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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240화 (240/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40화>

    ***

    생뚱맞지만 나비 효과란 뭘 말하는 걸까?

    정확한 의미의 나비 효과 말이다.

    오로지 역사의 물리적인 흐름이 바뀌는 걸, 나비 효과라고 하는 건지, 아니면 내적인 흐름까지 바뀌는 것도 나비 효과라고 할 수 있는 건지.

    내적인 흐름이 바뀌는 것 역시 나비 효과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면 단언컨대, 나는 지금 내 눈으로 나비 효과를 실감하고 있다.

    “합하께서 큰 뜻으로 대납을 언급하셨으니 일국의 정승 중 한 사람으로서 어찌 가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합하처럼 큰 재물을 헌납 할 순 없겠으나 약소하나마 보태겠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종사에 의리를 지키다 전사한 자들을 위한 헌납인데 이를 어찌 마다하겠으며, 마다한다면 어찌 선비겠습니까? 저 역시 영상대감처럼 큰 돈은 아니지만 약소한 재물이나마 보탰으면 합니다.”

    “모름지기 선비는 훗날 장사 치를 돈만 있으면 된다 하였습니다. 이 말이 곧, ‘청백(청렴)한 재상은 훗날 천수가 다했을 때 관만 남고, 탐악한 재상은 훗날 천수가 다했을 때 노욕만 남는다’ 란 말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하물며 종사의 의리를 지킨 자들을 위한 일에 어찌 선비된 자로 재물에 연연하겠으며, 종사의 의리를 지킨 자들을 위한 일에 인색하게 굴겠습니까? 저는 본시 재물이 많지 않아 가지고 있는 것이 패물 약간과 서적이 전부이니, 이거라도 내어 보태겠습니다.”

    불과 2~3년 전.

    내가 나라에 돈을 내겠다고 하면 편전은 갑분싸가 됐다.

    지난 날 처형된 역신과 간신들은 형님의 눈치만 살폈고, 행여라도 형님이 “진성대군도 내는데 너희도 얼른 내라!” 할까 노심초사 했었다.

    그런데 보라고, 나로 인해 역사의 큰 줄기가 바뀐 건 아니지만 최소한 이 역사의 현장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인드는 바뀌지 않았겠나.

    2~3년 전에는 이 시대 사람들이 말하는 위군자와 위선자 밖에 없었다.

    백성을 위해서라는 단서를 달아도, 진짜 백성을 위하는 일에는 인색하게 굴었던 위군자와 위선자들만 있었단 말이지.

    그런데 지금은 이구동성으로 나도 책임을 다하겠소! 말하고 있다.

    이게 가식이든 진심이든.

    긍정적인 변화라는 건 확실하다.

    사람이 실천을 옮기는 것과, 마음 속으로 생각만 하는 건 다르니까.

    지금 이 작은 실천들이 역사의 흐름으로 굳어진다면, 서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비되는, 조선만의 사회지도층에게 주어지는 도덕적 책무가 완전히 뿌리 내지 않을까 싶다.

    뭐, 지금도 진짜 선비라고 하는 사람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만 모르지, 어려운 사람들을 구휼하는 등 본인들의 책무를 다하고 있긴 하지만.

    잡설이 길어졌는데, 한마디로 이 긍정적인 변화가 뿌듯하고 반갑다는 말이었다.

    “종사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위해 제공(여러분)들께서 십시일반하겠다는 뜻을 밝히셨으니 필시 주상 전하께서도 이 사실을 듣는다면 흐뭇해 하실 것입니다. 고로 나는 생각합니다.”

    “말씀하십시오.”

    “종사란 무엇이겠습니까? 종사란 나라를 뜻합니다. 저는 우리 나라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진심으로 애도하고, 그 희생을 거룩하게 느꼈으면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묻겠습니다. 군사가 강한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여야겠습니까? 군기가 엄정하고, 화력이 앞서고, 또한 훈련이 잘 된 군대라야 강한 나라라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

    “아무리 강한 군대라 하더라도 전투에 앞서 도망하면 그들은 절대 강한 군대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럼, 군사가 전투에 앞서 도망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개인적인 두려움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나라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어도 나라에서 내 장례를 후하게 치러주고, 남은 가족들이 여생을 편히 보낼 수 있도록 도와줄거라는 믿음 말입니다. 그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군사들이 두려움에 동요하다가 도망하는 것입니다.”

