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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243화 (243/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43화>

    ***

    -아니, 정말로 날 수 있습니다. 아까 공연에서 나온 선녀처럼 옷깃 펄럭이면서 날 순 없겠지만, 그래도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 볼 순 있어요.

    여울은 이 말을 크게 믿지 않았다.

    사람에게는 상식이란 게 존재한다.

    아녀자라고해서 상식을 모를까?

    아니다.

    새는 하늘에서 살아가고, 사람은 땅에서 살아간다.

    아침이 오면 해가 뜨고, 해가 지면 저녁이 온다.

    이것들은 상식이다. 상식인 동시에 자연의 이치였다.

    하늘이 이미 정한 천칙(天則)이며, 하늘이 이미 정한 섭리인 셈이었다.

    하물며 지아비의 말일지라도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말을 어찌 믿을 수 있었을까?

    천칙과 천리를 한참 벗어나는 말일 텐데 말이다.

    차라리 혹세무민하는 괴력난신의 말이라면 믿을지 모르겠지만, 그가 아는 지아비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시적 감수성이 풍부하긴 하지만, 어떤 상황을 맞딱뜨렸을 때는 현실적으로 풀어나가려 하는 사람이란 뜻이었다.

    가령 두창이 창궐하면 괴력난신을 끔찍이 여기는 사족들도 무당들을 불러들이고, 굿을 한다. 두창을 앓고 있는 병자에게 제발 두창신이 물러나길 바라는 차원의 굿이었다.

    반대로 지아비는 달랐다.

    무당을 불러들이는 대신, 종두라는 걸 이용해서 두창신을 무찔렀다.

    다른 선비들이 재화를 천시하면서 탐낼 때, 재화를 탐내는 건 인간으로서의 지극히 당연한 욕심이니 이를 천시할 필요가 없다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 역시 그의 지아비였다.

    이처럼 그의 지아비는 현실적인 사람이었고, 이성이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하늘을 난다는 건 믿을 수 없었던 게 사실이다.

    오히려 이성적인 사람의 말이니까.

    본인 스스로 섭리를 거슬러보겠다는 말은 사내들이 으레 계집들 앞에서 보이는 오기와 객기라 여겼다.

    그런데······.

    “형님, 정말로 뜰까요?”

    여울의 관람석(?)은 세자와 대비, 그리고 여러 종친들이 있는 곳이었다.

    당연히 종친들의 말도 귀에 들어올 수 밖에 없었다.

    전성군 이변의 질문에 봉안군 이봉이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옛날 세조대왕 시절에 함경도에서 세 발 달린 닭과 머리가 둘 달린 짐승이 태어났다고 들은 적이 있다. 이건 요괴(妖怪)한 일이다.”

    “세 발 달린 닭과 머리가 둘 달린 짐승이 태어난 거면 확실히 요괴한 일이었겠습니다.”

    “그래. 그런데 그 요괴한 일과 지금 대군께서 벌이는 기행이 다를 것이 무에 있겠더냐? 사람이 하늘을 나는 것은, 도깨비가 술법을 부려 괴이한 용력을 보이는 일과 같다. 안 떠도 종친들이 웃음거리가 되겠지만, 떠도 수군거리겠지.”

    “흐음.”

    봉안군의 말처럼 떠도 문제였고, 안 떠도 문제였다.

    하지만 사람이 하늘을 난다는 건, 역시 자연의 이치를 벗어나는 일이었으니 후자에 가까울 가능성이 컸다.

    안타까운 마음이 커져갈 즈음.

    그의 지아비가 짧은 연설을 했다.

    이건 절대 괴력난신의 짓이 아니고, 하늘이 정한 순리도 거스르는 게 아니며, 오히려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니 동요하지 말라는 경고성 연설.

    그 다음으로는 이 기행을 벌이게 된 건, 본인의 부인이 깨우침을 줬기 때문이니 이 역사에 기록 될 일을 만끽하라는 자만에 찬 연설이었다.

