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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278화 (278/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78화>

    ***

    “전하, 어찌 입에 담기도 두려운 일을 서스럼 없이······.”

    “역적 최가 과연 대죄를 저지르긴 했사오나 자칫 옥체가 상하기라도 했다면 이는 종사에 다행한 일이 아니옵니다.”

    “광주목이 비록 도성과 지척이긴 하나 한달음에 내달려 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옵니다. 요즘 역적이 자주 발호해 민심이 흉흉한데 자칫 불한당들이 음흉한 일을 획책 했다면 과연 종사에 다행한 일이 아닐 테니 부디 자중하시옵소서.”

    나나 다른 대신들은 모두 빈청에 있었다.

    빈청에 있다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아주 제대로 맞아버렸다.

    나석수에게 밥을 먹여 보내고 나는 느긋하게 입궐했다.

    빈청에서 논의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직 동평관에 머물고 있는 사신.

    그러니까, 쓰네히사의 접대 문제와 도주의 신병 확보 문제.

    그 외에도 자질구레한 일을 형님 대신 처리하려면, 어쩌면 오늘 밤을 새야 할지도 몰랐다.

    그런데 갑자기 도승지 권균이 헐레벌떡 빈청에 뛰어들지 뭔가?

    그러고는 한다는 말이 가관이다.

    -전하께서 강을 넘으셨소이다!

    강을 넘어?

    순간적으로, 나는 강이라길래 요단강을 말하는 줄 알았다.

    알고보니 한강이란다.

    빈청이 곧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와병 중인 임금이 난데없이 한강을 넘었다니 마른 하늘에 날벼락 정도가 아니었다.

    숨을 꼴딱거리는 권균에게 사정을 묻자, 글쎄.

    오늘 개점하는 사은원 형님께서 잠행을 나갔다가 일이 생겼고 그걸 직접 처리하시겠다면서 강을 넘으신 것이었다.

    그리고 돌아오셨는데······.

    문제는 이게 엄청 충격적이었다.

    허침 할아버지의 말처럼 감히 입에 담기도 두려운 일이었다.

    사람의 신체를 육시내고 소금에 절여버리고 오셨으니까.

    한마디로 젓갈을 담가버렸다는 거지.

    물론, 두려운 일이긴 해도 최도경이란 자가 저지른 죄를 보면 젓갈형(?)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인지도 모른다.

    “뭐··· 경들의 말처럼 과인이 순간 혈기가 끓어서 종사를 생각지는 못 했다만 내 오죽하면 아픈 몸을 이끌고 광주목까지 행차를 했겠는가?”

    형님의 말에 가만히 듣고만 있던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건 맞다.

    더구나 내가 형님을 마지막으로 뵀을 때가 바로 어제다. 어제의 형님은 병색이 짙어 보였다. 그런 몸으로 잠행을 나갔다가 최도경의 악행을 들었으니 속된 말로 꼭지가 돌아버리셨겠지.

    아드레날린이 과다 분비 되면 아픈 것도 잊기 마련이니, 아픈 것도 잊어버리고 행차를 하셨을 테고.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한터골은 경들의 말처럼 도성과 지척에 있다. 도성과 지척에 있는 곳에서, 내 장리로 식곡하는 자는 엄히 벌하겠다는 특지를 내린지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았고 심지어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이같은 일이 일어난 건 대관절 무슨 까닭이겠는가? 과인이 부덕한 소치겠다마는 엄밀히 말하면 임금의 호령이 얼마나 개떡 같았으면 들어 쳐먹질 않겠냔 말이다.”

    설마 편전에서 개떡 운운을 할 줄 몰랐는지 삼정승들을 필두로 육조판서들이 모두 민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도성과 지척인 경기도에서도 과인의 호령이 바로 서지 않는데 저 함경도와 평안도 전라도와 경상도는 어쩌겠는가? 또 산간벽지는 어쩌겠냔 말이다.”

    사실 형님의 말씀처럼 형님의 호령이 바로 서지 않는다는 건, 좀 비약이다.

    노비조합의 탄생 이후 어지간한 사족들은 형님 말이면 무조건 받든다.

    무서워서라도 받든다.

    최도경의 일은 뭐라고나 할까.

    일종의 돌연변이?

    그래, 그 표현이 맞겠다.

    물론 아주 틀린 말씀은 아니시다. 호령은 바로 서있지만 어딜가나 꼼수 부리는 것들은 있기 마련이니까.

    생각해보자고, 교통과 통신이 극도로 발달한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잊을만하면 노예 사건이 언론에 대서특필 됐다.

