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군으로 살어리랏다-239화 (239/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39화>

    ***

    난 역사에 관심이 없었다.

    그건 중학교 까까머리 시절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역사 수업은 대부분 기억이 나지 않는데, 몇 안 되게 기억하는 게 있다면 국사 선생님이 해주신 어떤 설화였다.

    역사 수업이란 게 학생들에게는 따분 할 수 밖에 없다.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점심 시간 바로 다음이 5교시 역사 수업이었고, 하필 또 봄이었다.

    밥도 든든하게 먹었겠다··· 열린 창문 사이로 봄바람이 살랑살랑 꼬리 치겠다··· 거기다가 교단에 서있는 선생님은 나긋한 어조시겠다··· 이거야 말로 학생들 잠자지 말라고 고문하는 격이나 다름이 없었다.

    학생들이 꾸벅꾸벅 졸자, 선생님은 분위기 전환 겸 어떤 설화를 말씀해주셨다.

    조선시대 어느 재상들의 우정이 엄청 깊어서 나온 설화라고 했는데 설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이름은 정확이 기억이 안 나고 선생님이 해주신 설화만 조금 기억이 난다.

    뭐랬더라?

    A와 B라는 재상들은 서로 우정이 깊었다.

    그러면서도 서로 장난이 가득했는데 A정승이 전염병으로 일가족이 몰살 당한 집에 검시관으로 가게되자 B정승이 이걸 알고 그 집에 미리 가있다가, A정승이 와서 벌떡 일어나며 장난질을 쳤다거나··· 어떤 일이 있어도 붙어다녀서 둘 모두 게이가 아니냐는 놀림을 받았다는 일화라거나··· 그러면서도 전쟁 중에는 둘이 합심해서 나라를 구하는데 일조한 일 등등.

    따분한 역사 시간에 선생님이 해주신 설화였다.

    선생님의 의도는, 나른한 오후 시간 학생들의 잠을 쫓아낼 겸, 당시 한참 학교폭력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던 시절이니 학생들에게 우정의 중요성도 강조할 겸, 하신 말씀이실 터였다.

    그런데 그걸 왜 지금 말하냐고?

    나는 요즘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설화의 주인공들이 어쩌면 석평이나 경덕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한다.

    둘 모두 아직 재상은 아니지만, 날 때부터 재상인 사람은 없는 거고··· 설화의 내용처럼 둘은 나 없을 땐 장난질을 심하다시피 친다.

    뭐, 거의 경덕이의 일방적인 장난이긴 하다만······.

    그리고, 항상 붙어다녀서 우리집 행랑식구들은 두 사람이 남색(동성애)을 하는 게 아니냐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게다가 저 두 녀석은 항상 본인들의 사이를 누가 물으면 망설임 없이, 생사를 같이 하여 목이 떨어져도 두려워하지 않을 만한 사이(刎頸之友)라고 말하고는 했었다.

    이런 일들 때문에 저 둘이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설화의 주인공들이 아닌가 싶었는데 개뿔.

    “송애(반석평의 호)이요.”

    “그런 거사에는 화담(서경덕의 호)이 제격인 듯 합니다.”

    너네 둘 중에 누가 자원할래?

    이 간단한 물음에 서로를 추천(?)하는 꼴을 본다면 문경지우가 웬 말이고, 우정 깊은 정승들의 설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웬 말인가?

    “누가, 둘 중에 죽을 사람 손 들라고 했냐! 뭘, 정색까지 하고 그래?”

    “하지만 저희들은 스승님을 조금이라도 더 모시면서 가르침을 받고 싶은 걸요.”

    “만날 가르쳐주는 것도 없다고 투덜거리잖아, 너?”

    “웬 걸요. 스승님이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듯, 뱁새가 어찌 봉황의 깊은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다만 뱁새도 봉황의 몸짓을 보면서 나름의 깨우침이 있는 것이지요.”

    자고로 비행기 태워주는 거 싫어하는 사람 없다.

