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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266화 (266/365)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66화>

***

나석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 속에서 한줄기 빛이라도 발견한 것 마냥, 포승줄에 꽁꽁 묶여 있음에도 팔딱거렸다.

“대, 대감! 소인은 죄가 없사옵니다! 억울하옵니다, 대감!”

“내가 죄인을 어찌 아는지는 안 궁금한가 보지?”

“···”

“언제는 나더러 임금의 눈과 귀를 가리는 간신 중의 간신이라 무함하지 않았더냐?”

꿀꺽.

“죄인의 말에 따르면 나야, 간신 중의 간신이라지만 죄인은 역적 중의 역적이니··· 이거야 뭐, 잘못된 만남도 이런 잘못된 만남이 없구만. 아니 그런가?”

“대, 대감. 그, 그건······.”

“크흠. 조부 나 아무개께서는 양제찰방을 지내셨구만? 부친께서는 진사셨고··· 허어. 대대로 문벌이 있으면서도 충직한 집안 같은데 어쩌다 이런 역적이 났을꼬. 쯧쯧.”

“어, 억울하옵니다, 대감. 소인들은 정말로 전하께 직언을 드리기 위해······.”

“이놈!”

“···”

“그것이 어찌 직언이란 말이냐! 언제부터 직언을 국정을 볼모로 잡고 했단 말이냐? 4월이면 조정이 가장 바쁠 시기인 걸 몰랐단 말이냐?”

“그것은 소인들이······.”

“크흠. 됐다. 네놈들이 역적질을 공모했다는 사실은 이미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사실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지 말라.”

“대, 대감께서는 소인들이 정말 역적 같으시옵니까? 소인들은 우국의 열정과 충정어린 마음으로 상경한 것이옵니다. 그래서 전하께 간언을 드린 것이옵고, 그 간언을 토대로 서얼허통을 철회하여 달라는 말씀을 아뢴 것 뿐이옵니다. 이것이 역적질이라면 대관절 역적이 아닌 자가 팔도 어디에 있겠사옵니까?”

“네 정녕 역적질을 한 게 아니라면 대군저 문은 어찌 두드린 것이냐? 추안을 보니 대군저를 찾았다가 끌려 왔다던데 말이다.”

“아, 그게······.”

“네놈이 미시초(오후1시)에 잡혀 들어왔으니 정황을 헤아려 보면 난리가 일어나자마자 너는 몸을 내뺀 것이다. 4700명이나 되는 역적들을 일시에 잡아 들일 순 없었으니 충분히 내뺄 여유가 있었겠지.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대군저로 향한 것이다. 주상 전하께서는 대감을 총애하는 바가 깊으니, 그곳에 가면 어떻게 구명할 길이 있으리라 여기고 말이다. 아니더냐?”

“아, 아니옵니다.”

“그렇다면 더 큰 일이로다. 대감을 해하러 간 것이 아닌가?”

나석수가 펄쩍 뛰었다.

“겨, 결단코 아니옵니다, 대감!”

“이것도 아니다, 저것도 아니다··· 그럼 밥 동냥 하러 간 것이냐?”

푸훗- 나장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석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지만, 할 말이 있을 턱이 없었다.

죄인이 고개를 떨구자, 공필은 삼척동자도 맟출 만한 본인의 추리가 맞았다는 데서 묘한 희열을 느꼈는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추안을 들췄다.

“이러한 정황과, 네가 사전에 공초한 사실을 보면 너는 필히 역심을 품은 역적이다. 그런데도 자꾸 직언을 위해서였다, 가증스럽게 구니 너는 미천한 얼자들만도 못 한 소신을 갖고 있구나.”

“대감!”

“어허. 이놈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나. 지금 사태 파악이 제대로 안 되는 것이냐? 어디, 역적 놈이 위관에게 호통을 친단 말인가, 호통을! 네 정녕 네놈 집안이 풍비박산 나봐야 정신을 차린단 말이렷다? 이놈. 고개를 들어보거라.”

“···”

“부관참시가 무슨 말인지는 알 것이다. 아느냐?”

“아, 아옵니다.”

“쇄골표풍은?”

“자, 잘 모르겠나이다.”

“부술 쇄에 뼈 골, 질풍 표. 바람 풍 자를 써서 쇄골표풍이다. 네 조부와 부친의 무덤을 파헤치고 그 유골을 망치로 잘 빻아서 바람에 던져버릴 수도 있다는 말이지, 네놈이 보는 앞에서.”

꿀꺽.

“자, 네 생각하기에 역적을 낳은 네 조부와 부친이 받을 벌로는 부관참시가 좋겠더냐, 쇄골표풍이 좋겠더냐?”

“대, 대감······.”

“하면 역신인 네가 보기에 나는 간신이냐, 충신이냐?”

“···”

“대답이 없는 걸 보니 쇄골표풍이 좋겠도다.”

“추, 충신이시옵니다! 교성군 대감은 만고에 다시 없으실 충신이시옵니다!”

