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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277화 (277/365)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77화>

***

경기도 광주목 한터골.

마을의 중심부에 있는 기와집은 무척 컸다.

족히 70칸은 넘어 보였고, 대저택에 걸맞게 입구는 두군데였다.

정문은 삼문(三門)으로 되어 있었고, 그 동편에는 도성의 간문(間門)처럼 작은 샛문이 있었다.

그런 삼문의 좌우로 줄행랑이라는 표현 그대로 행랑이 줄지어 늘어서있었는데 어지간한 사람들은 이 줄행랑만 보고도 줄행랑을 칠 정도로 저택은 위엄을 갖추고 있었다.

저택의 주인은 흔히 한터골에서는 최 생원으로 불리는 최도경.

으레 최 생원으로 불리지만 사실 초시(初試)에도 낙방한 별 볼일 없는 인사였다.

그나마 조부가 일군 재산을 어디 탕진하지 않고 그대로 물려 받아 떵떵거리며 살고 있지, 지닌 학식이나 인품은 차라리 기생에게나 기대하는 게 나을 정도로 덜떨어졌다.

물론, 최 생원은 세상의 모든 소인배들이 그러하듯 본인이 부족하단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열여덟의 나이에 소과 급제를 목표로 과거를 봤고, 지금 마흔 셋의 나이가 되도록 포기를 모른 채 식년시마다 과거에 응시했으니까.

그런데도 줄곧 떨어지기만 하니, 막연하게 불혹 쯤에는 붙겠지··· 하던 희망도 사라졌고 안 그래도 괴팍한 성격은 더 괴팍해지고 있었다.

오죽하면 한터골 주민들은 최 생원에 이어, 최 요마(妖魔)라는 별명까지 붙인 채 수군거릴 정도였다.

그리고 요마라는 별명에 걸맞는 최 생원댁 저택에서는 연신 고성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뭐라, 놓쳐?”

“그게 아니옵고, 주인마님··· 잘 감시하고 있다가 밭에 나가 있길래 안심하고 잠깐 뒷간 간 사이에 사라져버려서······.

노복의 되도 않는 변명에 실소한 최 생원은 육중한 몸을 놀려, 쿵쾅쿵쾅 대청마루를 내려왔다.

그리고는 한치 망설임 없이 냅다 주먹을 내질렀다.

“그게 놓친 게 아니면 뭐란 말이냐!”

“어이쿠!”

“이놈이 이제는 엄살까지 부려?”

“주,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요, 주인마님!”

“죽을 죄? 지었지, 암 지었고 말고! 여봐라!”

“예.”

“복금이 그년 지금 어디있느냐.”

복금이란 말에 최 생원에게 한 대 얻어터진 노복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려갔다.

아닌 게 아니라, 복금은 예의 노복의 여식이었다.

“행랑 청소중인 걸로 압니다요.”

“그년 좀 데려와라.”

불통이라도 튈까, 최 생원의 지시에 다른 노복들은 후다닥 행랑으로 뛰어가더니 이제 열 여섯이나 됐음직한 소녀를 데려왔다.

영문도 모른 채 갑작스레 끌려왔음에도 소녀는 잔뜩 겁에 질려있었다.

아마 본인이 무슨 일을 당할지 짐작하고 있는 듯 했다.

그건, 복금의 아비도 마찬가지였다. 사색에 질려있던 복금의 아비는, 복금이 끌려오자 화들짝 놀라서 무릎 걸음으로 최 생원에게 나아갔다.

“주, 주인마님··· 어, 어찌 그러십니까요. 쇤네가 정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요. 차, 차라리 쇤네에게 매질을······.”

퍽!

“네놈이 죽을 죄를 지었으니 네 딸년이 대신 벌을 받는 것이 아니냐?”

복금의 아비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안절부절하기만 했다.

그건 복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바들바들 떨며 넙죽 무릎 꿇었다.

“주, 주인마님. 사, 살려주시어요.”

최 생원은 벌벌 떨고 있는 복금에게 다가가더니 그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억!”

“내가 널 죽이긴 왜 죽인단 말이냐? 네년 몸값이 얼만데?”

