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군으로 살어리랏다-223화 (223/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23화>

    ***

    “첫째로······.”

    도대체 향교에서 무슨 교화를 하고 있냐는 내 질문에 대사성 이점은 자신 있게 몇 가지 사례들을 늘어놨다.

    내가 보기엔 장황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았지만 요약하면, 향교에서 미풍양속을 잘 단속하고 있으며, 예속을 강화하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단다.

    뭔 개소리인가 싶었지만 그래 좋다, 이거야!

    나는 소맷자라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들었다.

    엘로카드는 아니고, 자고로 가짜뉴스는 팩트로 조져야 하는 법이다.

    흔들흔들.

    “대사성은 이게 뭔지 아십니까?”

    “모르겠습니다.”

    “대사성께서는 지금 향교가 백성들을 교화하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하셨지만, 내가 대사헌으로 일하면서 보고, 들은 건 또 다르거든요. 이건 내가 대사헌으로 일하던 시절에 향교에서 발생한 사건들입니다. 자, 먼저 강릉에서는······.”

    향교의 학생들이 학궁에 딸린 노비의 딸을 겁탈한 일.

    향교의 학생들이 향사를 핑계로 재물을 요구하고 이를 횡령한 일.

    향교의 학생들이 아전의 효행을 아뢰면서 해당 아전에게 효자정문이 세워졌는데 알고보니 구라였던 일.

    향교의 학생들이 학궁을 지나던 보따리 상을 습격해 재물을 약탈한 일.

    등등.

    “···”

    “더 읊을까요?”

    “지금 합하께서 말씀하신 건, 일부 학궁의 문제입니다. 어찌 일부가 일탈한 일을 전체의 잘못으로 매도하십니까?”

    “난 전체의 잘못으로 매도한 적 없습니다. 그냥 이런 사건이 있었다··· 라는 걸, 대사성만 모르시는 것 같길래 설명드린 거구요. 물론 말씀처럼 일부의 잘못이죠. 일부의 잘못인데··· 위정자들도 일부만 잘못해서 나라꼴이 이 모양인 거고, 군역 기피자도 일부 밖에 없어서 우리나라가 약군인 거고, 또 뭐지? 향교에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기생 끼고 시시덕거리는 한량들도 일부에 불과한 거고.”

    “···”

    “일부란 말이 참 갖다 붙이기 좋은 말입니다, 그죠?”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향교에 돈은 돈대로 들어가는데 이것들이 제대로 된 걸 배웁니까? 천만에. 어느 향교에서 처자를 겁간하라 가르치고, 보부상을 약탈하라고 가르칩니까? 게다가 내가 들어보니까, 요새 명문가 후손들이나 지역에 이름난 유지 자제들은 향교를 안 들어가려고 한다지요?”

    이것도 대사헌으로 일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향교는 못 들어가서 안달인 곳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향교는 엘리트 코스를 밞을 수 있는 교육기관중 하나였다.

    게다가 출사 욕심이 없어도 향교에 적을 두기만 하면 아무도 못 건든다.

    못 들어가서 안달일 수 밖에 없는 곳인 거다.

    그게 바로 향교였는데 최근에 진짜 선비라 불릴 만한 사람들이, 그리고 그 자제들이 향교 입학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논리는 아주 간단했다.

    배움의 터전이었던 향교가 문란의 장이 된 지 오래인데 나는 성현의 말씀을 배우려고 향교에 들어가려 했던 거지, 문란함을 배우려 들어가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건 사회적인 문제로 까지 대두돼서 최근에는 상소까지 올라온 적이 있었다. 향교 기피를 어찌 막을지에 대한 상소들 말이다.

    근데 진짜 선비들이 본인들은 한량들하고 노는 대신 집에서 홈스쿨링 하겠다는 걸 나라에서 어떻게 말려?

    자정이 없으면 결국 계속 썩어갈 거다.

