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군으로 살어리랏다-249화 (249/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49화>

    ***

    一.

    <주상전하 보훈청에 행차하시어 전사자의 넋을 위로하다>

    「···하므로 이제 보훈청 앞에서 남해정토 대장군께서 연설하였다. 대장군이 스물 셋의 고혼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언급하며 말씀하시기를, “너희 스물 셋의 혼은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오라.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와 평온한 안식을 맞으라. 남해정토 대장군으로 명한다.” 하니 마침내 보훈청이 울음바다가 되었다. 왕이 행차하여 이들의 넋을 위로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매, 원각사의 주지 혜경이 관청의 허락을 득해 위령제를 지냈다. 기사(記士)는 논한다. 우리 왕은 대장군으로서 이역만리를 정토했고 평정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국운이 기운 나라를 재생 시킬 만큼의 대승을 거두었으나 스물 셋의 장병이 전사했다. 전사자의 넋을 기리는 것은 역대의 왕들도 함께 한 일이나, 그 어떤 왕이 전사자들에게 귀환령을 내렸던가? 하물며 유족들의 집을 일일이 들르며 위로를 전했는가? 이는 임금이 사노들이나 할 하찮은 인편(人便) 노릇을 한 것이 아니라, 대장군으로서 마지막 도리를 지킨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하늘이 우리나라에 성군과 천장(天將)을 내렸다.」

    정덕(正德) 1년 10월 23일 중용월보 편집장 조광조.

    二.

    <상민아이 둘이 주상전하의 배려로 스물 한번째로 열기구에 탑승하다.>

    「···하여 전하께서 전사자의 가족들을 궁으로 불러 말씀하시매, “내가 덕이 없어 모두를 살리지 못 하였으니 나는 천만번 죽을 죄인이다.” 그러자 가족들이 황망하여 부복하였는데 다시 전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원이 있다면 말하라.” 하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는데 전사자 석우의 7살 난 아들 삼남이, “열기구에 타고 싶사옵니다.”하였다. 석우의 처(妻) 계영이 삼남을 말리자 전하께서 괜찮다 타이르셨다. 그러자 이번에는 가물의 8살 난 아들 호문이 “저도 타고 싶사옵니다.” 하였다. 전하께서 진성대군께 명해 두 사람을 열기구에 탑승하게 해주셨다. 삼남이 열기구에서 내려와 말하기를, “저희 아버지도 탔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하니 전하께서 눈시울이 붉어지시면서 “나의 부덕이다.” 하였다.」

    정덕 1년 10월 29일 중용월보 주필 김구오(金句汚).

    三.

    <성균관에 낙뢰가 떨어졌다>

    「지난 11월3일 개성부 유수(留守) 신수겸(愼守謙)이 치계하였는데 개성 성균관에 낙뢰가 떨어진 일이었다. 기사는 논한다. 성균관에 낙뢰가 떨어진 것은 대관절 어떤 조화겠는가? 호사가들은 말하기를, “서울의 성균관이 역적의 소굴이 되었기 때문에 개성 성균관에 낙뢰가 떨어진 것이다” 떠들었다.

    정덕 1년 11월 5일 중용월보 주필 김구오.

    四.

    <진성대학에서 학생을 모집하다>

    「진성대학【본래 하보두 대학이었으나 개교 보름 전, 이름의 괴이함 때문에 바뀌었다】이 지난 11월 2일 개교하여 학도들을 모집하고 있다. 진성대학은 허물어진 성균관과 지척에 있으며, 2학기로 나뉘어 내년 1학기부터 운영할 예정이다. 1학기는 봄~여름에 운영되고, 2학기는 가을~겨울에 운영된다. 학비는 삼성 상단에서 지원하며, 전액 무료이다. 진성대학은 장학생이라는 성적이 우수한 자들을 학기마다 선발하는데, 이 경우 포상으로 백미 5석이 주어진다【이를 두고 서울 사람들은 공부만 해도 생계 걱정이 없다고 놀라워하고 있다】강의 과목은······.」

    정덕1년 11월 4일 중용월보 기사(記士) 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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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조선 팔도에는 불순한 무리가 야음을 틈 타, 저자나 관청 앞에 붙이는 벽서나 괘서(掛書)도 아닌 해괴한 것이 마구잡이로 나돌고 있었다.

    해괴한 그것이 마구잡이로 나돌기 시작한 것은 얼마 안 된 일이었지만, 얼마 안 된 사이에 전국 방방곡곡에 동시다발적으로 뿌려진 그 해괴한 것은 이미 식자들의 인구에는 널리 회자되고 있었다.

    해남현.

    읍성 앞에는, 읍성에 들어가기 전 말에서 내리라는 경고글이 새겨진 하마비(下馬碑)가 세워져있었다.

    흔히 말뚝거리라고도 불리는 이 작은 마을은 읍성과 통하는 경로중 하나였기 때문에, 작은 고을에 불과한 해남현에서는 그나마 가장 많은 유동인구가 있는 지역이라고도 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많은 인파가 붐비진 않았었다.