“주, 주인마님······.”

찰싹!

최 생원이 복금의 뺨을 가격하자, 주위에 모인 노복들 모두 눈을 질끈 감았다.

구타는 한차례로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게 시작이었다.

표현 그대로 난타가 이어졌다.

가냘픈 복금은 처음에만 비명을 몇차례 터뜨리다가, 이후에는 억억 소리만 낼 뿐이었다.

더 잔인한 건, 그 모습을 복금의 아비가 그대로 지켜보게 했다는 점이었다. 고개를 돌리면 노복들을 시켜 다시 고개를 반듯하게 돌려세웠고, 몸을 돌리자 아예 몸을 기둥에 고정시킨 채 딸자식이 당하는 걸 보게 했다.

손속에 사정 두지 않던 난타가 행해진 지 얼마나 지났을까.

“헉헉.”

최 생원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복금의 아비에게 말했다.

“저년 옷은 네가 모두 발가 벗겨서 집 밖에 묶어둬라.”

“주, 주인마님 제발······.”

“네 딸년의 발가벗은 몸을 보고 욕정이 생길까봐 그런 것이냐? 의식도 없겠다, 범하면 그만 아니냐. 천한 년놈들끼리 천륜이 어디있고, 정조가 어디 있으랴?”

“크흑.”

“어허, 기어코 네 딸년 거적에 실려나가는 꼴을 보고자 함이냐?”

노비라 해서 수치심이 없을 리는 없었지만, 저항했다가는 무슨 꼴이 나는지 복금의 아비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결국 부르터질대로 터진 복금을 업고선 뜰을 빠져나갔다.

그런 복금의 아비를 보고 실소한 최 생원이 장년 노비 하나에게 말했다.

“저놈이 상전 말을 거역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니, 금돌이 네가 가서 복금이 옷을 제 손으로 발가 벗기고 제 손으로 집 밖 나무에 묶어 두는지 잘 감시하거라. 혹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일을 봐주다간, 어찌 될진 잘 알겠지?”

꿀꺽.

“아, 알겠습니다요.”

장년 노비가 장내를 빠져나가자, 마루에 철푸덕 주저앉은 최 생원이 이번엔 중년 노비에게 말했다.

“그럼 지금 놓친 게 을동이 그놈 한 명 뿐이냐?”

“그, 그렇습니다요.”

“흠. 혹 을동이 돌아와서 빚을 상환하겠다면서 날 찾는다면 출타 중이라고 해라. 억지로 집에 들어오려 하면 매질해서 내쫓고. 무슨 말인지 알겠지?”

“···예.”

“출출하니 부엌에 일러서 간식거리나 좀 내어오라 해라. 아, 그러고 보니 어제 과편(일종의 젤리)이 들어왔지?”

“그렇습니다요.”

“그거나 내어오도록 해라.”

“예.”

잠시 후.

노복이 과편을 내어오자, 대청에 앉은 최 생원은 쩝쩝거리며 과편을 음미했다. 그리고 때마침 금돌이가 복금의 아비와 돌아왔다.

“제대로 발가벗겨서 묶어 뒀느냐?”

복금의 아비는 반쯤 넋이 나간 듯 말이 없었고, 대신 금돌이 답했다.

“예.”

“복금이는 아직 의식 없고?”

“그렇습니다요.”

“찬물 끼얹어서 깨워라.”

“···알겠습니다요.”

금돌이 돌아가고, 마저 과편을 집어 먹으려던 그때.

밖이 소란스러웠다.

“마을에 잔치라도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잔치가 있을 턱이 없었다.

귀를 기울여보자, 소음이 자세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연주소리?’

무슨 연주소리 같은 게 났다.

‘사또 놈이 행차 할 리는 없고······.’

그놈은 일전에 망신살을 당한 후로 한터골엔 얼굴 한 번 안 내비친다.

“밖이 어찌 소란스러운지 가서들 알아보거라.”

백문이불여일견.

노복들을 시킨 최 생원은 다시금 과편을 집어들었다.

맛이 썩 괜찮았다.

