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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286화 (286/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86화>

    ***

    진성이 외인부대원들을 고용하러 자리를 비운 그 시각, 강녕전.

    “이것들이 지금 나를 무시하는 것이 틀림 없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말라 하였거늘 지금에 이르러 옛말에 틀림이 전혀 없음이 드러난 것이다!”

    모름지기 왕권이 철권처럼 강화가 되면 여러 효과들이 발생한다.

    그 여러 효과 중에 하나가 바로 평화였다.

    왕권이 강화되면서 조정은 평화로워졌다.

    바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로를 물어뜯던 조정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졌고 오히려 합심해서 정사를 돌보는 일이 많았다.

    최근에 어심을 돌리는 일도 모든 대신들이 합심한 결과물 아니었던가.

    평화로운 조정에 파란이 인 것은 유구국순찰사로 오키나와에 머물고 있는 병조판서 이계동 덕분이었다.

    「···오로지 지난 왜구의 난으로 배가 난파되어 사용 할 수 없다··· 지금은 파도가 성하니 위험해서 갈 수 없다··· 같은 변명으로 일관하며 약조를 이행하지 않고 있으니 신이 놀란 마음에 수차례 꾸짖어도 왕은 듣지 아니하고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으니 난감한 일입니다. 비답을 기다리겠습니다.」

    오키나와에 남겨진 이계동은 뱃길이 험할 때를 제외하고는 정기적으로 연락선을 보내왔었다.

    최근에는 파도가 위험해서 두 달간 연락선이 오지 않고 있다가 드디어 오게 됐는데 두 달만에 받은 서계가 왕이 약조를 이행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글이었으니 융으로서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날 만도 했다.

    “내 그때 궁고도를 포기하고 왕을 구원했거늘 감히!”

    “고, 고정하소서, 전하.”

    “어찌 고정한단 말이냐? 경이라면 고정 할 수 있단 말인가?”

    길길이 날뛰는 임금의 진노를 정면으로 맞딱뜨린 이점은 고개를 떨궜다.

    “궁고도에서 오랑캐들을 상대하며 군사들이 상한 일은 일절 없었다. 오직 왕을 구원하면서 내 군사들이 상했었단 말이다! 그런데 왕은 지금 감히 나를 능멸하는 것이 아니고서야 순찰사에게 저런 말을 할 리가 없다!”

    융이 막 슈리성에 입성했을 당시.

    유구군은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는 왜구들에 연전연패를 당하고 있었다.

    성주들은 연달아 전투 다운 전투도 없이 왜장에게 투항했고, 조금만 더 늦게 입성했더라면 왜구가 유구국의 수도를 점령했을지도 모를 만큼 긴박한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 융은 군사들을 부려 유구국을 구원했다.

    구원에는 성공했지만 무릇 세상사에는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그 과정에서 군사 수십이 상했다.

    “전하··· 유구국에 변고가 생겨 왕이 약조를 차마 지키지 못 하는 것일 수도 있사오니 부디······.”

    “변고? 경들은 그 날 거기 없었기 때문에 자꾸 날 진정시키려 하는 것이다! 경들이 그 날의 참혹한 광경들을 모두 봤단 말이냐!”

    당시 참혹했던 전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대승을 거뒀지만 전장은 참혹했다.

    아비규환과도 같았다. 왜구의 늘어진 살점들이 전장터를 가득 메웠고 비명들은 꼭 야차의 울음소리 같았다.

    유구국 왕에게 받은 것들은 이것들에 대한 댓가에 불과했다.

    망국에 처한 나라를 구해줬으니 충분히 받을 수 있는 댓가.

    할양에 대한 약조는 지켰다.

    당시 왕은 도미구스쿠를 할양해주기로 했고, 이계동과 군사들은 그 도미구스쿠 지역에 관사를 지어 머물고 있으니까.

    하지만 세자를 보내는 일과 교역권에 대한 약조는 지키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후자는 무조건 지켜져야 한다.

    이건 일종의 피값이니까.

    그래서 더 화가 난다.

    당시 왕은 굽신거리며 대왕을 운운했다. 대왕전하의 은택으로 구국 할 수 있었고 종사를 지켜냈으니 그 은혜가 백골이 되도록 잊혀지지 않을 거라면서.

    제아무리 간사한 게 사람 심리라지만, 불과 1년 전만해도 굽신거리면서 구해달라 발악을 해대던 왕이 1년 조금 지나 언제 그랬냐는 듯 강짜를 부린다.

    “이것들이 지금 믿는 바가 있기 때문에 이러는 것이다.”

    이계동은 순찰사로서 유구국에 머물고 있지만, 그 소임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유구국 조정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일도 맡는다.