    씹선비 항공의 서경덕 기장의 비행이 제법 안정적이다.

    “크흠, 뭐··· 그렇긴 하지.”

    “그런 의미에서 저희보다는 역시 조 선생에게 맡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조 선생? 광조?”

    함께 오키나와에 갔던 광조.

    석평이가 내 가르침을 절대적으로 맹신하고, 경덕이는 살짝 의심을 가지면서도 그럭저럭 수긍을 한다면, 조광조는 내 주장에 모순을 찾겠다며 오키나와에 동행을 한 케이스였다.

    오키나와로 출발하기 하루 전에는 소국과의 교역이 이롭네 아니네로 경덕이와 논쟁까지 벌였을 정도였다.

    물론.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오키나와에 갔다온 뒤로는 본인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면서 칩거 중이다.

    지난 날의 가르침이 선비로서 이상적인 치국일진 몰라도 백성의 입장에서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됐다나 뭐라나?

    뭐, 거기에 대고 내가 맞네 그르네라고 할 필요는 없어서 가만 놔두고 있는 상태였다.

    “예! 조 선생이라면 제격 아니겠습니까?”

    “광조가 오키나와에 다녀온 뒤로는 씹선비 태를 좀 벗긴 했는데 그래도 씹선비 기질이 다분해서 다음 사업 맡기기에는 좀··· 흐음. 그냥 너가 하면 안 되냐, 경덕아?”

    꿀꺽.

    “하지만 조 선생이 본인 입으로 말하지 않았습니까. 선비가 나라를 부흥시키고, 농사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 모두 허상이었다구요. 이제 조 선생도 저희처럼 씹선비가 아닙니다.”

    하긴.

    그러고 보면 광조가 셈에 많이 밝았다.

    씹선비 기질이 좀 있어서 고집이 황소고집인 것만 빼면 사교성도 제법 있는 상태였고.

    어떻게 보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좋아. 대신 광조가 안 한다고 하면 경덕이 너가 하는 거다?”

    “···이 제자가 꼭 조 선생을 설득하겠사옵니다, 스승님!”

    안 하면 난장이라도 때려서 하게 만들 심산인 것 같은데, 사장이 그렇게 하기 싫나?

    덕복이가 그 짧은 시간에 건물주가 된 걸 보고도?

    뭐, 아니면 정말 내 옆에 찰싹 붙어서 더 가르침 받고 싶은 건지도 모르지.

    ***

    “···하여 나주에서는 조정에서 관노들을 지원한다면 능히 일을 치를 수 있겠다는 장계를 보내왔사옵고, 또 공주에서 역시 관노들을 지원해달라는 장계를 보내왔사오니 이를 두고 보자면 농번기로 한참 바쁠 때라, 부역이 용이치 않아서 인 듯 합니다.”

    “그 문제만이 아닙니다. 치수(治水) 하는 일은 10년이 걸리더라도 어떻게든 완공 할 수 있는 국책이지만, 공사가 진행되면 될수록 지주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치수가 완공되는 즉시, 나라에서 모내기 법을 공인하는 걸 우려하는 듯 한데, 그들로서는 불안해하는 것도 이해가 가는 것이··· 모내기 법이란 게 가뭄이 들 경우 한 해 농사가 몽땅 망하고 만다는 인식이 있는데다, 이모작이 용이해지면서 소작들이 경작을 게을리 할 것을 불안해하는 것 같습니다. 이에 따른 대책이 시급하고······.”

    나는 귀를 후벼팠다.

    사건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사건이 터진다.

    형님 언제 오시냐, 진짜.

    “나주에는 이미 지난 달에 관노를 서른 명이나 보내 준 걸로 기억하고, 공주에는 관노가 아니라 내 사노들을 보내 준 걸로 기억하는데 나주목사랑 공주목사가 누구라구요?”

    “나주목사는 김문경(金文卿)이옵고, 공주목사는 전오륜(全五倫)이옵니다.”