*  * *

장장 세시진이 꼬박 걸려 한터골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늦게 걸릴 거리는 아니었지만, 임금의 행차인 걸 알아본 일부 백성들이 격쟁(호소)을 하는 통에 그걸 일일이 들어준답시고 늦고 말았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한터골.

최 생원이란 놈의 집이 어딘지는 굳이 을동에게 묻지 않아도 훤히 알 수 있을 듯 했다.

한터골에 기와집은 딱 한 채 있었다.

그것도 어마무시한 크기의.

저 기와 한 장, 한 장에는 백성의 고혈이 새겨져 있을 터.

분노를 참을 까닭이 없었다.

“아니, 그런데 저게······.”

융의 시선에 이상한 게 잡혔다.

말만한 처자가 최 생원집 바로 앞 고목에 묶여 있었다.

단순히 묶여 있는 거라면 차라리 이상하지도 않지, 나체로 묶여 있으니 눈을 어디다 둬야할지 모를 정도였다.

저도 모르게 을동을 바라보자, 을동은 익숙한 일인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무슨 일인지 상세히 내막을 알려주었다.

“노비 훈육을 그리 잔혹히 한단 말이냐?”

“예. 짧게는 달포에서 길게는 세 달에 한 번씩 있는 일입죠.”

“허.”

“참의(안처직).”

“예, 전하.”

“참의가 먼저 가서 풀어주도록 하고, 옷을 좀 입히도록 해라. 천한 노비의 팔자라 한들 수치심이 없을 리가 없을 텐데 사내들이 제 몸을 훑으면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

“알겠사옵니다.”

안처직이 먼저 말허리를 걷어 차고 앞으로 나아갔다.

잠시 후.

처직이 최 생원집 노비를 풀어주자, 융은 그제서야 말허리를 걷어찼다. 뒤따라오던 취타대가 곧 임금의 행차를 알리는 여민락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마병들은 최 생원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좌우로 갈라져 그 주위를 샅샅이 포위했다.

소란을 들었는지 그 집 노복들이 뛰쳐 나왔다.

대갓집 답게 삼문이 어찌나 크고 높은지, 굳이 말에서 내릴 필요도 없어보였다. 융은 뛰쳐나온 노복들을 가로질러 삼문을 지나쳤다.

“주상 전하의 행차시다! 모두 예를 갖추지 못 할까!”

어리둥절해 하던 노복들은 화들짝 놀라 부복했다.

그런 노복들을 가로 지른 안처직이 목청을 가다듬고 소리쳤다.

“최도경은 속히 나와 어전에 예를 갖추라!”

두어차례 소리치자, 웬 중년인이 나왔다.

“아니, 그게 무슨··· 헙!”

“네가 최도경이렷다?”

얼어붙은 최 생원이 가타부타 말이 없자, 안처직이 한달음에 내달려 그 복부에 발을 날렸다.

철푸덕!

“이놈, 전하께서 하문하셨다!”

“저, 저, 저, 전하? 저, 전하가 어찌······.”

아무래도 사태파악이 되질 않는 것 같았다.

“네가 최도경이가 맞느냐?”

다시 한 번 묻자 얼어 있던 최 도경은 뒤늦게 사태를 파악했는지 눈을 부릅 뜨고는 넙죽 엎드렸다.

“소, 소, 소신 최 가 도경이 맞나이다. 주, 주상 전하를 창졸간에 뵈오니······.”

융은 어줍잖은 소리를 늘어놓는 최도경을 일별했다.

“이놈의 가족들도 모조리 끌고 나와라.”

머잖아 안방에 있던 이집 딸과 처가 군사들에 의해 끌려나왔다.

“부, 부인! 장혜야!”

“제 가족 귀한 줄 아는 놈이 어찌 남의 가족 귀한 줄은 모른단 말인가.”

“저, 전하. 시, 신이 무슨 자, 잘못이라도 저질렀사온지······.”

“네 정녕 을동의 일을 모른 척 할 셈이냐?”

“그, 그건······.”

