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군으로 살어리랏다-242화 (242/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42화>

    ***

    열기구를 만들기 위해 연가(年暇)를 냈다.

    연가라니··· 다른 벼슬아치들이 마음 내키는대로 연가를 낸 나를 보면 뭐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일국의 섭정승이시다.

    일국의 섭정승이 연가도 마음대로 못 내?

    게다가 나는 놀기 위해 연가를 낸 게 아니다.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있게 하는 비행도구를 만드려고 연가를 낸 거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일인 셈이다.

    세계사적으로 보면 16세기의 조선은 티끌 점과 같을 텐데, 그 티끌 점과 같은 조선에서 16세기에 열기구로 하늘을 나는 사람이 있었다.

    얼마나 큰 업적인가?

    뭐, 연가 낼 때 비행도구를 만드려고 좀 쉰다니까, 황이나 삼정승들이 깜짝 놀라서 얼른 집에 가 쉬라고 한 게 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뭔가 내가 실성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거든.

    물론 그거야 증명해보이면 된다.

    재료도 준비가 됐다.

    “스승님, 정말 이런 걸로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인지요?”

    원리가 정리 된 노트와 재료들을 꼼꼼하게 체크하던 내게 석평이가 물었다.

    이미 경덕이는 하늘을 날겠다는 나의 원대한 포부(?)를 반허풍 정도로 취급하며 일찌감치 사랑방 마루에서 혼자 놀고 있는 개똥이한테 글을 가르쳐주고 있었고, 덕산이야 뭐··· 아예 믿지도 않고 있고 유일하게 지지하고 있는 사람이 석평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런 석평이도 반신반의하는 모습이 역력하니 살짝 마음이 상했다.

    “된다니까?”

    “어떤 원리인 것인지요?”

    공기를 가열하면 자연스레 온도가 높아지고, 높아진 원자 덕에 분자 운동이 활발해져 부피가 올라간다. 반면 밀도는 작아지는데 이로인해 공기가 상승하려는 부력(浮力)이 발생하고, 이 부력 덕에 열기구가 하늘에 뜨게 될 수 있는 원리란다.

    ‘라고 설명하는 건 안 되겠네.’

    최대한 석평이가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을 해보려 한 건데, 이렇게 말하면 못 알아들을 것 같았다.

    나는 보다 쉬운 대답을 내놨다.

    “너 풍등, 알지 풍등?”

    “알지요.”

    “그거랑 비슷해.”

    “이걸로 풍등을 만든다는 말씀이십니까?”

    엄밀히 말하면 다르지만 원리는 비슷하다.

    “그렇지.”

    내 대답이 속시원한 대답은 아니었는지, 석평이는 여전히 궁금해하는 기색이었지만 이보다 더 쉽게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그나저나 어디 넓은 공터 같은 곳 없냐? 이거 집에서는 못 만들겠는데.”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내가 만드려는 열기구의 기낭은 최소 그 지름이 10m는 넘는다.

    그런데 우리집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걸 여기서 만들 순 없었다.

    완성시키고 나서 시범적으로 날려볼 때의 문제도 있었다.

    이게 도중에 추락하거나 불이 붙는다면 우리집 뿐만 아니라 이웃집까지 화재가 번져 나갈 수도 있었으니까.

    ***

    내가 실험 장소로 채택한 곳은 봉해위의 군영이었다.

    강변과 가깝고, 넓은 공터도 있으며, 무엇보다 실험 도구(?)들을 보관하기 용이하고, 또 소수의 군사들이 있으니 완성체가 된 열기구를 감시하게 만들 수도 있다.

    감시가 웬말이냐 할 수도 있겠는데 나는 사실 열기구를 띄웠을 때, 열기구가 추락해 발생하는 화재보다도 선비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열기구에 인위적으로 방화하는 걸 걱정하고 있다.

    삼정승들과 황이마저 날 실성한 사람 취급하며 연가를 허락해줬다.

    그렇게 연가를 낸 내가 봉해위의 군영에서 해괴한 실험을 한다.

    하늘을 날게 만든다나 뭐라나?

    그리고 이 기행을 씹선비들이 알게 된다.

    여울이마저도 천리를 역행하는 일이라 말하고, 심지어는 까막눈인 덕산이마저 천형을 운운할 정도였는데 최악의 경우에는 씹선비들이 떼로 몰려와 내 실험을 방해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군영에서 실험을 하면 이 모든 걱정들을 일축 할 수가 있다.

    어쨌든 군영에 실험실을 마련한 나는 바로 열기구 제작에 돌입했다.

    16세기에 떨어져서 이렇게 뭔가에 몰두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온신경을 열기구에만 집중시켰다.

    물론 나 혼자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경덕이와 석평이 그리고 광조의 도움이 있었고, 손재주 있는 행랑식구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일이었다.

    실험에 동원 된 사람들만 물경 스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매달렸기 때문인지, 열기구 제작은 수월하게 이뤄졌다.