    여기는 더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최도경처럼 한 마을에서 지주 감투를 쓰고 있는 사람은 왕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형님 말처럼 저기 전라도나 경상도, 또 험지인 함경도와 평안도에서 이런 일이 없으리란 보장은 없다.

    “진성의 생각은 어떠냐?”

    옳은 말씀이라 고개만 끄덕거리고 있는데 화살이 나한테 돌아왔다.

    이제 척하면 착이다.

    지원 사격을 해달라는 무언의 신호다.

    “다른 분들 말씀처럼, 일언반구도 없이 갑자기 나가신 건 좀 무안한 일이긴 하지만 틀린 말씀은 없으신 것 같습니다.”

    “이것들이 자비를 베풀려고 해도 말을 듣질 않으니 내 심병이 도질 정도인데 이것들이 대체 어찌 박멸 해야할꼬.”

    심병이란 말에 대신 분들은 눈을 부릅 떴다.

    형님이 옛날에 심병을 앓고 자폐한 뒤로부터 생긴 일종의 트라우마다.

    “시, 신들이 서둘러 편전에서 논하겠나이다.”

    “아니. 이 자리에서 매듭 지었으면 한다. 내 이대로 침소에 들면 잠은 오지 않고 오직 그 생각만 날 것 같다.”

    “···”

    나는 고민해봤다.

    말을 해도 쳐듣질 않는 놈들을 박멸하는 법.

    어떻게 보면 아주 간단하다.

    지방의 수령들이 잘 감시하면 된다. 그리고 을동이처럼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있으면 관에 신고를 하면 된다.

    이게 FM대로 이뤄지면 최도경 같은 놈이 설 자리는 없지.

    문제는 이게 FM대로 지켜지지 않으니 문제 되는 거지만.

    그런 의미에서.

    ‘전국에 경찰서가 있으면 딱인데.’

    여긴 사법권을 수령이 갖고 있다.

    제도의 한계이긴 하지만 사법권을 수령이 갖고 있기 때문에 문제 될 소지가 다분하기도 하다.

    사법권이 특권화 된 지 오래라서, 똑같은 죄를 저질러도 저놈은 장형 저놈은 방면이 된다.

    문제는······.

    ‘이걸 덕치로 포장한다는 거지.’

    여기 사람들은 덕치를 우선시한다.

    한마디로, 덕으로 사람들을 교화하고 지도하면 자연히 나라가 태평성대가 된다는 것인데, 사람의 본성상 이게 이뤄지겠어?

    내가 받아들인 덕치란 말은 공산주의랑 동의어다.

    아, 오해는 말자고, 찬양 하는 거 아니니까.

    공산주의.

    이거 듣기는 얼마나 좋냐고?

    덕치도 같다.

    듣기는 졸라게 좋아요.

    듣기만.

    덕이란 말은 여러 의미가 내포돼 있다.

    말그대로의 덕(德)도 있고 그 안에 자비와 관용도 들어있고······.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된다.

    말했다시피 똑같은 죄를 저질러도 돈 갖다 바친 놈은 덕치의 하나인 관용을 베풀어서 방면.

    돈 안 갖다 바친 놈은 덕치의 하나인 교화를 적용해서 장형.

    ‘잠깐, 경찰서? 만들면 되잖아?’

    왜 못 만들 거란 전제를 깔고 있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가만 입 다물고 있을 수 없겠다.

    입이 근질근질하다.

    “전하, 제가 한 말씀 아뢰어도 되겠습니까?”

    “오, 그래. 진성이.”

    “제가 홍문관 응교에게 배우기로는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홍문관 응교는 장곤 선생님이다.

    이조좌랑으로 계시다가 어느 고을 현령을 한 6개월 하고 계시던 와중에 형님이 다시 정사품직인 응교에 제수하셨다.

    파격적인 인사 단행이란 말들이 잠깐 나돌긴 했었지만 형님의 치세에 있었던 파격적인 인사 단행이 한 두 번이 아니었던지라 뭐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세 가지란 곧 덕치, 정치, 도치를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세 가지 중에서 덕치를 높이 치지요.”

    끄덕끄덕.

    “그런데 덕치란 게 듣기 좋아서 덕치지, 다른 말로 하면 뭐겠습니까?”

    “무엇이냐?”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바로 덕치입니다. 똑같은 죄를 저질러도 똑같은 형벌이 떨어지지 않으니까요.”

    “음.”

    “제가 생각하면 오늘날 같은 폐단이 발생한 까닭도 덕치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이런저런 비리도 덕치로 포장해버리니 누가 법의 지엄함을 알겠습니까? 이런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나라 차원에서 덕치 보다는 법치를 높이 사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면 명덕유형(明德惟馨)이 쓸데없는 것이냐?”

