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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267화 (267/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67화>

    ***

    “하면 역적들은 어찌한다. 4700명을 모조리 참할 수도 없고······.”

    “따로 뜻하신 바가 있으시옵니까?”

    “보통 옥사의 일을 살펴보면 주모자는 참형에 처하고 나머지는 전가사변에 처하거나, 귀양을 보낸다. 이번 역적 질은 지난 옥사와는 다르다 할지라도, 내 개인적인 감정으로 어찌 이들 모두를 참하겠는가.”

    “주모자들은 모두 능지하고, 죄질이 비교적 가벼운 자들은 내수사의 노비로 삼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이미 입을 맞춘 노공필의 의견이었지만, 융은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4천이 넘는 자들을 내수사의 노비로 삼는다면 말들이 많을 듯 한데?”

    내수사는 왕실 재정을 위해 설치 된 관아였다.

    결국 내수사의 노비로 삼으라는 말은 왕님이 다 가져라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이미 목숨을 구명해준 것만 해도 하늘마저 감탄할 성은인데 누가 왈가왈부 할 수 있겠사옵니까?”

    “그런가?”

    “그렇사옵니다.”

    “하면 내수사의 노비로 삼도록 하고, 소용이 닿는 일이 있으면 그때 마다 처리하면 되겠구만.”

    “참으로 통쾌하고 명료한 전교시옵니다.”

    고개를 끄덕거린 융은 마침 생각난 게 있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고 보니 경들에게 자문을 구할 것이 또 있다.”

    “하문하시옵소서.”

    “보통 역적의 재산은 적몰하는데, 이번에는 4700명에 이르는 역적들이 잡혀 들어왔다. 이들의 재산을 모두 적몰하는 것이 옳겠는가, 아니면 어찌 하는 게 좋겠는가?”

    역시나 이미 입을 맞춘 노공필이 말했다.

    “성상의 말씀처럼 보통 역적의 재산은 적몰하옵니다. 그런데 옥사의 규모가 크다 하여 재산을 적몰치 아니 한다면, 후세에 본이 되진 못 할 듯 하옵니다.”

    “으음. 경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 일단 역적은 역적인데 재산을 적몰치 아니 한다면 후세의 왕들이 곤란해 하겠지.”

    “그렇사옵니다.”

    “그럼 4700의 역적들의 재산은 모조리 적몰하는 것으로 하고··· 다만 역적의 조부와 애비들은 어찌 처리한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성은을 베푸심이 어떻겠사옵니까?”

    “성은을?”

    “예. 이미 역적의 조부와 아비들은 역적을 잘못 훈육하고 양육한 죄가 있사옵니다. 국법에 의하면 응당 역률로 다스려도 할 말이 없는 처사이지만 1만이 넘는 이들이 일시에 목숨을 잃거나 노비가 된다면 하늘이 감응하지 못 할 수도 있으니 재해가 들끓을 수도 있나이다.”

    “일리가 있다. 계속하라.”

    “그러니 그들에게 역적의 죄는 묻지 않되, 역적을 잘못 훈육, 양육한 죄로 속(면죄를 위한 돈)만 바치게 하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그랬다가 후세에 또 다른 역적이 나올지도 모르지 않은가?”

    “이는 성은이옵니다. 성은에 어찌 역심을 품는 자가 나오겠나이까?”

    “흐음.”

    고심하는 기색을 보이는 융이었지만, 사실 이 역시 계획의 일환이었다.

    융은 역적의 부친과 조부의 재산을 적몰할 생각은 애당초 갖지 않았었다.

    역적 당사자 4700명에, 그 조부와 아비들을 합하면 14,100명이다.

    당장 4700명의 역적 당사자들에게 적몰하는 재산만 해도 천문학적인 액수일 터였다.

    어쩌면 백성들에게 10년간 조세를 하지 않아도 될 만한 돈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과욕을 부려, 그 조부와 아비들의 재산까지 모조리 적몰해버린다면 ‘진짜’ 옥사가 일어날지도 몰랐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셈이니까.

    대신, 이걸 성은과 속으로 포장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왕이 역적의 조부와 아비인데도 불구하고 약간의 성의 표시만 하면 처벌치 않는 성은을 베푸는 셈이니 말이다.

    더군다나, 대외적으로 임금이 자비롭다는 인상도 줄 수 있는 한 편, 한차례 성은으로 마구잡이로 날뛰는 재지사족들을 단번에 휘어잡을 수도 있었다.

    “하면 속 바치는 돈은 얼마가 좋겠는가?”

    “너무 적어도 문제이고, 많아도 문제겠습니다만 신이 생각하기로는 자의에 맡기는 것이 어떻겠사온지요?”

    “자의?”

    “예.”

