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9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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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옵고 지금 경찰청이 제 기능을 하고 있으니 삼남으로 확대해도 될 것 같다는 서계를 안처직이 보냈사옵고······.”
“부산진 왜관에서 약간 소란이 있었사온데 이는 동래 백성이 왜관에 출입했다가 왜인과 시비가 있어 생긴 소란이었사옵니다. 지금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지금 진주사(陳奏使)로 황성에 간 지부사가 이제 막 황성에 도착했다 하온데 진주사 혼자서 들어가는 것보다는 마침 책봉사가 뒤쫓아오고 있으니 책봉사 안윤덕과 함께 황제폐하를 뵈어야 할 것 같다는 서계를 보내왔사옵고······.”
오늘도 여지없이 전국팔도에서는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하나를 끝내면 또 하나가 터져나오고, 하나를 끝내면 이번에는 두 개가 연달아 터져나오고······.
세종대왕이 진짜 존경스럽다. 이걸 어떻게 뚝딱 다 처리하면서도 짬짬이 공부도하시고 한글도 만들었을까?
내가 왕 해보니 알겠는데 내가 소왕이라면 이분은 진짜 대왕이다, 대왕.
그래도 딱 하나만 보면서 일을 하고 있다.
그 하나는 당연히 당구장이다. 당구장이 설치되면 좀 나아지겠지.
“황제가 트집 잡지 않겠습니까?”
“어떤 트집 말씀이시온지······.”
“지부사가 가져가는 표문(황제에게 올리던 글)이 요약하면, 오키나와 군이 우리 백성을 잡아가서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가겠다는 건데 책봉사 안윤덕이 가져가는 표문은 또, 아우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는 글 아닙니까.”
말만 들어보면 이상할 게 전혀 없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황제 입장에선 어처구니가 없는 표문일 거다.
전자는 속국 놈들끼리 치고 박고 싸운다는 말이니 어이가 없을 테고, 후자는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준 게 아니라 아우 놈한테 물려줘서 어이가 없을 테고.
결국 내 말은 1건씩 처리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판단하기로는 황제폐하께서는 다른 황제들과는 달리 기행이 남다른 분이라 하니 뵙기도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옵고 더욱이 진주사의 표문은 전하께서 말씀하신대로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말이옵니다. 황상께서 크게 분노하실 표문인데 그나마 책봉사가 책봉을 주청한다면 진노가 좀 가라앉지 않겠사온지요?”
듣고보니 일리가 없진 않네.
“뭐, 그럼 그렇게 하면 되겠군요.”
“하옵고 상왕 전하께서 어제 빈청에 찾아오셔서 말씀하신 일은 어찌······.”
조심스레 묻는 허침 할아버지에 아이고 두야, 이마를 짚었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하면, 어제 형님이 빈청에 찾아오셨단다.
그래서 본인이 아무리 생각해도 참질 못 하시겠다지 뭔가.
밑도끝도 없는 말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밑도끝도 없는 말은 아니다.
형님은 지금까지 오키나와 정벌을 참고 계셨다.
왜냐고?
내가 왕위에 올랐잖아.
아끼는 동생이 왕위에 올랐는데 즉위년에 전쟁을 하면 좀 그렇잖아.
나는 별 상관 없는데 대신들이 내년까지만 좀 참으라고 하신 사안이었고, 형님도 알았다 답하고 여태 말씀이 없으셨는데 어제 찾아와서는 도저히 못 참으시겠다고 한 거다.
“형님께서 오죽하면 그러시겠습니까. 병조의 군권은 내 소관이 아니라 창경궁에 계시니 형님 말을 좇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도 전하께서 즉위하신지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었사온데······.”
“올해 전쟁하나 내년에 전쟁하나 대세에 큰 영향은 없겠지만, 지금하는 게 승률은 더 높을 거예요.”
오키나와는 왜구에 무참히 털렸었다.
그 작은 나라가 군대를 복구하기란 1~2년이란 짧은 시간 가지고는 안 될 테니 지금 쳐들어가면 100%로 승리를 확신 할 수 있는 시점이다.
왜구에 털린지 1~2년도 안 지나서 전쟁 복구도 채 가시지 않았는데 그런 시기에 또 다른 전쟁이 터져봐.
오키나와 왕은 권위가 실추 될 거다.
어쩌면 형님이 상륙하자마자, 그쪽 동네 사족들이 왕이 천명을 잃었다면서 모가지 잘라다 바칠지도 모르지.
“아, 알겠사옵니다. 하오면 따로 정원에 명해 그리 전해도 되겠사온지요?”
끄덕끄덕.
“전하, 공조판서 이계맹 들었나이다.”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는데 밖에서 내관이 이계맹의 입시를 알려왔다.