    “무슨 조화긴! 이게 다 성균관이 역적의 소굴이 돼서 그런 거지, 애꿎은 개성 성균관만 벼락 맞았네. 쯧쯧.”

    “아니, 그게 왜 성균관 잘못인가? 그냥 벼락 떨어진 일로 호들갑은······.”

    “그럼 뭐, 아무 잘못도 없는데 성균관에 낙뢰가 떨어지나 이 사람아?”

    얼마 전부터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은 언성을 높이며 의견을 주고 받았다.

    물론 개중에는 비교적 건전한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년이면 14살 되는 댕기머리 소년 둘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왕의 행차 부분이나 성균관에 낙뢰가 떨어진 일에 관심을 보일 때, 두 사람은 진성대학에 관심을 보였다.

    소년들은 어른들 틈에서 까치발을 든 채, 진성대학에만 관심을 보였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고, 가르쳐주기까지 한다는데?”

    “관심이라도 있냐?”

    소년1의 말에 소년2는 민망한 듯 얼굴을 붉히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차피 너나 나나 서자라 과거는 글렀잖아?”

    “너네 어르신 말 못 들었냐? 서자는 닥치고 집에서 주는 것만 받아먹고 있으면 중간은 간다고 했던 거.”

    긁적긁적.

    “그래도 사내대장부로 태어나서 지금처럼 허송세월하기엔 시간이 아깝지.”

    “시간이 아깝긴 개뿔··· 허송세월도 못 하는 사람들이 천진데.”

    소년1의 면박에 소년2는 까치발 들고 다시금 벽보를 살폈다.

    모집요강이란 것이 나와 있었는데, 서자는 제한한다는 말은 없었다.

    오히려 대문짝만하게 “서얼도 환영”이라는 글귀가 있었다.

    “어르신도 저런 건, 허락하지 않으실까?”

    “어르신이?”

    끄덕.

    “괜히 집에서 더부살이 하는 것보다는 나도 그편이 더 낫고.”

    “어르신이 눈치주냐?”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눈치 보이지. 근데 알아서 사라져주겠다고 하면 반대하실 리는 없잖아?”

    이번에는 반대로 소년1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뭐, 그렇긴 한데······.”

    “같이 들어갈래?”

    “진성대학에?”

    끄덕.

    “난 별로 생각 없는데.”

    “너도 집에서 눈칫밥 먹는 것도 이젠 이골 난다며?”

    “음.”

    “합격만 하면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고, 가르쳐주기까지 한다잖아. 또 혹시 알어? 잘 되면 출사도 할 수 있을지.”

    순진한 소년2의 말에 소년1이 낄낄거렸다.

    “출사는 고사하고 서리질만 해도 감사하겠네.”

    소년1의 비아냥에 소년2가 벽보를 가리켰다.

    벽보의 아래 부분에 “잘 하면 서리도 될 수 있음”이라는 글귀가 대문짝만하게 써있었다.

    “잘 하면 서리도 될 수 있다는데? 하자.”

    “무슨 사람이 망설임이 그렇게 없냐? 가다가 도적이라도 만나서 비명횡사하면 어쩌게?”

    “결단이지, 결단. 위험 부담없이 되는 일이 어딨어?”

    잠시 고민하던 소년 1이 머잖아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긴 뭐, 서울 구경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 도적들한테 칼 맞으면 어르신 얼굴 더 안 봐도 되니까 그건 그것대로 좋고.”

    소년1의 긍정에 소년2는 환하게 미소지었다.

    그리고 보름 뒤.

    작은 고을의 소년 둘은 집안의 패물 약간을 빌려(?) 벽보 하나를 손에 쥔 채 상경했다.

    ***

    “이제 얼추 한 달 됐지?”

    “예, 대군······.”

    찌릿.

    “광조 너 보기보다 학습능력이 개똥이보다 떨어진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광조의 입에서 대군 대신 회장이란 직함(?)이 나오자 그제야 나는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확실히 대군처럼 정없이 불리는 것보다는 회장으로 불리는 게 뭔가 더 있어보인다.

    “자, 조 사장. 이제 한 달 된 거면, 배포는 이쯤에서 관두고 슬슬 구독 신청부터 받자고.”

    중용월보에서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팔도 방방곡곡에 신문을 배포 했던 건, 일종의 샘플이다.

    맛보기란 거지.

    그 맛보기 기간이 끝났으니 이제 돈을 받고 구독을 받을 차례다.

    구독료는 한 달 2석으로 산정했다.

    단, 6개월 구독료는 6석이고 12개월 구독료는 12석이다.

    일종의 헬스장 상술 비슷한 상술인 셈이지.

    뭐, 연에 12석의 구독료를 낼 만한 집안이 조선 팔도에 얼마나 되겠냐만 그래도 볼 사람은 볼 거다.

    어떻게 보면 지방 사람들이 조보 받아 보는 것보다 싼 편이라니까?

    일부 지방 사람들도 평소 조보를 받아보는데, 당연하겠지만 모두 인편으로 배달된다.

    당연히 경비가 소요 될 수 밖에 없는데, 우린 앉은 자리에서 배달 해주는데다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다양한 소식들을 실고 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합리적인 가격인 셈이지.