    “···”

    “그리고, 향사가 곧 교화라 하셨는데 향사가 무슨 교홥니까? 말은 똑바로 하셔야지. 그냥 동네서 할 짓 없는 한량들이 향 피우고 제사 지내면서 친목 다지는 게 지금의 향사 아닙니까? 근데 이 한량 놈들 친목 다지는데 들어가는 돈은 또 오지게 들어가. 이게 필요합니까, 대체? 차라리 한량들이 향사 한답시고 들어가는 돈 전부 걷어서 유랑걸식하는 사람들한테 나눠주면, 오히려 그게 더 유학의 근본에 가깝겠네.”

    “합하. 합하의 말씀은 나라의 근간을 뒤흔드는 말씀이십니다.”

    “탐관오리를 탐관오리라고 부르고, 향교에서 하라는 공부 안 하고 노닥거리는 놈들 더러 한량이라 부르겠다는데 이게 나라의 근간 씩이나 뒤흔드는 일입니까? 내가 무슨 홍길동입니까? 한량을 한량이라 부르지도 못 하게?”

    “말씀하시는 맥락이 문제지 않습니까! 지금 합하께서 하신 말씀들은 찬찬히 곱씹어보자면······.”

    또 시작이다.

    따가운 잔소리.

    귀를 후벼파도 귀가 따갑다.

    이걸 형님은 10년이 넘도록 듣고 계셨을 걸 생각하니 새삼 존경스럽다.

    빈 말이 아니라, 진짜로.

    “···하니 결국 백성은 교화하면서 계도하는 것이지, 스스로 깨우치게 도는 것은 교학에 어긋나는 일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잔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자 어느 새 제 할 말을 다 끝낸 건지 이점은 씩씩거리며 호흡을 골랐다.

    의기양양한 모습이 마치 ‘반박 할 테면 해보던가?’라는 표정이시다.

    “아니, 무슨 그게 교학에 어긋나는 일입니까? 대사성께서는 명색이 성균관 대사성이시면서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有敎無類) 라는 공자님 말씀은 모르시나 봅니다? 공자님은 하찮은 백성일지라도 보고, 배울 게 있다 하셨고 하찮은 백성일지라도 스스로를 잘 갈고 닦아 수양하면 군자가 될 수 있다 하셨는데, 대사성 말씀을 가만 듣고 있으면 군자는 타고 나는 거고, 백성은 원래 멍청해서 계도해야 되는 대상이라 들립니다.”

    “백성이 무식하여 계도해야 되는 대상이라 말씀 드린 것이 아님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난 그렇게 들렸는데요?”

    “본시 아랫사람들은 예를 잘 알지 못 합니다. 예를 잘 알지 못 하기 때문에, 예를 잘 알고 있는 이들이 계도를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말씀 드린 것이지, 군자란 타고 난 것이라 말씀드린 것이 아닙니다! 공자의 유교무류(有敎無類)는 인용하시는 분이 어찌, 유치차격(有恥且格)이란 말씀은 모르십니까? 이 말이 뭐겠습니까? 백성들 중에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 있을 수 밖에 없는데 선비란 결국 이 백성들에게 부끄러움을 알아 바르게 될 수 있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어찌 군자가 타고 난다는 것이겠습니까? 이처럼 백성을 잘 교화하는 데에는 역시 향교만한 비책이 없으니······.

    잔소리가 또 시작됐다.

    “···그러므로 결국 계도와 교화란 것은 한 나라의 중흥과도 연관이 돼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니 함부로 향교를 폐하여 이를 게을리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수령칠사에 학교흥이 있겠습니까?”

    일다경 후.

    잔소리가 드디어 끝났다.

    나는 귀를 후비적거리며 이점의 말을 받았다.

    “말씀 잘 하셨네. 그러니까, 수령칠사에 학교흥이 있어서 내가 학교 하나를 더 세우겠단 거 아닙니까? 아니.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계도는 향교에서만 할 수 있답니까? 뭐, 독점이라도 돼요?”