벌떡!
“들라하라!”
잠시 후.
땀으로 범벅이 된 이계맹이 편전에 들었다.
“전하. 지금 막······.”
“다 됐습니까? 다 됐죠?”
“아, 예. 다 됐나이다.”
이 날 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장장 26일··· 그 26일 동안 이 날만을 참고 기다렸다고!
“오늘 상참은 이걸로 마칩니다. 모두 가서 일들 보세요.”
라고 말한 나는 후다닥 뛰쳐나갔다.
***
26일을 참고 기다린 것.
전용 당구장을 위해서였다.
이 날은 정말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물론, 26일이나 걸리긴 했지만 당구장을 만드는 건 예상처럼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당구대로 쓸 반석은 왕실의 조경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는 산택사(山澤司)에 이미 석재로 몇 개가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이계맹 씨는 그 몇 개를 추려서 내가 스케치한, 높이 대략 90cm에 가로 140cm, 세로 280cm 정도 되는 사이즈의 당구대를 장인들과 함께 만드셨다.
쿠션 역할을 할 고무는 천을 감싸서 대신했다.
호조판서 이손 씨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는데 2년 전 쯤엔가, 오키나와 왕이 답례품으로 바친 상아가 아직 내수사에 보관돼 있다는 소리를 듣고 공야사(攻冶司)의 관리들과 함께 직경 6cm 정도 되는 당구공을 만들어주셨다.
그럼에도 26일이나 걸린 건, 당구대는 큰 시행착오 없이 한 번에 뚝딱 만들 수 있었다는데 문제는 당구공이었다.
당구공은 엄청난 시행착오 끝에 탄생했으니까.
공야사의 장인들이 제아무리 공예품을 만드는 게 업인 사람들이라지만, 상아를 이용해 만드는 공예품이라고 해봐야 상아를 깎아 만든 장식품 정도인지라 물레를 돌려서 완전한 구체의 당구공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어려움이 따랐던 것 같다.
날려 먹은 상아만 3개였으니 말 해 뭐해?
여기서 해프닝이 있다면, 상아 3개를 날려 먹은 장인들을 벌줘야 하네 마네 논란이 있었던 것 정도?
상아가 엄청 비싸긴 하지만 내 취미 생활을 위해서였으니 벌 준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라 다 용서해줬다.
엄밀히 말하면 내 돈 주고 산 상아가 아니라서 관대했던 것 같긴 하지만.
좌우지간, 이 당구공이 바로 어제.
딱 어제 공야사에서 초경이 쳤을 때 쯤 완제품으로 만들 수가 있었다.
당구공이 완성됐다는 소식에 나는 곧바로 북행랑에··· 아, 설명하기에 앞서 지금의 경복궁을 21세기 경복궁과 똑같다 생각하면 곤란하다.
21세기 경복궁이 털 다 빠진 사자 같다면, 지금의 경복궁은 한창 때인 사자의 그것과 같거든.
각 전각의 옆에는 행랑들이 줄지어 늘어서있고, 그 행랑들도 여염집의 행랑들과는 다르게 위엄이 있다.
북행랑은 이 행랑들 중 하나다.
장인들이 상아 3개를 날려 먹을 동안 나는, 이 북행랑의 행랑 4칸을 개조해서 당구대를 설치했다.
개조한 북행랑에는 따로 어필로 당구각(撞球閣)이라는 현판도 써서 걸어뒀다.
마당 장(場)자를 쓰는 게 맞는 표현이겠지만··· 내가 본의 아니게 왕위에 올랐어도 왕은 왕인데 문설주 각(閣)이 좀 있어 보이잖아.
아무튼 간에 기다린 보람이 있다.
당구공이 완성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비가 올지 몰라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당구대를 얼른 당구각으로 올리라는 조치를 해뒀는데 그게 지금 막 설치가 됐다고 하니까.
“이게 뭡니까요?”
아직도 잠저에서의 말투를 못 고친 이 녀석은 덕산이다.
차마 장가 간 덕산이한테 거세하고 내시부에 들어서 날 시종하라는 부탁은 할 수가 없어서, 대신 지엄한 어명을 약간 악용해 승정원 서리로 입적(入籍)시키고 잠저에서 출퇴근 시키고 있는데 당구장을 설치하면 뭐하겠나?
같이 칠 사람은 있어야지.
형님 있지 않냐고?
형님이 지금 나까짓게 눈에 보이겠나?
십수년 굴러먹다 명예퇴직해서 살 판 나신 분인데.
아무튼, 덕산이는 그런 면에서 딱이다.
호형호제까진 아니어도 속내 잘 털어놓던 숭재 씨도 내가 왕이 되면서 약간 어려워한다.
