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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222화 (222/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22화>

    ***

    “여기냐.”

    “네. 어떠십니까?”

    감상을 묻는 경덕이에, 감상 대신 시 한 수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정호승 시인의 《봄길》이다.

    왜, 이 시가 떠올랐는지는 모르겠고, 그냥 봄이라 가뜩이나 풍부한 내 감수성이 더 풍부해져서 그런 것 같다.

    이런 거 보면 난 섭정승이 아니라 문학가로 살아야 될 팔자인데······.

    “스승님?”

    “아, 미안. 뭐라고 했었냐?”

    “마음에 드십니까?”

    섭정승으로서의 삶 대신 천재 시인으로서의 삶을 곱씹던 나는 새삼스레 전경을 눈에 담았다.

    뒤로는 작은 벌판이 늘어져있고, 오른쪽으로는 혜화문이 보인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좌측에 있는 건물이다.

    내가 몽골리안의 시력을 타고 났다면 분명 해당 건물의 현판에 있는 글씨까지 다 보였겠지만 글씨는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건물이 무슨 건물인지는 나나 경덕이나 다 안다.

    성균관.

    씹선비들의 소굴이자 씹선비들 양성소.

    그럼 얼추 짐작 했겠지만 지금 내가 둘러보고 있는 곳은 성균관의 경쟁 상대가 될 학교의 부지다.

    이 시대 행정구역으로 따지면 한성부 동부 숭교방(崇敎坊) 동소문(혜화문)고개 정도로 표기 할 수 있겠다.

    당대의 행정구역으로는 그렇고, 21세기 행정구역상으로는 혜화동에 포함 될 거다, 아마.

    아닌 게 아니라 우측으로 한 5~700m 떨어진 곳에 혜화문이 자리하고 있거든.

    “마음에 든다. 아주 마음에 들어.”

    “다행입니다.”

    “이거 기부한 사람이 누구랬지? 심 봉사라 했나?”

    “아뇨, 김 봉사요.”

    “봉사 주제 용케 이런 노른자위 땅을 갖고 있었네?”

    김 봉사의 봉사는 관직의 일종인 봉사(奉事)다.

    종팔품직에 불과하고, 어떻게 해먹으려고 해도 끗발이 안 돼서 해쳐먹기가 힘든 자리기도 하다.

    “선대에 물려 받은 땅이랍니다.”

    “바라는 게 뭐래?”

    “김 봉사 그치가 지금 예빈시 별제(종육품)로 있는 이팽희(李彭嬉)와 같이 일을 했었는데 몇 년 전에 문제가 생겨서 짤렸답니다. 해쳐먹기는 같이 해쳐먹었는데 문제가 발생하니까, 이팽희 놈이 김 봉사로 꼬리를 잘랐다나요?”

    “그래서?”

    으쓱.

    “그래서는요. 스승님께서 공명정대한 판결을 다시 해주십사··· 하고 기부한 거랍니다.”

    사적 복수인 셈이군.

    이래서 사람은 나처럼 완만한 대인관계를 가져야 한다.

    이팽희 같은 놈처럼 적을 두니까, 이런 사달이 나는 거 아니겠나?

    “김 봉사한테 그 사건 다시 검토해서 아주 공명정대하게 처리할 거라 전해줘라.”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이건 전횡이 아니다.

    전횡은 권력을 제 맘대로 휘두르는 게 전횡이지, 나는 권력을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는 거다.

    그 과정에, 김 봉사가 땅을 기부하면서 약간의 기름칠을 하긴 했지만 어쨌든 전횡은 아니다.

    “네.”

    “그리고 너 글씨 잘 쓰지?”

    “갑자기 글씨요?”

    “저보다는 송애(반석평)가 잘 씁니다.”

    “그럼 석평이한테 현판하나만 써오라고 해라.”

    “뭐라구요?”

    “이름하여 하보두(下保斗) 대학.”

    “하보두 대학요?”

    “응. 여기에 올라갈 학교 이름이다, 하보두 대학.”

    “뜻이 뭡니까?”

    한 말, 두 말 할 때, 그 말처럼 아주 자잘한(豆) 하층민들을(下) 지키는(保) 대학이라는 뜻에서 하보두.

    라고 지은 거지만 이건 솔직히 졸라 억지로 갖다 붙인 거고.

    “너가 하버드 대학을 아냐?”

    “하, 하버드 대학이요?”

    “모르면 잔 말 말고 시키는 거나 해, 이 자식아.”