    나도 모르게 언성이 점점 올라갔다.

    지금 이점이 갖고 있는 마인드는, 이점이 인식하고 있을진 모르겠지만 딱 선민의식이다.

    선민의식이고 엘리트주의인 것이다.

    더 쉽게 설명하면 똑똑한 엘리트들만이 멍청한 백성들을 잘 이끌 수가 있다는 소리다.

    자수성가한 사람들, 학문적으로 대성한 사람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특징이기도 하다.

    “향교에서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지요. 아니지만, 그게 효과적이라는 걸 말씀드리는 거 아닙니까?”

    “자꾸 원점으로 돌아가게 말씀을 하시는데 뭐가 효과적인 거냔 말입니다, 대체! 한량들이 향사 하는 게 효율적인 겁니까? 한량들이 미풍양속을 해친다면서 백성들을 억압하고, 거들먹거리는 게 효율적인 거예요? 예?”

    “···지금 향교의 기능이 많이 퇴색되긴 했습니다. 그래서 합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잘 알지만, 이는 나라에서 호통쳐서 순기능을 하게끔 만들 일이지, 학교를 새로 세울 일이 아닙니다.”

    “아니, 자꾸 논지를 흐리려고 하시는데. 유학의 근본이 뭡니까? 백성을 교화하는 일입니다. 학교를 세워서 교화하자니까요? 아니, 다 됐고. 정 학교 새로 만들기 싫으면 향교에 입학 정원 늘려서 백성들도 거기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면 되겠습니까?”

    “무슨 말씀이십니까?”

    “누차 말하지만 내가 학교를 만드려는 건, 만백성이 앎을 알고 싶어도 알지 못 하고, 앎을 알지 못 하기 때문에 수령이나 아전들에게 피해를 받기에 이것이 안타까워서 만드려는 것입니다. 근데 자꾸 안 된다 하시니까, 향교에서 가르치게 하면 되는 문제 아니냔 말입니다.”

    “그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왜, 향교는 신성한 곳이라서 백성들이 흙 묻히고 들어올까봐?”

    “향교의 기능은 본시 유학을 가르치고, 지방의 미풍양속을 잘 단속하여 지방에 군자를 낳게 함에 있습니다. 그런데 오만 사람들이 드나든다면 미풍양속이 어찌 단속이 되겠으며, 군자가 나오겠습니까?”

    와, 대단하다.

    구관이 명관이란 말이 떠오른다.

    이건 무슨 전임자였던 김전보다 더한 꼴통이다.

    말이 안 통해, 아주.

    “그러니까 학교를 짓자구요, 학교를.”

    “그리 말씀하시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각 지방에 학교를 짓게 되면······.”

    얼마나 지났을까.

    체감상 5분 가량 이점 혼자서 떠든 것 같다.

    갖가지 이유를 대면서 안 된다고 하신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일이다.

    “하. 나는 말이죠. 학식이 비루합니다. 성품은 용렬하고 보잘 것 없습니다.”

    동문서답 축에도 못 끼는 갑작스런 자아성찰에 이점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 말에 집중하다가 저도 모르게 끄덕거린 것 같다.

    뭐, 기분이 나쁘진 않다. 이 시대 기준으로 내가 학식이 비루하다는 건 팩트니까.

    다만 내 자아성찰은 여기서 끝은 아니다.

    “그래서 대사성처럼 고사에 빗대고, 성현의 말씀에 빗대고, 또 옛날 일을 예로 들면서 학교를 새로 세워야 한다는 사실을 논리정연하게 정당화 시킬 수가 없겠습니다.”

    “하오면 아까 하신 말씀들은 전부 철회 하신다는 것입니까?”

    승복하는 거냐고?

    지랄도 존나게 풍년이네.