    복잡한 연설과 함께 그의 지아비는 화로에 불을 지폈다.

    “저걸로 정말 뜰 수 있을까?”

    여울이 가장 친한 왕가의 사람은 친족인 중전 신 씨였다.

    신 씨가 묻자, 여울은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아비가 하는 일을 믿지 못 하는 건 사실이지만, 뜨지 못 한다면 그의 지아비는 웃음거리가 될 터였다.

    “뜰 겁니다.”

    라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 불을 지피는 정도로 저 거대한 물체가 뜬다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실제로 거대한 물체는 불을 지피는 정도로 뜨지 않았다.

    “역시나가 역시나군.”

    “하긴. 뜰 리가 없지요.”

    “이거, 괜히 민망하게 됐습니다.”

    주변에서 헛기침 소리가 점점 커질 무렵이었다.

    “뜬다!”

    이름 모를 군중 하나가 외쳤다.

    바라보니 과연 거대한 물체가 조금씩 떠올랐다.

    지상에서 약간 떠오른 정도에 불과하던 물체는 곧이어 1장 높이로 떠올랐고, 1장에서 2장 높이로, 다시 3장 높이로··· 그리고 밧줄과 연결된 높이만큼 떠오르기 시작했다.

    주변이 침묵에 휩싸였다.

    여울도, 중전 신 씨도, 세자도, 봉안군과 전성군 같은 종친들도.

    입하나 뻥긋하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침묵은 짧았다.

    와아아아아-!

    곧이어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나왔다.

    공사천을 막론한 함성이었다.

    종친들은 종친들대로 함성을 내질렀고, 사족들은 사족들대로, 상민들은 상민들대로 함성을 내질렀다.

    담이 약한 일부 재상들은 휘청거리기까지 할 정도였다.

    아니, 이를 지켜보던 다수의 사람들이 휘청거렸다.

    일부의 사람들은 관세음보살을 외워댔다.

    ‘떠, 떳어······.’

    그리고 이 사실이 믿기지 않는 건, 여울도 마찬가지였다.

    정말로 떴다.

    거대한 물체가 하늘로 떠올랐다.

    여울은 지아비를 바라봤다.

    그녀의 지아비는 떠오른 물체에 의기양양해 하며, 두 손을 번쩍 들고 있었다.

    그런 지아비의 행동에 평소 같았으면 후다닥 달려가, 체통을 지키라 조언했겠지만 지금은 감히 그런 조언을 할 수도 없었다.

    새삼 지아비에게서 빛이 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착각일까, 아니면 꿈이라 그런 걸까?

    생각을 마지막으로 여울은 정신을 잃었다.

    ***

    경기도 수원.

    “···그래서 그 물체가 막 하늘로 떠오르는데··· 이, 뭐랄까. 사람이 귀신을 보면 놀라서 까무러친다고 하잖어? 아니, 닭살이 돋는다고 해야할까? 막 그렇게 온몸에 털이란 털이 다 곤두서는 느낌은 내가 처음 느껴봤다니까?”

    “저, 정말로 그 물체가 뜬 건가? 하늘로?”

    닭살 운운하던 사내는 자신의 말을 의심하는 장년인에 고개를 마구잡이로 끄덕거렸다.

    “아니, 왜 사람 말을 못 믿고 그러나? 정말 떴다니까?”

    사내에, 또 다른 장년인이 끼어들었다.

    “예끼, 이 사람아! 말이 되는 소릴 하게. 자네 말대로라면 도깨비가 부린 술법이 아니면 뭔가?”

    “하. 정말 답답하군, 답답해. 아니, 나만 본 것도 아닐세. 수천명이 다 같이 목격했다니까?”

    “수천명이?”

    “그래! 수천명이 뭐, 도깨비한테 홀렸었겠나? 게다가 그 자리에는 대비전하랑 세자 저하도 계셨었네. 도깨비 같은 귀신도 존귀한 분들은 알아보는 법인데, 자네 말대로 나머지 사람들은 다 도깨비한테 홀렸다 쳐도, 두 분 마저 도깨비한테 홀렸을 리는 없지!”

