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군으로 살어리랏다-230화 (230/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30화>

    ***

    나카소네 도유미야.

    그의 일족인 나카소네(仲宗根) 씨(氏)는 대대로 미야코를 통치했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할아버지까지.

    도유미야 역시 조상들처럼 미야코의 투유먀(군장)로 섬을 통치하고 있었다.

    그는 적어도 도민들에게는 칭송 받는 투유먀였다.

    이전 투유먀들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배를 띄워 동쪽으로 보냈다.

    여송국(필리핀)이나 고산국(대만) 등지에 사람을 보내 필요한 생필품이나 무역에 사용할 만한 물건들을 들여왔고, 이걸 중산왕(쇼신)에게 팔아 이문을 취했다.

    전대 투유먀들은 외국에 배를 보내긴 했어도 적극적인 교역은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도유미야는 적극적으로 교역하고, 여기서 나온 이문과 물건들을 중산왕에게 바치거나 팔아서 섬의 평화를 유지 할 수 있었다.

    그 평화가 깨진 건 중산왕의 야욕 때문이었다.

    중산왕은 류큐 전역을 통일하고 싶어했다.

    군사를 일으켰고, 복속되지 않은 섬들에 파견했다.

    하나, 둘··· 중산왕에게 충성을 약조하지 않은 섬들이 격파당했다.

    그 과정에서 미야코 섬과 바로 지척에 있는 야에야마 섬 일대의 호족인 오야케 일족이 궐기했고, 중산왕은 이를 명분 삼아 야에야마 섬을 토벌했다.

    그 토벌에 앞장선 건 도유미야였지만,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중산왕이 선봉에 서지 않으면 나에게 한 충성 약조는 거짓으라 보고 미야코부터 정벌하겠단 협박을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중산왕의 군대가 가진 기세는 파죽지세와도 같았다.

    여러차례 약소섬들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며 얻은 자신감.

    신녀들의 신탁을 감히 받들지 못 하겠다고 말한 오만함.

    류큐의 중흥을 이끈 중산왕의 복종을 감히 거절한 자들에 대한 분노와 그에 따른 명분 있는 토벌.

    이런 복합적인 요인들이 한데 맞물리면서, 중산왕의 군대의 기세는 정말 파죽지세와 같았다.

    반면 미야코는 당시 여송국에 사람을 보낸 터라 여력이 없었다.

    고작 240명의 군사만 있었는데, 이들로는 중산왕의 삼천명에 이르는 군대를 막을 수가 없었다.

    결국 도유미야는 훗날을 기약하면서 비굴하지만 복종을 약조했고, 야에야마 토벌에 앞장섰다.

    중산왕은 당시 야에야마 토벌에 소극적으로 나온다면 너희부터 벌하겠다는 채찍질과 함께, 야에야마 토벌에 적극적으로 나와 섬을 토평시킨다면 역적 오야케 일족이 다스리던 이시가키 섬(石垣島)의 통치를 맡기겠단 당근도 줬었다.

    하지만.

    중산왕은 그 약조를 지키지 않았다.

    오야케 토벌 앞장서서 선봉에 섰고, 선봉에 서면서 240명의 군사중 그 절반인 120명이 사망했는데도, 감히 지키지 않은 것이다.

    사실 중산왕 입장에서는 지킬 수가 없는 약조였다.

    그는 대대적인 전쟁을 일으키면서 크고, 작은 전투를 치렀다.

    당연히 공을 세운 인물들은 도유미야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이미 왕에게 복종을 약조한 여러 호족들.

    조정에서 왕을 보좌한 관리들.

    그들에게 나눠주기도 부족한데 뒤늦게 240명의 군세로 합류한 도유미야에게 이시가키를 줄 리가 없었다.

    도유미야는 와신상담하며 복수를 맹세했고, 그 기회가 찾아왔다.

    스스로를 푸젠성(복건성) 출신이라는 중국해적 왕성진(王省進)을 만난 것이다.

    왕성진은 부친은 푸젠성 사람이고, 모친은 류큐 사람이라 말하면서 협조를 구했다.

    중국해적이라기에는 왜구와 흡사했고, 사실은 푸젠성 출신이 아니라 일본의 큐슈 출신이라는 소문도 무성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그 무리의 머릿수는 천여명이 넘어갔다.

    그와 손을 잡는다면 중산왕에게 어떻게든 복수 할 수 있을 터였다.

    왕성진이 중산왕의 심기를 계속 언짢게 만들어 야에야마에 대한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도유미야는 야에야마 사람들을 미야코로 끌어들였다.