    그래서 연락선도 정기적으로 보내온 것이니까.

    이계동이 보내온 연락선에 의하면, 유구국왕은 중국에 사신을 두차레나 보낸 적이 있다고 했다.

    물론 제 아무리 도미구스쿠에 머물면서 첩보 활동(?)을 하고 있는 이계동이라 해도 사신을 보낸 목적까지 알아내진 못 했다.

    하지만 사신을 두차례나 보냈다는 부분에서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중국을 병풍으로 삼아서 약조는 이행하지 않겠다는 의지니까.

    유구국왕은 필시 조선이나 유구나 똑같이 중국을 상국으로 받드는 입장인데 약조 하나 어겼다고 침략을 할까 뻗대는 것 같은데······.

    오산이었다.

    융이 애당초 이계동을 굳이 남겨두고 온 까닭이 무엇이던가?

    혹 유구국왕이 약조를 이행하지 않거나, 불손한 짓을 저지를 때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이놈들이 감히 중국에 이 일을 알려 약조는 이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중국에는 알리지 말라 내 그리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제놈들이 조금 손해보는 일이 생기니 냉큼 약조를 어긴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

    “경들은 말해보아라, 이놈들이 우호국이냐? 신의를 개떡같이 아는 오랑캐인 것이냐?”

    노공필이 답했다.

    “신의를 개떡같이 아는 오랑캐이옵니다.”

    “무릇 오랑캐는 교화로 다스림이 옳지만, 교화가 통하지 않는 오랑캐에게는······.”

    꿀꺽.

    “무력으로 교화시키는 수 밖에 없다.”

    “···”

    “또한 유구국이 지금 중국에 어떤 간교한 술책을 썼을지 모른다. 또 어떤 술책을 더 썼을지 모른다. 손을 쓰지 않으면 우리가 위험에 처할 터이니, 사신을 보내야겠다. 사신으로는······.”

    융은 매의 눈으로 편전을 훑었다.

    마침 적당한 인사가 눈에 들어왔다.

    “지부사가 가도록 해라.”

    넌씨눈 시절이었다면, 노구를 이끌고 먼 길을 가긴 무리라고 튕겼겠지만, 지금은 넌씨눈은 아니어도 넌씨까지 발전한 노공필이었기에 그는 아무말 없이 고개를 조아렸다.

    “경들은 들어라.”

    “하교하소서.”

    “지금 탐라(제주)에 가왜가 쳐들어와서 제주목을 노략질했다. 우리 백성 백여명이 그 가왜놈들에게 끌려갔고, 제주목사가 속하의 수령들과 함께 분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관군들이 마흔명이 전사했고 사상자만 이백이 나왔다. 다만 가왜들을 잡아 문초하니 유구국 군사들인 걸로 드러났다.”

    “···?”

    “내 백성이 감히 가왜 따위에게 끌려가고 내 군사가 오랑캐에게 상했으니 참을 임금이 어디있으랴? 북해국 구원은 보류하고, 북해국 구원에 편성한 병력을 모두 유구국으로 보내도록 하라. 지부사는 사신으로 갔을 때 이 사실을 철저히 사실로 속여 명에 알리라.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부, 분부 받들겠나이다.”

    “이것들이 감히 날 능멸했으니 반드시 그 댓가를 치룰 것이다. 반드시······.”

    ***

    오랜만에 왜관에 왔다.

    몇 년만인지 기억이 안 난다.

    옛날에 배 만들 줄 아는 장인 찾으러 왜관 내려왔다가 탐관오리도 만나고 참 스펙타클했는데······.

    탐관오리도 만났지만 왜관에 대한 내 기억은 딱히 나쁘지만은 않다.

    오히려 추억에 가깝다.

    “여기서 하는 일이라 물으시면······.”

    추억에 잠겨있던 날 일깨운 건 마사키(政樹)였다.

    마사키는 왜관의 일본인들을 통솔하는 자치대장? 자치시장?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인데, 무라모리의 가신이었다.

    애당초 왜관의 자치시장으로 와서 일본인들을 통솔하게 된 것도 무라모리가 명을 내렸기 때문인데, 무라모리가 강물에 빠져 죽은 걸로 알려진 뒤로는 낭인이 됐다는 게 환선 씨의 부연설명이었다.

    이건 여담인데 왜관의 일본인들은 무라모리가 강물에 빠져 죽었다는 말을 믿지 않는 기색들이었다.

    쉬쉬하고 있을 뿐.

    사실 누구라도 추론 가능한 정황이긴 하지.

    그런데도 왜관에서 봉기가 없는 건, 마사키의 통솔 덕이라는 것 역시 환선 씨의 부연설명이다.