    “당사자들에게 맡긴다··· 흐음. 그것도 괜찮은 생각 같다.”

    당장 그들에게 백미 10석을 정해서 속 바치는 돈으로 내게 하라 한다면 강요하는 인상이지만, 너희들 형편에 따라 알아서 내라 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속 바치는 돈이 너무 많다는 비난을 받을 필요도 없고, 속 바치는 돈이 너무 적다는 평가를 받을 필요도 없으니까.

    “교성군의 의견이 참으로 탁월한 듯 하니 마땅히 이를 좇겠다. 이견이 있는가?”

    “···”

    역시 있을 턱이 없었다.

    “하면 이를 대외에 포고하여 신민 모두가 나의 어짊을 알게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무종실록(武宗實錄) 1508년 4월 20일 기사》

    「···하니 사신은 논한다. 교성군【곧 노공필이다】은 본시 젊을 때는 조금의 기개가 있었고 옥사가 벌어지면 두려운 마음에도 선비를 구함하려는 노력을 반푼이나마 기울였다. 그런데 교성군에 봉해지고 난 뒤부터는, 교성군이 아니라 교언군(巧言君)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사홍은 세간에 간신이라는 평이 다분한데 오늘날 사홍은 그 발치도 못 따라갈 지경이다. 큰 어른이 수구가 된 것이 아니므로 딱히 안타까운 마음을 갖는 사람은 없었으나 후세에 본이 될 만한 자는 아니다.」

    ***

    스무일 뒤.

    역적 주모자로 처벌 된 사람은 총 2명이었다.

    네자릿수가 넘어가는 대옥(大獄)치고는 주모자가 적어도 너무 적은 편이었지만 대대적인 사사가 있게 된다면, 자칫 균형이 어그러져 역모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정치적인 판단에 딱 2명만 역적 주모자의 혐의로 처벌이 됐다.

    2339:1의 경쟁률을 뚫고 역적 주모자가 된 둘은 바로 강범경과 권상한이었다.

    사실 역적 자체는 누가 되더라도 상관이 없었다.

    나주의 나석수가 되든.

    공주의 공석린이 되든.

    하지만 강범경과 권상한이 가장 악질적으로 입을 놀려댔다.

    회릉을 회묘로 칭하는 둥, 조정을 간신이 장악했다는 둥, 걸왕의 폭정이 이에 비길 수 있겠냐는 둥······.

    그나마 조정을 간신이 장악했다고 입을 놀린 권상한은 비교적 가벼운 형벌인 사사가 떨어졌지만, 회릉을 회묘로 칭하면서 걸왕의 폭정에 선왕이 통탄을 금치 못 할 거라 입을 놀려 댄 강범경은 재자사족들을 선동해, 대옥을 일으킨 주범이라 해서 거열에 처해졌다.

    그 몸은 여섯 조각으로 찢겨져 나갔고, 머리는 광화문에 효수가 됐다.

    나머지 신체는 모두 소금에 절여 젓갈로 담가 팔도에 본으로 삼겠다며 보내졌고, 강범경의 조부 강석정과 부친 강병일은 극악무도한 역적을 낳았다 해서, 강범경의 처형 전날, 그 유골을 망치로 빻아버리고 바람에 흩날려졌다.

    다만 이 외에도 처형 된 사람은 12명이 더 있었다.

    그들은 시위 현장에서 가장 과격하게 시위를 한 자들이었는데, 모두 권상한처럼 사약을 받는 은혜를 입었다.

    둘을 포함, 총 14명이 옥사로 처형됐지만 사실 이것조차 옥사의 규모치고는 적은 편이었다.

    최소 수백이 사사돼도 할 말이 없는 규모였으니까.

    일부는 이런 관대한 처결에 성은이 과연 하해와 같다는 말을 했고, 또 일부는 처형자가 적은 건 고의적인 옥사가 분명하다 수군거렸으며, 또 일부는 모조리 잡아 족쳤어야 하는데 안타깝다 수군거렸지만, 이미 다 끝 난 일이었다.

    더군다나 옥사의 진정한 주범(?)인 왕의 관심사는 그깟 역적들에 있지 않았다.

    “···그렇게나 많이?”

    눈을 동그랗게 말아 뜨고 되묻는 임금에 노공필은 본인이 다 흡족한지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예, 전하. 이것들이 얼마나 백성들의 고혈을 짜냈으면 이리 많은 재산들이 적몰 되었겠사옵니까? 안타깝고 또한 통탄을 금치 못 할 일이옵나이다.”

    옥사가 있은지 20일.

    역적들의 재산이 차례차례 내수사로 입금(?) 됐다.

    그 천문학적인 액수에 융은 기함을 금치 못 했다.

    그는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가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경의 말이 맞다. 이놈들이 얼마나 백성의 고혈을 짜냈으면 그리 많이······.”