    긁적긁적.

    “그건 그렇구만. 하면 정말로 떴다는 건가?”

    “몇 번을 말하나, 몇 번을! 진짜로 떴네! 불을 지피고 한동안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는데 조금씩 떠오르더니 10장(약 30m)까지 치솟아 올라가더라니까?”

    “그게 무슨 조화인가?”

    “무슨 조화인지는 나도 잘 모르지. 대군께서는 괴력난신이나 도깨비 같은 귀신들이 벌인 조화는 아니니까 동요하지 말라고 하시긴 했었네.”

    “귀신이 벌인 조화가 아니면 사실 설명이 안 되잖나.”

    “낸들 알겠나? 아무튼 내가 봤을 때는 사람은 안 타고 있었네만 진성대군 대감이 말씀하시길 조만간 손을 더 봐서 나중에는 사람이 탈 수 있도록 개선하겠다고 했었네.”

    “그럼 정말 사람이 하늘을 나는 게 아닌가?”

    “그렇지!”

    “허어. 대국에도 그런 물체가 있나?”

    “있겠나?”

    “그럼 천자랑 대국 사람도 못 한 일을 우리나라 사람이 한 거네?”

    “그렇지?”

    “다음 실험인지 뭔지는 언제 한다던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개선 되는대로 하신다고 하셨으니까 조만간 하시지 않겠나?”

    “그땐 나도 꼭 가야겠네, 꼭. 내 눈으로 봐야 믿겠어.”

    “언제는 귀신의 조화라더니, 사람 참.”

    백성들이 열기구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는 건 비단 수원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저 험지인 함경도까지 소문이 퍼져나갔고, 땅끝마을 해남까지도 소문이 퍼져나갔다.

    말그대로 팔도 전체가 들썩거렸다.

    ***

    조선 팔도가 뒤집힌 그 시각, 부산진.

    부산진 앞바다에 일단의 함대가 등장했다.

    남해정토군을 태운 함대였다.

    총 194일의 여정이었고 편도로 26일이 걸린 노정이었다.

    장장 26일을 망망대해를 떠돌았다.

    저 멀리 부산진성이 보이자, 선원들은 서로를 얼싸안고 함성을 내지렀다.

    그리고 잠시 후.

    왜구와 내통한 혐의로 참수 된 신공의 후임으로 부산진 첨사가 된 윤성경(尹成冏)이 문정선을 타고 마중을 나왔다.

    “전하. 소신 부산진 첨사 윤성경, 문안 여쭙사옵니다. 전하께서 장장 194일만에 귀국하셨는데 옥체는 평온한 듯 하고, 기력은 여전히 왕성해보이시니 이는 종사의 홍복이고······.”

    윤성경의 환대(?)에 융은 손을 내저었다.

    “내 먼 길을 뱃길로 달려왔거늘 첨사는 어찌 날 피곤하게 만든단 말이냐. 얼른 객사로 안내하라.”

    “송구하옵니다, 전하.”

    윤성경이 허둥거리며 융을 안내했다.

    그리고 마침내 밞게 된 부산땅.

    감회가 새로웠다.

    정말로 긴 여정이었다.

    임금이 이렇게 오래도록 자리를 비운 적이 언제 또 있을까?

    단언컨대 없을 터였다.

    태조대왕~성종대왕까지.

    모든 대왕들을 통틀어, 역대 대왕도 이리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진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융을 흡족히 하게 만든 건, 역대 대왕도 이루지 못 한 업적을 쌓았다는 점이었다.

    유구국왕과의 약조를 편전의 대신들이 듣는다면 놀라 까무러칠 터였다.

    씨익-.

    편전의 대신들이 놀라 까무러칠 모습을 상상하자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루라도 빨리 편전에 가서, 그 업적을 자신의 입으로 술회하고 싶었지만 일단은 잠이 우선이었다.

    첨사에게 피곤하다 말한 건, 빈 말이 아니었다.

