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군으로 살어리랏다-264화 (264/365)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64화>

***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나 선생?”

대구의 재지사족인 권상한의 말에 나주의 재지사족 나석수는 가슴을 답답하다는 듯 탕탕 두들겼다.

“말씀 드린 그대로요. 아니, 권 선생. 이게 말이나 되오? 이미 조정에 우리의 소식이 전해진 지 오래일 텐데도 불구하고 미천한 서자놈 더러 숭례문의 현판을 갈아 쓰라 하다니요? 주상이 우릴 얼마나 가벼이 여기면 이런 령을 내렸겠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여기까진 내 백번양보해서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또 있소?”

“마음 단단히 먹으시오. 더 있으니까.”

“말씀해 보오.”

“글세, 무오년에 화를 입은 홍 선생 아시지요?”

기억을 더듬던 권상한이 곧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다마다.”

“제주에 관노로 있는 홍 선생을 글쎄, 유자광이에게 하사하신다지 뭡니까.”

벌떡!

“뭐요! 그게 사실이오, 나 선생?”

“거짓이면 차라리 다행이지. 사실이니 환장할 노릇 아니겠소?”

“아니, 어찌··· 우리 속을 주상이 제대로 긁으려는 속셈이 아니면 어찌 미천한 서자 놈을 그리 우대할 수 있단 말이오! 대신들이 종사를 논하긴 커녕 어심만 논하고 있나 보오. 말세로구만, 말세야!”

“현달한 선비만 사라진 게 아니오. 조정에 신하라는 작자들도 사라졌소. 어찌 그같은 일을 당하면서 가만 있단 말인지, 쯧쯧. 그런데 더 울화통 터지는 건 말이오?”

“아니, 또 있소? 이보다 더한 게 어디 있다고?”

“그러니 각오 단단히 하라지 않았소이까. 더 울화통 터지는 건, 도성의 문을 걸어 잠그지도 않았다는 거요.”

“올 테면 와라?”

“그렇겠지요. 내 권 선생의 속을 뒤집긴 싫소만 이건 약과요.”

“허. 말씀해보시오.”

“홍 선생을 그 미천한 상것에게 하사한 일을 불문에 부치시겠다지, 뭐요. 주상께서도 내심 찔리시는 게지요.”

“응당 찔려야지요. 예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어찌 상것에게 귀인을 하사하는 일에 조금의 거리낌이 없겠소이까?”

“그런데······.”

“또?”

“천하의 간적 대임(大任, 임사홍) 놈을 부원군에 봉했다 하오.”

권상한이 피꺼솟이란 준말을 알 리는 없지만, 권상한은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임사홍은 간신 중의 간신이요, 소인 중의 소인이었다.

현달한 선비를 고꾸라뜨리는 데 일조한 소인이고, 명재상들을 무함한 간신 중의 간신이었다.

그런 천하에 다시 없을 간흉한 놈이, 필설로는 감히 형용 조차 할 수 없는 그 패악무도하고 세초해서 다시 쓸 수도 없는 버러지만도 못 한 것에게 부원군의 작호가 내려지다니······.

“이뿐인 줄 아시오? 언제부터 대임의 뒷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던 김감 놈에게는 연창군에 봉해버리고, 영상대감······.”

“허 대감께서는 그럭저럭 선비들을 구함하려는 노력이라도 가하신 분 아니오?”

“허 대감을 능멸하려는 게 아니오. 봉군한 공이 문제지.”

“말씀해보시오.”

“과거 회묘(폐비 윤씨)의 폐비를 막으려 한 공으로 봉한 거라지 뭡니까?”

“허. 허 대감께서 나라에 쌓은 공이 그것만 있는 게 아닐 텐데 어찌 큰 선비를 그리 모욕을 준단 말이오?”

“내 말이 바로 그 말 아니겠소만, 여기에 김억수 아시지요, 김억수? 그 대립질 하던 상놈의 새끼 말이오.”

“알지. 알다마다.”

“그 상놈의 새끼는 또 절충장군에 봉했다 하오. 그뿐인가? 사람 잡는 백정 새끼 안 가(안처직) 놈은 중훈대부에 봉해버리고, 대임하고 필적할 소인 놈의 상소인 새끼인 김수동은 영가군, 권세만 좇던 신수근이는··· 하, 내 참.”

“···?”

“신수근이는 말이오? 딸을 잘 키운 공이 있다 해서 익창군으로 봉했소이다. 이게 말이요, 막걸리요?”

