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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244화 (244/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44화>

    ***

    부산진성.

    “참말이란 말이지?”

    몇 번째일까?

    황공함에 몸을 벌벌 떨면서도 윤성경은 생각했다.

    분명 열 다섯 번 째까지는 정확히 세었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는 세지 못 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만큼, 참말이냐 묻는 임금에 윤성경은 울상이 되다 못 해, 아예 흐느끼기까지 했다.

    살면서 이리 억울한 적이 또 없었다.

    열두살 무렵.

    서안에 책을 펴고 6시진이 넘도록 공부하다가 잠깐 조는데 마침 할아버지께 걸려 호되게 야단 맞았던, 그래서 일종의 트라우마가 된 그 기억보다도 훨씬 더 억울했다.

    흐느낀다고 해서 진정성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울지라도 않으면 이 억울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참말이옵니다, 전하! 크흐흑. 믿어주시옵소서!”

    “당최 믿을 수가 있어야지, 믿을 수가.”

    융은 긴가민가하며 읊조렸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또 안 믿을 수도 없었다.

    윤성경을 하옥시킨 직후, 부산진성에 도착한 융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전들을 불러다 내막을 물었다.

    윤성경 하나만 궤변을 늘어논 거라면 정말 윤성경이 왕을 기만한 걸 테지만, 윤성경이 하옥 된 걸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전들은 하나같이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도 그의 말이 사실이라 입을 모아 말했다.

    이 정도면 윤성경이 궤변을 늘어놓는 것만은 아니라 판단, 그를 다시 불러다 묻고 있었지만, 믿지 못 할 사실인 건 변함이 없었다.

    “소신이 차근차근 설명을 드리겠사옵니다. 부디 믿어주시옵소서!”

    귀를 후비적거린 융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니까, 두 달 전 쯤의 일이었사옵니다······.”

    윤성경은 본인이 아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털어놨다.

    하지만······.

    “그래서 그게 참말이란 말이지?”

    부르르르.

    “···참말이옵니다. 신이 어찌 거짓을 아뢰겠사옵니까?”

    “거짓을 고할 까닭이 없긴 하다만······.”

    확실히 윤성경이 굳이 거짓을 고할 까닭은 없었다.

    ‘그럼 참말로?’

    거대한 물체를 하늘에 띄운다.

    그 거대한 물체는 사람이 탑승 할 수 있는 물체다.

    이게 《산해경》에서 하늘을 나는 수레라 묘사되는 비차(飛車)와 다를 게 뭔가?

    혼란스러웠다.

    혹세무민하기 딱 좋은 말이다.

    하지만 참말이라면?

    ‘확실히 진성이라면······.’

    진성은 참 이상한 아우였다.

    어딘가 모자라보이면서도 총기가 있었다.

    그런 아우가 만든 건, 윤성경이 말한 하늘을 나는 수레라는 열기구만 있는 게 아니었다.

    종두.

    이것도 진성 아우가 만든 것이었다.

    진성이가 종두를 만들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의 힘으로 두창을 다스린다는 게 어디 상상이나 갔겠는가?

    하지만 진성 아우는 두창도 다스렸다.

    그런 진성이라면 정말 산해경에서 묘사되는 비차를 만들었을지도 몰랐다.

    물론.

    “그 사실은 내 귀경하면 알게 될 것이다. 만약 그대의 말이 거짓이라면, 왕을 기만한 죄를 면치 못 할 것이다.”

    윤성경이 안도의 한숨을 터뜨렸다.

    “신의 말이 거짓이라면 신을 당장 거열에 처하소서.”

    호언장담까지 하는 윤성경을 보니 호기심이 생긴다.

    이렇게 된 이상 귀경 날짜를 좀 앞당겨야겠다.

    “밖에 김 장군 있는가?”

    잠시 후, 억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불러계시옵니까, 전하.”

    “귀경을 서둘러야겠다. 다른 이들은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았을 테니 남겨두고, 최소한의 인원만 데리고 내일 귀경할 것이다. 채비토록 하라.”

    “예, 전하!”

    ***

    “간단하게 보훈청의 장관은 청장(廳長)이라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미 좌상대감(임사홍)께서 말씀하셨다시피 종삼품아문(從三品衙門)으로 설치해서, 청장은 종삼품으로 신설을 하는 거지요.”

    “합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황이를 바라봤다.

    “저하께서는 괜찮으시겠습니까?”

    “···”

    황이가 넋이 나가 있다.

    뭔가 나사 하나 빠진 사람처럼 눈도 풀려있었다.

    “저하?”

    “예? 예, 숙부님.”

    “보훈청의 장관은 청장이라 이름 짓고, 종삼품직으로 삼을까 하······.”

    “물론입니다!”