    장곤 선생님께 감사함을 느낀다.

    스승의 은혜가 새삼 거룩하다.

    옛날의 나였다면 형님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명덕이가 어쨌다구요? 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명덕 유형은 《서경》의 군진편에 나온 말이다.

    한마디로 사회지도층이 이상적인 정치를 펴게 되면 아름다운 향기가 신령들까지 감동시키게 되는데, 이 덕치를 잘 베풀어 신들을 감동 시키면 따로 신들에게 제물을 바칠 필요도 없다는 뜻이 담겼다.

    “아뇨. 아주 쓸모가 없진 않겠지요. 하지만 한비자와 관자가 어찌 법가(법치)를 우선했겠습니까? 사람의 본성을 생각해본다면 덕치는 허상에 가깝습니다.”

    한비자는 오늘의 법치주의를 주장한 철학자 중 한 사람이다.

    전생에는 그냥 이름만 들었던 양반이지만, 내가 살아가고 있는 16세기에선 빠지면 섭한 인물이라 귀에 딱지 앉도록 들은 이름이기도 하다.

    “물론 덕치는 듣는 것 자체는 좋습니다. 덕으로 치국한다는 게 어찌 틀린 말이겠습니까? 하지만 나라의 정치에 적용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편전이 잠시 술렁거렸다.

    “하지만 대감. 덕치는 굳이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재지사족들의 발호를 막기 위해서도 필요한 정치 수단입니다. 덕치가 어찌 치국에 용이하지 않겠습니까?”

    대사성 이점이다.

    잠깐 점쟁이에 빙의해서 예견해본다면 이점 씨는 조만간 갈려나가지 않을까 싶다.

    저 자리는 장곤 선생님이 꿰찰 것 같은 어떤 느낌적인 느낌이다.

    “옛날 사람들은 늘 말하더군요. 덕치가 경지에 이르면 성모(임금이 통치하는 방식)가 어찌 되던 그 나라에는 우환이 사라진다. 지극한 덕치를 우선하여 통치의 으뜸으로 삼는다면 신민이 자연히 본인들의 도리를 다 하여 태평성대를 구가 할 것이다. 덕치를 행하는 나라의 백성은 어질고 또 천수를 누리게 된다.”

    “맞습니다. 덕치가 경지에 이르면 성모가 어찌 되든 그 나라에는 우환이 사라지게 되지요. 또 덕치를 행하는 나라의 백성은 어질고 천수를 누리게 되니 이는 곧 인수(仁壽)를 뜻하지요.”

    역시나 옛날 같았으면 여기서 말문이 턱하고 막혀버렸을 것이다.

    고사나 어떤 구절을 인용해 반박 할 수가 없으면 여기서는 벙어리나 다름이 없어지니까.

    하지만.

    “그럼 저 옛날 순 임금이 공공과 환도, 삼묘와 곤. 이 네 사람을 벌주니 천하가 모두 복종했다는 말은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물론 이 말은 서경 순전 편에 나온다.

    “네 사람을 벌준 건 덕치가 아니라 법치 아니었습니까.”

    “형벌이 중도를 잃지 않아야 인심이 복종하는 것이니 어찌 덕치를 염두에 둔 필벌이 아니었겠습니까?”

    “형벌이 중도를 잃지 않아야 인심이 복종한다 하셨는데 우리 나라의 형벌은 중도를 잃은 지 오래이지 않습니까? 아까 말했다시피 똑같은 죄를 저질러도 판관들마다 판결을 달리 합니다. 엇비슷하기라도 하다면 법조의 해석이 달라 그럴 수 있다 여기겠지만, 어떤 사람은 방면이고 또 어떤 사람은 장형을 맞고, 또 어떤 사람은 관아에 끌려가서 병신불구가 돼서 나오는데, 이게 덕치는 아니잖습니까?”

    “하지만 그건······.”

    “대원군의 말이 일리가 있으니 대사성은 말을 삼가라.”

    “···”

    “과연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벌을 집행하는 것은 역시 사람인지라 진성이 네 말대로 법치를 높이 산다 해서 최도경의 사태와 같은 일이 재발치 말란 법도 없다. 이에 대한 해결책도 있겠더냐?”

    “각 도에 도성의 포청 같은 두고, 수령이 갖고 있는 법권은 회수하며, 그 법권을 신설할 포청에 부여한다면 수령이 어찌 경거망동하겠습니까?”

    “포청을?”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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