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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237화 (237/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37화>

    ***

    “아직도요?”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허침 할아버지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셨다.

    따지고 보면 허침 할아버지의 잘못도 아닌지라, 그를 난감하게 만든 것 같아서 미안해진 것도 잠시.

    난 어이가 없었다.

    몇 달 전.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나는 다른 분들과 함께 성균관의 존폐 문제를 심사한 적이 있었다.

    당시 의견은 극렬하게 갈렸다.

    역적의 소굴을 방치 할 순 없다는 의견.

    수백년간 기능한 성균관을 당세에 폐지 할 순 없다는 의견.

    상충된 의견들에 나는 넘쳐흐르는 욕조물을 보고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처럼, 오케이를 외친 채 입궐해 성균관을 남겨두자는 주장에 한 표를 행사했다.

    이제 곧 세워질 하보대 대학의 경쟁 상대로서 말이다.

    물론 그 주장은 말끔히 십혔다.

    꼭 성균관이 아니더라도 사학(四學)이 남아있는데다, 성균관을 폐지한다고 해서 학문 자체를 폐하는 건 아니니 하보두 대학의 교육을 상대적으로 비교할 기관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게, 내 주장이 말끔히 씹힌 이유였다.

    줏대 없기로는 조선 제일인 있는 나는 또 그 주장에 설득당해서 역적의 소굴을 방치 할 순 없으니 폐지하자는 의견을 지지했다.

    내가 합세(?)하니 대세가 기울었다.

    간만 보면서 중립을 고수하던 이들도 폐지를 지지한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어떻게 되긴, 절차 밞고 폐지 진행 중이지.

    문제는 성균관 씹선비들의 기개다.

    이 씹선비들은 성균관을 비우라는 명령을 안 쳐듣고 있다.

    전면적으로 나서서 거부하면 김식처럼 역적으로 몰릴 테니 그들은 성균관을 점거(?)하면서 명분을 하나 내세웠다.

    문묘를 증수하는 일조차 임금이 직접 거행해 살피는데 제아무리 전권을 위임 받은 섭정인 나라도 임금이라는 그 자체를 대리하는 것은 아니니 임금께서 거행하게 해야한다.

    라고.

    맞다, 한마디로 이놈들이 명분 싸움을 시전한 거다.

    머리 쓴 거지.

    이들이 내건 명분 싸움을 무시하고 싶어도, 무시하면 이게 또 임금을 무시하는 처사로 비쳐질 수가 있으니까.

    그래서 다른 대신들도 몸을 사리게 됐다.

    대신들이 몸을 사리니 성균관 철거가 제대로 되겠어? 안 되지.

    그 꼴이 더 화가 나서 모든 책임 내가 진다고 하고 강제 철거령을 내렸다.

    그런데도 아직 안 나가고 뻐기고 있다는 거 보면 이놈들 간이 배밖으로 나왔거나, 그도 아니면 공자를 무슨 신격화하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이건 뭐, 불법용역들한테 수주 줘서 쫓아 낼 수도 없고······.”

    순간 내가 옛날에 소탕한 파락호 천성고황 문경지우 패거리가 떠올랐지만 알다시피 전부 모가지가 잘렸다.

    “불법··· 어인 말씀이신지?”

    “아, 혼잣말입니다, 혼잣말. 신경쓰지 마세요.”

    “가만 보면 합하께서는 해괴한 말씀을 자주 쓰십니다. 따로 근원이 있는 말들입니까?”

    “그럴 리가요.”

    “아무튼, 이리 된 이상 전하께서 오시길 기다리는 수 밖에 없는 듯 합니다. 전하께서 오신다면 태학생들도 어찌 문묘 운운하며 계속 기숙하려 하겠습니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원래 성균관 철거는 형님이 오시기 전에 말끔히 해결해 놓으려고 했던 건데 시기적으로 이제 길어야 한 달이면 형님께서 오신다.

    오히려 태학생 놈들이 불쌍해진다.

    놈들은 형님이 오시면 성균관 철거령을 철회할 거라 생각하시나 본데, 천만에.

    지금 안 나가고 뻐기고 있는 걸 후회할 거다, 아마.

    하여간 세상 물정 모르는 샌님들이라니까.

    “그렇게 하시죠.”

    “예.”

    성균관 일을 대강 매듭 지은 나는 빈청을 나섰다.

    “어디 가십니까?”

    아직 할 일은 남아 있다.

    업무 시간에 빈청을 나서는 내가 의아해 보였는지 허침 할아버지가 묻는다.

    “날이 좋아서 바람 쐬러 갑니다.”

    “날이 청명하긴 하군요. 다녀오십시오.”

    “예.”

    마침내 궐을 빠져 나왔다.

    집에 들른 나는 아침에 입궐하기 전 준비해둔 준비물(?)들을 수레에 싣고 곧바로 집을 나왔다.

    “스승님!”