    “조선말은 끝까지 들어야죠, 영감.”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백성을 교화하는 건 유교의 근본이고 근간입니다. 잘못된 것은 뿌리 뽑고 척결하는 것 역시 공자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게 잘못됐다고 말씀하시니 내가 뭐라 반박하고 싶어도, 학식이 비루하고 아는 게 없어서 영감처럼 고상하게 반박은 못 하겠단 말입니다. 대신에요. 내가 세종대왕의 어록은 좀 압니다.”

    “···?”

    “옛날 옛적에 세종대왕께서 삼강행실을 언문으로 반포하겠다는 뜻에 반대한 정창손에게 말씀하시길, 그 따위 말이 어찌 선비의 이치를 아는 말이겠느냐! 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저열한 선비 놈아!”

    ***

    편전에 저열한 선비 놈이 탄생한 그 시각, 망망대해.

    철썩!

    파도가 뱃전을 때렸다.

    한 번 듣고, 두 번 듣고, 천 번을 더 듣는다 해도 지겹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소리다.

    지그시 눈 감은 채 파도 소리를 듣던 융을 방패한 건 소기파였다.

    “전하, 갑주는 벗······.”

    “장군.”

    “예?”

    “장군이라 부르라 하지 않았더냐.”

    “아, 소장이 입에 설지 않아서··· 송구합니다만 자, 장군. 갑주는 벗으시옵소서. 불편하실 것이옵니다.”

    “무릇 일선의 장수는 어떤 일이 생겨도 갑주를 벗지 않는다 했다.”

    “···바다에서 만큼은 벗으셔도 되옵니다.”

    “이 장군. 이 장군의 생각은 어떤가? 소 장군의 말처럼 과연 일선의 장수여도 바다에서는 갑주를 벗어도 되는가?”

    불똥이 튄 이계동이 황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무릇 일선의 장수는 어떤 일이 생겨도 갑주를 벗지 않는다는 전하의··· 아, 아니. 장군의 말씀도 천만지당하신 말씀이나 소 장군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옵니다. 모름지기 장수는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여야 하는데 괜히 몸이 축 날까 우려되옵니다.”

    “흐음. 내 아침 일찍 왜구가 나타날지도 몰라서 힘들게 착용한 것인데······.”

    “왜, 왜구는 보이지 않으니 벗으소서.”

    “제장들의 뜻이 그러하다면 내 벗겠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이계동이 금군들에게 눈짓을 했다.

    금군들이 달라붙어 전하의 갑주 벗기는 일을 도왔다.

    벌써 몇 번째 반복되는 일인지 모르겠다.

    전하께서는 꼭 아침만 되면 갑주를 챙겨 입으셨다.

    왜선이 보이면 즉각 반응 할 수 있으셔야 한다면서······.

    틀린 말은 아니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어느 간 큰 왜적이 함대를 노릴꼬······.’

    무려 왕의 친정이다.

    전투병력으로 동원된 이들만 천여명이 넘었고, 수행원들과 격군들까지 합하면 물경 2천을 넘어간다.

    당연히 동원된 함선만 수십척.

    어느 왜선이 이런 규모의 함대를 약탈하려 하겠는가?

    계동이 보기엔 이런 약간의 실랑이를 즐기는 것 같을 뿐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꼭 벗으시라면 그냥 벗지 않으시고 계동 자신의 뜻을 물어오셨거든.

    “엇?”

    지난 날의 고행(?)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던 그때.

    전하께서 갑작스런 외침과 함께 뱃머리로 뛰어가셨다.

    “저, 전하! 위험하옵니다!”

    “장군이라니까!”

    “자, 장군, 위험하옵니다!”

    “저곳 아니냐?”

    계동은 전하께서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과연 저 멀리 육지가 보였다.

    길라잡이들이 오늘 오전 중으로는 당도할 것 같다 했으니, 필시 유구국일 터였다.

    “그런 듯 하옵니다. 하선을 준비하오리까?”

    “하선도 하선이지만 내 갑주부터 다시 입어야겠다. 어서 갑주를 가져와라!”

    무려 남해정토 대장군의 명인데 어찌 거역하랴.

    “···알겠사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