공필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다면 나는 이 일을 더 공명정대하게 처리해야겠구나.”

“···”

“내 너 말고도 앞으로 추국해야 할 죄인이 수백에 이른다. 어서 자복하자꾸나. 추안을 살펴보니 네가 공초한 내용은 사실과는 다르다. 너는 평소에 은근히 임금을 교만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학식은 비루하면서도 성품은 교만하니 불경스럽기 짝이 없게도 임금을 교(敎)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고 있었던 게지. 그런데 때마침 전하께서 서얼허통에 대한 특지를 내리니 영 마음에 안 들었던 게다.”

“···”

“말해보거라. 서얼허통에 대한 특지를 어찌 기훼제서한 것이냐?”

“그, 그건 고, 고금에 이르러서··· 아니, 구, 국초부터······.”

“네놈이 이 금부에 역적으로 끌려와서 까지 감히 종사를 논한단 말이냐!”

“···”

“그래, 들어나보자. 국초부터 어쨌다는 것이냐? 국초부터 서얼을 금고한 기조가 있었고 선왕대 그런 법령이 정해졌으니 응당 따라야 하는데 전하께서는 따르지 않았으므로, 역적 수괴 강범경에 감화되어 종친중 아무나 택일하여 옹립하려 했다? 그것이구나?”

“대, 대감. 소인이 어찌··· 아니, 신하된 자가 어찌 감히 그런 망측하고 불경한 생각을 할 수나 있겠습니까! 억울합니다!”

“네놈의 진술은 일관되게 모순적이다. 국초부터 서얼을 금고한 기조가 있었으니 따라야 한다는 것은 마치 옛적에는 귀인이 죽으면 순장을 했으니 친인과 가노를 지금에 이르러 순장해야 한다는 말과 다름이 없고, 국초에는 언문이 없었으니 지금이라도 언문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말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무릇 정치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거늘, 어찌 그에 순응하긴 커녕 역적 모의질을 한단 말인가. 전하께서 어찌 서얼을 허통하려 하셨겠느냐 말이다. 다 너 같은 역신 놈들 때문에 나라에 인재가 없어졌기 때문인 것이다. 네놈은 참으로 무엄하고 파륜적이다.”

“···”

“시간 없다. 자복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죄인에게서 대답은 없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공필은 나장에게 눈짓을 보냈다.

나장 둘이 나석수를 우악스럽게 끌어냈다.

“대, 대감! 대감! 살려주십시오!”

발악하는 나석수를 일별한 공필이 나장에게 말했다.

“죄인이 자복도 아니 하고 목숨줄이 끊기면 그만한 낭패가 없으니 손속에 사정은 두되, 다만 본인 죄를 뉘우치고 자복하겠다는 말을 입밖으로 꺼내기 전까지 고신을 멈추지 말라.”

“예!”

“자, 다음.”

의금부가 충신(?) 노공필에 의해 피와 비명으로 물들어갔다.

***

옥사.

이 옥사 만큼이나 서슬 퍼런 시국은 또 없다.

옥사가 한 번 일어나면 산 목숨 죽은 목숨 되는 건 순식간이다.

한 번 연루가 되면 최소 수십이 목숨을 잃고 그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오늘 날 일어난 옥사는 감히 서슬 퍼런 시국이라는 말로는 형용조차 할 수가 없었다.

한 번 옥사가 일어나면 어지간히 담이 큰 자들도 말을 아끼게 된다지만, 이번 옥사는 특히나 조심해야 했다.

이건 대옥(大獄)이었다.

옥사에 직접적으로 연루 된 사람만 네자릿수가 넘어간다.

이 말은, 그들의 사돈에 팔촌까지 연좌를 시키자면 어지간한 사람들은 죄다 엮이게 된다는 말이나 진배 없었다.

전례가 없는 대옥의 시기에 까닥 입 한 번 잘못 놀렸다가는 관복이 곧 수의가 되는 것이었다.

어지간한 크기의 옥사였다면 허침이나 이점, 김전이 역모에 연루 된 선비들을 구명하기 위해 어떻게든 안간힘을 썼겠지만,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건 그런 까닭도 있었다.

가뜩이나 비대해진 임금의 권력이었다.

옛날에는 임금이 죽어라 하면 죽는 시늉 정도로 끝났다면, 지금은 임금이 자결하라.

명을 내리면 죽는 시늉이 아니라 앉은 자리에서 칼을 거꾸로 쥐고 목에 쑤셔 박아야 할 판이었다. 그런 임금의 권력에 옥사까지 더해졌다.

옥사 때 만큼 왕권이 강해지는 때가 없는데, 옥사까지 겹쳤으니······.

편전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그런 가운데.

“보고서를 보아하니······.”

털썩!

임금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하고 있던 대신들은 침묵 속에서 임금의 말 한 마디가 떨어지자마자 넙죽 부복했다.

“하문하시옵소서.”

“죄질이 완악한 자들이 참으로 많은 듯 하구만. 교성군.”

