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81화>
***
“어이구, 더워라. 날이 뭐 이리 푹푹 쪄?”
석남은 푹푹 찌는 한여름 날씨에 혀를 내둘렀다.
이른 아침인데도 날이 푹푹 찌는 게, 정오 쯤 되면 사람 잡을지도 모르는 날씨였다.
고작 4리(1.6km)정도 걸었는데도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땀을 대충 닦아낸 석남은 가게 문을 열었다.
그의 나이 서른 넷.
원래는 삼성 비누 공방에서 일하던 석남은 작년에 삼성의 공방 일은 관두고 작년에 장통방 구석에 가게를 하나 얻어 세책점(책대여점)을 열었다.
남들은 뒷 돈 써서라도 들어가고 싶어한다는 공방 일을 관두자마자 친인척들은 실성했냐고 타박했다.
어떻게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봉급은 따박따박 나오고 그 액수도 상당하다.
한 달에 무려 백미 8두(0.8석)를 받으니까.
물론 이건 기본급이다. 실적이란 것도 있는데 실적이 좋게 나올 때는 성과금이란 게 주어지고, 분기별로는 격려금이라 해서 또 공돈이 나온다.
이것저것 다 합하면 연에 공방에서 주는 돈이 20석에 육박하거나 상회한다.
그러니 미친놈 소릴 들어도 할 말이 없다.
배운 것 없는 일자무식인 그가 어디 가서 20석이나 되는 돈을 받겠는가?
재상 씩이나 되는 분들의 녹봉도 20석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인데 말이다.
그러니 본인이 생각해도 선뜻 일을 그만둔 건,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 맞았다.
하지만 석남은 자신이 있었다.
작년부터 종이의 공급이 증가하면서 살림에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책 같은 걸 읽어보기가 수월해졌다.
그런데 반해 세책점은 도성에 단 두 곳 밖에 없는 실정.
말이 두 곳이지, 책의 가짓수도 많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그의 친동생인 방남이 중용월보에서 일을 했다. 방남에게 이것저것 들은 게 있다 보니 최소한 손해는 안 보겠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 길로 공방을 관둔 뒤, 모아둔 돈으로 가게를 얻었다.
책을 구비하는 비용은 다행히 사정을 들은 삼성에서 돈을 빌려준 덕에 가능했다.
그리고 지난 1년.
석남의 선택은 옳았다.
“주인장 정여립전 있소?”
“아니, 나부터 왔는데 왜 새치기야!”
“누가 먼저 온 게 중요하나? 먼저 찾는 사람이 임자지.”
“그런 법이 어딨어? 주인장, 정여립장 빨리 주시오!”
가게 문을 열자마자 손님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석남이 베스트셀러라는 말을 알 턱이 없지만, 정여립전은 가히 베스트셀러라는 말에 부합했다.
중용월보에서는 신문을 내면서 패설도 연재를 하는데, 이 연재한 패설들은 또 한데 묶어서 책으로 발행했다.
이걸 석남은 중용월보에서 다시 매입해 가게에 구비하는 식이었는데 가져온 정여립전만 20권임에도 책이 계속 나가니 5권을 더 들여와야 되나 고민할 정도였다.
긁적긁적.
“정여립전은 다 나가고 없고, 모레에나 들어올 것 같소만.”
“어제도 그 소리 했잖소?”
이립(30살) 정도로 보이는 사내가 툴툴거리자, 석남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랬나? 한데 어쩌겠소. 책이 들어오면 들어오는 족족 나가버리는데······.”
머쓱해하던 뭔가 떠올랐는지 허둥지둥 책장을 뒤졌다.
“이건 어떻소?”
“안처진전?”
“요새 이게 또 그렇게 인기라니까? 5권 들여왔는데 벌써 5권 다 나갔으니 말 해 뭐해?”
“그 정도요?”
끄덕.
“나도 읽어봤는데 소일하기 딱이라니까? 얼마나 흥미진진하면 내 소피 보러가는 것도 깜빡했겠소?”
