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27화>
***
숭재는 마음을 굳힌 채 두 손을 내려다봤다.
이제 나라의 백년대계가 자신의 손에 달렸음이었다.
지금 저들을 꺾지 못 하면 나라의 백년대계는 없을 터였다
저들은 명분에 죽고 산다.
당장은 명분에 죽고 사는 것이 아름다워 보일지 모르지만, 먼 훗날.
모르긴 몰라도 1~200년만 지나면 이 나라는 명분에 죽고 사는 정도가 아니라 명분에 뼈를 묻으려 들 터였다.
그래서 100년 후에는 성현의 말씀에 아주 조금의 토만 달아도 사문난적이라 비난 할 것이고, 200년 후에는 성현의 말씀을 아주 조금만 다르게 해석해도 사문난적이라 몰아갈 것이다.
죽은 공자와 맹자는 신이 될 것이고 팔도 곳곳에는 성묘(聖廟)들이 세워져 참배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장차 이 나라는 학문으로 치국하고, 학문을 토대로 토론하여 나라를 이롭게 하는 일 보다는, 학문을 교조처럼 여긴 채 통치의 도구로 삼을 것이었다.
무릇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니 그리된다면 이 나라에 발전은 없을 터였다.
이 일은 후대를 위한 일이니 죄책감 따위는 없었다.
죄책감은 나라를 자꾸 파탄으로 몰아가는 저들이 가져야 한다.
‘저들이야 말로 간신이고, 국적(國賊)이다.’
자기합리화일지 다짐인지 모를 생각과 함께 숭재는 금부 뜰로 걸음을 옮겼다.
죄인들은 모조리 추포가 돼있었다.
한 번 쓱- 하고 훑어보니 다들 영문도 모르고 끌려왔는지 어리둥절한 모습이 역력하다.
오히려······.
“대관절 나라에서 태학생들을 탄압하는 것이 이처럼 더 극심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누구의 명이냐! 누가 태학생들을 이리 탄압하라 지시했냔 말이다!”
되려, 나졸들에게 큰 소리 치는 놈들도 일부 있을 정도였다.
“도사.”
“예, 대감.”
“놈들에게 역적 혐의가 있다고 이르지 않았었소?”
본인들에게 역적 혐의가 있다는 걸 알면 저리 날뛸수가 없다.
의아함과 함께 금부도사 박호(朴壕)에게 묻자 박호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생각과 다르게 너무 순순히 오라에 응했사옵니다.”
“순순히?”
“예. 해서 괜히 역적 혐의로 끌고 가는 것이라 하면 소요가 일 것 같기도 하고, 어수선한 틈을 타 도망하는 자들도 있을 것 같아 굳이 이르지 않았었사옵니다. 송구합니다.”
“괜찮소. 오히려 잘 됐군.”
짐작이 간다.
금부가 광화문을 덮치면서 놈들이 순순히 오라에 응했을 모습.
아마 놈들은 이걸 좋은 반등의 기회라 여겼을지도 모른다.
광화문과 그 일대는 사람이 많은 지역중 하나.
당연히 태학생들이 끌려가는 장면을 본 사람들도 많을 테니 이걸 선동의 계기라 여겼을 것이다.
아무런 죄없는 태학생들을 조정에서 탄압하고 있다는 선동의 계기 말이다.
“쯧쯧.”
사지로 걸어들어온 것도 모르고 기회로 삼고 있는 놈들이 한심해질 즈음.
“누구냐니까!”
패악이 점점 도를 지나쳐갔다. 이러다가는 나졸들에게 주먹질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쯧쯧 혀를 찬 채 금부의 뜰을 가로지르자, 태학생들의 시선이 그에게 쏟아졌다.
누군가 그를 알아본 듯, 어디선가 간신이란 단어가 튀어나왔다.
간신이란 말에 발끈한 것도 잠시.
숭재는 피식거렸다.
“하기사. 정몽주도 간신이라 불렸지.”
“대감은 정포은(정몽주) 같은 간신이 아니라 태조께 무함하여 소도공(이방석)을 비명에 죽게 만든 역적 정도전과 같은 간신이시오!”
“정도전과 같은 간신이라··· 그럼 너희는 박원종과 같은 역적인가?”
“말씀을 가려하십시오! 역적이라니!”
“너희가 나를 간신이라 비난하는 것은 태학생으로 직언하는 일이지만, 내가 너희를 역적이라 말하는 것은 태학생을 탄압하는 일이라도 된단 말이냐?”
“대감은 명색이 대부(大夫)시오. 대부와 학생이 어찌 같을 수 있겠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태헌(太憲)이오.”
“자호(自號)말고 네 이름을 물은 것이다.”
“대감께 내 부모가 물려준 함자를 어찌 이른단 말이오?”
숭재는 피식 웃었다.
“위관이 죄인에게 이름을 묻는 것이 부당한 일인가?”
“죄, 죄인이라니! 무슨 말씀이시오!”
쯧쯧.
“너희가 끌려온 이곳이 포청이더냐··· 하다못해 형조더냐?”
“그, 금부 아니오?”
“그래, 금부다.”