숭재 씨도 날 어려워하니 다른 대신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나마 덕산이만 유일하게 날 예전처럼 대하는데, 덕산이는 옛날부터 내 기행을 자주 봐왔던 녀석이기도 하다.
뭔 지랄을 해도 그러려니 넘어가는 녀석이니 당구 상대로는 딱인 거지.
“당구대라니까?”
“하여간 전하께서는 별 걸 다 만드십니다요.”
“원투데이도 아닌데 너도 참 말이 많다.”
“한데 이렇게 놀음 하셔도 되십니까요? 편전에 있다가 오셨다고 들었는데······.”
조심스레 묻는 덕산이에게 큐를 건넸다.
“안 될 건 또 뭔데?”
“참으로 성군이십니다요.”
“서리 감투 쓰더니 비꼬기도 할 줄 알아?”
“···”
나는 덕산이에게 당구 룰을 설명했다.
바로 삼구부터 가르칠까 하다가, 큐 잡는 방법도 어색한 덕산이한테 삼구 가르치는 건 너무한 것 같아서 사구를 가르쳤다.
“이건 이렇게 잡는 거고······.”
“아니지, 아니지. 그걸 그렇게 치는 게 아니라 저 공이 저렇게 굴러가게끔 해서 맞아야 된다니까?”
“하··· 아니, 덕산아. 그렇게 하면 히로라니까? 그 공이 맞으면 안 돼. 그 공은 피한다는 생각으로 쳐. 알겠지?”
물론 가르치기까지는 약간의 수고가 필요했다.
그래도 두시간쯤 치면서 배우니 곧잘 따라하게 되는 덕산이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좀 헤맸는데 막상 치게 되니 제법 재능도 있어 보인다.
기초적인 방법 정도만 알려줬는데 그새 내 품을 보고 응용해서 치고 있거든.
타악-.
방금 건 쓰리 쿠션 이용해서 먹었다.
“처음 치는 거 맞냐?”
“그럼, 제가 언제 이런 걸 다 해봤겠습니까요?”
“그러네······.”
“방금 먹었으니 계속 치면 되는 거지요?”
끄덕.
그 이후로 덕산이는 3개를 더 먹었다.
초심자의 행운인지··· 아니면 정말 재능이 있는 건지 몰라도 한 번에 4개나 먹은 건······.
“야, 너 점수 올려.”
“예? 하지만 전하께서 5개만 놓고 치라구······.”
“3개만 더 올려. 너 어디가서 50친다고 하면 욕 먹어, 사기 당구라고.”
사기 당구가 아니라면 점수 올려야 된다.
절대 내가 질 것 같아서 올리라는 건 아니다.
***
자선당.
동궁의 일종으로도 불리는 이 자선당에서는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겸관들이 세자를 대상으로 한참 서연(書筵)을 진행하고 있었다.
강서로는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이 저녁 서연의 교재였다.
“황제가 구시(緱氏)에 가서 중악(中嶽)에 제사하고, 신선을 찾았다는 이 부분 말입니다.”
“말씀하시옵소서.”
“한무제(漢武帝)는 왜 정사마저 팽개치고 부지런히 신선을 찾으려 한 건가요?”
세자의 질문이 생뚱맞아서였을까, 아니면 미처 예상치 못 한 질문이라 그랬을까.
서연관으로 서연을 감독하고 있던 영의정 겸 세자시강원 사(師) 허침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임금이라 함은 공사천을 아울러 가장 귀(貴)하옵니다. 그 부(富)는 천하에 으뜸이니 대저 임금이란 자리는 심지를 굳건히 하지 않으면 방탕해지거나, 절제를 잃기 마련인 것이옵니다.”
“고귀하게 태어나 고귀함에 익숙하고 많은 부를 지니고 태어나 부에 익숙하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사옵니다. 하지만 천하에 가장 귀하고 천하 제일가는 부를 가졌다 한들 불로와 장생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니 간혹 무제처럼 신선을 찾아 명복을 바라는 제왕들이 생기는 것이옵니다. 이는 심지가 방탕한 데 있고, 절제를 잃었기 때문인 것이니 신선을 찾아 헤맸던 무제조차 만년에는, ‘천하에 신선이 어디 있겠는가. 방사란 죄다 요망한 것이고 불로장생이란 실로 허망한 것이니 그저 음식을 절제하고, 약을 제때 먹으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을 뿐이다’ 하였으니 결국 무제조차 신선이란 존재가 없다는 것을 만년에 이르러 깨달은 것이라 할 수 있사옵니다.”
“음. 하지만 세간에서는 신선이 존재한다는 소문도 있던 걸요.”
앞전의 질문이 미처 생각지 못 한 질문이었다면 이번에는 생뚱맞은 질문이었다.
약간 당황한 허침은 머잖아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