하듯 잠잠했다.

    덕분에 남해정토군은 별 탈 없이 순항을 이어나갈 수 있었고, 바다를 떠돈지 단 24일만에 유구국에 도착 할 수 있었다.

    “드디어 보이는군.”

    대징기가 바람에 펄럭거려, 누가봐도 대장선임을 알아 볼 수 있을 만한 대장선.

    그 대장선의 갑판에서 융이 읊조렸다.

    드디어 저 멀리 오키나와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한차례 와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참 아름답다고만 느꼈는데 지금은 외려 전투 의지가 맹렬히 치솟았다.

    “장군, 저기 좀 보시옵소서. 문정선 같사옵니다.”

    융이 한참 전투 의지를 불태고 있던 그때.

    부원수로 참전한 억수가 다가와 말했다.

    과연 바다 너머를 살펴보니 돛단배 축에도 못 끼는 작은 배가 스물스물 파도를 거슬러 오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문정선이 선단 근처에 도달했다.

    “어찌 하올까요?”

    융은 갑판 난간에 기대서 밑을 내려다봤다.

    문정선에는 오키나와의 관리와 군관들이 타고 있는 것 같았는데 창백한 안색들이, 모두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일말의 동정심이 일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화포를 쏴서 침몰시키라.”

    “예.”

    잠시 후.

    왜맹선의 포혈(砲穴)에 화포가 준비됐다. 화포수들은 제각각 손을 놀려 장전했고, 머잖아 모든 채비가 끝이 났다.

    화포장들에게서 채비가 끝났다는 수신호가 전해지자 융은,

    “방포!”

    거침없이 방포령을 내렸다.

    쾅!

    콰콰쾅!

    천지를 뒤흔드는 포음이 울리는가 싶더니 8척의 왜맹선에서 발포 된 수십개의 포환이 일제히 문정선을 향해 날아들었다.

    푸웅!

    흔들거리는 바다 위인지라 명중률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대다수의 포환들이 문정선의 멀찍이에 떨어져 포말을 일으켰다.

    다만.

    콰직!

    대장선에서 쏘아져 나간 포환 두 발이 문정선에 적중했다.

    배는 굉음과 함께 산산조각났다.

    “이계동이 볼 수 있도록 효시를 쏘아올리고, 출진하라!”

    둥! 둥! 둥!

    쒸이이이익!

    기패관이 대장기 옆에 적기를 매달았다.

    그게 신호였다.

    모든 전선들이 파도를 가로질러 나아가기 시작했다.

    황당선(국적불명 선박)이 본인들 해역에 침입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던 걸까, 아니면 단순히 대처가 늦었던 걸까.

    선단이 항구의 지근거리에 도달했을 즈음, 좌우 측면으로 유구국 군선들이 나타났다.

    다만 기세 있게 움직인다기보다는 모두들 주춤거리고 있는 것이, 겁에 질려 있꺼나 또렷한 상부의 명을 받지는 못 한 것 같았다.

    이럴 땐 본보기만한 게 없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린 융의 시야에 마침 눈에 띄는 적선이 들어왔다.

    다른 군선들과는 달리 항구에서 막 출진해 고립 된 형태의 군선이었다.

    융은 그 군선에 일제사를 명했다.

    쾅쾅!

    수십문의 포문이 일제히 개방됐고, 예의 군선 입장에선 애석하게도 3발의 포환이 적중했다.

    콰지직!

    직격 당한 군선의 상태는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갑판 위로 유구국 군사들이 이리저리 뛰어 다니고 있었지만 침몰은 시간 문제 같았다.

    아군선이 단숨에 제압당하자, 측면을 감싸고 들어오던 유구국 군선들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융은 그 찰나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정토군들을 속히 상륙시키라!”

    둥! 둥! 둥!

    북소리와 함께 대장선의 깃대에 청기가 올라갔다.

    그러자 유유히 나하항 앞바다를 누비던 남해정토군의 대맹선들이 항구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주춤거리며 회선하던 유구국 측에서도 상륙을 알아채고, 정면으로 짓쳐 들었지만 조선군은 무방비 상태가 아니었다.

    “방포하라!”