뜰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광화문에서 바득바득 목에 핏줄까지 세워가며 궤변을 늘어놓던 자들이, 심지어 금부에 끌려와서도 목에 핏줄을 세워가며 반항하던 이들이, 이제 조금 사태 파악이 되는지 순식간에 입을 다물면서 나온 결과물이었다.
숭재는 그 짧은 침묵을 만끽했다.
“어찌 대답들이 없는가?”
“···”
“위관이 하문하면 죄인으로서 답하는 것이 공초의 기본이거늘··· 이는 너희가 너희 죄를 인정하기 때문이렷다?”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소, 소인들은 무슨 죄목으로 끌려온지도 모르옵니다.”
방금 전, 부모가 지어준 이름 운운하던 태헌이란 자였다.
그새 말투도 바뀌었다.
대부와 학생은 다르다면서도, 대부에게 하오체를 쓰던 놈이 이제는 존칭이다.
“이제부터 알면 된다.”
***
“끄아아아악!”
비명소리는 바로 며칠 전, 숭재에게 간신 운운하던 송호영의 것이었다.
숭재는 착 가라앉은 표정으로, 고신을 중지시킨 뒤 송호영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몸을 낮춰 송호영과 눈을 맞췄다.
지난 며칠, 고신이 가해졌는지 송호영의 얼굴과 몸 군데군데에는 피딱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숭재는 송호영의 뒤꿈치에 난 피딱지를 툭 떼어냈다.
통증에 송호영이 미간을 찌푸렸다.
“불어라.”
“내··· 내, 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여, 역모는··· 가, 감히 생각조차 한 적이 없사옵니다······.”
“장의 김식의 방에서 김씨부참이 나왔고 벽서가 나왔다.”
“모, 모함입니다··· 모함이 아니고서 어찌 장의께서 그런 망측한 일을 벌였겠습니까······.”
“궁금하구나. 너희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대감··· 우, 우린 아니옵니다. 필시 누군가 소인들을 모함한 것이옵니다······.”
쯧쯧.
“감히 역적모의질을 했으면서도 입을 굳게 다물고 있으니 너희들끼린 이게 의리와 절개를 지키는 것 같으냐? 천만에. 이게 바로 기군망상인 것이다.”
라고 말한 숭재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금부도사 박호가 후다닥 청동화로로 뛰어가, 화로에 담겨있던 인두를 건네주었다.
불에 잘 달궈진 듯,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숭재는 아주 천천히 인두를 송호영의 복부에 갖다댔다. 열기가 느껴지는지 송호영이 흠칫 몸을 떨며 발악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붙잡아라!”
나졸들이 우악스럽게 발악하는 송호영을 붙잡자, 숭재는 그대로 송호영의 명치에 인두를 지졌다.
“끄아아아악!”
송호영의 비명과 함께 비릿한 고기 타는 냄새가 코끝을 간질거렸다.
그러기를 잠시.
송호영이 고개를 떨궜다. 혼절한 게 분명했다.
“어찌 하오리까?”
“아직 남은 역적이 스물 여덟이나 되니 괜찮다. 서간에 가둬두어라.”
“예.”
박호가 혼절한 송호영을 질질 끌고 나갔다.
남은 사람은 이제 스물 여덟.
형틀에 묶인 그들은 질질 끌려 나가는 송호영을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먹잇감을 고르듯 눈알을 굴리는 숭재에 흠칫 몸을 떨었다.
장내를 훑어보던 숭재가 고른 먹잇감은 다른 이들보다 유독 두려움에 몸을 벌벌 떨고 있는 자였다.
저벅저벅.
인두를 그대로 손에 쥔 채 다가가자, 상대는 흠칫 몸을 떨었다.
“네 이름이 무어라고?”
“미, 민영덕이, 이옵니다, 대감.”
“태헌이라 하지 않았던가?”
꿀꺽.
숭재는 두려움에 몸서리치는 민영덕을 가소롭다는 듯 흘겼다.
“너도 아니 불 참이냐?”
“대, 대감··· 소, 소인은··· 소, 소인은······.”
머뭇거리는 모양새의 민영덕에 숭재가 은근하게 물었다.
“지난 사흘간의 고신이 전부라 생각지 말거라. 입을 열지 않는다면 한 놈도 살아나갈 순 없을 것이다.”
“크흑.”
“불어라. 누가 역적모의질을 주도했는지, 누가 배후에 있는 거라면 어떻게 사주를 한 것인지, 또 누가 누굴 선동하여 일에 가담시켰는지, 다 불어라.”
“크흐흐흑.”
“불면 네 목숨만은 내 살려주마.”
“대감··· 제발······.”
불긴 커녕 사정하는 민영덕에 표정을 굳힌 숭재는 금부도사를 불렀다.
“도사. 이놈은 남간에 가둬두어라.”
남간이란 말에 민영덕은 몸서리쳤다.
지난 사흘간.
함께 시위에 동참했던 서른 여덟명의 사람들 중 열 명이 격렬하게 반항하다 남간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남간에 끌려간 자들중 멀쩡한 정신으로 형틀에 앉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모두 어떤 고신을 당했는지 몰라도 헛소리를 해대거나 자해를 해대거나··· 그마저도 남간에 들어갔다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도 모르는 동지가 셋이나 있었다.