상한은 할 말을 잃었다.

무릇 후손의 덕으로 증직이 되거나 그 음(蔭)을 받는 일은 흔하다.

왕비의 아비들이 괜히 봉군 되고, 그 덕을 존숭하려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신수근의 딸이라면 진성대군의 부인이다.

신 부부인이 무슨, 임금에게 간택 됐던 거면 말이라도 않지 대군에게 시집 간 걸로 딸을 잘 키운 공이라니······.

“진성대군을 총애한다는 건 알았소만 이 정도일 줄이야.”

“근데 의아한 게 좀 있소.”

“의아 한 거?”

“다른 자들이야 주상의 충견이요, 간신들이니 이해한다손 치지만 대사헌 어르신에게 20간의 기와집을 하사하고 숭정대부에 봉했다지 않겠소?”

“대사헌 어른은 조정에 유일무이하게 남은 어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분 아니외까? 그런데 어찌 다른 간신적자들과 같이······.”

“그러니 의아하다는 게지요. 어르신께서 변절을 했을 리도 만무하거니와, 혹 했어도 어르신은 평소 주상이 바른 말을 자주해서 경멸하던 분이 아닙니까?”

“그렇지요.”

“여기에 또 노공필이는 교성군에 봉했다 하오.”

“노공필까지?”

상한은 침음을 삼켰다.

확실히 의아한 일이었다.

다른 간신들은 몰라도 대사헌과 지부사에게 이런 상을 내릴 주상이 아닌데 말이다.

상한은 의아해하고, 석수는 분개해하던 그때.

누군가 둘 사이를 끼어 들었다.

호서의 선비들을 규합해 상경한 충주의 재지사족 공석린이라는 선비였다.

“그, 선생들.”

“공 선생.”

“혹 주상이 옥사를 획책하고 있는 것 아니겠소?”

“옥사? 무슨 옥사?”

“아니, 갑자기 이런 때에 우릴 보란 듯 유자광이를 후대하질 않나··· 우리 속 박박 긁어대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간신 모리배들을 봉군하질 않나··· 의아하잖소. 게다가 평소 주상의 성정이면 성문을 걸어잠궈도 골백번은 걸어잠궜을 텐데, 열어 뒀다지 않소?”

“우리가 모반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그저 직언을 올리러 가는 것인데 닫는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겠소? 그냥 선비들이 이처럼 무리 지어 올라오니 놀랐던 모양이지.”

“주상의 치세에 몇 번의 옥사가 있었소이까? 4700명이 상경하는 건··· 그래요. 놀랍긴 하겠지요. 근데 경연도 폐하고 간신배들만 가까이 하던 주상이 갑자기 직언을 받겠답시고 성문을 안 걸어잠근다? 이게, 말이 안 되잖소, 말이.”

상한은 눈을 쌜쭉하게 치켜떴다.

“하고 싶은 말이 뭐요, 공 선생?”

괜히 헛기침을 터뜨리며 민망해 하던 석린이 말했다.

“그,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나는 이번 일에 빠져야겠소이다.”

“뭐요?”

“드러난 정황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데 목숨을 담보 할 순 없잖소.”

“이제와서 빠지시겠다?”

“장수만 진퇴를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외다. 직소하는 선비도 진퇴를 알아야 하오. 지금은 때가 아니니······.”

“소인 모리배가 조정에만 있나 했더니 여기도 있었구만? 그깟 목숨이 두렵걸랑 상경은 어찌 했소? 호환이라도 당하시면 어쩌려고?”

“미안하오. 난 여러 선생들처럼 심지가 굳건하지 못 한 모양이오.”

“에라이, 퉤! 이보오, 공 선생. 내 지금 공 선생의 상판대기를 보아 하니 대임의 그것과 매우 흡사한 것 같소이다. 간신의 상을 타고 났으니 이왕 상경한 김에, 대임 놈 집이나 찾아가보시는 게 어떻겠소? 혹시 아오? 똥구멍 핥아주면 대임놈이 말직이나마 벼슬자리 하나 내줄지.”

노골적인 모욕에 석린은 고개를 푹 수그렸다.

자리한 모든 선비들이 쯧쯧 혀를 찼지만, 목숨보다 귀한 건 없었다.

석린은 잰걸음으로 후다닥- 장내를 빠져나갔다.

그런 석린의 뒷모습을 보고 상한을 비롯한 선비들이 쯧쯧 혀를 찼다.

