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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241화 (241/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41화>

    ***

    ‘결국 종이를 어떻게 공급하느냐가 관건인데······.’

    알다시피 사장은 구했다.

    조광조.

    역알못인 나도 그 이름을 들어서 알고 있는 그 역사적인 인물이 내가 차릴 신문사 사장이다.

    이런 게 바로 역사의 아이러니겠지?

    21세기 조선사 박사들은 이런 거 짐작이나 했겠냐고.

    그 역사적인 인물 조광조가 신문사 사장이 되리란 짐작.

    아, 자꾸 ‘그 역사적인 인물’이라고 말하는 건 사실 광조가 원래 역사에서 무슨 업적을 남겼는지는 몰라서다.

    무슨 업적을 남기긴 했으니까, 나도 알고 있는 걸 테지만 어쨌든.

    사장도 구했고 행정적인 문제도 문제거리가 아니다.

    형님 돌아오시면 바로 허락 받을 수 있는 사안이니까.

    근자감이 아니라 확신이다.

    형님이 전쟁에서 겪은 참혹함 때문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앓게 된 게 아니라면, 무조건적으로 허락해주실 분이다. 오히려 재밌겠다고 응원하실 분이지.

    결국 남은 문제는 종이의 공급이다.

    여기서 종이는 끔찍하리만치 비싸다.

    내가 왜, 전생에 이현호로 살면서 그 귀한 종이로 비행기를 접거나 배접기 놀이를 했는지 후회가 막심해질 정도로 귀한 수준이었다.

    그런 종이를 대량으로 공급해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인데······.

    “안 즐거우셔요?”

    신문사 설립에 너무 골똘했던 모양이다.

    《천녀유혼》에 나오는 왕조현은 명함도 못 내밀 미녀가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왕조현이 명함도 못 내밀 미녀가 누구냐고?

    여울이 밖에 더 있나?

    “아, 부인.”

    뒤늦게 내가 지금 사랑방이나 빈청에 있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

    지금은 오랜만에 여울이랑 데이트를 나왔다.

    한강으로 말이지.

    데이트 나왔는데도 사업 구상이나 하고 있었으니 왜, 다수의 비즈니스맨들이 가정에 소홀했는지 이해가 간다.

    “무슨 생각을 그리 깊이 하시어요?”

    “생각은요.”

    “세 번 씩이나 불러도 대답이 없던 걸요.”

    나는 능청맞게 웃었다.

    “나도 모르게 부인의 미색에 넋을 놓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여울이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왜, 부인의 미색은 날이가면 더 하는 겁니까?”

    “···행랑식구들 듣습니다.”

    “들으라지요. 부인의 미색이 경성지색인 건, 저 남해바다 사는 용왕도 아는 사실인 걸요.”

    부끄러운지 괜히 발을 동동 굴리는 여울이에 장난기가 도졌다.

    “부인, 저기 가서 서보세요.”

    내가 가리킨 곳은 무궁화 꽃밭이었다. 여울이가 쭈뼛거리며 꽃밭에 가서 서자, 나는 데이트 수발(?) 들러 함께 나온 덕산이와 이덕이, 전금이를 돌아보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덕산이 너는 저중에 누가 꽃인지 알겠냐? 나는 모르겠는데?”

    “···”

    “부인! 부인 얼른 나오세요, 꽃하고 같이 있으니 부인이 어딨는지 보이질 않습니다!”

    닭살은 여러분들의 몫이다.

    “미, 민망하게 왜 그러셔요······.”

    진짜 창피하긴 한 모양이다.

    얼굴을 못 들고 있다.

    “아, 거기 계셨네요. 나중에 형님께서 돌아오시면 팔도에 꽃이란 꽃은 모두 박멸해달라고 부탁을 하든지 해야겠습니다. 절기마다 꽃이 개화 할 텐데, 그때마다 부인을 잃어버릴 순 없지 않겠습니까?”

    부끄러운지 연신 몸을 배배 꼬는 여울이에 피식 거린 나는 여울이의 손을 잡고 강변을 걸었다.

    시대가 16세기라, 컨텐츠만 좀 다를 뿐 연인들이 으레 할 법 한, 전형적인 데이트였다.

    산책도 하고, 말도 좀 타면서 강변 드라이브(?)를 하고, 밥도 먹고, 영화··· 는 아니고, 예흥청의 광대들이 하는 공연도 관람하고.

    다 관람하고 나서는 카페 대신 다점에 들러서 공연을 주제로 수다도 좀 떨고.

    그리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대화를 하던 중에, 여울이가 말이 없어 바라보니 저 멀리 아이들이 연 날리는 모습에 넋이 나가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넋이 나간 채, 바라보면서 한참을 기다렸다.

