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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263화 (263/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63화>

    ***

    편전.

    「···사세가 급박하므로 급히 아룁니다」

    「···만류하였으나 듣지 않고 상경하니 정세가 수상합니다. 급히 아룁니다」

    「···하여 나석수가 이제 선비들을 선동하여 소두를 자처하고 상경하니 급히 아룁니다.」

    편전은 각 도의 수령방백들이 보내온 치계로 얼어붙었다.

    영남과 호남, 거기에 영동과 호서까지.

    4개도의 수령들이 올려보낸 치계들은 하나같이 선비들이 무리 지어 상경하고 있다는 소식 밖에 없었다.

    이런 치계는 일찍이 전례에 없었다.

    차라리 외적이 각 읍(邑)을 동시다발적으로 타격해서 이런 치계가 올라온 거라면 이해라도 하련만 4개도 선비들의 상경이라니······.

    보통은 1개 도의 선비들이 명성이 있는 재사(才士)의 선동에 휩쓸려 상경하기 마련인데, 지금은 4개도다. 4개도에서 상경하는 선비의 수가 얼마나 될지 대신들은 차마 가늠조차 할 수가 없었다.

    다만.

    “대사성 이점 아뢰옵나이다.”

    “말하라.”

    “신이 듣건대 선비들이 상경을 하는 까닭은 서얼을 허통케 한다는 분부가 계셨기 때문이옵니다. 그 특지가 전해지자마자 4개도의 선비들이 상경을 한다는 것은 과연 공의(公議)에 부합하지 않다는 말이니 명을 거두심이 어떻겠나이까?”

    “대사성은 지금 나더러 말을 번복하란 것이냐?”

    “번복이 아니옵니다. 지금은 과연 난세이옵니다. 난세에 내분이 있은 나라는 말로가 아름답지 못 하니 신이 어찌 충정어린 심정으로 간하는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지금은 대내의 의견을 일치시켜 합심하여 국가의 기강을······.”

    “백성들은 온통 지금이 태평성대라던데 경만 난세라 하니 경이 그리 말한 저의가 의심된다.”

    털썩!

    “저, 저의라 하오시니 망측하기 이를 데 없나이다. 신은 그저 작금의 상황이 우려되는 마음에······.”

    쩔쩔매는 이점을 지원하고 나선 것은 홍문관 전한 이행이었다.

    “전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대사성의 말에 어떤 저의가 있겠사옵니까? 4개 도의 선비들이 대거 상경한 일은 전례에 없는 일이옵니다. 대사성이 이제 전례에 없는 일을 당하고 실언을 한 듯 하니 개의치 마시옵소서.”

    “경은 과거 박원종의 난 때 충심을 보인 육충(六忠)의 한 사람이다. 내 육충의 말을 듣지 않으면 누구의 말을 들으랴. 경이 그리 말하니 대사성이 난세라 말한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책잡지 않겠다. 단, 4개 도의 선비들이 회합하여 상경한 것은 정말로 서얼 허통 때문이겠는가?”

    “아무래도 급진적인 일이니······.”

    “대제학.”

    김감이 고개를 조아렸다.

    “예, 전하.”

    “상경한 선비들이 지금 어디까지 왔다던가?”

    “신이 듣기로는 호서의 선비들은 이미 수원을 통과하였다 하옵고, 영동은 광주를 지나쳤사옵고 호남의 선비들은 추풍령을 이용치 않는 버릇이 있어 영남의 선비들과 함께 상경했사온데 영호남 선비들이 모두 이천을 지나쳤다 하옵니다.”

    “과연 그 기세가 파죽지세와 같도다.”

    “듣기 망측하나이다.”

    “그 목적은 무엇이라더냐.”

    “감히 입 밖으로 꺼내기도 두려운 말씀이오나 광화문과 육조거리를 점거하여 서얼 허통에 대한 전교를 거두어 달라 청하는 것이 바로 그 목적이라 하옵니다. 이들이 도성에 들어오지 못 한다면 목적도 달성치 못 하는 것이니 모든 문을 걸어잠그라 명하오리까?”

    “그리되면 도성민들의 생업에 지장이 생기니 굳이 걸어 잠글 필요는 없다.”

    “하오나 지금 상경한 선비들이 추산키로 4천이 넘사옵니다. 이자들이 흥분하여 제멋대로 날뛰면서 무도하고 불측한 일을 저지를지도 모르온데······.”