“저런 천하에 소인 같은 자가 어찌··· 쯧쯧.”

“치욕도 모르는 금수 같은 자를 선생이라 불렀으니 민망하기가 이를 데 없소이다.”

“그러게나 말이외다. 자, 우리끼리라도 가십시다. 가서 임금의 눈과 귀를 막는 간신 모리배들 대신 직언을 드려야지요.”

“암요. 가십시다.”

그렇게 며칠 후.

수천이 넘는 선비들이 각각 남대문과 동대문을 통해 입성했다.

혹시나 문이 닫혀 있으면 어쩌나 했지만 기우였다.

오히려 도성의 대문이란 대문들은 보란 듯 활짝 열려 있었다.

도성의 대문이 닫힌 건 그들이 온전히 입성한 뒤였다.

스스로를 창의유(倡義儒)들이라 칭한 선비들은 곧 광화문과 육조거리를 점거했다.

광화문 일대와 육조거리에는 주민은 물론 관리들에게까지 소개령이 떨어진 건지 개미 새끼 한 마리 찾아 볼 수 없었다. 다만 광화문의 군사들만이 매서운 눈빛으로 시위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나석수는, 본인이 이 수천 시위대의 우두머리라도 되는 양,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선두에 멍석을 깔았다.

“전하. 신, 나주 유생 나석수 아뢰나이다. 신들이 지금 대거 무리를 지어 상경한 까닭은 전하께오서도 알고 계시다시피 모반을 꾀하기 위함이 아니옵니다. 저희는 진실로 우국하고 충정어린 마음으로 상경한 것이옵고, 오직 그 마음만으로 멍석 하나만을 챙겨 상경한 것이옵니다. 신들이 들으니······.”

다음은 권상한이었다.

“신 대구 유자 권상한 아뢰옵나이다. 신이 비루한 학식으로 생각건대 서얼허통은 과연 부당한 일이옵나이다. 공신을 음가(蔭加)하는 일이야 비록 높은 자급이거나, 몇 자급을 뛰어넘더라도 오직 공신을 후대하는 예이니 법도에는 어긋나더라도 도의에는 어긋나지 않는 일이오나, 서얼에게 출사할 길을 열어주시는 것은 법도에도 어긋나거니와 도의에도 어긋나는 일이옵나이다. 이는 마치 난양(천한 사람이 벼슬한 것을 비유한 옛날의 고사)한 것과 같으며, 진나라 때 관작을 함부로 제수했다는 데서 나온 구미속초(狗尾續貂)와 같은 것이옵니다. 그런데도 지금······.”

권상한에 이은 것은 공석린을 대신한 충청도의 재지사족 민종규였다.

“신 공주 유자 민종규 아뢰나이다. 우리나라에서 서얼을 등용하는 것은 대국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옵니다. 전하께오서 특지로서 말씀하시기를, ‘중국에서는 비록 노비일지라도 현능하면 크게 쓰인다’ 하였는데 어찌 우리나라의 것과 대국의 것을 모두 같게 할 수는 없는 것이옵니다. 우리나라에는 우리나라에 맞는 실정이란 것이 있는 것이고, 대국에는 대국에 맞는 실정이 있는 것이니 서로의 제도가 다른 것이옵니다. 우리 나라는 예부터 노주(종과 상전)로 구분하여 출사케 했는데 반대로 대국은 노주의 구분이 없는 나라이옵니다. 그런데 작금에 노주의 구분이 엄격한 우리나라에서, 중국처럼 서얼을 등용케 한다면 그것이 과연 가당한 일이겠나이까?”

다음은 강원도 재지사족 강범경이었다.

“신 속초의 강범경 아뢰옵나이다. 신이 성상의 분부를 보건대, ‘양첩의 소생이건 천첩의 소생이건 모두 허통시킨다’ 하였사온데 신이 감히 종사를 논할 순 없고 다만 외람되이 아뢰자면, 이는 선왕의 법이니 본시 선왕의 법이란 후왕과 후민이 오히려 더 굳게 지키지 못 할까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옵니다. 그런데 선왕의 법을 가벼이 여기고 인재가 부족하다 하여 본래의 법을 바꾸어 서얼들을 등요케 한다면, 나중에는 문무에 능하면 종친이라도 데려다가 쓰겠사옵니까? 청컨대 서얼허통의 령을 거두어주시옵소서, 인심이 분개하고 있나이다!”

각 도 대표(?)들의 발언이 있고 나서는 정확히 4679명이 돌아가면서 꾸준하게 발언을 이어갔다.