“소피까지 잊게 만든다?”
끄덕끄덕.
“한데······.”
“문제 있소?”
“구사 선생이 지은 게 아니네?”
석남은 헛기침을 터뜨렸다.
정여립전에 이은 공주의 남자까지 인기를 몰면서, 두 패설의 저자인 구사는 패설을 썼음에도 세인들에게 소위 선생이라 불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눈앞의 손님도 안처진전을 구사의 후속작이라 생각한 것 같았다.
“에이, 그게 무슨 상관이요?”
“상관이 있지, 왜 없소? 그 설공찬전인가 하는 거는 내 원체 일자무식이라 읽지도 못 하겠더이다. 근데 구사 선생 글은 술술 읽히는 게, 나는 딱 그런 문체를 원한단 말이오. 이 안처진전도 설공찬전처럼 먹물 가득 들어간 거면 빌려간들 뭐하오?”
석남은 손사래를 쳤다.
“아니오, 나도 일자무식인데 이건 술술 읽히더라니까? 필명도 보시오. 백돌이지 않소, 백돌. 딱 봐도 그거 쓴 양반 머리에 먹물 안 들어간 느낌이 팍팍 들지 않소?”
“그건 그렇네.”
“한 번 읽어보시오.”
“무슨 이야긴데?”
“암행어사가 탐관오리 족치는 이야긴데 한 번 읽어본 사람은 백돌 선생 패설 더 없냐고 물어볼 정도라니까?”
“흐음, 그렇다면 뭐. 이걸로 줘보시오.”
“그래, 그래. 후회 안 할 거요. 내 그건 장담하지!”
그 이후.
안처진전이 하루 사이 모두 나갔다.
***
“아, 그래서 누가 쓴 건데?”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대감.”
“진짜 이러긴가?”
“소인도 이러기는 싫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송구합니다, 대감.”
등청하기 전에 잠깐 신문사에 들렀다.
해소 할 궁금증이 좀 있어선데 조 사장이 영 융통성이 없다, 융통성이.
내가 궁금한 건 다른 게 아니다.
요즘 안처진전이라는 소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길래 여울이랑 같이 한 번 읽어 봤다.
그런데 엄청 재밌지 뭔가?
이게 독자들의 카타르시스를 충분히 충족 시켜주고 있었다.
전개가 루즈하지도 않고, 문체가 딱딱하지도 않다.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어사라는 선(善)과 탐관오리라는 악(惡)을 등장시켜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호할 만한 권선징악적인 면을 강조시켰다.
그런데 제목도 제목이지만 내용이 관계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무슨 말이냐면, 21세기는 작가들이 검색 한 번으로 어지간한 자료조사는 뚝딱 할 수 있는 시대지만 여긴 아니란 소리다.
여기는 지식의 공유가 제한적인 시대니까.
하다못해 작중 등장하는 어사의 고단함이라던가, 작중 탐관오리가 어사를 쓱싹하려고 보낸 자객들이나··· 아무래도 극적인 면을 위해 조금은 과장 된 면도 있긴 하지만 최소 8~90%는 고증 된 묘사들이었다.
근데 이건 일반인들이 절대 알 수 없는 내용들이다.
하다못해 공자니 맹자니 하는 씹선비의 태고적 조상은 아주 잘 아는 사대부라도 이런 건 잘 모른다.
그 말은 즉슨.
저자 백돌이라는 작가가 암행어사던 봉고파직 당한 탐관오리든.
양쪽 어딘가와는 접점이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또 접점이 있다기에는··· 뭐랄까, 문체가 경박했다.
여기 말로 이런 문체는 경박의 극치인데, 사대부들은 백돌의 필력을 따라할래도 안 한다.
목에 칼을 들이밀어도 안 할 걸?
쪽팔리다고.
거기다가 제목.
안처진전인데, 제목을 보자마자 안처직이 떠올랐다.
이건 대놓고 안처직을 모티프로 삼았다는 말이다.