    “괜찮다. 남을 헐뜯는 참소가 아닌 직언이라면 임금으로서 마땅히 들어야지. 하물며 선비의 직언이야 어찌 피하겠는고?”

    여태 직언을 피했던 임금의 말이라 신빙성은 없지만 임금이 그렇다는데······.

    “하오면 어찌하오리까?”

    “어찌 할 필요 없다. 가만 둬라. 다만 경의 말처럼 이자들이 직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망동을 일삼을 수 있으니 별충위와 봉해위의 위사들을 소집하고 또한 지금 상번한 갑사가 2천이던가?”

    “그러하옵니다.”

    “상번한 갑사들 역시 소집하여 모든 문을 숙위케 하겠다.”

    확실히 평소 임금의 성정을 생각하면 의아한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그저 유사시를 대비하겠다니······.

    하지만 대신들에게 기행을 자주 보여줘서 기행 임금이라 불리는 그답게, 기행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선비들이 동대문과 남대문으로 들어오겠는가?”

    김감이 떨떠름해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내 지난 번 잠행 때 보아하니 숭례문의 현판이 온전치 못 한 것 같았다. 본시 숭례문은 예를 숭상하라는 차원에서 이름 붙인 것인데 현판이 온전치 못 하다면 그 뜻도 훼손 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아니 그러한가?”

    “처, 천만 윤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다만 숭례문의 현판은 종친이 쓴 것이니 버려 둘 순 없겠고 이를 잠시 사고(史庫)에 보관토록 해라.”

    “사, 사고에 말이옵니까?”

    사고는 사초나 서적을 보관하던 곳이었다.

    그런 곳에 현판을 보관하라니 기행은 기행이었다.

    “그래. 그리고 숭례문의 현판은 다시 쓰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무령군(유자광.)”

    “예, 전하.”

    “내 듣기로 경의 글씨체가 탁월하다 하니 숭례문의 현판은 경이 쓰도록 해라.”

    기이한 명에 무령군 유자광마저 당혹을 금치 못 했다.

    모든 대신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자광은 서얼이었다.

    지금 선비들이 상경하는 이유가 서얼 허통 때문인데, 서얼 출신인 유자광이 숭례문의 현판을 쓴다?

    오히려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하, 하오나 신은······.”

    “내 경이 과거 역적 김종직과 그 제자들에게 당했던 수모는 잘 안다.”

    케케묵은 과거의 일이었다.

    유자광이 이시애의 난 이후 승승장구하여 출세하고,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다. 관찰사가 된 유자광은 함양의 학사루의 절경을 보고 바로 즉흥시를 지어 학사루에 현판으로 걸어 둔 적이 있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함양군수로 김종직이 부임했고, 김종직은 그 현판을 보자마자 서자 따위가 쓴 글씨라고 그 현판을 불태워버렸다.

    관찰사-군수의 관계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수모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김종직이 사직하고 낙향을 할 때, 송별회가 있었는데 유자광이 인사차 들른 적이 있었다. 그런 유자광을 보고 김종직의 제자 홍유손이, 스승이 함양군수로 있던 시절 학사루 현판을 불태운 사건을 빗대 조롱을 했었다.

    유자광이 무령군의 봉군을 받은 건 예종 즉위년의 일이었다.

    나이로는 홍유손의 나이가 더 많아도, 감히 군(君)의 작호를 받은 사람에게 저지를 순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유자광이 김종직과 그 문하인 홍유손에게 받은 수모는 사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모두 쉬쉬 할 뿐.

    쉬쉬하던 사안이 편전에서 까발려지자 유자광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 그건······.”

    잊고 있었던 망령이 떠오른 것인지 유자광이 몸을 허둥거렸다.

    그런 유자광을 측은하게 바라보기도 잠시.

    “도승지는 들어라. 홍유손이가 지금 제주에 있던가?”

    홍유손은 무오년에 제주도의 관노로 내쳐졌다.

    “예, 그러하옵니다.”

    “금부도사를 보내 홍유손을 서울로 호송케 하고, 호송되는 즉시 남간에 한 사흘 정도 가둬 굶겨라. 이 역적 놈이 하는 것 없이 세월을 보내 벌써 그 나이가 여든을 바라보고 있으니 난장을 쳤다간 명줄이 끊어질지도 모르니 정중하게 대하되, 한 사나흘 정도 굶겨 놓고 제 잘못을 빌면 방면하여 무령군의 집으로 보내도록 해라. 무령군에게 하사할 것이다.”