    “연이 참 아름답습니다.”

    “연이요?”

    나는 하늘에 두둥실 떠있는 연을 바라봤다.

    이리보나 저리보나 그냥 방패연이다.

    “예. 저 연도 선녀를 찾아 갈 수 있겠지요?”

    뜬금없이 선녀가 웬말인가 할 수 있겠는데 아까 본 공연이 선녀와 나무꾼을 주제로 한 연극이었다.

    내가 집필한(?) 시나리오기도 한데, 원작에서는 나무꾼이 한 번의 실수로 영영 선녀를 못 만나게 되는 새드엔딩이 마음에 안 들어서 내가 집필한 시나리오에서는 거대한 연을 타고 천상계로 가, 선녀랑 다시 만났다는 해피엔딩이었다.

    아무튼 현실에서는 연이 선녀를 찾아갈 일은 때려 죽어도 없겠지만, 여울이의 감상과 동심을 파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럴 테지요.”

    “하늘을 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

    “무서울 겁니다.”

    여울이를 앞에 두고 전 여친 얘기를 하면 미안해지지만, 전 여친 가희 덕에 열기구에 탑승해 본 적이 있다.

    존나게 무서웠다.

    “무섭다기 보다는 아름답지 않을까요?”

    당시 나는 무서워서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조종사가 처음에는 괜찮으니까 눈 뜨라고 말했고, 하도 안 뜨니 아예 고함까지 치면서 눈 뜨라고까지 했었지만 무서워서 못 떴다.

    뭐, 나중에는 결국 뜨긴 했지만 나한테는 아름다움보단 무서움의 감정만 더 남았다.

    “그렇긴 하겠습니다.”

    “오늘 공연을 보고 나니 왜, 옛날 사람들이 하늘에 관심을 가졌는지 알 것 같아요. 일생에 한 번이라도 선녀처럼 하늘을 날아볼 수 있다면 원이 없었을 테지요.”

    잠시 고민하던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날 수 있을 겁니다.”

    “사람이 하늘을 나는 건 천지자연의 이치와 순리를 역행하는 일인 걸요. 하늘을 관찰 할 순 있어도 하늘을 땅으로 끌어내릴 순 없지 않겠습니까.”

    “정말인데. 날 수 있습니다.”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덕산이의 웃음소리다.

    이어서 여울이도 풋, 하고 작게 웃었다.

    근데 정말이다.

    진짜로 날 수 있다.

    “그게 가능하다면 저 역시 하늘을 날고 있었을 테지요.”

    “아니, 정말로 날 수 있습니다. 아까 공연에서 나온 선녀처럼 옷깃 펄럭이면서 날 순 없겠지만, 그래도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 볼 순 있어요.”

    “네.”

    여울이의 반응이 마치 동심 가득한 어린 아이의 질문에 대답하는 어른 같다.

    아니, 그런데 진짜로 날 수가 있다.

    난 진짜로 날아보기도 했고.

    “아니, 진짜! 진짜 날 수 있는데, 답답하네. 진짜로 날 수 있어요, 부인. 말했다시피 선녀처럼 고상하게 날 순 없겠지만······.”

    “대감마님. 사람이 하늘을 나는 게 어찌 가당하겠습니까요? 설령 날 수 있어도 천리를 거슬렀다고 천형(天刑)을 받지 않겠습니까요?”

    아니, 이제는 덕산이까지!

    버럭 소리치려다가 가까스로 마음을 달랬다.

    그래, 여긴 16세기다. 왜 자꾸 이들이 현대인들의 지식을 갖고 있을 거라 재단해버리는지 모르겠다.

    그래.

    하늘을 난다는 건, 이 시대 기준으로는 불가능에 가깝지.

    다만 오기는 좀 생긴다.

    “덕산이 너, 내가 하늘 날고 나서 천형 안 받으면 어떡할래?”

    “대감마님이 원하는 건 뭐든 하겠습니다요.”

    “말했다?”

    “예. 쇤네도 사내인데 한 입 갖고 두말을 하겠습니까요. 대신······.”

    “인마, 내가 못 날면 너가 나한테 말 놓게 해준다. 아니, 내가 형이라 부를게.”

    “그, 그럴 필요까진 없······.”

    “진짜라니까? 부인. 부인은 제가 하늘 날면 뭘 하시겠습니까?”

    여울이는 말없이 웃음만 터뜨렸다.

    사나이 이역··· 비록 문돌이지만 이 오기를 실재(實在)로 증명해보이겠다.

    신문사? 종이?