그걸 떠올린 민영덕은 낯빛은 사색에 질려갔다.
“대, 대감. 사, 살려주십시오. 제, 제발 살려주십시오, 대감!”
“그러니까 불라고 하는 것이 아니냐. 살려주려고. 이미 정황이 명명백백하다. 김식의 방에서 김씨부참이 나왔다. 이게 무슨 의미냐? 김식이는 전하께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김씨부참으로 하여금 백성들을 혹세모민하여 모반하려 하였다.”
“그, 그건··· 자, 장의께서 도학을 공부하시기 때문이었사옵니다··· 대감, 제발 살려주십······.”
이건 숭재가 듣고자 하던 말이 아니었다.
“네 이리 의리를 지킨다 한들, 그 의리를 김식이가 알아줄 것 같단 말이냐! 미련한 놈 같으니··· 저하께서 꼭 자백을 받으라 하여 네놈들을 고신하고 있는 것이지, 이미 드러난 정황만으로도 네놈들은 역적이다, 역적!”
“도사는 뭣하는가! 이놈을 당장 남간으로 끌고 가지 않고!”
“옛!”
박호가 민영덕을 질질 끌고 나가려던 그때.
“부, 불겠사옵니다! 다··· 다 불겠사옵니다, 대감! 사, 살려주십시오!”
옳거니.
숭재는 몸을 돌려 민영덕에게 다가갔다.
“불겠다?”
“크흐흐흑.”
민영덕은 얼굴을 감싼 채 흐느꼈다.
한참을 흐느꼈다.
그가 울음을 그치길 기다렸지만, 도통 그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불겠다는 놈이 어찌 울기만 한단 말이냐? 새삼 네놈들의 역적모의를 자백하려니 네 신세가 원망스러워지기라도 했단 말이냐? 속히 불어라. 어찌 된 것이냐?”
민영덕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자, 장의가 주도했사옵니다.”
“김식이가? 그래, 어떻게 주도를 한 것이냐? 네놈들의 역적모의질을 고변한 자근노미의 말로는 야심한 시간에 김식의 방에 모여서 ‘어수선한 틈을 타 궐기하자’ 라고 했다던데?”
답변을 유도하자 민영덕은 숭재의 눈치를 살핀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 맞사옵니다··· 어, 언제인지 소, 소인이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느 날 역적 김식이 소인들을 부, 불러서 해괴망측한 소리를 해대고, 또···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우, 우리가 지금 궐기하지 않으면 나, 나라가 곧 망한다고 하, 하였사옵니다······.”
“그리고?”
“그, 그리고······.”
“벽서는 누가 작성한 것이냐?”
“벼, 벽서는··· 벽서는······.”
“자근노미 말로는 서체가 송호영의 것이라던데?”
“그, 그렇사옵니다. 소, 송호영이 김식과 함께 대작하다가 벼, 벽서를 붙여서 민심을 동요시키자고 하였사옵니다. 그, 그래서 언제 날을 잡아 붙이기로 하였는데······.”
“그럼 이전에 전하께서 친정가신 후에 붙여진 벽서는 누구의 소행이냐?”
“그, 그건······.”
“김식이지?”
“그, 그러하옵니다! 김식의 것이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응? 구체적으로 어떻게 거사하기로 한 것이냐?”
“거, 거사는······.”
본시 잘 공사 된 보(洑)는 터지지 않지만, 한 번 터지기 시작하면 그 봇울은 감히 사람의 손으로는 막아낼 수가 없는 법이다.
사람의 입도 마찬가지다.
“그, 그건 소인이 잘 아옵니다!”
“소, 소인도 알고 있사옵니다! 소인이 자백하겠사옵니다, 대감!”
구체적인 거사를 묻는 질문에 민영덕이 머뭇거리자 이곳저곳에서 자백하겠다는 거수가 인 것이다.
‘참으로 위군자들이다.’
손을 번쩍 들며 본인을 지목해주길 바라는 태학생들의 모습에서 숭재는 위군자를 떠올렸다.
선비란 목숨이 경각에 달려도 소신과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저들이 여태 보였던 태도와 발언은 소신과 신념에 비롯한 것들이었다.
말로는 늘 소신으로 직언한다 했고, 신념으로 목숨을 걸고 아뢴다 했었다.
광화문에서 벌였던 시위도 마찬가지.
감히 저하와 대비전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읍소일지라도 목숨을 걸고서서라도 소신과 신념을 지켜야겠기에, 이리 몰려나왔다 말한 것이 바로 저들이었다.
그런데 보라.
스물 여덟의 사람들 중에 열 다섯이 거수하며 목숨을 구걸하고 있지 않은가?
저들은 참으로 위군자다.
위군자 중에 위군자고, 선비를 가장한 소인배들이다.
이 소인배들이 의리를 지킨 시간은 고작 3일이었다.
단 3일.
저들이 여태 말하던, 그래서 목숨과도 맞바꿀수 있다던 신념과 소신은 고작 3일치 밖에 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