    둘 다 무능해보이니 파직하라 하고 싶지만 당연히 그건 적법한 처사가 아니다.

    일단 이름은 기억해두자.

    건수 하나 잡게 되면 탄핵의 탄 자는 꺼낼 수 있게 될 테니까.

    “이미 나주와 공주에는 관노를 지원했는데 또 지원하는 것은 형평성을 떠나서 두 수령의 무능을 탓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일이 어렵다는 건 이해하지만, 자꾸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관노가 남아나는 것도 아니구요. 이 문제는 전하께서 오시면 윤허를 받도록 하구요, 좌참찬(안윤덕)께서는 뭐라고 하셨죠? 지주들이 어째요?”

    “지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음을 말씀 드렸습니다.”

    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 문제는 앞전의 문제 보다 더 골치 아픈 문제다.

    “치수가 완공이 되더라도, 모내기로 농사를 지을지 안 지을지는 지주들의 몫이라니까, 무슨 불만이 그리도 많답니까?”

    “국가에서 공인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라도 따라야 하는 것을 우려하는 듯 합니다.”

    “예, 불만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 슬슬 체감 되는 게, 오늘 아침에는 동복현감이 장계를 올려왔는데 지주가 노복들을 대동해 치수를 훼방 놓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국책을 훼방 놨단 말입니까?”

    “예.”

    “허어.”

    갈수록 태산이다.

    “동복현감에게는 군사를 동원해서라도 치수를 훼방 놓는 지주는 동헌 뜰에 앉히라 하고, 이런 일이 각지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으니 치수가 진행되는 전라도와 충청도의 수령방백(守令方伯)들에게도 공문을 보내 놓는 것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합하.”

    우참찬 김수동이었다.

    “예, 말씀하세요.”

    “어제 합하께서는 보훈청이라는 기관의 설치를 재상들에게 의논하란 말씀을 주셨었습니다.”

    어제 차기 사업체의 사장으로 광조를 낙점(?)하고 입궐을 했다.

    그리고 다른 분들께 보훈청 설치를 건의 드렸다.

    어제는 여러모로 씁쓸한 하루였다.

    도치를 포함한 전사자들의 집을 일일이 방문하면서도 느꼈지만, 무엇보다 대성전 삼문을 걷어차면서 어떤 깨달음이 생겼다.

    저들을 씹선비라 욕은 하면서 지금의 나는 뭘 하고 있는가?

    라는··· 개똥철학같은 깨달음이었다.

    그러다가 지금의 위치에서 내가 전사자들의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뭔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고, 그게 바로 보훈청이다.

    충훈부는 21세기로 치면 국가보훈처와 비슷한 기관이다.

    물론, 기관의 성격만 비슷할 뿐이지 그 범위는 다르다.

    보훈처가 유공자의 전반적인 사무를 도맡는다면, 충훈부는 오로지 공신과 공신의 자제들에 대한 사무만 맡는다.

    그들이 공신과 공신의 자제 일을 제외하고 나서는 일은 임금이 따로 명을 내릴 때다.

    XX을 녹훈하는 일이 타당한지 검토하라.

    XX을 우대하는 일이 타당한지 알아보라.

    혹은 XX은 XX전투에서 장렬하게 싸우다 전사하였으니 후하게 장사치르고, 그 가족들이 생활함에 불편함이 없게하라.

    정도의 명령이 떨어졌을 때 말이다.

    이번에 도치와 같은 전사자들의 유족들을 보살피는(?) 일에 충훈부가 채택 된 것도 이런 일련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지, 형님께서 전사자들을 후하게 대우하라는 말이 없었다면 충훈부에서는 아예 나서지도 않을 일이었다.

    나는 이게 조금은 부당하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입궐하자마자 재상들에게 충훈부의 확대된 일을 하는 대한민국의 국가보훈처 개념을 설명드렸고, 타당한지 여부를 알아봐달라 말씀을 드렸었다.