장장 사흘에 걸친 발언이었다. 도중에, 승정원과 내시부에서 이만 돌아가라는 전언이 계셨다고 했지만 시위대는 아랑곳 않았다.

여기서 이리 허무하게 물러서면 뒤가 없었다.

그렇게 시위대가 점점 지쳐갈 무렵.

끼이이이익-.

굳게 닫혀 있던 광화문이 열렸다.

“주상 전하 납시오!”

가갈과 함께 임금의 행차를 알리는 여민락이 울려퍼졌다.

임금의 행차에 나상한과 나석수 등 선비들의 안색이 급격히 밝아졌다.

“주상께서 드디어 우리의 뜻을 가납하시려는 모양이오.”

“이를 말이겠소이까? 과연 인심을 이반하는 것은 성군의 자질이 아니니 우리 전하께서는 가히 성군의 자질을······.”

나석수는 말을 하다 말았다.

‘유, 융복?’

임금의 옷이 용포가 아니라 융복이었다.

뭔가 이상했다.

나석수가 이상함을 잔뜩 느낄 무렵.

쒸이이이익-!

“효, 효시?”

분명한 효시음이었다.

***

편전.

사흘째 광화문과 육조거리를 점거한 선비들 덕에 국정은 마비 상태였다.

그런 가운데 전해진 패초.

패초를 받자마자 입궐한 대신들은 임금의 말에 경악을 금치 못 했다.

“이건 역모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아니라, 아닌 밤중에 역모였다.

화들짝 놀란 대사성 이점이 말까지 더듬거렸다.

“저, 전하. 어찌 그리 두려운 말씀을······.”

“내 처음에는 순수한 의도로 저놈들이 직언을 할 거라 여기고 사대문은 물론이거니와 도성으로 통하는 모든 문은 활짝 열어 놓으라 명하였는데 지금이 며칠 째인가?”

“···”

“내 정도가 지나치다 생각되어, 첫 날부터 승정원을 통해 돌아가라 전교를 분명히 하였는데도 이를 듣지 않는다.”

“그건······.”

“반역이다. 반역이 분명하다! 어찌 대사성은 역적도당들을 비호한단 말이냐!”

털썩!

“시, 신이 어찌 감히······.”

이점을 마뜩찮은 눈길로 흘긴 융이 어좌를 강하게 내려쳤다.

“이뿐이 아니다. 내 분명 홍 가 놈을 무령군에게 하사하는 일은 불문에 부친다 하였는데 저기 진을 치고 있는 역적도당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무령군을 비방하고 있다. 또 어떤 자는 감히 홍 가 놈을 하사한 어명에 사심이 깃들었다 했다지?”

“···”

“그리고 어제.”

“···”

“과인이 생모의 묘를 릉으로 격상해 존숭한 지가 언제인데 이놈들이 아직도 회릉이라 칭하지 않고 회묘라 능멸한단 말인가! 어찌 감히!”

꿀꺽.

“세상의 모든 어미는 자식으로부터 귀해진다 하였다. 내 어미 또한 마찬가지다. 세상의 어느 자식이 제 어미를 욕 주는데도 참는단 말인가. 이건 과인을 신하로서, 임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치워버려야 할 병풍으로 보기 때문인 것이다.”

“···”

“이놈들은 필시 불순한 의도를 갖고서 상경한 것이다. 놈들이 말로는 직언을 하기 위해 사도의 선비들이 합심하여 상경한 것이라 했다만 사흘째인 오늘, 놈들의 말이 모두 허언임이 드러난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어찌 감히 내 생모를 모욕하고, 어찌 감히 불문에 부친다는 어명을 기훼제서(성지를 고의로 파손함)한단 말이냐!”

“···”

“그리고 뭐라? 구미속초? 경들은 대답들 해보아라. 과인이 친공신을 우대한 것이 구미속초한 일이란 말이더냐?”

“어찌 감히 구미속초에 비하는 일이겠사옵니까?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시옵니다.”

“또한 강범경이랬던가?”

“그러하옵니다.”

“그자는 역적 무리의 수괴다.”

“···”

“이 역적 놈이 말하기를, ‘선왕의 법은 후왕과 후민이 더 굳게 지키지 못 할까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다’ 말하고서는 ‘나중에는 종친이라도 데려다가 쓰겠는가’ 하고 물었다. 이는 역심을 갖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말이다.”