“네 벽보나 신문을 보았다면 알 테지만, 내 앞으로 장리를 놓아 백성의 고혈로 재산을 증식하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목을 쳐 마땅히 고을의 관아에 효수하리란 명을 내렸다. 네놈은 어명이 못 마땅했던 것이냐, 아니면 폭군의 명은 들을 가치도 없다 여겼던 것이냐?”

“포, 포, 폭군이라니 당치도 않으시옵니다! 저, 전하께오서는 참으로 동국(조선)에 하늘이 내린 요순에 필적할 만 하옵고, 그리고······.”

어떻게든 제 잘못을 숨기려 구차한 변명을 해대는 최도경이 역겨웠다.

융은 고개를 돌려 을동을 바라봤다.

“곧 소란이 있을 터이니 을동이 너는 나가 있도록 해라.”

“아, 알겠사옵니다.”

을동이 나가자 융은 최도경을 직시했다.

“내 분명······.”

꿀꺽.

“분명 장리로 백성의 고혈을 짜내지 말라 일렀을 터인데······.”

바들바들.

“내 본시 이곳에 오면서 네놈을 그저 젓갈만 담가버리고 말 생각이었다만, 도착하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

“저 역적 년의 옷을 모두 발가벗겨라.”

융이 말한 역적 년은 다름 아니라 도경의 딸이었다.

“그, 그, 그게 어, 어인 말씀이시온지······.”

“네 딸년의 옷을 네 손으로 발가 벗기라 했다.”

“아이고, 전하! 전하 어찌······.”

“너는 임금의 명을 거역한 역적이고, 저년은 역적년의 딸이니 이제 하찮은 노비로 전락하게 될 텐데, 하찮은 노비 따위에게 수치심 따위가 있으랴?”

“저, 전하. 제발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쿵! 쿵!

최도경이 미친 듯 머리를 바닥에 찧어댔다.

“밖에 있던 그 계집종의 아비도 그리 말했을 테지. 묻겠다.”

“하, 하, 하문하시옵소서, 전하!”

“그 계집종의 나이가 올해로 몇이더냐?”

“여, 열 여섯이옵니다······.”

“열 여섯··· 규방에 있었다면 그런 모욕은 입진 않았겠지.”

“···하, 하오나 복금이는 노비이옵니다.”

융은 냉소했다.

“이제 네 딸년도 노비다.”

최도경이 울며불며 사정했지만, 융은 들은 체도 않았다.

“어서 발가벗겨라.”

“전하, 제발······.”

“네가 임금의 말을 한 번 거역하더니, 이제는 두 번 씩이나 거역을 해? 여봐라!”

“옛!”

“저년을 당장 난장쳐라!”

금군들이 멈칫하자, 말에서 내린 융은 손수 몽둥이를 쥐어들고 도경의 딸을 난장쳤다.

한참을 내려치자 곧 도경의 딸이 의식을 잃었다.

“의식을 잃었으니 발가벗기기 더 쉬울 것이다. 어서 벗겨라.”

“크흐흐흑, 전하.”

“못 하겠다면 네놈 집안의 형제란 형제들은 모조리 잡아 족치고, 네놈 집안의 남자란 남자들은 모두 잡아 족쳐 네놈 집안의 씨를 말려 버리리라.”

오금이 저리는 말에 결국 도경이 어렵사리 발길을 뗐다.

한참이 지나 도경의 딸이 나체가 되자 융은 처직에게 말했다.

“저놈도 발가벗겨서 두 부녀를 쌍으로 한터골에서 조리돌림 시키라. 조리돌림 시키고 나면 딸년은 노비로 삼되, 을동이 이같은 악행을 고발한 공이 있으니 을동에게 하사하라. 또한 저놈은 곱게 죽이지 말고 사지를 육시내서 죽이도록 하라, 육시낸 신체는 모두 소금에 절여버리고, 절여진 신체는 팔도에 나누어 보내 각 도에서 이 일을 경계도록 하라.”

“부인은 어찌 하올까요?”

“저년도 을동에게 하사하도록 하고, 역적의 적몰될 자산이 얼마인진 모르겠으나 내 보니 상당수일 것이다. 그 자산중 3할은 이 악행을 고발한 을동에게 포상하여 그 공을 기리라.”

“알겠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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