    그 결과가 못 해도 나흘은 지나야 나올 줄 알았는데 하루만에 나왔다니 확실히 일처리가 똑부러지는 이런 분들이 없었다면, 섭정직을 원활히 수행 할 수 없었을 거다.

    “네, 그랬죠. 어떻게 됐습니까?”

    “그게, 많은 분들이 회의를 품으셨습니다.”

    참고로 16세기 궁중에서 회의(懷疑)라던가, 민망하게도 라던가, 어리석어서 라던가 하는 건 완곡어법의 일종이다.

    한마디로 안 된다는 거다.

    “왜요?”

    대답은 허침 할아버지가 대신했다.

    “전사한 병사의 무훈을 기리자는 취지는 매우 온당한 일이지만, 그리되면 북방에서 경비하고 있는 군사들의 수많은 넋은 어찌 기릴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어쩌면 회령 등지에서는 야인에 의한 전사자가 생겼을지도 모르옵니다.”

    “예, 합하. 어떤 죽음이든 안타깝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물며 종묘사직을 위해 장렬히 사지로 걸어나간 장병의 죽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이를 기리자는 것은 대의에 맞는 일이지만, 모두를 기린다면 거짓으로 무공을 세운 이는 어찌 색원하겠으며, 설혹 거짓 무공자를 가릴 수 있다 한들 한 해에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의 사람들의 무훈을 기려야 할 터인데 이 재정은 어디서 충당하겠습니까?”

    순간 화가 났지만, 릴렉스했다.

    16세기에서 살게 되면 여러 문화 차이를 겪게 된다.

    특히 나는 섭정직을 수행하면서 그 문화 차이를 훨씬 더 많이 체감하고 있었다.

    이건 어쩔 수 없다.

    보훈청 설립을 이분들이 반대한다고 해서 이분들이 악하다는 건 아니다.

    내가 살던 시절에서 불과 1세기 전만 하더라도 전쟁 포로의 인권이니··· 인종차별이니 하는 일은 문제로 인식되지가 않았으니까.

    심지어 20세기 중반에 악명을 떨친 인종차별의 대명사 나치의 이념(?)을 이어가자는 네오나치들이 21세기에도 등장한 상태였으니 이분들을 욕할 건 없다.

    더군다나 취지를 반대한다는 게 아니잖나.

    “결국 재정 문제가 가장 크다는 거지요?”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치수에 들어간 재정이나··· 다른 국책에 들어갈 재정이나, 빠듯한데 나라 곳간의 지출이 보훈청으로 인해 더 늘게 된다면 아니한 만 못 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안타깝지만요.”

    “얼마나 모자랍니까?”

    “예?”

    “여러분들께서도 결국 보훈청에 할당 될 예산 때문에 설치를 반대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대충 추산은 해보셨을 텐데, 얼마나 모자라고, 얼마의 예산이 보훈청에 집행 될 거라 보셨던 겁니까?”

    “최소 한 해에 3천석에서 최대 9천석이었습니다. 다만 이는 추산일 뿐이고, 세월이 흘러 보훈청에 무훈이 등재 된 이들이 늘어난다면 수만석을 상회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3천석의 예산이 할당되어야 하고, 세월이 흐르면 그 곱절의 곱절의 예산이 할당 된다는 말씀이시다.

    “옛날 성인들은 말씀하시기를 ‘장사치만큼 속된 자들은 없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선비된 자가 재물을 밝힌다고 하면 지탄을 받는 것 아니겠습니까?”

    뜬금없는 말에 허침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거리셨다.

    “아, 예. 그렇지요.”

    “그런데 한갓 상스러운 재물 때문에 국가에 의리를 지킨 사람들을 외면하면 이것은 선비의 도리가 아니고, 국가의 도리도 아닙니다.”

    “하지만 합하. 말씀 드렸다시피 재정이······.”

    “보훈청에서 지출 될 예산이 최소 3천석이라고 하셨습니까?”

    “예. 적은 재물이 아니지요.”

    “내가 대납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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