    “···”

    “그들에게 믿음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이는 무를 숭상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군사가 전사해도 나라에서 후대한다는 인식이 생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본인이 전사해도 나라에서 홀로 남은 노모를, 노부를, 또 처자식을 대신 봉양한다는 믿음을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군대의 군기가 엄정하지 않아도, 화력이 강하지 않아도, 또한 훈련이 잘 돼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들은 기필코 투지를 불태울 것입니다.”

    “병법에 이르기를 ‘군사의 사기는 장수가 아니라 제왕에게서 나온다’ 하였는데 이는 진실로 그 말에 부합하는 말입니다. 제왕이 병사를 후대한다면 이것이 합하께서 말씀하시는 나라에서 병사를 후대한다는 뜻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좌상대감의 말이 맞습니다. 또, 나는 진심으로 우리나라가 종사를 위해 헌신한 자들에게 감사해하는 나라가 되길 바랐는데 지금 그 시작을 제공들께서 해주신 것과 다름이 없으니 섭정승을 떠나, 이 조선이란 나라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의 백성으로 우리 재상들에게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 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답지 않게 갑자기 진지해져버렸다.

    “에, 아무튼 간에 조속한 시일 내에 보훈청과 그에 맞는 관직을 설치하고 전사자들을 위무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팔도에 알려······.”

    “···”

    “유레카······.”

    “유, 예?”

    “유레카!”

    어리둥절해 하던 대신들이 제창하란 뜻으로 알아들었는지······.

    “유, 유레카.”

    다 함께 유레카를 외쳤다.

    하지만 그런 의미는 절대 아니었다.

    내가 유레카를 외친 건, 뜬금없이 차기 사업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

    단언컨대 난 어리석었다.

    이 16세기의 조선에 SNS가 있을 거라고 나도 모르게 단정 지어버렸다.

    재단을 해버렸단 말이지.

    엄밀히 말하면, 청계천 아줌마들의 입소문을 SNS 효과와 동일시 하는 우를 범했다.

    청계천 아줌마들의 입소문은 가히,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無足之言飛于千里)에 부합했다.

    그들이 아침에 청계천에서 빨래를 하다가 입소문이 돌면, 정오에는 한성부 전체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니까.

    빠른 속도로 소문이 확산되는 기능을 가진 SNS와 비슷한 능력(?)인 셈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입소문이 팔도 전체에까지 뻗친다고 속단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에 가깝다.

    도대체 뭔 소리를 늘어 놓는 거냐고?

    내가 보훈청을 설치하려고 했던 건, 일종의 깨달음 때문인 건 알 거다.

    저들을 씹선비라 욕 하면서 지금의 나는 뭘 하고 있는가······.

    원효대사가 해골 바가지에 든 물로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면, 나는 대성전 삼문을 걷어차면서 이 깨달음을 얻은 셈이다.

    이 깨달음으로 보훈청 설치를 추진했고, 확정이 되었다.

    편전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진심으로 이 조선이란 나라에도 미국처럼 군사를 우대하는 풍조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런데 보훈청만 뚝딱 설치 해놓는다고 그런 풍조가 팔도 전체에 퍼져나갈까?

    절대 아니다.

    소문도 함께 퍼져 나가야 한다.

    가령, 전사자 도치의 집은 한성부에 있다. 도치를 우대한다면 그 소문은 한성부 일대나 경기도까지는 퍼져나갈지 몰라도 저-기 의주나 제주도까지 퍼져 나가는 걸 기대하긴 어렵다.

    나라에서 도치를 우대했다는 소문을 팔도 백성 모두가 알게 해야 한다.

    정확히 도치의 집에 무슨 혜택을 줬고, 어떤 도움을 줘서 여생을 편히 보낼 수 있게 해줬는지 모두가 알게 해줘야 한단 말이지. 그런데 이걸 사람의 구전(口傳) 정도로 알게 하려면 내가 예상컨대 족히 수 년은 걸릴 일이다.