그러니 백돌이란 작가가 안 궁금해지고 배겨?
신비한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뭔가, 사회지도계층의 사람인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고, 양인인 것 같으면서도 사회지도층 중 한 명 인 것도 같아서.
신비한 느낌마저 받은 건 나뿐만이 아닌지, 여울이와 함께 진지하게 저자가 누굴까로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딱히 용의선상에 올릴 만한 사람도 떠오르지 않았고, 결국 궁금해 미쳐 돌아가실 것 같아서 참다, 참다 신문사를 찾아온 것이다.
저자의 이름이라도 들어보기 위해서.
“에이, 살짝 귓띔만 해 줘.”
“···정말 안 됩니다. 저자와 약조한 건데 소인이 어찌 대감과의 사사로운 연을 빌미로 깰 수 있겠습니까?”
근데 보다시피 자꾸 안 된다고만 한다.
이건 뭐, 원리원칙 잘 지킨다고 칭찬해야 하는 건지 융통성 없다고 비난 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다.
이후로도 계속 안 된다고만 하니 오히려 청개구리 심보가 도져서 어르고 달래면서까지 물어봤지만, 광조는 끝끝내 저자의 정체(?)를 말해주지 않았다.
결국 나는 호기심 해소는커녕, 오히려 호기심이 잔뜩 증폭만 돼서 입궐 할 수 밖에 없었다.
오늘 입궐한 건, 내일 모레 동평관 사신이 떠나기로 돼있는데 형님이 아직도 편전에 안 나오고 계셔서 그걸 해결한 방안 마련과, 본격적인 경찰서 설치 등등을 논하기 위해서였는데······.
어째 다들 지각이신 모양인지, 빈청에는 숭재 씨랑 우의정 채수 아저씨 밖에 없다.
나는 채수 아저씨 눈치를 살짝 살피면서 숭재 씨에게 말했다.
“제예는 혹시 안처진전 아십니까?”
“모를 턱이 있나요. 요새 장안의 화제라는데.”
라는 숭재 씨의 답변에 가만히 차를 들고 계시던 채수 아저씨가 끼어들었다.
“그··· 내, 도통 그런 방면에는 어두워 잘 모르겠는데 우연히 설공찬전이라는 패설을 보고 아주 소일하기 딱이라 느꼈는데 장안에선 어떻다고 하더이까?”
“그건 어려워서 사람들이 잘 안 찾는다고 불쏘시개로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하소연을 세책점 주인에게 듣긴 했습니다.”
“부, 불쏘시개······.”
“한데 그건 어찌?”
“아, 아니오.”
아무래도 우상대감은 설공찬전을 감명 깊게 읽은 모양이다.
나는 그거 3페이지 읽자마자 노잼 냄새가 물씬 풍겨서 집어 던졌는데.
뭐, 책이란 건 읽는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좌우지간요. 그 저자 말입니다. 백돌이란 양반.”
“예.”
“누굴까요, 대체? 제목이 안처진전인 거나 내용을 보면 나랏일 하는 사람 같은데 또 문체를 보면 아닌 것 같고.”
“글쎄요. 저도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 역시나 숭재 씨도 모르는 모양이다.
하긴, 알 턱이 없지.
애당초 본인 정체 숨기려고 필명을 쓴 걸 텐데.
궁금증에 미쳐 돌아가실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즈음.
지각한 대신들이 하나, 둘 들어왔다.
대신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자 회의가 시작됐다.
첫 번째 안건은 내일 모레 떠나기로 된 동평관 사신의 배웅 문제였다.
이건 대충 예조참의가 배웅을 나가기로 결정이 됐다.
두 번째는 소종도였다.
이번에 소종도에는 형님의 선지가 떨어졌고, 감조관으로 섬에 머물고 있던 한숙창은 공식적으로 소종도의 초대 목사가 됐다.
