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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246화 (246/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46화>

    ***

    편전.

    “···아! 내 너무 들떠서 경들 앞에서 추태를 보인 듯 하다.”

    열기구에 대한 감상을 편전에서 털어놓던 융은 뒤늦게 혼자서 재잘재잘 떠들고 있다는 점을 자각한 건지,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여튼 간에 나중에 기회가 되면 경들도 꼭 타보도록 하라. 듣건대 천형을 두려워한다던데, 천형 따위는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대관절 천형을 두려워 할 필요가 무에 있단 말이냐? 천리를 거스르는 일이라니··· 이게 일국의 조정대신들이 할 말이란 말인가, 진성에게 들으니 그 원리란 천리와 관계된 바가 전혀 없는 것이니, 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천형 따위는 두려워말라.”

    “예, 전하.”

    “그나저나··· 좌상.”

    “하문하시옵소서.”

    “내 하늘에 있으면서 진성에게 들으니 내 자리를 비운 사이, 큰 사건이 하나 있었다던데?”

    “사건··· 아, 예. 하온데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진성대군에게 듣지 못 하셨사옵니까?”

    “내 감상을 깨고 싶지 않다나? 무슨 사건인가?”

    “그게······.”

    도통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입이 떨어지지 않는 사홍을 대신해, 입을 연 것은 숭재였다.

    “역모가 있었사옵니다.”

    “뭐라, 역모?”

    “예. 그게 그러니까······.”

    숭재가 역모 사건의 전말을 전했다.

    “그 말을 왜 지금 하는 것인가?”

    바로 일다경 전까지 실실거리던 임금의 돌변한 모습에 사홍과 대신들은 털썩 부복했다.

    “아니, 됐다. 경들을 추궁 할 일이 아니지. 그래서, 주모자는 누구란 말인가?”

    “장의 김식이었사옵니다.”

    “김식?”

    “예.”

    저도 모르게 콧방귀가 나왔다.

    “이거, 학궁이 역적의 소굴이었구만.”

    꿀꺽.

    “사건의 진상을 말해보라. 어떻게 된 것인가?”

    생각 이상의 역정을 내진 않는 임금에, 사홍은 용기를 얻은 것인지 그 내막을 전했다.

    “그러니까······.”

    “허!”

    들으면 들을수록 열기구를 타면서 생긴 희열이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글쎄,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성균관 태학생 놈들이 역모를 일으켰다지 뭔가.

    그것도 보통 역모가 아니었다.

    백성들을 혹세무민할 부참까지 소지한 채 일으킨 역모였다.

    임금이 자리를 비운 사이 김씨부참으로 혹세무민한다.

    백성들이 동요하면 거사를 일으키고 왕을 갈아치운다.

    간단하면서도 아주 구체적인 역모 계획이었다.

    어떻게 보면 박원종 같은 역신들보다 더 죄질이 나쁘다고 할 수가 있었다.

    그놈들은 차라리 대놓고 역적질이라도 했지, 태학생 놈들은 그 꿍꿍이를 속내 깊숙이 감춘 뒤, 역모를 일으키지 않았던가?

    “학궁이 역적의 소굴이 되었단 말이지, 역적의 소굴이······.”

    “그, 그래도 역적들이 허술한 부분이 많았던지라 조기에 진압 할 수가 있었사옵니다. 실로 선왕들이 보우한 일이라 아니 할 수가 없사옵니다.”

    “선왕들이 보우한 것이 아니라 그대 임 가 부자가 종사를 지킨 것이다.”

    “···”

    “한데.”

    “하문하소서.”

    “왜, 성균관을 아직까지 남겨둔 것인가? 조정에서 논의까지 됐다면서?”

    “아, 그게 찬반이 갈려서······.”

    “하. 찬반이 갈렸다······.”

    “그, 그러하옵니다. 하여 전하께서 돌아오시면 어찌 처결할지를 논하기로······.”

    “밖에 상선 있는가.”

    “불러 계시옵니까, 전하.”

    “진성이는?”

    “반시진 전 쯤, 대비전에 문안 여쭙고 퇴궐하셨사옵니다.”

    “위사들은?”

    “봉해위의 위사들 말이옵니까?”

    끄덕.

    “전하께서 여독을 풀라 배려해주신 덕에 모두들 군영으로 돌아가 있는 줄로 아옵니다.”

    “이제 막 돌아온 위사들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그들을 소용 할 일이 있으니 속히 부르라.”

    “예.”

    “아.”

    “더 내리실 말씀이 계시옵니까?”

    “모두 철퇴로 무장을 하라고도 전하라.”

    “···분부 받들겠나이다.”

    상선이 빠져나가고, 융은 대신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한참 후.

    “내 성균관에 행차할 것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문묘를 배알하는 것이니 모두 그리 알라.”

    ***

    성균관 명륜당.