“예, 전하.”

“경이 심문한 죄인들 가운데, 가장 완악한 죄인이 누구던가?”

“강범경과 권상한이 끝까지 시치미를 떼는 것이, 죄질은 극악무도하면서도 완악하기 짝이 없는 자들이었나이다.”

“과연 경의 말대로다. 추안을 보면 둘이 역심을 품은 건 명백한 사실인데 계속해서 잡아 뗀다니 두려운 마음마저 이는구나.”

“···”

“자백한 죄인은 모두 몇 인고?”

“나석수를 필두로 246명이 자복하였사온데 송구하옵게도 나머지는 시간이 부족하여 아직 심문 하지 못 했나이다. 신이 불민하고 미욱하여 성지를 제대로 쫓지 못 하였으니 벌하여주소서!”

“아니, 시간이 부족해 어쩔 수 없었던 것인데 내 경을 벌하긴 왜 벌한단 말인가.”

“그 성은이 과연 하해와 같나이다!”

“경이 지금 밤잠까지 설쳐가며 추국을 하고 있는데 마음 같아서는 내 친국을 하고 싶다만, 경에게 맡긴 것은 이 일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다.”

물론 객관적이고 나발이고 융이 노공필에게 위관직을 맡긴 것은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다.

친국을 열어서 본인의 손에 피를 묻힐 필요는 없으니까.

다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정말로 모르는 건지, 노공필은······.

“천만윤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과연 전하께서 제게 위관의 소임을 맡기신 것은 혹 사감(私感)이 개입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니, 이 일에 세인들이 왈가왈부하는 일은 있을 수 없을 것이옵나이다.”

“그래야 할 것이다.”

“물론이옵니다! 지금 전하의 치세는 가히 태평성대란 말로도 부족한 시기인데, 그러한 때를 맞아 감읍해하고, 눈물로서 이 치세가 만세에 이르길 바라진 못할망정, 본인들에게 티끌 해가 가는 특지가 있었다고 감히 역심을 품었으니 신은 신하 된 도리로서라도 신명을 다하겠나이다.”

융은 흐뭇하게 웃었다.

아첨인 건 알지만, 본시 아첨이란 건 알면서도 흡족한 법이다.

“경이 그리 말하니 내 부끄럽구나.”

“《정여립전》에 나온 것처럼 서얼들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 하는 것처럼, 한 사람의 신하가 태평성대를 태평성대라 부르지 못 한다면 어찌 민망한 일이 아니겠나이까?”

“푸핫.”

작게 웃음을 터뜨린 융은 대신들을 훑었다.

“지금 자백한 자들 중에 당상관들의 친인도 있던가?”

“없는 이를 찾기가 더 어려운 실정이옵니다.”

물경 4700명이 잡혀 들어왔다.

노공필의 말대로 어떻게든 연루가 될 수 밖에 없었다.

학연으로든 지연으로든, 또는 혈연으로든.

“교(敎)한다.”

“···”

“역적과 연루가 된 자는 이유불문하고 역률로 다스림이 온당한 일이지만, 역대의 옥사를 살펴 본다면, 어쩌다 연루 된 가노들마저 처벌한 일은 없다. 특히 나는 내 입으로 말하긴 민망하다만, 박원종의 난에 연루 된 자들 중, 태반에게 역적의 죄를 묻지 않는 은혜를 베풀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역적이라면 사돈에 팔촌까지 멸하는 게 기본 원칙이라지만, 정말로 그랬다간 팔도에 사람이 남아나지 않을 터였다.

보통 옥사가 터지면 당사자와, 그 집안만 화를 입지 먼 친척들까지 화를 입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인사에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는 있어도 말이다.

“하물며 이번 옥사는 잡혀 들어간 자들만 4700명이니 금부의 남간과 서간에는 모두 가둘 수가 없어 형조는 물론이거니와 육조의 관청을 임시로 옥사로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자들의 친인을 모두 역률로 다스린다면은 종친이라고 해서 연루되지 말란 법이 없다. 그러니 이번 옥사에서는 특별히 당사자와, 당사자의 친가의 조부, 그러니까 단 3대까지만 죄를 묻는 성은을 베풀고자 하는데 이는 어떠한가?”

“3대까지만 죄를 묻겠다는 성교는 혹 그들의 형제, 자매는······.”

“그들에게까지 죄를 묻는 것은 가혹한 듯 하니 당사자와 역적을 잘못 훈육한 조부, 그리고 역적을 잘못 양육한 아비에게만 죄를 묻겠단 뜻이다.”

이견이 있을 턱이 없었다.

사실 딱 3대까지만 죄를 묻는다 해도 단순 계산으로 벌써 14,100명이 된다.

“성상의 전교가 참으로 하해와 같은 성은이니 어찌 이견이 있겠나이까? 뜻대로 하소서.”

“경들이 그리 말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구나.”

“···”

“하면 역적들은 어찌한다. 4700명을 모조리 참할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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