    “저, 전하. 하오나 역적 홍을 소신에게 하사한다면 상경한 선비들이······.”

    유자광은 본인의 입지를 잘 알았다.

    콤플렉스란 말이 있을 턱이 없지만 콤플렉스와 비슷했다.

    서자였고 서자로 출세했다.

    그런데 작금의 상황은 서얼 허통 때문에 벌어진 상황이다.

    그 상황에서 이미 홍유손과의 관계를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 자신에게 종으로 하사한다?

    이건 기행 정도가 아니었다.

    이전에, 현판을 쓰게 하신 것처럼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변변한 말직 하나 지낸 적 없던 홍 가놈이 감히 대부를 능멸했다. 그래도 무오년에는 내 측은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있어 관노로 내쳤다만 지금 생각하면 마땅히 경에게 하사했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실책을 바로 잡으려는 것이니 경은 괘념치 말라.”

    꿀꺽.

    “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경들은 들어라.”

    불난 집에 기름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씩이나 부어버린 임금에 대신들은 경악을 금치 못 하면서도 고개를 조아렸다.

    “이처럼 나라에 공을 세운 자는 언제든 국가에서 보답 할 것이요, 예를 잊고 망동을 일삼은 자는 언제든 국가에서 도태 시킬 것이다. 이게 바로 신상필벌의 엄정함인 것이다. 아니, 그러한가?”

    읍을 한 대신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천만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또 한 번 이르노라.”

    “···”

    “내 분명하고 단호히 말하건대 홍유손이를 무령군에게 하사한 일은 불문에 부친다. 앞으로 이 일에 대해 왈가왈부하거나, 혹은 무령군을 비방하거나, 임금의 분부를 가벼이 하고 세치 혀를 놀리는 자는 마땅히 그 죄를 물을 것이니 그리 알라.”

    “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무종실록(武宗實錄) 1508년 4월 13일 기사》

    「···하므로 제신들은 성상이 또 옥사를 벌이려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는 적절치 못 한 때에 원한이 깊은 홍유손을 무령군에게 하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상의 령에 불만을 토로하는 재상은 없었고 모두 성상의 은혜가 과연 하해와 같다며 칭송하고 무령군을 부러워했다. 이건 제아무리 서자 출신이라도 충신은 임금이 비호 하겠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같은 날 임사홍을 풍원부원군(豐原府院君)으로 증작하고, 부인 전주 이씨【보성군의 따님이다】에게 태덕정렬부인(太德貞烈夫人)의 칭호를 내렸으며, 김감에게는 역란을 다스린 공이 있는데 후대하지 않은 것이 실책이라며 연창군(延昌君)에 봉했다. 또, 영의정 허침은 소싯적 사홍과 함께 회릉(폐비 윤씨)의 폐비를 막은 공이 있는데 이를 논공하지 않았다면서 양천군(陽川君)에, 우의정 채수는 평양 관찰사로 역적을 막은 공이 있는데 역시 후대하지 않은 실책을 범했다면서 인천군(仁川君)에, 대사헌 김전은 대동법의 묘안을 마련한 공이 있고, 나라에 쌓은 공이 많은데 논공하지 않아 미안하다며 예전에 역적에게 적몰한 20칸 짜리 기와집을 한 채【김전은 본시 청렴하여 집이 재상의 집답지 않게 누추했고 이마저도 거듭 사양하다가 받게 됐다】 하사했고, 숭정대부(종1품)에 봉했다【이날 제신들이 의아해 했다. 김전은 상의 노여움을 자주 사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또, 노공필을 노신을 우대한다는 명목으로 교성군(交城君)에 봉했다【이 역시 제신들이 의아해 했다. 노공필은 말을 경박하게 한다고 하여 임금에게 질책을 받던 인사이기 때문이다】이어서, 김억수를 절충장군(정3품)에, 좌참찬 안윤덕을 한산군(閑散君)에, 우참찬 김수동을 영가군(永嘉君)에, 안처직을 중훈대부(종3품)에 봉하고 병조참의에, 신수근【진성대군의 장인이다】을 익창군(益昌君)에, 도승지 권균을 영창군(永昌君)에 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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