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5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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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어진 성균관이지만, 과거 성균관 씹선비들은 청금복(靑衿服)이라는 교복을 따로 입고 다녔다.
그리고 이건 우리 진성대학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진성대학이 개교하기 직전.
성균관의 청금복 제도를 도입했다.
아무리 씹선비들 것이라지만, 온고지신이란 말도 있잖아?
좋은 건 본 받아야지.
물론 내가 교복을 도입한 건, 하이패스 단말기와 같은 역할을 했던 성균관의 청금복처럼 우리 학교의 청금복 역시 하이패스 단말기 같은 역할을 바라서가 아니었다.
계층 간의 문제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진성대학에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백정의 자식도 있었고, 사동으로 허드렛일 하다 들어온 아이도 있었으며, 상민도 있었고, 어디 대갓집에서 행랑 생활 하다가 영특함을 알아본 주인 덕에 들어온 아이도 있었고, 서리나 관리의 자제도 있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다 보니 계층별로 해입을 수 있는 옷도 각기 달랐다.
누구는 비단옷을 해입을 수도 있지만, 누구는 누더기 옷도 감지덕지 해야 할 판국인 것이다.
난 이걸 조금이라도 막고 싶어서 청금복 제도를 도입했다.
물론, 교복 하나 도입한다고 교내의 계층 문제를 말끔히 방지 할 수 있는 건 아닐 테지만, 적어도 눈에 보이는 상대적 박탈감 정도는 줄지 않겠나?
좌우지간.
진성대학의 설립자인 나의 이런 교육 철학 때문에 진성대학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청금복을 입어야 한다.
특히 수업을 받을 때는 무조건이다.
지금도 봐, 비도당에서 수업 듣는 아흔 네명의 학생들 모두가 청금복을 입고 있지 않······.
“그러면 일식은? 일식은 어찌 되는 것이냐?”
···그러고 보니 깜빡한 게 있었다.
모두가 청금복을 입고 있진 않다.
딱 한 명.
딱 한 명만 다른 옷을 입고 있었는데 바로 형님이시다.
형님만 청금복이 아니라 곤룡포를 입고 계시다.
물론 청금복만 안 입었다 뿐이지, 수업에 가장 열의를 보이고 있는 사람이 형님이기도 했다.
형님은, 지진에 이어 일식 현상도 궁금하셨던 모양이다.
“일식이요?”
반문한 나는 좌중을 훑었다.
형님 개인의 궁금증만은 아닌 듯, 내 수업을 청강하고 있는 학생들 모두 귀를 종긋 세우고 있다.
누차 말하지만 여기 사람들이라고 멍청한 게 아니다.
천체의 움직임이나 특정 자연 현상의 조화도 관상감이나 서운관에서 이해를 하고 있기도 하고, 서운관에서는 중국에서 받아온 역법을 통해 일식을 예보하기도 한다.
다만 이해를 하는 것과 두려워하는 건 별개다.
여기서 일식은 흉조로 인식된다.
해는 임금을 상징하고 달은 신하를 상징하는데, 일식의 보여지는 현상 자체만 보면 달이 해를 잡아 먹는 형상이 아니던가?
그래서 세종대왕도 일식을 두려워하셨다는 말씀을 장곤 선생님께 들은 기억이 있는데, 지금 중요한 건 세종대왕이 아니고······.
“그래, 일식!”
잠깐 삼천포로 새자면 이 질문을 형님이 경연청의 시강관(侍講官)이나 성균관의 씹선비들에게 했다면 시강관과 씹선비들은 아마 이런 대답을 내놨을 것이다.
-《시경》에 이르기를, 임금이 덕을 닦을수록 일월식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였으니 일식이 나타난 것은 과연 임금의 덕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이건 실제로 3년전인가?
시강관들이 형님께 하신 말씀 컨트롤C+V다.
“당연히 일식도 지진처럼 임금의 덕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어찌 말이냐?”
“서운관에서는 역법을 토대로 일식을 예보합니다.”
형님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임금이 무슨 주기적으로 덕이 있다가, 없어지는 존재도 아니고 어떻게 주기적으로 일식이 나타나겠습니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건 임금의 덕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지진은 네가 직접 증명은 하지 못 한다 했다만 지층이 움직여서 발생하는 자연 현상이라 했다. 하면 일식은 어떤 현상인 것이냐? 지진의 지층처럼 하늘이 움직이는 것이냐?”
척하면 척이신데?
“맞습니다.”
본의 아니게 문제를 맞춘 형님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셨지만, 저 말씀이 얼추 맞다.
“물론 하늘이 만날 뱅글뱅글 도는 건 아니구요. 일단··· 밤하늘에 별이 보이지요?”
끄덕.
“우리가 살고 있는 곳도 별의 일종입니다. 이 별을 지구라고 부르는데······.”
“네가 준 지구본도 그럼 그래서 지구본인 것이냐?”