    막 집을 나서려 하자 어떻게 알았는지 경덕이랑 석평이가 귀신 같이 나타났다.

    “너희는 또 왜 나오냐?”

    “어디 가십니까?”

    “바람 쐬러 간다, 왜?”

    “모꼬지(소풍) 가십니까?”

    “모꼬지 가면 어쩌고, 아니면 어쩌게?”

    “따라 가려구요.”

    따라 오지 마라고 답하려다가 힘 잘 쓰는 짐꾼 두 놈 더 있으면 괜찮겠다 싶어 수락했다.

    그리고.

    달그덕, 달그덕.

    수레 바퀴 요란하게 움직이는 소리와 선선하게 부는 바람에 수레에 올라타 있던 나는 잠이 솔솔 왔다.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졸 즈음.

    “부동(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은 왜 가십니까?”

    경덕이가 목적지인 부동은 왜 가냐 묻는다.

    “바람 쐬러 간다니까?”

    “부동은 모꼬지(소풍) 가기에는 적격이 아닌 걸요.”

    “뱁새가 봉황의 뜻을 어찌 알리··· 덕산아, 얼마나 남았냐?”

    “다 왔습니다요. 저 앞이어요.”

    덕산이가 가리킨 곳에는 한성부 남부의 관아였다.

    21세기로 치면 구청 정도의 역할인 곳이랄까?

    그 뒤편으로는 삼삼오오 초가집 몇 개가 있었는데 개중에서도 덕산이가 가리킨 곳은 금줄이 쳐진 초가집이었다.

    “금줄 쳐진 거면 산모가 출산한지 얼마 안 됐단 건데······.”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아는 집입니까, 스승님?”

    “아는 집은 아닌데··· 아니, 뭘 그리 꼬치꼬치 캐묻냐?”

    “호기심을 가지는 것은 학자의 도리라고 스승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사옵니까?”

    “쓸데없는 호기심은 병이라고 말한 건 기억 안 나냐?”

    “···”

    “저 궤짝하고 저 자루 마루 앞에 놓고 와라.”

    “자루 안에 든 거 쌀인데요?”

    괜히 데려왔다는 후회에 한숨이 나올 즈음.

    대략 눈치 챈 건지, 석평이 경덕이를 이끌었다.

    석평이가 궤짝을 들고, 경덕이가 자루를 내가 지목한 집 마루에 올려놓고 나오던 그때였다.

    “뉘시오?”

    이 자식들··· 기척 없이 다녀올 것이지, 나 집에 들어왔소. 기척이란 기척은 다 냈던 모양이다.

    방문이 끼익- 열리더니 노파가 모습을 드러냈다.

    뉘시오라고 점잖게 물었지만, 노파가 경덕이와 석평이를 바라보는 눈빛만은 곱지가 않다.

    도둑으로 오인하고 있는 것 같다.

    제기랄, 머리를 박박 긁은 나는 집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여기가 그, 봉해위에 위사로 차출된 전(前) 의흥위 갑사 도치의 집이 맞소?”

    노파는 내 행색을 보더니 지체 높은 양반님이라고 판단한 건지 넙죽 부복을 했다.

    “마, 맞습니다만 선비님들께서 어찌······.”

    이번에 전사자의 가족들을 방문해서 구휼하는 일은 충훈부에서 맡게 했었는데, 노파의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충훈바에서 아직 안 다녀 간 것 같다.

    이러면 더 답답해지는데.

    “어머니, 누구여요?”

    말로 형용 할 수 없는 답답함에 입술만 잘근잘근 씹고 있던 그때.

    방안에서 젊은 아낙이 나왔다.

    노파의 며느리이자, 전사자 도치의 아내 같았다.

    “밖에 금줄이 쳐져있던데 사내 아이요, 계집 아이요?”

    할 말이 궁색해진 내가 금줄을 핑계로 화제를 돌렸다.

    도치의 아내가 금세 환히 웃었다.

    “사내 아이입니다, 선비님.”

    “아이 이름은?”

    “복중에 바깥 사람이 첫째는 반드시 남아여야 한다고 필남(必男)이라고 짓긴 했는데 태명에 불과하니, 다시 지어야지요.”

    “괜찮다면 내가 지어 드려도 되겠소?”

    “이를 말이어요, 바깥 사람이나 저나 아는 것도 없어서 지어봤자 거기서 거기였을 텐데 선비님께서 대신 지어주신다니 영광이지요.”

    노파도 다행이란 듯 흐뭇히 웃는다.

    그 모습에 울컥한 나는 붉어진 눈시울을 노파와 아낙에게 들키기 싫어 괜히 먼 산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디 보자··· 남아로 세상에 나왔으니 호걸이 되란 뜻에서 대 세(世)에 준걸 준(俊)자를 써서 세준이가 어떻소?”

    “세준이요?”

    “혹 글은 아시오?”