    왜관에 오기 전까진 그 말을 반신반의 했는데 오고 나니 그 말이 이해가 간다.

    왜관은 마사키가 만든 시스템 아래서 돌아가고 있었다.

    자치시장이란 말이 말장난 같을지 몰라도, 어떻게 보면 진짜 마사키의 왜관은 하나의 자치구 같은 느낌이다.

    좌우지간.

    “제가 알기로 마사키 씨는 여기서 딱히 하는 일이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왜관의 일본인들을 잘 통솔하고 있는 마사키는 무라모리가 골로 가버리면서 낭인이 됐다.

    마사키를 따라 왜관에 들어온 무라모리의 다른 가신들도 마찬가지.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백수다.

    “정곡을 찔러서 물으시니 어찌 답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대마도로는 왜 안 돌아가세요?”

    “가족들 모두 여기 머물고 있는 걸요. 아버지는 7년 전에 돌아가셨으니 섬으로 돌아간다 한들 무라모리님도 없는 상황에서 가족들 굶기는 일 밖에 더 하겠습니까?”

    “그래서 일거리 하나 제안좀 하려 하는데······.”

    “일거리요?”

    나는 내가 만들 외인부대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켜 마사키에게 설명했다.

    일본 본토가 아무래도 전국시대고, 주군을 잃은 떠돌이 무사가 일시적으로 고용돼서 전장에 나가는 일이 종종 있다 보니 마사키는 쉽사리 내 설명을 이해 한 것 같았다.

    “여기서 생활하셔봤자, 딱히 돈벌이도 안 되실 테구요.”

    “하지만 저희 같은 왜인들을 상대로 그런 부대를 만드신다면 조정에서 잡음이 일지 않겠습니까?”

    “이미 허락도 받았습니다. 그 부분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저야 뭐··· 오히려 감사한 일이긴 하지요. 소작으로 부려지는 것도 아니고 무사로서 기용 되는 일이니까요.”

    그 이후 나는 마사키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나눠 본 결과 마사키는 여러모로 장래에 대한 불안이 가득한 것 같았다.

    이해가 갔다.

    자신들이 살던 대마도에는 목사가 파견됐다.

    한순간에 대마도가 조선령으로 편입됐고 이제 그들은 조선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 불안 할 수 밖에.

    그런 마사키는 내가 창설할 외인부대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그 이면에는 이같은 불안감이 작용한 것도 같았다.

    이제 마사키를 비롯한 낭인들도 조선인으로 살아야 한다.

    법적으로는 조선인이라 해도 핏줄은 조선인들이 멸시하는 왜인.

    평생을 왜관에 갇혀 지내거나 대마도에서 지낼 게 아니라면, 이들도 이들 나름대로 조정에 인정을 받아야 한다.

    마사키는 그 경로가 외인부대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뭐, 틀린 생각은 아닌 듯 하다.

    자치시장인 마사키가 외인부대에 긍정적이기 때문에, 부대원들을 모집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왜관에서만 한순간에 2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모집 할 수 있었고, 대마도로 넘어간 마사키는 금방 300명의 사람을 더 데려왔다. 마사키가 돌아오자마자 우리는 용병 계약서를 썼다.

    마사키는 댓가를 쌀과 같은 현물로 받길 원했다.

    나야 땡큐였다.

    빈 손으로 왔던 나였지만 마사키 외 외인부대원들에게 지급할 대금을 끌어오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나는 삼성 경상도 지점에서 돈을 끌어다가, 500명의 외인부대원들에게 일시에 지급했다.

    계약조건은 2년간 외인부대에 종속.

    고용대금은 두당 연에 8석.

    목숨값 치고는 작다면 작은 돈이고 크다면 큰 돈이지만, 생각보다 많다고 좋아하는 걸 보면 무라모리 밑에서는 무급 노동을 했던 모양이다.

    일단 1년치인 8석은 모두 한번에 지급하고, 나머지 8석은 계약 기간을 채운 뒤에 지급하기로 하고 500명의 부대원들과 함께 상경했다.

    중간에 소식을 미리 듣지 못 한, 관찰사 신극성이 파직되면서 관찰사의 일도 함께 임시로 겸하고 있는 안처직이 우리의 움직임을 왜인의 봉기로 착각하는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그것 말고는 무탈하게 상경길에 오를 수 있었다.

    서울에 도착하는 데까지는 딱 한달이 걸렸다.

    생각보다 늦은 감이 있었는데 상경길에 거치는 고을들마다 들러서 관개수로 공사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한답시고 늦어졌다.

    그렇게 한달만의 상경이었지만, 한달만에 조정의 분위기는 급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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