    오야케 일족 토벌과 함께 야에야마 사람들은 오야케 일족과 관련이 있든 없든, 남녀노소 모두 중산왕에게 참살을 당해서 원한이 깊은 뒤였다.

    중산왕에게 복수할 거란 소식에 수백명이 넘는 야에야마 사람들이 미야코로 건너왔고, 도유미야는 복수의 기틀을 닦을 수 있었다.

    그가 가진 군사들만 해도 670명.

    전성기에도 400명 남짓이었던 걸 감안하면, 큰 폭으로 증가했고, 지금도 더 늘고 있는 추세였다.

    이제 이들을 잘 규합하여 야에야마를 친다.

    야에야마를 그의 수중에 넣고 이걸 기반으로 미야코-야에야마만의 왕국을 만든다.

    그 이후 왕성진과 함께 슈리성으로 진격, 쇼씨 왕조를 전복시킨다.

    이게 도유미야의 최종 목표였다.

    그리고 그 최종 목표까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분명 그랬었는데······.

    도유미야는 마른 침을 삼켰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저 멀리 보이는 함대들.

    7년 전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파도를 가르면서 미야코 앞바다를 지나갔던 중산왕의 수군들, 그리고 바다를 가득 메우던 전선들.

    꿀꺽.

    “와, 왕 두령이더냐?”

    1년 전 쯤.

    왕성진은 도카시키 섬의 수군들을 격파하고, 도내를 장악했다는 연통을 보내왔었다.

    하지만 도카시키 섬은 지리적으로 왕도와 지척인 곳.

    중산왕의 입장에서는 무조건 몰아내야 했다.

    도카시키가 장악 당한다면 나하항의 입출항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그런고로.

    중산왕의 공세에 미처 손쓸 틈도 없이 왕성진이 도카시키에서 철수한 것일 수도 있었다.

    도카시키를 장악하기 이전에도 한 번 이런 적이 있었다.

    그때와 다른 게 있다면, 연통이 없다는 것 뿐.

    상황이 너무 급박해서 미처 연통을 못 보내온 걸 수도 있었다.

    도유미야의 희망 섞인 물음에 오야케 사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타는, 7년 전 중산왕이 토벌한 오야케 아카하치의 자식으로 지금은 그에게 몸을 의탁한 상황이었다.

    야에야마의 도민들이 미야코에 이주한 것도 오야케 사타 덕택이었다.

    “투유먀께서도 아시다시피 와, 왕 두령에게 연통은 없었사옵니다······.”

    “하면 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 정체불명의 선박이 아닐는지······.”

    사타의 추정에 도유미야는 고개를 획 돌렸다.

    “정체불명의 선박?”

    “보름 전쯤 왕 두령이 연통을 보내오지 않았었사옵니까?”

    그랬었다.

    당시 왕성진은 정체불명의 선박이 나하항에 입항했는데 그 전선의 수가 자그마치 수십척이 넘어간다는 연락을 해온 적이 있었다.

    그 정체는 아직도 불명이었다.

    추측만 난무했다.

    큐슈 유력가의 군대라는 설.

    명나라라는 설.

    조선이라는 설 등등.

    왕성진은 그 이 선박이 도카시키로 올지, 미야코로 갈지 모르니 만반의 대비를 해두라는 말을 했었는데, 그 말을 한 게 고작 보름 전이다.

    다만 보름만에 만반의 대비를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어, 어찌 하시겠사옵니까?”

    사색에 질린 사타였다.

    “일단 군사들을 모두 소집하라. 중산왕의 수군이든, 천자의 군대든. 이 섬을 넘볼 순 없을 것이다.”

    “예!”

    사타가 명을 받들기 위해 자리를 벗어나자, 홀로 남은 도유미야는 멀리 파도를 가르는 함대를 눈에 담았다.

    곧 있을 전투에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

    “경이롭도다······.”

    이제는 이계동이나 김억수도 갑판이 위험하다며 말리지 않았다.

    거의 지정석이나 다름이 없었다.

    역시나 갑판에 오른 융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제 곧 궁고도였다. 저 멀리 섬이 보였고 해안에서 조업하던 어부들 역시 남해정토군을 보고 모두 뱃머리를 돌리고 있었다.

    머잖아 피비린내가 진동 할 전투가 있을 테지만, 그걸 잊고 감상에 젖을 만큼이나 이 섬은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다.

    바다는 맑고 푸르다.