“맞습니다. 좌우지간, 이 별을 지구라고 부르는데 편의상 달과 해도 별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이 세 별은 서로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 공생하는 사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지구와 달은 공전이란 걸 합니다.”
“공전?”
“별들이 원을 그리면서 움직인다는 소리입니다.”
“네 말대로 별들이 원을 그리면서 움직여야 한다면, 우리는 휘청거리거나 어지러워야 정상이 아니냐?”
초등학교 4학년이 할 법한 질문에, 어떻게 설명드릴까 하다가 쉽게 설명드리기도 마음먹었다.
“사람이 인지하지도 못 할 만큼 느리게 돌기 때문입니다.”
“그럼 지구와 달은 굳이 왜 도는 것이냐?”
역시 말문이 막혔다.
자기장 때문이라고 하면······.
‘당연히 못 알아듣겠지.’
이럴 땐 역시 알아듣기 쉬운 설명을 곁들이는 게 낫겠다.
“해는 제왕을 상징합니다. 근데 이게 단순한 상징이 아닙니다. 지구와 달, 해 같은 별들 중에서도 으뜸이 해입니다. 다른 별들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는데, 아무리 태양보다 약한 별들이라 해도 잡아 먹히려 하겠습니까?”
“발버둥을 치고 있단 말이렷다?”
“예. 태양이 잡아 먹으려 할 때, 계속해서 도망을 가게 되는 건데 이건 지구와 달이 같습니다.”
도망을 간다는 표현이 적절했는진 모르겠지만 모두들 문화충격을 받은 표정들이었다.
한 사람만 빼고.
“그럼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 역시 그걸로 설명을 할 수가 있겠구나. 지구가 해를 피해 도망가고 있으니까.”
“어··· 예, 비슷합니다. 말이 좀 이상한 데로 샜는데, 아무튼 지구와 달은 태양을 피해서 그 주변을 뱅글뱅글 돌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지구랑 달이 함께 도망치는 일이 생기는데, 그때 바로 일식 현상이 나타나는 겁니다.”
못 알아먹은 표정들이 대부분이다.
일부는 반신반의하는 표정도 지을 정도였다.
하긴.
갈릴레오나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둘을 미치광이 취급했다.
아, 서양으로 갈 필요도 없겠네.
당장 내가 듣기로 지동설을 주장한 천문학자가 조선에도 있었다.
지금 시대로부터, 반세기 전쯤에 살았을 이순지인데, 이 양반을 내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면 지구가 둥글다는 말에 장곤 선생님이 과거에도 그런 미친 소리를 한 양반이 있다며 언급을 하셨었다.
뭐, 아무튼.
역시 이것도 지진처럼 그림으로 설명을 하는 게 낫겠다.
차근차근, 처음부터.
“자, 보면······.”
***
청금복을 입은 두 사내는 중용 신문사 건물을 애틋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들의 시선에 신문사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신문사 건물 대신 불과 몇 달 전까지 자리잡고 있던 성균관의 신삼문과 그 너머의 대성전만 보일 따름이었다.
꺼억-.
신삼문과 대성전이 아른거리기도 잠시.
트림 소리와 함께 신삼문과 대성전이 모래알처럼 흩어져 날아갔다.
날아간 신삼문과 대성전 위로는 중용 신문사의 현판과 그 건물들이 보였다.
두 사내의 얼굴은 불콰하게 취기가 오른 상태였다.
아니나 다를까 손에는 옹기병이 들려있었다.
벌컥벌컥.
방금 전까지 보이던 신삼문과 대성전이 사라지자, 눈살을 찌푸린 사내는 병째로 술을 들이켰다.
그러기를 잠시.
술병의 술이 바닥 난 건지, 혀를 날름 거려도 술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빌어먹을.”
한차례 욕지거리와 함께 사내는 옹기병을 내던졌다.
옹기병은 중용월보라는 글자가 써진 현판에 닿아 파삭-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 났다.
“부친께서는 뭐라시던가?”
옹기병을 내던진 사내가 바닥에 털썩 주저 앉고는 화살코가 인상적인 사내에게 말했다.
예의 화살코 사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라시긴··· 집안 먹칠 그만하고, 차라리 중질이나 하라더군.”
옹기병 사내가 껄껄 웃었다.
“자네 아버지나 우리 아버지나 어째 똑같구만, 똑같아.”
“자네 아버지는 뭐라시는데?”
“집안 어른들 뵙기 민망스럽고 망측하니 이 청금복 좀 내다 버리던가, 나를 갖다 버리던가 하라시더군.”
두 사람은 한동안 뭐가 그리도 우스운지 포복절도를 했다.
한참 배꼽 잡고 웃던 두 사내의 이름은 이형윤(李泂允)과 박윤치(朴輪峙).
이제는 문헌에서나 접할 수나 있을 성균관의 태학생들이었다.
성균관이 사라지면서 조정에서는 태학생들이 사학(四學)에서 나마 배움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지만, 대부분의 태학생들은 이를 거부했다.
