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군으로 살어리랏다-279화 (279/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79화>

    ***

    한참 각 지역에 포청을 어찌 설치하고 설치 된 포청을 토대로 어찌 법권을 부여할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던 와중.

    영감이 떠올랐다!

    라고 형님이 외치셨다.

    이 말 한 마디에 우리는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다.

    포청과 영감은 상관관계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다리던 대답은 없었고, 한참이 지나서 돌아온 대답은,

    -내 오한이 나서 정사를 돌보기 어려운 듯 하니 포청 설치 가부는 경들이 논해서 주달하라.

    였다.

    뜬금포도 이런 뜬금포가 없지, 회의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시다니······.

    걱정이 됐는지 대신들은 모두 나한테 형님의 상태가 괜찮은 건지 물었지만, 나라고 또렷한 대답을 해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나도 정확한 상황을 모르기는 매한가지고, 걱정되기는 매한가지의 상황이었으니까.

    형님까지 자리를 박차고 뛰어 나가셨는데 나까지 뛰어 나갈 순 없어서, 술렁이는 대신들을 애써 진정시켰다.

    다행히 허침 할아버지가 도와준 덕에 소란스러운 분위기는 금세 가라앉고 모두 본론에 집중 할 수 있었다.

    “그럼 율과의 정원을 늘리자는 말씀이십니까?”

    “지금 당장 포청을 각 도에 신설한다고 해도 형관이 부족한 실정 아니겠습니까?”

    “그렇겠지요.”

    “율과의 정원을 늘려서 신설할 포청에 개좌(출근)하게 하고, 혹 미숙해서 판결을 잘못 내릴 수도 있으니 전직이든 현직이든, 대관(大官)으로서 형조나 의금부 같은 형률에 관계 된 기관에 있었던 이들을 그 장으로 보내는 것이지요.”

    “말씀만 들으면 일사천리로 진행 할 수 있는 사안으로 비쳐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수령이 가진 법권을 회수한다면 말들이 많을 텐데요?”

    대사헌 김전이었다.

    “수령들이 왜 탐관오리의 길에 빠지겠습니까?”

    동문서답에 김전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글쎄요. 해당 수령이 애당초 탐욕스럽고 용렬한 위인인데 서경(심사)이 잘못되거나 천거가 잘못 됐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 말씀도 맞지만 어떻게 보면 수령들의 업무가 너무 과중한 탓도 있습니다.”

    “과중이요?”

    “여러분들 모두 외관을 거쳐보셨으니 아시지 않습니까?”

    벼슬아치면 무조건 거치는 게 외방직이다. 외방직을 거치지 않고서는 요직에 앉을 수도 없다.

    21세기 군대에서 영관들이 별을 달기 위해 특정 보직을 거쳐야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한마디로 당상관이라 불리는 이분들은 모두 한 번 쯤은 수령으로 좌기(출근)를 해 본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다.

    당장 좌참찬(안윤덕)만 해도 불과 몇 년 전까지 경기도 관찰사였고 우의정(채수) 아저씨도 평안도 관찰사셨다.

    “수령이 고을에서 하는 업무는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탐관오리들이야 모두 팽개치고 노름이나 일삼는다지만, 제대로 된 수령들은 격무에 시달리는 거지요. 그러니 마음이 심약한 자들이 수령으로 부임하면 어쩌겠습니까?”

    “이래도 힘들고 저래도 힘드니 만사 팽개치고 노름을 일삼는단 말씀이십니까?”

    “맞습니다. 특히 수령들에게 가장 처결하기 힘든 건, 송사입니다.”

    물론 모순적이게도 탐관오리인 수령 같은 경우에는 송사가 가장 처결하기 쉽다.

    원칙 하나를 세우고, 그 원칙만 지키면 되니까.

    나한테 얼마를 꽃아줬냐, 십원 한 장 안 꽃아줬냐.

    이 원칙을 토대로 판결을 때리면 그만이니까.

    “원고와 피고가 만족 할 만한 명판을 내리기도 힘들거니와 어떤 판결을 내리든 욕을 먹게 될 테니 고단하기 짝이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 대사헌께서 말씀하신대로 심약한 수령들은 금세 오리(傲吏)가 되는 것입니다.

    “합하의 말씀은 비약입니다.”

    “비약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전하께서 그 가부를 논하라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불과 몇 년 전 형님이 편전에 XX사안에 대한 가부를 묻게 하라.

    라는 어지를 내렸다면 액면 그대로 가부만 논하라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약간 달라졌다.

    XX사안에 대한 가부를 묻게 하라.

    이건 형식적인 절차도 안 밞고 무대뽀로 밀어붙이기는 무안하니 그럴싸한 그림 만들어 내서 가결 시키란 말이었다.

    “크흠. 그렇다면 굳이 설왕설래 할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가부’를 논하라 하셨으니 각 도에 설치를 하면 그만이지요.”

    “대사헌께서도 찬동을 하셨는데 혹 이견을 내실 분 계십니까?”