    “에, 그러면 저번에 말씀 드린 신문사는 반대하시는 분들 없지요? 전하께는 내 따로 윤허를 받겠지만 윤허 받고 나서 반대하시는 분 계시면 여러모로 곤란하니까요.”

    “이견이 어찌 있겠사옵니까? 천만지당한 일이니 당장 행하시옵소서.”

    이번에는 눈살을 찌푸리는 대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하께서 돌아오시면 성균관의 일을 전하께 주달(奏達)하는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아, 그건 좌상대감이 맡기로 했사옵니다.”

    임사홍 아저씨라면 적절한 보고 책임자같았다.

    성균관의 일을 듣는 즉시 형님이 대노할 텐데, 그 분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나를 제외하면 임사홍 아저씨 정도다.

    “그럼 그건 그리하도록 하면 되겠고요.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 강원도 관찰사가 치계를 보내오지 않았습니까?”

    “엊그제 금성현(김화군, 철원군 일대에 있던 행정구역)에서 햇무리가 떴는데 그 다음날인 어제 속초에서 유성이 떨어졌으니 천변(天變)의 일종일지 몰라 장계한 일이었사옵니다.”

    천변은 개뿔.

    무지개가 뜨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타이밍에 유성이 떨어진 것에 불과하다.

    그러고 보니 난 유성 떨어지는 걸 한 번도 못 봤다.

    강원도로 이사를 가야하나?

    “별 일 아니군요.”

    “그, 합하.”

    형님께 입 조심 하라는 신언지를 받은 뒤로 잠잠해진(?) 노공필이었다.

    “예, 지부사.”

    “강원도에 있었던 변고가 언급됐으니 말이온데······.”

    “변고 씩이야··· 말씀하십시오.”

    “합하께서 만드신 그······.”

    “열기구요?”

    “아, 예. 열기구.”

    “그게 왜요?”

    “천리를 역행했다는 말이 나돌고 있사온데··· 그러면서 혹세무민 하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이 천형을 언급하고 있사옵니다. 마침 강원도에서는 변고가 생겼으니 여쭙는 것인데, 혹 별 탈은 없으시옵니까?”

    이거 때문이었구만.

    뭔가 사람들이 날 경외의 눈빛으로 쳐다보던 게.

    몇 번을 해명해야겠는지 모르겠다.

    “지부사는 열기구를 띄운 게 천리를 역행했다고 믿습니까?”

    “아, 아닙니다. 다만 천지만물의 조화는 이미 자연히 정해진 바가 있고, 개중에서는 사람이 설명하기 힘든 우주의 삼라만상(하늘과 땅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물과 현상)도 있사옵니다. 예컨대 다리 셋 달린 닭이 태어나는 것은 그저 요괴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나, 하늘의 경고라고 여기지, 이 현상을 설명할 길은 없사옵니다.”

    그건 그냥 돌연변인데.

    내가 유전학을 전공한 건 아니라 어떤 유전적 요인 때문에 다리 셋 달린 닭이 태어나는 건지는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뭐, 그렇다는 거다.

    “그러니 만큼 합하께서 띄운 열기구 역시 천리를 역행한 일이라 믿지는 않사옵니다. 그러나 무지몽매한 백성들은 두려워하는 바가 있는 것 같으니, 그, 그런 차원에서······.”

    그 무지몽매한 백성이 노공필 씨 본인 같았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내가 진짜 천리를 역행했기 때문에 천벌을 받으면 어떡하냐는 물음이다.

    날 걱정하고 있기 때문에 하는 질문이라, 뭐라 화를 내기도 어렵다.

    다만 귀찮은 건 사실이다.

    “지부사께서 말씀하신대로 우주의 삼라만상에는 사람이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도 존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부사께서는 벼락이 내리치면 어떱니까?

    “벼, 벼락이 내리치는 게 어떻냐니 무슨 말씀이신지······.”

    “밤중에 벼락이 내리치면 어떻냐는 질문입니다.”

    “깜짝 놀라겠지요.”

    “깜짝 놀라고만 마시겠지요? 설마 무당을 불러 굿을 하시진 않을 거 아닙니까.”

    “그야, 당연히······.”

    뭔 개똥같은 질문을 하냐는 신언지 노공필의 반응이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자연의 조화기 때문에 깜짝 놀라기만 하는 것 뿐입니다. 제가 만든 열기구도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주의 삼라만상에 사람이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 있는 것처럼요.”

    “하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일은 사람이 행하기도 어렵습니다. 사람이 벼락의 원리를 변괴니 재해로 치부하지 않는다 한들, 그 원리를 어떻게 알 수 있겠으며, 하물며 만들어낼 수가 있겠습니까?”

    대사성 이점이었다.

    말했다시피 몇 번째 해명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슬슬 화가 난다.

    “말씀드리면 알아 들을 자신이 있으십니까?”

    “학문의 모자람을 말씀하십니까?”