    실험에 동원 된 사람들은 석평이를 제외하고 모두들 열의를 보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반신반의하면서 제작에 도움을 줬다.

    가장 먼저 열기구를 띄울 기낭을 만들었다.

    기낭은 천과 종이를 이용했다.

    16세기에서 합성소재를 사용 할 수 없으니, 몽골피에 형제처럼 원시적인(?) 방법으로 제작한 것이다.

    천을 꼼꼼하게 이어 붙여서 기낭을 제작했고, 기낭 아래 쪽과 연결돼 기낭의 공기를 가열시킬 용기(容器)에는 습자지를 덧발랐다.

    불이 살짝만 용기의 습자지 부분에 옮겨 붙는다면 추락의 위험이 있긴 했지만 말했다시피 방염 처리 된 원단을 사용 할 수는 없었다.

    그나마 비단을 대체재로 사용 할 수 있긴 하겠지만, 지금 만든 열기구는 실험용이었다.

    홀랑 타버릴지도 모를 실험용에 비단을 덕지덕지 바르는 사치(?)를 저지르고 싶진 않았다.

    이번 실험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비단으로 대체하기로 한 채 제작했다.

    기낭의 지름은 12m 정도였고 보름만에 완성시켰다.

    연소장치 역할을 할 화로(?)는 밧줄을 이용해 기낭과, 바스켓에 연결시켰고 사람이든 동물이든 태울 바스켓은 다른 나무들에 비해 비교적 가벼운 등나무를 이용했다.

    1~2명이 탈 만한 작은 바스켓이었지만, 실험용으로는 이만하면 됐다.

    그리고 그로부터 열흘이 더 지난 뒤.

    모든 열기구 제작이 끝이 났다.

    이제 실험만 남았다.

    ***

    왜인지 모르겠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고, 그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면서 말이 와전 된다더니 딱 그랬다.

    장안에 소문이 돌고 있었다.

    진성대군이 실성을 했다··· 진성대군이 하늘에 도전(?)한다··· 진성대군이 천지자연의 섭리를 거역했다··· 등등.

    이런 소문만 보면 내가 무슨 박원종처럼 난이라도 일으킬 것 같은 소문들인데, 난 고작 하늘을 날겠답시고 연가 내고 열기구 만든 죄 밖에 없다.

    물론 부정적인 소문만 돌진 않았다.

    팩트에 기반한 소문도 있었다.

    진성대군이 하늘을 날겠다고 선언했다··· 기행을 일삼는 진성대군이 이제 하늘을 상대로 기행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등등.

    소문은 걷잡을 새도 없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물론 내가 의도한 소문도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나돈 소문에 불과했다.

    소문을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은 직접 실험장인 봉해위의 군영까지 찾아올 정도였다.

    나는 이런 귀찮은 소문들에 굳이 해명하진 않았다.

    잠자코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찌는 듯한 더위가 한풀 꺾인 8월 21일.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열기구를 처음으로 띄우는 실험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오늘, 장안에는 내가 하늘을 나는 실험을 한다는 소문이 일파만파로 퍼졌기 때문인지 군영과 그 일대는 인파로 북적거렸다.

    내가 21일날 실험을 하겠다고 공표를 했을 때, 어머니는 친히 관람을 나오겠다고 말씀하시기 까지 했고, 아직 어린 황이 역시 호기심 때문인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나왔다.

    대리청정을 하고 있는 황이가 나오는데 재상들이 안 나오는 건 어불성설이다.

    난다 긴다 하는 재상들이 모조리 봉해위 군영으로 모여들었다.

    “정말로 저걸로 하늘을 날 수 있는 걸까요?”

    “허풍이라면 이쯤에서 관두셨을 텐데 계속 하시는 걸 보면, 확실히 된다는 확신을 갖고 계신 게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어찌 사람이 하늘을······.”

    “그나저나 정말 하늘을 날아도 문제겠습니다. 천지자연에는 이치라는 것이 분명하게 정해져있거늘 땅을 밞고 살아가는 사람이 저 구름처럼 하늘에 떠오른다면 하늘이 재앙을 내리는 것이 아닐는지······.”

    “뭐, 재앙까지 내리기야 하겠습니까?”

    물론 그 난다 긴다 하는 재상들의 수군거림은 덤이었다.

    나는 그 수군거림들은 뒤로한 채, 황이에게 다가갔다.

    아직 인사를 못 했거든.

    “숙부님. 정말 저 물체로 사람을 띄울 수 있는 건가요?”

    어린 황이는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사실이, 재상들보다 더 신기한 모양이었다.

    인사도 생략한 채 물어오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러면서도 반신반의하는 태가 역력했다.

    “가능합니다, 저하.”

    가능하다는 말에 황이의 얼굴이 상기돼 갔다.

    “어서 보여주세요, 어서요.”

    동심을 파괴하는 건, 어른으로서 해선 안 될 짓이지.