형윤과 윤치 역시 이를 거부한 사람들에 속했다.
“젠장. 기분만 더 꿀꿀해졌군. 우리 집 가서 한 잔 더 할 텐가?”
“좋지.”
형윤의 집이 묵사동(지금의 성북동) 근방이었기에, 가장 빠른 지름길은 진성대학을 관통하는 길이었다.
둘은 진성대학의 담장을 넘고는, 곧장 묵사동 방면으로 걸음을 옮겼다.
“짐승들만 기른다더니 그 말이 딱이로군.”
“그러게나 말일세, 나라 꼴이 말이 아니야.”
그러다 둘은 우연찮게 진성대학의 학생들을 마주쳤다.
똑같은 청금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진성대학의 학생들은 그들이 외부인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 하는 것 같았다.
“종놈도 있다지, 아마?”
“종놈도? 참말인가?”
“이를 말인가. 내 듣기로 종놈만 스물이 넘는다고 들었네. 세월이 하 수상하니 이제는 종놈도 나라의 간성이 되는 판국 아니겠는가.”
“간성은 무슨. 여기 있는 놈들이 논어는 읽어 봤겠는가? 기껏해야 잡서 따위나 읽으면서 거드럭거리겠지. 빌어먹을.”
신세한탄에 가까운 잡담을 나누며 학교를 관통하던 그때였다.
둘의 걸음을 멈춰세우게끔 만드는 말들이 들려왔다.
“그럼 이제 나라에서도 벽괴제는 아니 지내려나?”
“그렇겠지. 지진이 재변이 아니라 하였으니······.”
“하지만 벽괴제를 아니 지내면 지진이 일어날 텐데?”
“지진이 재변이 아니니 벽괴제를 아니 지내는 건데, 이미 재변이 아닌 지진에 벽괴제를 지낸다고 무슨 지진이 일어나겠는가? 아까 졸았는가?”
“졸긴. 다 들었네. 이해를 못 한 거 뿐이지······.”
“지층이 움직여서 지진이 발생하는 거라잖으신가. 이해를 하고 말고 할 게 어딨나?”
“음. 그보다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별이 둥글다는 게 더 신기하네. 지진이야 뭐··· 그래, 지층이라는 것이 정말로 있고 그 지층이 움직여서 발생한다는 건데 이건 우리가 땅을 깊숙하게 파서 알아볼 수도 없는 문제고 총장께서 하시는 말씀 들어보면 일리가 있으니 그런가 보다 하지만, 천하가 둥글다니······.”
“그건 나도 확실히 의아하네. 천하가··· 아니, 지구가 정말로 둥글다면 우리는 떨어지거나 미끄러져야 하는 것 아닌가?”
“내 말이 그말일세. 수평선 너머는 본시 끝이 없는데, 그 끝이 결국 둥글다면 바닷물은 모두 쏟아져야 하고, 어선들은 모두 추락을 해야 하는데, 그런 일은 없으니······.”
“지구나 지진도 그렇지만, 비는 또 어떤가?”
“증발 된 물들이 구름에 맺혀서 내리는 거라니, 이제 기우제가 다 무슨 소용인가?”
잡학이나 배우는 놈들의 잡소리에 형윤과 윤치는 콧방귀를 뀌었다.
“저것들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낸들 알겠나. 과연 괴이한 학문을 배운다더니 사실인 모양일세.”
그렇게 피식거리며 제 갈길을 가려던 그때였다.
“그러고 보니 벽괴제나 기우제도 폐하시면 구식례도 폐하시려나?”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기우제와 구식례(일식 때 해를 구하는 의식)를 페지한다니.
눈만 끔뻑거리던 윤치가 진성대학 학생들에게 다가갔다.
“이것 보거라.”
“···”
“지금 너희가 한 말이 무슨 말이냐? 기우제와 구식례를 폐지한다니?”
“이곳 학생이 아니십니까?”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거라. 천하가 둥글다느니··· 지진이 어쨌다느니 잡설 늘어 놓는 거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지만, 구식례를 폐지 해?”
“대답할 의무가 없는 것 같습니다만.”
“이놈들! 네놈들이 암만 무지하기로서니, 구식례를 폐하면 장차 음이 양을 앞서 결국 나라에 혼란이 생김을 정녕 모르고서 하는 소리란 말이냐! 어찌 그런 망발을 백주대낮에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단 말인가?”
진성대학 학생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형윤과 윤치를 무시하고 갈 길을 갔다.
형윤은 그냥저냥 넘어갔지만, 이미 취기가 오를대로 오른 윤치는 아니었다.
가뜩이나 꼬인 상황과 인생에 열불이 뻗치는데, 이제는 까마득히 아래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까지 무시하니 석씨(부처)도 아니고 어찌 참는단 말인가?
결국 화를 참지 못 한 윤치는 후다닥 그 뒤를 쫓았다.
그리고 잠시 후.
비도당 앞 뜰에는 때아닌 난투가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