    4,679명의 역적들에게 적몰한 재산은 정말 천문학적이었다.

    먼저, 처형 된 14명과과 시위 진압 도중 금군의 칼에 목숨을 잃은 자들을 제외하면 도합 4,645명의 노비가 내수사에 편입됐다.

    요즘 시중에 장정의 노비 가격이 정조(正租)로 20~25석에 거래 되고 있는 걸로 아는데 20석이라 감안을 해도 9만 2천석의 값어치였다.

    하지만 이들의 값어치는 고작 20석에 국한되진 않을 터였다.

    4,645명이 모두 식자였다.

    단순히 소학 몇 줄 깨우쳤다고 글방을 여는 돌팔이 훈장 정도의 학식이 아니라, 사서는 물론 삼경까지 깨우친 식자들.

    그 점을 감안하면 족히 40만석의 값어치는 갖게 될 테지만, 이건 약과였다.

    적몰 된 전토가 82,678결.

    패물이 220만석 상당.

    적몰한 노비가 26,771구.

    서적이 20만여권.

    종이가 800만권.

    가옥이 3,668채.

    곳간에 있던 압수한 백미가 31만석.

    곳간에 있던 압수한 잡곡이 19만석.

    기타 잡물이 30만석 상당······.

    이마저도 그들이 수집한 고화나 고서적, 도자기는 감정평가(?)에서 제외가 됐다.

    수천점에 달하는 고화와 고서적, 도자기였다.

    얼마의 값어치를 매겨야 할지 시간이 부족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점은 아직 끝이 아니란 점이었다.

    융은 역적의 조부와 부친에게는 은전을 베풀어 속만 바치면 그 죄를 사해주겠다는 말을 팔도에 반포했었다. 역적의 조부와 부친이 있는 각 지역의 수령방백들로부터, 얼마를 속으로 바칠지 적어 올리란 명을 내렸고 그게 바로 어제 전달됐는데 그것들이 또 어마무시한 액수다.

    전토가 18,621결.

    패물이 90만석 상당.

    가옥이 677채.

    백미가 43만석.

    잡곡이 8만석······.

    물론 이것도 끝은 아니었다.

    “또한 역적들이 가지고 있는 채권문기와, 이렇다 할 재산이 없는 역적의 조부와 아비들이 속으로 바친 채권문기가 있사온데 이게 모두를 합하여 백미가 9만석, 잡곡이 31만석이었사옵니다.”

    “허!”

    기가 차서 말문이 막혀버렸다.

    일단 다른 건 제쳐두고 전토.

    전토를 모두 합하면 대략 10만 결이 넘었다.

    그런데 호조의 토지대장에 올라간 팔도의 모든 전토를 합하면 200만결이다.

    이마저도 내수사전과 궁방전, 공신전들을 모두 포함한 수치인데 이것만 보더라도 벌써 팔도 전토의 20분의 1이 내수사 소유로 편입이 된 것이었다.

    “하도 액수가 많아 어찌 처분해야 할지 가늠도 안 간다. 어찌 하면 좋겠는가?”

    “돈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단지 어찌 소용할지 시간이 부족한 것이니 차차 생각해보심이 어떻겠사옵니까?”

    끄덕끄덕.

    “그래야겠다. 이건 도무지··· 아! 교성군.”

    “예, 전하.”

    “내 알기로 시중의 이자는 4할이 저렴한 편이요, 5할이 적정 이자요, 많게는 6할을 뗀다고 들었다. 역적들에게 적몰한 문기들의 이자는 어떻더냐?”

    “그건 어찌··· 아직 모두 파악하진 않았사옵니다만, 얼핏 5~6할이었사옵니다.”

    “6할?”

    “예.”

    “아니, 이런 때려 죽여도 시원찮을 놈들이 있나! 6할을 이자로 매겨버리면 백성들은 이자 갚는 일만으로도 허리가 휠 것이다! 백성들에겐 무간지옥이 바로 현세겠도다.”

    “···”

    “채권문기는 모두 불살라라.”

    “하, 하오나 백미가 9만석이옵고, 잡곡이 31만석이온데······.”

    여기에 적용 된 이자는 제외한 수치였다.

    원금만 9만에 31만석이란 말이었다.

    “그럼 내 저 잡배들처럼 고리를 놓아 백성을 궁핍하게 하는 데 일조하란 말이냐!”

    최근에 융의 총애와 신임을 사긴 했지만 언제 예전처럼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가 될지 몰랐다.

    그리고 공필은 잘 알고 있었다.

    막장짓(?)을 벌인 지금 임금의 총애를 잃는 순간, 그를 노릴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걸.

    당장 4,679명의 사족과 그 유족들에게 돌팔매 맞다가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털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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