    그 너머로 보이는 해안의 절벽은 깎아자른 듯한 위용이 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형형색색의 산림이 절벽을 감싸듯 하나의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그 아래로 드넓으면서도 완만한 형태의 모래 사장이 펼쳐져있고, 둥근 모래 사장 너머의 주변에는 민가가 드문드문 자리하고 있다.

    궁고도의 오랑캐들은 밤을 세 끼 먹는다더니, 참말인지 정오를 맞아 민가 곳곳에는 밥 짓는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한적하면서도 푸근한 여유가 느껴지는, 그래서 도가의 도사들이 말하는 낙원과 불가의 불씨들이 말하는 극락이 있다면, 아마 이곳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감상이 느껴질 만큼이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시선을 돌린 융은 다시 푸른 바다를 눈에 담았다.

    정말 맑고 파랬다.

    이런 바다는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바다 밑이 훤히 들여다 보일 만큼 맑았으니, 절로 시 한 수가 떠오른다만······.

    “장군. 곧 상륙이옵니다.”

    시 짓는 일은 나중으로 미뤄야 될 것 같았다.

    “병판은 감성이 없는가? 저 풍경을 보고도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는가 말이야.”

    감상을 방해(?)한 이계동을 면박주자, 계동은 고개를 돌려 섬의 풍광을 눈에 담았다.

    확실히 아름다운 곳이었다.

    “도가에서 신선들이 사는 세계가 있다고 했는데 과연 이 궁고도가 그러한 듯 하옵니다.”

    “옳거니. 병판도 그런 생각이 드느냐?”

    “저런 절경을 두고 어찌 감흥이 아예 없겠사옵니까?”

    융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기 보이는 저 절벽.

    이름은 모르겠다만 저 높은 절벽에 정자 하나를 세운 뒤, 정자에 앉아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떠가는 어선들과, 구름들을 보고 있으면 필시, 역사에 길이 남을 시가 수백수는 족히 탄생할 것 같았다.

    그만큼 사람을 묘한 감성에 젖게 만들 정도의 마력이 있는 풍경이었다.

    “선봉장 안곤(安昆)이 말하기를 저 섬에는 성이 없다 했는데 과연 없을 만도 하다.”

    이곳 사람들의 말로 성(城)은 구스쿠라 발음했다.

    그런데 세부적인 작전을 논하면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가 궁고도의 오랑캐들은 구스쿠, 즉 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과연 야만적인 오랑캐들의 습성이다.

    하다못해 여진 오랑캐들도 작은 성을 짓거나 버려진 성을 사용하는데, 성이 없다니.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해가 가는 대목이었다.

    이 아름다운 섬을, 어쩌면 도가의 낙원과 불가의 극락일지도 모르는 이 섬을 누가 침공한단 생각이나 하겠나?

    성을 안 짓고 사는 것도 일견 이해가 간다.

    “성이 없으니 공략이 더 쉽지 않겠사옵니까.”

    이해가 가건 말건.

    성이 없으면 남해정토군의 입장에서는 유리하다 못 해 승전을 다짐할 일이나 다름이 없다.

    피해도 최소화 시킬 수도 있을 테고.

    “그럴 테지. 하지만 방심하지는 마라. 안곤이 궁고도의 오랑캐들은 매우 호전적이라 하지 않았더냐?”

    “예, 장군.”

    “채비는?”

    “모두 마쳤사옵니다.”

    “병판.”

    “하명하십시오.”

    “내 노파심에 말하지만 약탈은 무조건 금해야 한다. 무조건.”

    처음에 약탈을 금하게 했던 건, 전략적인 의미였다.

    약탈이 생긴다면 원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저항 할 수 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최대한 이 아름다운 섬에서 생길 피비린내를 줄이고 싶었다.

    그만큼 아름다운 섬이었다.

    한낱 오랑캐들이 소유하고 있기에는 더더욱.

    “장군! 적선이옵니다!”

    그때.

    김억수가 뛰어와 아뢨다.

    저 멀리 바다 너머로 적선으로 보이는 군선 2척이 보였다.

    “추격하오리까?”

    “병판의 생각은 어떠냐?”

    “지금 추격하는 건 이롭지 못 할 듯 하옵니다.”

    융의 생각도 같았다.

    “적선은 무시하고 안곤에게 신호를 보내라.”

    “예!”

    잠시 후.

    융이 탄 대장선에서 좌점(左點) 되어 있는 황룡기가 올라갔다.

    사전에 선봉장 안곤과 입을 맞춘 신호였다.

    황룡기가 올라간 모습을 안곤이 확인한 건지, 안곤이 탄 군선에서는 적색 깃발이 올라왔다.

    곧 안곤이 탄 군선이 앞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