    나는 어머니께도 인사를 드린 후, 열기구로 향했다. 그리고 열기구가 밧줄에 잘 묶여있는지를 재차 확인했다.

    이제 불을 지필 거다. 불을 지피면 기낭이 부풀어오를 테고, 부풀어 오른 기낭이 하늘로 떠오를 텐데, 밧줄로 잘 묶어두지 않는다면 저 혼자 날아가버릴지도 몰랐다.

    열기구가 밧줄에 잘 묶여있는 걸 확인한 나는 연소장치인 화로에 불을 지폈다.

    화로가 연소면서 점점 기낭에 들어간 공기가 가열되기 시작했다.

    흐물거리던 기낭이 부풀어오른 것이다.

    기낭이 부풀어오르자 도처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어떻게 보면 그냥 풍선에 바람을 넣은 것과 다름이 없는데, 그것마저도 이 사람들은 신기한가 보다.

    일부 불교 신자들은 염주알을 굴려대면서 나무관세음보살을 외워댔다.

    얼핏 여울이를 보니 신실한 불교 신자인 여울이도 입을 오물거리고 있는 것이, 관세음보살을 외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후.

    “스, 스승님!”

    경덕이가 외마디 비명과 같이 날 불렀다.

    “뜨, 뜹니다! 떠요!”

    “뜨라고 만든 거지, 가라 앉으라고 만들었겠냐? 당연한 걸, 자식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실험 직전까지 이 스승을 의심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와!”

    머잖아 함성이 터져나왔다.

    부풀어오른 기낭이 지상에서 떠오른 걸, 구경꾼들도 목격한 것이었다.

    고작 1m 남짓 떠오른 정도에 불과했지만, 기구가 부유(浮游)하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나는 허풍이네 어쩌네 수군거린 재상들을 흘겼다.

    자리까지 박차고 일어나 기구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들이, 가관도 이런 가관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은 아니었다.

    고작 1m 정도 날게 할 생각으로 20일 넘게 뺑이 친 게 아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팽창된 기낭에 의해 기구가 더 떠오르기 시작했다.

    1m에서 부유하던 기구가 점점 2m, 3m, 4m, 5m, 6m··· 그리고 열기구를 묶은 밧줄의 길이였던 40m까지 떠오른 것이었다.

    40m의 높이면 아예 고개를 뒤로 젖힐 정도 만큼의 높이였다.

    이정도면 실험은 대성공이었다.

    열기구를 하늘로 띄우는데 성공했고, 조금만 더 개선한다면 사람도 태울 수 있을 터였다.

    ‘이만하면 인류 역사 최초로 열기구를 실험한 사람이 되려나?’

    몽골피에 형제에게 미안한 감이 있지만, 몽골피에 형제가 살아간 시절과 비교하면 자그마치 300년 가까운 시간의 간극이 존재한다.

    지금의 역사로는 내가 최초이니 딱히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는 없어 보였다.

    “스, 스승님······.”

    인류 역사상 최초로 열기구를 실험한 장본인이 되었단 사실에 흐뭇해하고 있을 즈음.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어안이 벙벙해보이는 석평이가 다가왔다.

    “어, 석평아. 수고 많았다.”

    “스, 스승님.”

    “왜, 이 자식아?”

    “스승님은 대체 어떤 분이시옵니까?”

    “그건 뭔, 선문답 같은 질문이냐? 어떤 사람이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열기구 띄운 사람이지. 크크.”

    “아니, 그, 어찌······.”

    얼씨구?

    이제는 아예 말잇못 상태에 빠졌다.

    같이 열기구를 제작하긴 했어도 진짜 뜰 줄은 몰랐던 모양인지 어지간히 놀란 모습이다.

    물론 말잇못 상태에 빠진 건, 석평이 뿐만이 아니었다.

    경덕이나 덕산이도 매한가지였고, 재상들도 같았다.

    《무종실록(武宗實錄) 1507년 8월 21일 기사》

    ···하므로 진성대군이 기행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은 장안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오늘 기행을 대중에게 선보인다 하여, 대비와 세자가 군영에 행차했다. 문무백관들이 호종하였고, 모인 군중은 족히 수천명은 넘었는데 모두들 반신반의했다【본 사신도 이를 믿지 못 하고, 진성대군이 허풍을 떤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진성대군이 기행을 선보이자 풍등과 같이 생긴 물체가 곧 부풀어오르더니 두둥실 떠올랐다. 기이한 장면에 수천의 인파가 내지른 함성은 사자후 같았으니 천지가 요동했다. 문무백관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하기를,

    “정말로 부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습니다.”

    “저 물체가 이제 떠올랐으니 바구니에 사람만 타면 가히 사람이 하늘을 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놀랍습니다.”

    말했다.

    사신은 논한다.

    이는 천리를 역행하는 일이지만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으랴?

    과연 대국의 천자도 못 한 일을, 동국에서 해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