    “···”

    있을 턱이 없었다.

    대사성 이점이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오물거렸지만······.

    “포청을 전국에 설치해서 비리를 적발하고 치안을 바로 잡는 기능을 하게 해서, 그게 제대로 이뤄진다면 반대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허침 할아버지에, 타이밍을 놓쳤는지 이점은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떨궜다.

    “그럼 이견은 없는 걸로 알고 제가 전하께 아뢰겠습니다.”

    ***

    몇 시진 후, 강녕전.

    “전하. 쉬었다 하심이 어떻겠사옵니까?”

    연필에 귀신이라도 들렸는지 좀처럼 연필을 손에서 떼지 않고 끄적거리는 임금에, 걱정이 됐는지 상선이 참다 못 하고 말했다.

    그에 융은 손사래를 쳤다.

    “아니다. 내 모처럼 영감이 떠올랐는데 손을 쉴 수야 있나.”

    “옥체가 상할까 저어 되옵니다.”

    연이은 상선의 채근에 융은 마지못한 척 연필을 손에서 놨다.

    그간 채수의 《설공찬전》을 뛰어넘는 글씨(작품)를 집필하겠다는 다짐 이래, 종이의 여백을 채우지 못 하고 시간만 축냈지만 오늘은 달랐다.

    말그대로 영감이 번뜩! 하고 떠오른 것이었다.

    “후. 내 얼마나 글씨를 쓰고 있었는가?”

    “장장 세시진이옵니다.”

    세시진이란 말에 융은 화들짝 놀랐다.

    “뭐라?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단 말이냐?”

    “예.”

    창문 밖을 보니 그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허어. 내 시간이 이리 가는 줄도 몰랐구나.”

    “전하께서 갑자기 편전을 뛰쳐 나오셔서 대신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듯 하옵니다.”

    긁적긁적.

    “그건 미안하게 됐다만 사실대로 말하면 민망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포청은 어찌 됐다던가?”

    “율과의 정원을 늘려 형관으로 삼고 각 도에 신설할 포청에 개좌시키면 무리한 일도 아닐 것이라는 대원군 합하의 말씀에 모두 수긍했사옵고, 설치할 포청의 이름은 경찰청이 어떠한가 라는 말씀을 합하께서 아뢰셨었습니다.”

    “경찰청?”

    “예.”

    “포청이라 그대로 쓰면 될 텐데 왜 굳이 경찰청인가?”

    “그건 소신도 잘 모르겠사옵고 대원군 합하 말씀으로는 사로잡을 포(捕)자가 들어간 것은 친숙한 인상을 줄 수 없고 그 범위가 죄인을 추국하는 일에 국한 된 듯한 인상을 주니 경계할 경(警)자에 살필 찰(察) 관청 청(廳)자를 붙여 경찰청이 어떻겠냐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음, 그런 의미라면 나쁠 건 없겠군. 과연 그 경찰청이란 관아가 전국에 설치가 되면 어명을 가벼이 여기는 자들도 사라지겠지.”

    “다만 호조에서 반대하지 않을는지 걱정이옵니다.”

    “대신들이 모두 찬동 했다하지 않았는가?”

    “대원군 합하께서 말씀하시길 한 개 도에 두는 경찰청의 인력은 최소 2~300은 되어야 할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사온데 형관들이야 율과의 시재를 통해 뽑으면 된다지만 서울의 포청을 본다면 포졸들이 있으니 이들을 채우는 것도 모두 재정이 소모되는 일 아니겠사옵니까?”

    “흐음. 그거야 내 수사 노비들로 채우면 되는 문제니 문제 될 것도 없어 보인다. 그보다, 상선.”

    “예, 전하.”

    “이것좀 읽어볼 텐가? 아직 다 마무리 되진 않았지만 필시 흡족할 걸세.”

    기대 어린 임금의 눈초리였다.

    그런 임금의 부탁(?)을 거절 할 수 없었던 상선은 냉큼 융이 건네는 원고를 받아들었다.

    《어사 안처진전》

    ***

    경상도 상주.

    관아 앞에는 보기 드문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이구, 흉해라.”

    “흉하긴 뭐가 흉해? 딱 보기 좋구만.”

    삼삼오오 모인 백성들은 관아 앞에 펼쳐진 진풍경에, 누군가는 눈살을 찌푸렸고 또 누군가는 쾌재를 불러댔다.

    “저 팔 좀 보시게. 살이 아주 포동포동 오른 게, 여태 호랑이가 안 잡아 간 게 신통하구만.”

    진풍경은 다름 아닌 소금에 절여진 팔이었다.

    팔도 전역으로 보내진 최도경의 신체중 일부인데, 경상도에서는 상주에 가장 먼저 전시(?)가 됐다.

    관찰사가 머무는 감영이기도 한 까닭이었다.

    “호랑이? 호랑이는 이 안에도 한 마리 계시지 않은가.”