    장의 김식이 일으킨 역모 사건이 종결되고, 성균관의 존폐 문제로 홍역을 앓았던 성균관은, 조정에서 폐지를 유기한 보류시키면서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말이 충신하고 행실이 독경하면 비록 오랑캐의 나라에 있을지라도 행세(行世) 할 수 있거니와, 말이 충신하지 못 하고 행실이 독경하지 못 하면 비록 제 고향인들······.”

    지금처럼 말이다.

    명륜당에 삼삼오오 모인 태학생들은 논어를 강습하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운 강습이었다.

    가을볕은 따사로왔고, 밖에서 부는 바람은 선선했다.

    학문을 닦기에는 최적의 요건이라 할 수 있었지만, 그런 최적의 요건에도 불청객이 찾아오면 요건이 깨지는 법이었다.

    우당탕탕!

    밖에서 소란이 일었다.

    소란이 일더니 명륜당 문이 벌컥 열렸다.

    강습을 받던 태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돌아갔다.

    “아헌(芽憲). 무슨 일인가?”

    태학생들의 대표로 보이는 이가, 명륜당 문을 벌컥 열어제낀 당사자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헌이라 불린 인물은 당장 숨이 넘어갈 듯 헐떡거리면서도 제 할 말을 토해냈다.

    “헉! 헉! 전하께서··· 헉! 헉! 전하께서 행차하고 계시네!”

    “전하께서?”

    아헌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올 때가 왔구만.”

    누군가 독백했다.

    독백의 장본인은 문서필(文瑞筆)이란 이름의 태학생이었다.

    김식 사후, 태학생들의 실질적인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있는 자이기도 했다.

    각오를 다진 서필은 주위를 둘러봤다.

    학우들 모두 동요하고 있었다.

    “들으시게들. 어찌 동요를 한단 말인가? 동요 할 필요가 전혀 없네. 오히려 우리가 기다린 일이 아니던가?”

    “하지만 소경(燒鏡). 일이 잘못되면 성균관이 폐지 될지도 모르네.”

    서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리석은 말 마시게. 전하께서 어찌 성균관을 폐지 시키신단 말인가? 게다가 앞전에 성균관을 지켜냈던 게 누구인가? 바로 우리일세. 설혹 전하께서 성균관을 폐지 먹기로 마음을 먹으셨다 한들, 우리가 모두 들고 일어나 막아선다면 전하의 호령이 어찌 정당하시겠는가? 모두 나가세.”

    서필의 격려에 동요하던 태학생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를 뒤따랐다.

    잠시 후.

    그들이 도착한 곳은 성균관의 정문인 삼문이었다.

    ***

    “상선.”

    “예, 전하.”

    “내 문묘를 배알하는 게 얼마만이지?”

    “3년 전, 작헌례(酌獻禮)를 행하시고 없으셨사옵니다.”

    “3년이나 됐단 말이냐?”

    “예.”

    융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알성(謁聖)이 3년이나 됐다니 새삼 세월이 참 빠른 듯 했다.

    “한데··· 내 아까부터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하문하시옵소서.”

    “저건 무엇인고?”

    융이 가리킨 곳은 하보두 대학 공사 현장이었다.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던 상선은, 진성이 학교를 짓는다는 사실을 모두 털어놨다.

    개인이 학교를, 그것도 성균관 바로 옆에 짓는다면 불호령이 떨어져도 할 말이 없는 처사였지만 융은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호오, 과연 내 아우로다. 저것도 만백성이 앎을 깨우치게 만들기 위한 기관이 아니냐?”

    “그런 줄로 아옵니다.”

    “경들은 들어라.”

    융을 따라온 대신들이 일제히 고개를 조아렸다.

    “무릇 위정자가 보일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내 아우 진성은 유종(권위 있는 유학자)들이 천만번 외친 일을 단 한 번의 행동으로 몸소 실천 하였으니, 어찌 유종만 못 하다 하겠느냐? 이건 위정자로서 본 받을 일이니 모두 알지어다.”

    “천만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가지.”

    하보두 대학에 대해 감탄(?) 한 것도 잠시.

    융은 발을 빠르게 놀렸다.

    이어서 그가 도착한 곳은 성균관이었다.

    일반적으로 임금이 성균관에 행차했다면 시끌벅쩍 했을 테지만, 평소처럼 요란한 행사 따위는 없었다.

    성균관의 신삼문은, 마치 그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활짝 열려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태학생들이 자리를 깔고 부복해 있었다.

    왕이 성균관에 행차하고 있다는 소식을 미리 전해 들은 듯 했다.

    이래서는 ‘생각’ 한 걸 이룰 수가 없었다.

    눈살을 찌푸린 융이 소리쳤다.

    아니, 소리치려 할 때였다.

    “전하. 신(臣) 문서필 이하 제생(諸生)들은 주상전하의 알성에 몸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다만 신이 외람되게 한 말씀 아뢰자면 임금이 알성할 시에는 곤룡포를 입도록 되어있는데 전하께선 지금 군복(戎服)을 입고 거둥하셨으니 아쉬운 게 있다면 오직 그것이 아쉽다 할 수 있겠사옵니다. 그러나 지금 이처럼 거둥해주신 것만 해도 어찌 망극한 일이 아니겠으며, 지극한 인덕이 아니겠사옵니까?”