    보다 확실한 방법.

    그러면서도 정확한 팩트에 기반한 소문.

    이걸 이룰 수 있는 게 뭐겠는가?

    언론사다.

    그래, 신문사란 말이지.

    막말로 나라에서 전사자의 집안을 우대했다는 걸, 교서 씩이나 반포해서 알게 할 순 없잖아?

    신문사.

    이거면 모두 다 해결이다.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소문이 퍼져나갈 수 있고, 나라에서 군사를 우대한다는 믿음을 만백성에게 심어줄 수도 있으며, 이 소문을 팔도의 군사들 모두가 알게 할 수가 있다.

    이게 전부냐?

    아니지.

    형님의 업적을 찬양 할 수도 있다.

    뭔가, 업적 찬양이라고 하니 어용신문 같긴 한데······.

    음, 어용신문 맞겠네.

    좌우지간, 이 시대를 21세기와 동일시 하면 안 된다.

    여긴 왕이 곧 나라고, 나라가 곧 왕인 세상이다.

    나라의 지존인 왕이 백성들을 위해, 군사들을 위해 어떤 정책을 벌였는지 알게 하면 이건 이것대로 이로운 일이다.

    신문사 하나 창립해서 일석이조, 아니 사조, 오조, 육조의 효과를 얻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이 신문사는 자네가 참 제격일 것 같네. 어떤가?”

    “그건 조보가 아닙니까?”

    내 제안에 광조는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나라에서 벌할까봐 걱정하나?”

    아닌 게 아니라, 조보 필사는 금지됐다.

    신문의 역할이 어떻게 보면 기별지의 일종이라 할 수 있으니 광조의 고민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내가 누구야? 그 정도는 나라에 허락 받을 수 있네.”

    “그럼 저로서는 딱히 고민할 거리가 없는 문제겠군요. 다만.”

    “응? 다만?”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것이온데, 대감께서는 종이값이 얼만지는 아시지요?”

    “알지.”

    “적자를 면치 못 하다는 것도 아실 테구요?”

    “그것도 알지.”

    전국 팔도로 신문을 배송하려면 못 해도 수천명의 우체부가 필요하다.

    여기서 발생하는 인건비도 인건비지만, 이 인건비를 훨씬 상회하는 건 종이값이다.

    여긴 종이값이 엄청 비싸거든.

    계산 결과, 구독료를 받아도 연간 10만석의 적자가 발생하는 걸로 나왔다.

    “그런데 왜 하시려 하십니까?”

    내가 돈을 벌려고 신문사를 차리려는 건 아니다.

    공익 사업 한다 치고 감수 할 수 있는 적자였다.

    그런데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를 굳이 광조에게 해줄 필요는 없었다.

    “자네도 경덕이처럼 봉황의 깊은 뜻을 알려고 하는군. 뭐, 자네는 경덕이처럼 뱁새까지는 아니지만······.”

    “···?”

    “그것까지 알 필요 없다는 말이네. 아무튼 하겠다는 걸로 알아 들으면 되겠지?”

    “아, 예. 딱히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집에서도 내쫓기다시피 했는 걸요.”

    알다시피 광조는 나랑 같이 오키나와에 다녀왔다.

    그리고 모르다시피 그런 광조를 집안에선 엄청 반대했었다.

    왜 집안에서 반대했는지는 광조가 말을 안 해줘서 잘 모르겠지만 짐작으로는 과거 공부할 참에 유람이나 다녀오겠다니 반대를 한 게 아닌가 싶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광조는 오키나와에 다녀오면서 씹선비 태를 살짝이나마 벗어버렸다.

    집에서 어른들과 불화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지.

    가령 ‘오키나와에 다녀오니 출사 같은 게 다 허상같이 보여졌습니다.’ 라던가, ‘오키나와에 다녀오니 이딴 허무맹랑한 말들을 왜 공부해야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라던가.

    아무튼, 이유 모를 이유로 집에서 쫓겨나 우리집 식객으로 들어온 지 꽤 됐다.

    “좋아. 말 번복하기 없길세?”

    “예.”

    사장은 구했고, 남은 건 행정적인 문제랑 종이를 공수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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