    자존심이 먼저지, 신문사가 먼전가?

    ***

    내가 열기구 만드는 일을 안 한 건, 말 그대로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거다.

    안과 못의 차이는 다들 알잖아?

    열기구를 굳이 왜 만들어?

    여기 사람들은 경복궁에 벼락만 연달아 내리쳐도 왕이 정치를 잘못하고 있네, 왕이 정성을 보여야 하네, 입에 달고 사는데.

    벼락 치는 일로 이 정도인데 열기구 타고 하늘을 날아봐라.

    아마 중세 유럽의 크리스찬들이 바라보는 마녀랑 같을걸?

    뭐, 진짜 날 화형시키진 않겠지만 말이 그렇단 거다.

    엄청 수상쩍게 보겠지.

    무엇보다, 열기구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만한 상황이 없었다.

    특정 기억이란 건 불현 듯 떠오를 때도 있고, 어떤 단어를 통해 떠오를 때도 있고, 또 어떤 때는 타인의 행동으로 인해 떠오를 때도 있는데 딱히 그런 상황이 없었다.

    그런데 이틀 전에 있었던 사건은 다르다.

    내 자존심을 짓밞으면서(?) 아주 직접적으로 열기구를 떠올리게 만들어버렸지.

    그런 의미에서······.

    쓱- 쓰윽.

    “완성!”

    이틀 전,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열기구의 설계도와 원리부터 정리했다.

    이렇게 까지 오래 걸릴 일은 아니었는데, 이래뵈도 내가 섭정승이다 보니 24시간을 열기구에 집중 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이론 정리는 끝났다.

    “스승님, 그게 무엇입니까?”

    경덕이가 내가 그린 열기구를 바라보며 아리송한 표정으로 물었다.

    또, 웃음거리가 되는 건 아닌가 싶어 말할까 말까 망설였지만 모든 인간들이 특정한 일을 불가능의 영역으로만 생각했다면 인류 역사에 문명의 발전도 없었을 거다.

    몽골피에 형제가 열기구를 만들 일도 없었겠지.

    아니, 열기구 이전에 불을 써먹을 생각조차 못 했겠지.

    아, 내가 몽골필에 형제를 알고 있는 건, 가희 덕이다.

    가희는 내가 만났던 여자 중, 가장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열기구 덕후였는데, 성인이 돼서는 아예 열기구를 업으로 삼았거든.

    그리고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탔던 열기구의 조종사도 가희였다.

    제기랄, 그땐 진짜 엄청 쪽팔렸지.

    “열기구라는 물체니라.”

    “열기구요?”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있게 하는 물체지.”

    “아, 사람이 하늘을요? 음.”

    “왜, 너도 내 말이 허풍같냐?”

    경덕이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뇨, 전 스승님을 믿습니다.”

    “그래? 근데 왜 믿는다는 거냐?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있다는데?”

    “당연히 스승님께서 절 시험하고 계시기 때문이지요.”

    “시험? 무슨 시험?”

    “스승님께서는 제가 토를 달면 입버릇처럼 뱁새가 봉황의 뜻을 어찌 알겠냐며 타박을 주시지 않습니까? 이번에도 제가 토를 달면 그리 말씀하시려고 일부러 허무맹랑한 말씀을 하신 게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전 스승님을 믿습니다. 결단코 사람은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개소리를 장황하게도 늘어놓는구나.”

    “화담. 스승님이 하시는 일에 그른 일은 없었네. 하물며 스승님이 허풍을 떤 적은 더더욱 없었지. 스승님. 이 제자는 믿사옵니다.”

    “너도 내가 무슨 시험 한다고 생각하냐?”

    “아니요. 이 제자에게는 화담 말고 다른 벗이 하나 있사온데 그 그 벗의 팔촌의 사돈 어른께서 정조사(사신의 일종) 행렬에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글쎄, 중국에는 애체(안경)라는 물건이 침침한 노인의 눈도 젊은 사람의 눈처럼 만들어준다지 않겠습니까? 침침한 노인의 눈도 젊은이의 눈처럼 만들어주는 물체도 있는데, 사람이 하늘을 난다는 것을 못 믿을 까닭은 또 뭐겠습니까?”

    옳거니!

    그래, 세상은 석평이처럼 모든 일에 의문을 제기하고, 의심을 품는 사람들 덕에 발전한 거다.

    역시 내 수제자답다.

    “그런 의미에서 석평아. 나가서 빳빳한 종이하고, 천좀 구해올래? 지푸라기랑 기름도. 아, 기름은 두뭇개 삼성 본사가서 덕복이한테 달라하면 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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