    객사로 가는 길.

    융은 꾸벅꾸벅 졸았다.

    어가(御駕) 밖에서 임금의 행차를 알리는 음악소리와, 천세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지만 쏟아지는 잠을 이길 순 없었다.

    그렇게 꾸벅꾸벅 졸던 융의 귀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전하께서 얼마나 덕이 있으신 분이시면, 천리를 거슬렀는데도 무탈하셨겠는가? 천리를 거슬렀는데도 무탈하시고 무공까지 세우셨으니, 이건 하늘이 감동했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음일세.”

    “하긴······.”

    “천리를 거슬렀다면 천형이 떨어졌을 텐데 지금까지 아무런 일도 없지 않나? 이는 필시 하늘이 내린 성군이란 뜻일세. 우리 전하께서는 성군이실세, 성군.”

    ‘천리를 거슬렀다?’

    의아한 말이었다.

    오랑캐를 정벌하고, 왜구의 침략에 유구국을 구한 건 천리를 역행한 게 아니라 오히려 순리를 바로 잡은 일에 가까웠다. 그런데 천리를 역행했다니······.

    융은 어가를 세웠다.

    어가가 정지하자, 모든 행렬이 멈춰섰다.

    “전하, 혹 언짢은 것이라도······.”

    쩔쩔매는 윤성경을 일별한 융은 방금 속닥거린 장본인들을 찾았다.

    부복해 있는 장년인 둘이 분명했다.

    융은 두 장년인에게 다가갔다.

    “지금 너희가 하는 말이 무엇이더냐?”

    “저, 전하!”

    “천리를 거슬렀다는 것은 무엇이고, 천형은 또 무엇이며, 하늘이 감동했다는 말은 또 무어냐?”

    “주, 죽여주시옵소서, 전하!”

    “내 너희를 벌하고자 함이 아니라 너희가 하는 말이 의아해 어가를 세운 것이니 두려워말고 말하라.”

    최대한 나긋한 어조로 운을 뗐지만, 장년인 둘은 두려움에 어찌할 바를 몰라하고 있었다.

    “첨사.”

    “예, 전하.”

    “첨사는 아는 바가 있는가?”

    “객사에 뫼시면 아뢰려고 했사온데 실은 전하께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사옵니다.”

    “많은 일?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 두 사람이 천리를 운운한단 말이냐?”

    “그게, 그러니까······.”

    윤성경이 설명을 시작했다.

    가만히 윤성경의 설명을 듣던 융의 표정이 굳어졌다.

    “네놈이 감히 임금을 기만하려 함이냐?”

    털썩!

    “저, 전하. 신 윤성경, 어찌 감히 왕을 기만하려 했겠사옵니까? 사실이옵니다.”

    “네놈이 날 기만하려 함이 아니라면 어찌 그런 괴력난신 같은 소리를 하면서 날 우롱할 수 있단 말인가? 뭐, 거대한 풍등을 띄워 사람을 하늘로 날려보내?”

    믿을 수 없었다.

    글쎄, 진성대군이 거대한 물체를 하늘로 띄웠다지 않은가.

    하늘로 띄웠다는 것 자체는 문제 될 게 없었다.

    진짜 문제는 조만간 그 거대한 물체에 사람도 태워 하늘로 날려보낼 참이라는 게 문제였다.

    이건 괴력난신 조차 안 할 궤변이나 다름이 없었다.

    “바른대로 고하지 못 할까!”

    “차, 참말이옵니다, 전하. 미, 믿어주시옵소서.”

    “어허! 계속 궤변을 늘어 놓을 참이란 말이냐!”

    “저, 전하, 참말이옵니다. 믿어주시옵소서!”

    울상이 된 채 믿어달라 호소하는 윤성경에 융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왜구와 내통한 신공의 후임으로는 제대로 된 첨사를 제수했다고 생각했건만, 이건 뭐 실성한 놈을 첨사로 앉혀놨다.

    “여봐라, 임금을 기만한 죄인을 원옥(감옥)에 하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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