대신들로서는 도대체 저 발언이 어디서 어떻게 봐야 역심을 품은 말인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알 수 없었지만, 평상시에는 금기어에 가까운 역모의 역자가 나온 지금이었다.

최대한 몸을 사려야 했다.

무오년 조의제문(弔義帝文) 역시 마찬가지였다.

따지고 보면 역적모의의 굴레를 쓸 일 까지 아니었다.

역적의 역자가 조정에서 나왔고, 다시 역적의 역자가 모까지 이어져서 일어난 사달이었다.

오늘 날 그러지 말란 법이 없었다.

“이건 이 강범경이라는 역적 수괴가 나중에 종친 중에 한 사람을 택일해서 옹립하려는 역심이 있기에 비로소 나올 수 있는 말인 것이다! 과인의 말에 그름이 있단 말이더냐!”

“신 지중추부사, 노공필 아뢰옵나이다. 다른 것은 다 관용을 베풀 수 있는 사안이라 할지라도 이미 회릉으로 격상한 선후(先后)를 회묘로 기훼제서하였으니 이것이 첫 번째 역심에 대한 물증이요, 전하께오서 이미 홍 가 놈을 무령군에게 하사한 사실을 불문에 부친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알아 볼 수 있게끔 언문으로까지 반포하였는데도 이를 논했다는 것은 기훼제서에 아무리 자비를 베푼다 하더라도 불경죄에 해당하는 죄목이니, 이세좌가 불경죄를 저질러 사사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음에도 이런 불경죄를 저질렀다는 것이 역심에 대한 두 번째 물증인 것이요, ‘종친도 데려다가 쓴다’ 이 말의 앞에는 ‘서얼을 등용하면 종친도 문무관으로 삼겠는가?’ 수식 하였지만 골자는 ‘종친도 데려다가 쓴다’ 이옵니다. 이 말은 종친 중에 아무 사람을 택일하여 추대하겠다는 뜻으로 해석 할 수도 있으니 이것이 역심에 대한 세 번째 물증인 것이옵고, 마지막으로 네 번째가 가장 놀라운 일이온데 감히 인심이 분개하고 있다 표현한 일이옵나이다. 신이 듣건대 백성들은 태평가를 부르고 있다 하옵니다. 강범경이 말한 인심은 과연 어느 인심을 말하는 것이겠사옵니까? 바로 이것이 네 번째 역심에 대한 물증인 것이니 청컨대 국청을 열어 국문하소서!”

획-!

모두가 눈을 부릅 뜬 째로 노공필을 바라봤다.

“지부사의 말이 맞다. 과인이 지금 경들의 눈을 살펴보니 모두들, 무슨 이따위 일로 역심 씩이나 품었겠는가? 반신반의 하는 눈초리들인데.”

털썩!

허침을 필두로 모든 대신들이 바짝 부복했다.

“경들도 알겠지만 과인이 보위에 오른 이래 몇 번의 역모가 있었다. 이건 과인이 부덕하기 때문이 아니라 저것들이 과인의 정치를 따라오지 못 하기 때문인 것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감히 학궁에서 역적모의질을 했으니 과인은 역모의 역자만 나와도 눈을 뒤집게 됐는데, 이제 감히 대놓고 역적모의질을 하니 과연 저놈들이 역심을 품었다는 내 말이 과한 것인가?”

여기저기서 이구동성으로 아니라는 말이 새어나왔다.

확실히 역모를 한차례도 겪지 않은 임금이래도, 역모에 민감 할 수 밖에 없는데 금상은 수차례를 겪었다.

더더욱 민감할 수 밖에 없었다.

“마침 각군이 유사시를 대비해 성문을 지키고 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역적도당들에게 능욕을 당할 뻔 하지 않았던가. 내 마땅히 저 역적 놈들을 역률로 다스려 국법의 지엄함을 만천하에 내세울 것이다! 상선!”

“불러 계시옵니까, 전하!”

“내 친히 저 역적 놈들을 때려 잡으리라. 속히 융복을 준비하라!”

“분부 받들겠나이다.”

융복을 대령하란 말에, 일다경은커녕 그저 호흡 몇 번 고를 시간만 흘렀는데 상선이 입시했다.

마치 문 너머에서 융복을 준비해놓고 기다렸다는 듯.

융은 내시들로 병풍을 세우게 한 뒤, 대신들이 있는 자리에서 융복으로 환복했다.

그리고 환복한 융은 보무도 당당하게 편전을 나섰다.

그의 손에는 철퇴가 쥐어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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