    대맹선이 상륙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사이.

    선두에 서있던 왜맹선들이 뱃머리를 돌려 각각 4척으로 나뉘어 일자진을 형성한 채 짓쳐 들어오는 유구국 군선을 향해 화포를 쏘아댄 것이다.

    왜맹선은 측후면의 포문이 모두 합해 22문에 달한다.

    측면의 포문만 해도 10문이었으니, 8척 왜맹선의 포문이 한 번 열리기만 해도 80발의 포탄이 빗발치는 셈이었다.

    명중률이 형편 없는지라, 적선에 피해를 준 포탄은 적었지만 상륙을 저지시키기 위해 달려드는 기세를 억누르기에는 충분했다.

    때마침 항구 일대에서 화마가 치솟기 시작했다.

    소란을 보고 이계동이 합류한 게 분명했다.

    결국 항구에서 상륙군을 저지시키려던 유구국은 이계동의 군대를 막기위해, 군세를 쪼갤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장군! 영장기(領將旗)가 올라왔사옵니다!”

    김억수의 외침에 항구를 바라보니 과연 여윤철의 영장기가 바람에 펄럭거리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성공적으로 상륙했다는 신호나 다름이 없었다.

    여윤철의 상륙군이 무사히 상륙하자,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유구국선들도 더 이상의 피해를 감수 할 순 없었는지 퇴각하기 시작했다.

    ***

    “···하여 아직 아군의 사상 여부는 파악이 안 됐사오나 적군 이백을 포로로 잡을 수 있었사옵니다.”

    남만 국적의 상인과 유구국의 상인들로 붐비던 나하항은 평소의 평화롭고 생기 넘치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방금 전까지 격전이 펼쳐졌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키기라도 하듯, 도처에는 시신이 아무렇게나 내버려져 있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항구에서 융은 전황을 보고 받았다.

    여윤철의 상륙군이 일제히 상륙을 시도했고, 유구국군은 이를 저지했다.

    큰 피해가 발생 할 수도 있었지만 이계동이 나타난 순찰사군이 적의 후미를 급습했고, 그로인해 적의 전열이 무너지며 사기가 꺾일대로 꺾인 적이 퇴각했다.

    여윤철은 퇴각하는 적들을 쫓기보다 군을 정비시켰고, 미처 퇴각 못 한 적군 이백을 생포했다.

    이게 여윤철이 전한 전황이었다.

    “생포한 적장은 없었던가?”

    “하급 군관들은 몇 명 생포했사온데 장수라 부를 만한 자들은 생포치 못 했나이다.”

    융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 별 기대도 안 했다. 딱 예상한 대로다.

    일전에 유구국을 구원하기 위해 찾았을 때도 지금과 같았다.

    유구국 장수들은 왜구에 목숨을 걸고 항전하기 보다, 파격지세와 같은 왜구의 기세에 지레 겁 먹고 전투 한 번 치르지 않은 채 투항해버린 경우가 많았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겠지.

    아마, 이계동의 순찰사군이 후미를 급습하기도 전에 여윤철의 상륙군이 상륙 하는 모습을 보고 등채(지휘봉)를 내던진 채 걸음아 나살려라 몸을 내뺐을 것이다.

    일전에 보았던 유구국 장수들이라면 능히 그러고도 남는다.

    “여세를 몰아 진격 하시겠사옵니까?”

    여윤철의 질문에 융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윤철의 말대로 정토군의 기세는 오를대로 올라 있었다.

    아직 정확한 사상자가 안 나왔지만 아군의 피해가 그리 크지도 않았던데다, 격전을 벌이긴 했어도 그 시간이 찰나에 불과했던지라 아직 군사들의 체력도 충분한 상태였다.

    이 기세를 몰아 진격한다면 왕성에 진을 치자마자 유구국왕의 항복을 받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럴 순 없지.”

    “예?”

    “내 이역만리 길을 달려온 까닭이 무엇인가.”

    “···”

    “유구국왕의 방자함이 하늘을 찔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 어찌 왕에게 편한 패배를 안겨주랴?”

    “하오면 어찌 하실 생각이시온지······.”

    피식.

    “극한의 공포에 떨게끔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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