    아낙이 수줍은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덕산이에게 종이랑 붓을 좀 달라고 한 뒤, 마루에 대충 앉아 글자를 써내려갔다.

    “이건 대세 세 자고, 이게 준걸 준 자요. 언문으로 쓰면 이렇게 되는 거고.”

    종이를 건네자 아낙은 상기된 표정으로 아이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선비님. 아이 이름은 꼭 세준이라 짓겠습니다. 아, 한데··· 어디서 오는 분들이신지······.”

    “부군의 벗이요.”

    “예? 바깥 사람은 고상한 선비님들하고는 연이 없을 텐데요?”

    “나랑 내 형님이 부군한테 신세를 진 게 좀 있으니, 벗이 아니면 무엇이겠소?”

    “아, 혹시 작년에 과거 때문에 상경했다가, 길을 잃으셨었다던 그 선비님들이십니까? 바깥 사람이 웬 어리버리한 선비님들이 길을 잃고 헤매길래 안내좀 해줬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망자는 잔정이 많았던 사람 같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

    “그런 셈이오. 좌우지간, 이건 부군한테 진 신세를 갚는다는 차원에서 놓고 가는 것이니 받으시오.”

    나는 궤짝과 쌀자루를 도치의 안사람에게 쓱 밀어주고는 집을 나왔다.

    꼭 해야만 하는 일 같아서 한 건데, 오히려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것이, 사람이 할 짓이 못 되는 것 같다.

    ***

    도치를 포함한 전사자는 모두 스물 셋이었다.

    개중에 도치처럼 한성부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아홉이었고, 마지막으로 들른 집은 공교롭게도 혜화문 인근의 묵사동(지금의 성북동)이었다.

    어차피 묵사동에서 입궐하려면 성균관 쪽을 지나쳐야 한다.

    나는 온 김에 성균관을 들렀다.

    성균관에 들어서자, 어떻게 안 건진 몰라도 성균관을 점거(?) 하고 있던 태학생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왔다.

    “합하, 성균관을 철거하시겠단 령을 철회해 주십시오!”

    “태학이 잠깐 그 본분을 지키지 못 하고 도리를 저버렸지만 어찌 학문의 성지인 태학을 폐할 수가 있단 말이옵니까?”

    “소인이 듣건대 요즘 마른 하늘에도 뇌성벽력이 궁궐에 내리친다고 들었사옵니다. 며칠 전에는 갑자기 문소전(경복궁 안에 있는 사당) 앞을 지키고 있던 나무에 천둥번개가 내리쳐서 나무가 불타 죽은 일도 있다지요?”

    “그렇사옵니다. 무릇 천둥과 번개가 내리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고 봄의 우레는 요사스러운 일이 아닙니다만 그것이 궁궐과 문소전에 연달아 내리치는 것은 무슨 영문이겠사옵니까? 이는 상서롭지 못 한 일이오니, 어찌 작금에 경복궁과 문소전에 천둥번개가 치겠냐 이 말씀이옵니다. 이는 태학을 철거하겠다는 령에 하늘이 감응한 것이옵니다.”

    천둥번개 운운하는 태학생들을 보니 가소로웠다.

    피뢰침 보면 저것들 놀라 자빠지겠다.

    “그 문제는 잠시 보류시키고 전하께서 오시면 매듭 짓기로 했소이다.”

    “그게 참말이십니까?”

    “참말이지, 거짓이겠소?”

    “참말이면 다행이옵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태학생들을 보니 또 이번에는 냉소가 흘러나왔다.

    누구는 생사가 걸린 전장터에서 목숨이 오락가락 하는데 누구는 뒤진지 천년도 더 지난 공자 부랄이나 쳐잡고 있으니, 세상사 모순덩어리라지만, 모순도 이런 모순이 또 있을까 하는 마음에 흘러나온 냉소였다.

    저희들끼리 기뻐서 부둥켜안고 성균관을 지켰네 어쨌네 육갑을 떠는 씹선비들을 더 보고 있다가는, 냉소에서 끝날 게 아니라 화가 날 것 같아 얼른 그들을 피해 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옮기다 보니, 나도 모르게 문묘에 도착해 있었다.

    덕산이한테 망치 갖고 오라고 해서 다 부숴버릴까 싶은 마음이 순간 들었지만, 간신히 이성을 되찾았다.

    “야 이 공자님아!”

    대신, 대성전 안을 향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처럼 소리쳤다.

    “만족하냐, 이 공자님아!”

    몇 번을 공자님 운운하다가 보니 이게 뭔 꼴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생각해보면 공자가 무슨 잘못이겠어.

    공자 말씀을 저희들 편한대로 해석하는 씹선비들 죄지.

    “에라이, 씨.”

    얻다가 분풀이도 못 하고 애꿎은 대성전의 삼문만 걷어찬 나는 터덜터덜 경복궁으로 향했다.

    여러모로 씁쓸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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