    상주목사 겸 경상도 관찰사 신극성(愼克成)에게 관민들이 붙여준 별명이 바로 맹호였다.

    용맹무쌍해서 맹호가 아니라, 이놈이 저지르는 가렴주구가 호환에 필적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예끼, 이 사람아. 그러다 경을 치려고.”

    “내가 무슨 정여립인가? 호랑이도 호랑이라 못 부르게?”

    “뭐, 그렇긴 하지.”

    신극성이 부임한 건 2년 전.

    단 세 달 만에 맹호라는 별명을 얻은 목사는 그가 또 처음이었다.

    오죽하면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말도 그에게는 예외였다.

    상주의 백성들은 누구나 저놈이 빨리 파직되거나 떠나버리고 새 목사가 부임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관찰사 영감 행차시다! 길을 비켜라! 훠이!”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신극성의 행차였다.

    “또 어디서 계집질 하고 오는 모양이구만.”

    “귀신은 뭐하나 몰라. 저런 놈 안 잡아가고.”

    “염라국에서도 가렴주구 일삼을까봐 안 데려가나 보지.”

    “상주에는 인물이 그렇게 없나? 부민고소금지가 폐지 된 게 언젠데 저놈 고발 하는 사람이 어째 한 명도 없어, 한 명도.”

    “그렇게 꼴보기 싫으면 자네가 고발하지 그래? 자네 죽거든 우리가 비석 하나 세워줌세.”

    “참말인가?”

    “암. 참말이고 말고.”

    “참말 하네?”

    “예끼. 그런 용기 있었으면 진작 하고도 남았겠지. 어디서 호기를 부리나, 호기 부리긴?”

    “안 한 거지! 못 한 게 아니라.”

    “그럼 해보라니까?”

    “이 사람이 정말 못 할 줄 알고······.”

    백성1과 2가 관찰사를 고발하네 마네로 옥신각신하던 무렵.

    신극성이 탄 가마가 관아 앞에 도착했다.

    “저게 뭐냐?”

    신극성이 관아 앞에 전시 된 최도경의 팔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자, 아전이 말했다.

    “어제 내려온 최 가놈의 팔입니다요.”

    “최 가놈?”

    영문을 모르겠다는 신극성에 예의 아전은 신극성이 들리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흘 전부터 오늘까지.

    절간에 틀어박혀서 기생 끼고 주지육림을 벌였으니 사흘간 다른 의미로 속세와 연을 끊고 있었던 목사또다.

    모를 만도 했다.

    “최도경 말입니다요.”

    “최도경··· 최도경··· 아! 신문에 나왔던 그 역적 놈?”

    “예.”

    “쯧쯧. 그러니 성지를 헤아려서 받들었어야지. 미련한 놈 같으니··· 나처럼만 세상을 살아갔어도 저런 꼴은 면했을 것을 미련한 것도 이쯤하면 죄다, 죄.”

    “···”

    “출입 할 때마다 저 흉한 꼴을 보게 생겼으니 나만 고욕이구만.”

    한차례 투덜거린 신극성은 육중한 몸 때문에 가마에서 내리기도 버거웠는지 아전들의 부축을 받고도 낑낑거리며 가마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관아의 삼문 앞에 섰다.

    백성들은 저 맹호 놈이 또 뭔짓거리를 하나 싶어 감히 눈도 마주치지 못 했다.

    “그, 너희들도 들어서 알겠지만 이게 바로 최가 놈의 팔이다. 마침 이 팔이 감영에 도착했으니 이렇게 전시를 시킨 것이니 너희 모두 듣고 알지어다.”

    “예, 사또.”

    고개를 조아리는 백성들에 또 한 번 거드럭거린 신극성은 이번엔 아전들에게 말했다.

    “어째 재지사족들은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이건 백성들보다도 사족들이 봐야 하는 것이다. 모두 불러서 보게 하거라.”

    “그리 하겠습니다요.”

    “아, 그리고 향란이도 좀 불러오고.”

    향란은 상주의 관기였다.

    “관아로 말입니까?”

    “그럼 관아로 부르지, 처자식 있는 우리집으로 부르랴?”

    “하오나 밀린 송사가······.”

    긁적긁적.

    “얼마나 밀렸는데?”

    “열 건이 넘습니다요.”

    “열건? 하··· 누구보다 호장이 더 잘 알겠지만, 그래서 내 입으로 말하기 참 낯부끄럽지만 천하에 나같은 명판관이 어딨나? 나같은 명판관은 송사 열건 쯤이야 하루, 이틀이면 끝낼 수 있으니 잔말말고 향란이나 데려오게.”

    제 입으로 명판관이란 소리에 실소를 금치 못 하는 아전이었지만 받들지 않을 순 없었다.

    “알겠습니다요.”

    어쨌든 신극성의 계집질(?)과는 별개로 상주를 시작으로 최도경의 절여진 신체는 경상도 전역에 조리돌림 됐다.

    다른 도 역시 사정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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