    뭐, 좌우지간.

    이제 홍보는 끝났으니 구독 신청 받고 장사할 때다.

    “알겠습니다.”

    광조가 고개를 끄덕거리는 사이.

    방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대감··· 이 아니라, 회장님. 소인 김 주필이옵니다.”

    김 주필이면 김구오씨다.

    김구오씨 기억하려나?

    원래 홍문관 교리겸 춘추관 기주관(記注官)으로 있던 김구오씨는 작년에 파직됐다.

    퇴청하고 시정잡배들하고 기방 들락거리는 게 딱 걸렸지 뭔가.

    뭐, 기방만 들락거렸으면 큰 문제는 없었을지 몰라도, 기방의 다른 손님들과 시비가 좀 크게 붙어서 얄짤없이 잘렸다.

    당시 조보에도 실렸을 정도다.

    사관이 기방 들락거리다 왈패들하고 주먹다짐 했다는 내용으로.

    뭐, 어쨌든 파직되고 나서 세월아네월아 하면서 허송세월하던 김구오씨에게 중용월보의 주필로 스카웃 제의를 했다.

    “어, 그래. 들어오게.”

    잠시 후.

    김구오가 조심스레 방안으로 들어왔다.

    “어쩐 일인가?”

    “학생들 모두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

    “···예.”

    학생들 기다리게 해선 안 되지.

    “얼른 가세.”

    아닌 게 아니라 오늘은 진성대학의 지원자들 면접이 있는 날이었다.

    정원 400명.

    총 2000명이 약간 넘는 수의 학생들이 지원을 했다.

    거기서 거르고 걸러서 딱 700명이 남게 되었는데, 나머지는 이제 면접으로 거른다.

    나는 두 사람과 함께 면접장인 비도당(非道堂)으로 향했다.

    아, 비도당은 강의실 중 하나인데, 이름 그대로 도리에 어긋난다는 뜻이다.

    물론 진짜로 도리를 지키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진성대학 자체가 씹선비들이 보기에는 사문난적에 가까운 학교기 때문에 그딴 씹선비들이 말하는 도리는 지키지 말라는 차원에서 비도당으로 지었다.

    뭐, 아무튼 비도당에 도착한 나는 조 사장과, 김 주필 두 사람과 함께 면접 준비를 서둘렀다.

    “들어오라 하세요.”

    준비가 끝난 뒤, 지원자를 불렀다.

    첫 지원자는 댕기머리 소년이었다.

    생각보다 어린 것 같아 서류를 슬쩍보니 13살이란다.

    조선이 세는 나이가 아니라 만 나이로 나이를 표기하는 걸 감안하면 대한민국에서는 대략 중1 정도의 나이다.

    어린 나이에 용케 명문대에 진학하려고 상경한 게 기특하다.

    나는 황오준이라는 열세살 지원자에게 이것저걸 물었다.

    굳이 서당은 다녔냐, 학문은 어디까지 익혔냐 하는 상투적인 질문은 할 필요 없었다.

    이미 1차 시험으로 걸러진 상태니까.

    다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이것이었다.

    “황오준 학생.”

    “예, 총장님.”

    “최근에 성균관 헐어버린 거 알아요, 몰라요?”

    “신문 봐서 알고 있사옵니다.”

    “어떻게 생각해요, 성균관 헐어버린 거.”

    어린 소년은 잠시 당혹해했다.

    내가 우리 진성대학교를 명문대라 언급하긴 했지만 사실 조선의 수험생(?)들이 꿈에 그리는 학교는 성균관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하옵니다.”

    “역적의 소굴이라?”

    “예.”

    “그럼 다르게 질문을 해보지요. 성균관의 배움이란 것은 어떨 거 같습니까?”

    역시나 당혹해하던 소년은 소신껏 본인 생각을 말했다.

    “본시 배움이란 것은 스스로를 수양하고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함인데 지금의 배움은 입신양명과 출세를 위한 것 뿐이니 만약 그런 기준이라면 성균관만한 곳은 없을 것이옵니다. 하지만 헐리기 전의 성균관은 이미 출세를 위한 장이 된 지 오래였으니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한 뜻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갈 만한 곳은 아니라 생각되옵니다.”

    “다른 질문입니다. 《논어》까지는 익혔다고 했지요?”

    “네.”

    “공자를 잘 알겠네요?”

    “잘 아는 것 까진 아니오나 서안(책상)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찌 공자님을 모르겠사옵니까?”

    “그럼 공자는 옳습니까, 틀립니까?”

    “예?”

    “공자는 옳습니까, 틀립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질문에 대한 답만 하면 됩니다.”

    “그야··· 공자께서도 옳을 때가 있지만, 사람인지라 틀릴 때도 있겠지요?”

    어안이 벙벙한 채로 답변하는 오준에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내가 왜 이런 질문을 했냐고?

    나는 씹선비가 너무 싫다.

    그리고 씹선비들은 십중팔구 공자가 옳냐는 질문에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거나, 대체로 옳다거나, 성현의 가르침에 따를 뿐이라는 애매모호한 답변을 내놓는다.

    그런 의미에서 오준이는 얼추 합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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