    알성이라니······.

    이것들이 아무래도 단단히 착각을 한 듯 싶었다.

    기가 차, 헛바람만 들이키고 있자 문서필이란 놈의 입이 재잘거렸다.

    “다만 한 가지 청이 있사온데 어찌 대신들이 성균관을 폐하려 한단 말이겠사옵니까? 주상전하께서 계시지도 아니한 때, 성균관을 폐하려 한 자들이 수십이 넘으니, 도대체 나라의 기강은 어디로 갔단 말이옵니까? 대신이 대신으로서의 위엄이 없고, 재상이 재상으로서의 관용이 없으니, 전하께서 아니 계신 조정에는 부화뇌동하는 모리배만 넘쳐났사옵니다.”

    역시나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왔다.

    “하오나 이제 전하께서 환궁하셨사오니 신들은 참으로 마음이 놓이옵니다. 전하. 신은 학문이 크게 영글지 못 했사오나 옛 말을 즐겨 읽사옵니다. 특히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사람이란 허물이 없고 잊지 않으려면 모두 옛 법도를 따라야 한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예로부터 임금된 자에서부터 사노에 이르기까지, 모두 옛 법도를 잊지 말라 계도하는 말씀이기도 하옵니다. 그런데 지금 성균관을 폐하라 했던 모리배들을 생각해보소서. 성균관은 수백년 기능하여 수천, 수만의 간성을 길러낸 국가의 보배와 같은 곳인데 어찌 그런 곳을 폐하라 할 수 있겠사옵니까? 그런 자들은 모두······.”

    더 이상 듣기엔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휘휘 손을 내저은 융은 문서필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네 이름이 무엇이라고?”

    “신 문서필이라 하옵니다.”

    “서필이 너에게 묻겠다.”

    서필의 인상이 살짝 굳어졌다.

    아무리 임금이라지만, 그런 임금도 신하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도 되는 것은 아니다.

    “왜, 성균관을 폐지하면 안 되는 것이냐?”

    당혹스러운 질문인지, 서필이 허둥거렸다.

    “방금 아뢨다시피, 시경에 이르기를······.”

    “공자, 맹자, 장자, 순자, 주자, 그리고 시경······.”

    “···”

    “결국 다 남의 말을 빌려다 인용하는 것이 아니냐. 네 주견을 말해보아라. 어찌 성균관을 폐지하면 안 되는 것이냐?”

    “···”

    “너희는 종두를 만들 줄 아느냐?”

    “···”

    “그럼 너희는 여기있는 봉해위처럼 정군을 조련 시킬 줄은 아느냐?”

    “신들은 본시 학문을 즐겨하던 자들인데다······.”

    “네놈이 배우던 학문에는 임금의 말을 끊으라 했었나 보지?”

    털썩.

    “다음으로, 너희는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줄 아느냐?”

    “옛날 성현들이 말씀하시기를,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방법에는······.”

    “너희의 성현들은 임금의 말을 허투루 들으라 했더냐? 네 주견을 말하라지 않더냐?”

    “···”

    “너희는 종두도 못 만들고, 봉해위 같은 정군을 조련시킬 수도 없다. 그럼 열기구는 만들 줄 아느냐?”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열기구는 천리를 역행하는 일이옵니다. 어찌 신들이 천리를 역행하는 일을 벌이겠사옵니까.”

    “천리를 역행하는 일이다?”

    “그러하옵니다.”

    “나는 열기구를 타기까지 했는데 과연 천리를 역행한 것이냐?”

    진퇴양난의 질문이었다.

    긍정하면 긍정한대로 임금을 기만한 게 되고, 부정하면 부정한대로 지금껏 한 말의 모순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나는 열기구를 탐으로 인해 천리를 역행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인정을 받은 것이다.”

    “···”

    “너희가 하는 말들이 전부 이런 식이다. 할 줄 아는 것은 하나도 없어서, 국가에 백해무익하지. 백해무익하면서 바라는 건 많다. 다만 그런 네놈도 잘 알고 있는 것은 하나 있는 듯 하다.”

    “···”

    “왕이 알성할 시에 곤룡포를 입어야 한다는 사실. 그것 하나만은 아주 잘 알고 있는 듯 하단 말이다.”

    “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한데 말이다.”

    “···”

    “한데, 어찌 임금이 사냥을 할 때, 반드시 군복을 입어야 한다는 사실은 모른단 말인가? 그 사실은 경전에 아니 나오더냐?”

    “사, 사냥이라 하오시면 무슨 말씀이시온지······.”

    더 이상은 대꾸할 가치를 못 느낀 융이 억수를 돌아봤다.

    “학궁은 역적의 소굴이다! 국가에서 역적을 기를 순 없으니 저 역적의 소굴을 철퇴로 모두 때려부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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