이 때문에 혹 섬에서 반란 같은 게 일어나면 어떡하냐는 게 바로 두 번째 의제였는데 군사를 확충해서 반란을 미연에 방지하고, 도주의 가신단들을 이미 한숙창이 모두 추포 해 둔 뒤이니, 도성에 압송시켜서 반란을 일으킬 구심점을 뿌리 뽑자는걸로 결론 지어졌다.
그리고 대망의 세 번째.
“···결국 시범적으로 시행을 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지요.”
경찰서 설치 문제였다.
“시범적이요?”
“대감께선 율과의 정원을 확대시키고, 더 나아가서 율관들이 시재를 합격하면 종칠품 직에 임명하게끔 하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걸 반대한 게 이점 당신이잖아?
라는 말 대신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그랬지요.”
“신문을 통해 본 여론을 보니, 백성들도 기대를 하고 있는 듯 하니 지금에 이르러서 이걸 반대하진 않겠습니다.”
조정 대신들이 하는 말은 귀를 기울여서 들어야 한다.
지금도 그렇다.
이점이 말한 백성들은 서민을 말하는 게 아니라 사대부를 이름이다.
율과가 잡과의 일종이라지만, 문무과를 대신하는 대체제라는 인식이 있다.
한마디로 소과나, 문무과에 급제 못 하면 꿩 대신 닭이라고, 율관이라도 하자는 인식이 있다는 거다.
꿩 대신 닭이 되는 수단의 정원이 늘어나는 셈이니 양반 자제들로서는 경찰서 설치는 몰라도 정원 확대 그 자체는 긍정적으로 여길만 한 문제다.
“하지만 호조의 횡간(예산표)도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호조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큰 지출이 발생하는 셈이니까요.”
“음. 그러니 시범적으로 운영을 해보자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시범적으로 한 개 도에 설치해서 운영을 해보고, 예산이 얼마나 집행되는지, 또 과연 얼마 만큼의 효과가 있는지, 이를 토대로 팔도로 확대를 시킨다면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줄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점의 저의가 어쨌든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부민고소금지 폐지도, 일시적인 폐지는 혼란을 초래 할 수 있다고 해서 경기도를 시작으로 전국 팔도로 확대됐으니까.
또 올해는 나라에서 이것저것 한다고 많은 돈이 나간 걸로 안다.
혜민서의 종두도 5~6년 전, 서울을 시작으로 삼남까지 뻗쳤다가 바로 올해 여태 접종 미실시 지역이었던 함경도와 평안도까지 접종을 실시하게 됐으니 꽤 많은 돈이 나갔을 거다.
‘밀어 붙인다면 밀어 붙일 수도 있겠지만은······.’
시범 운영이고 나발이고, 닥치고 팔도에 설치해!
라고 하면 이점도 어쩔 수 없을 거다.
하지만 이점의 말도 일리가 있거니와, 무엇보다 닥치고 팔도에 설치하라고 한다면 이점이 반발하겠지만, 일단 그의 말대로 시범 운영을 해보고 효과가 입증돼서 팔도로 확대하는 거라면 이젠 입 다물겠지.
이 얼마나 소통하는 정치인의 모습인가?
“그럼 시범적으로 운영할 도는 어디가 좋겠습니까?”
“삼남 중에 택일하는 게 좋겠지요.”
시범 설치 구역(?)은 3개 도로 좁혀졌다.
거기서 더 좁혀야 했는데 결과적으로 경상도가 채택됐다.
소종도가 이제 막 경상도로 편입되기도 했고, 소종도에서 반란이 안 일어나도 왜관에 있는 왜인들이 난리를 일으킬 수 있으며, 결정적으로 부민고소 건수가 삼남 중에서 경상도가 압도적으로 적었기 때문이었다.
말이 설치지, 건물을 새로 지을 필요도 없었다.
그냥 남는 관아에 경찰서 현판 달고 관원들 보내면 되는 문제였으니까.
논의 끝에 초대 경찰청장은 안처직으로 결정됐다.
요새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안처진전의 모티프가 된 인물이니 딱 어울리잖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