    이점이 콧방귀를 뀌었다.

    하기사.

    대학총장의 학식을 무시한 발언이었으니 자존심이 상할 만도.

    근데, 맞다.

    “예. 맞습니다.”

    긍정하자, 이점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치, 지금 누가 누굴 가르치려 드느냐는 태도다.

    “그럼 설명드리죠.”

    “···”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중에, 그러니까 우주 삼라만상 중에는 공기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사람이 숨을 쉴 수 있게 만드는 요소중 하나인데, 이건 사람이 숨을 쉬게 만듦으로써 하나의 현상으로 증명이 된 것입니다. 잠깐 이야기가 삼천포로 새서, 가마솥에 불을 지피면 어떻게 됩니까? 온도가 올라가겠지요? 공기도 마찬가집니다. 가열하면 가마솥의 온도가 올라가는 자연의 조화처럼, 자연스레 공기의 온도 역시 올라갑니다. 온도가 올라가면 공기가 모인 입자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는데, 여기서 팽창하게 됩니다. 어, 이건······.”

    팽창을 뭘로 설명 할 수 있을까 잠깐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 적절한 게 떠올랐다.

    나는 볼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당연히 볼이 빵빵해졌다.

    “방금 제 볼처럼, 팽창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대감께서는 볼에 불을 지피지 않지 않으셨습니까?”

    “팽창의 의미를 현상으로 설명드리려니 이것 밖에 말씀 드릴 게 없었습니다. 좌우지간, 방금 제 볼처럼 팽창하게 되는데, 반면 공기의 밀도는 극히 작아집니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면 공기는 하늘로 상승하려는 부력이 발생합니다. 물고기가 물에 떠있고, 나뭇잎이 물에 떠있는 현상과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이 부력이 열기구를 하늘로 끌어올리게 되는데······.”

    한참 설명을 이어나가던 나는, 문득 눈만 끔뻑거리는 붕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당최 뭔 소리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들 같다.

    그래, 이해시키려는 내가 등신이지.

    “흔히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 하는데 이는 남자에게 양기가 많기 때문이고 여자에게 음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두 기운 중, 양기는 하늘로 올라가려는 성질이 강하고, 음기는 가라앉는 성격이 강해서, 이걸 적절히 이용하면 열기구를 하늘로 띄울 수도 있고, 다시 내려앉힐 수도 있는 겁니다.”

    라는 말에 모두들 그제야 고개를 주억거렸다.

    물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젠장, 문돌이인 내가 왜 이런 설명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

    나는 기진맥진해진 채로 빈청에 왔다.

    방금 편전에서 있었던 일은 정말이지··· 말로 형용 할 수 없는 고달픔이었다.

    내가 설마 과학적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줄 몰랐지만, 초등학생들도 알 만한 원리를 과학적인 방법 대신 성리학적 방법으로 설명하려니 뭐랄까.

    자괴감이 들었달까?

    아니면 자책감?

    나도 이 감정을 뭐라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다.

    그만큼 복잡했다.

    공돌이들이 문돌이를 보면서 항상 느끼는 게, 이런 감정이었을까?

    제기랄.

    “합하? 합하?”

    허침 할아버지가 연신 날 부르셨다.

    새삼 찾아온 정체성의 혼란을 만끽(?)하고 있다 보니 허침 할아버지가 부르는 것도 듣지 못 했다.

    “아, 네. 어디까지 했지요?”

    “전하의 환궁을 어찌 반길지에 대해 여쭸습니다.”

    “아, 그랬죠.”

    “합하께서는 달리 뜻이 있으십니까?”

    “예정보다 일직 귀경하신다는 게, 열기구 때문이라고 하셨던 건가요?”

    “예.”

    호기심 대마왕인 형님이 열기구에 대한 말을 들었으니 얼마나 궁금해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럼 그 호기심을 충족시켜드릴 필요가 있지.

    “동대문으로 오신답니까, 서대문으로 오신답니까, 아니면 남대문으로 오신답니까?”

    “남대문(숭례문)으로 오신다 했습니다.”

    “음. 그럼 숭례문에 열기구를 띄워 반기는 건 어떨까요?”

    “열기구를 띄우다니 무슨 말씀이신지······.”

    “열기구를 띄워두고 바구니에는 환영 문자라고 할까요? 어, 일종의 플래······.”

    정체성의 혼란에 나도 모르게 21세기 말을 16세기말로 변환을 못 시켜버렸다.

    “그러니까, 긴 천에 환영 문구를 적는 거죠. 바구니에 걸어놓고 늘어뜨려서 멀리서부터 보이게끔요. 좋아하시지 않을까 합니다.”

    곧 다른 분들은 내 의견을 검토했다.

    괜찮은 의견 같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고, 머잖아 열기구를 이용한 환영식의 구체적인 방법이 논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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