    “이런 건 좀 덕산이 시키시지······.”

    “아, 그리고. 인부들 구할 때 있잖냐.”

    “네.”

    “학교 건물은 무조건 2층으로 올릴 거니까, 제대로 된 목수 구해야 돼. 할 수 있지?”

    “2층으로 올리는 건 말이 많아질 텐데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해결 할 테니까, 할 수 있어, 없어?”

    “알겠습니다.”

    “그래, 경덕이 너는 스승 잘 둔 거다. 어느 제자가 섭정승을 스승으로 둘 수 있겠냐?”

    절대 없지.

    자고로 경덕이는 복 받은 거다. 나 같은 스승 둬서.

    “스승님, 그런 의미에서 예조정랑 자리가 비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만 가자. 춥다.”

    “승문원 자리도 괜찮습니다.”

    “···날이 왜 이리 춥대냐. 봄이 아니라 한겨울 같구만. 덕산아! 덕산이 어디갔냐! 똥 누러 간다더니 호랑이한테 물려갔냐!”

    ***

    독자들 나와라, 오버.

    여기는 편전.

    치칙-.

    “에, 그래서 이 학교라는 건 결과적으로 한성부에서 시범적으로 운영을 하겠지만 점차적으로 팔도에 늘려나가는 걸 목표로 잡고······.”

    나는 지금 프레젠테이션 중이다.

    성균관 태학생들이 얼마나 씹선비고, 얼마나 졸렬한지를 설명하는 대신, 내가 만들 하보두 대학의 이로움을 설파하고 있었다.

    사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아직 대신들한테는 학교의 학 자도 안 꺼냈었다.

    사람 심리가 그래.

    고등학생들이 부모님 허락 받고 오토바이 사겠나?

    허락 구하면, 어느 부모님이 허락을 해주겠어?

    일단 질러 놓고 보는 거지.

    나도 마찬가지다.

    일단 기부부터 받았고, 대신들한테 허락을 받는 거다.

    “옛날에 합하께서 말씀하신 서역의 그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교육을 본따는 것입니까?”

    내 설명이 얼추 끝나자, 좌의정 아저씨가 물었다.

    용케도 서역의 대한민국을 기억하고 계시는데, 사실 당시에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러지, 내 발언이 조보로 나가면서 서울 전체가 들썩였었다.

    어떻게 보면 기억 못 하는 게 더 이상할 지경인 셈이지.

    “맞습니다. 기억하시는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나는 이 학교를 통해 만백성이 앎을 깨우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내 말에 대신들의 시선은 나보다 약간 상석이 위치한 황이에게로 옮겨졌다.

    일단 너는 대리청정을 보좌하는 위치인데 세자한테 허락은 받았냐는 무언의 액션 같았는데 허락은 물론 받았다.

    편전에 들기 전에, 동궁에 가서 황이부터 봤었다.

    황이는 흔쾌히 수락했다. 오히려 형님의 왕업에 큰 도움이 되겠다고 자신도 도울 일이 없겠냐고 물어 왔을 정도였다.

    “저는 숙부님의 방안이 참으로 괜찮은 듯 합니다.”

    “저하께서도 찬성하시는데 여러분들 견해는 어떠십니까?”

    “우의정 채수 아뢰옵니다.”

    “말씀하세요.”

    “취지는 좋습니다만, 제가 기억하기로 그 서역에 있는 대한민국의 학교라는 것은 결국 국고가 뒷받침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로 기억합니다. 한데 우리나라의 재정상 그 학교를 팔도에 두어 혜민서처럼 운영하는 게 과연 되겠습니까?”

    “됩니다.”

    무엇보다 작년에 세수가 예년 대비 2할이나 늘었다.

    예컨대 재작년에 100조의 세금이 걷혔다면 작년에는 120조의 세금이 걷힌 셈이다.

    경제란 게 없는 이 나라에서, 경제지표를 운운하고 성장률을 운운하는 게 우습지만 일단 내수 경제가 조금씩 돌아가기 시작했단 소리나 다름이 없다.

    그리고 단언컨대 여기에는 비누가 큰 역할을 했다.

    또, 나는 사업을 비누로 끝낼 생각이 전혀 없다.

    소풍대풍.

    차기 사업으로는 이걸 이용해볼 생각이다.

    잘 몰랐는데 의외로 인기가 대단하다. 금석리에 만든 소풍대풍을 옆마을에서도 빌려 갈 정도였고.

    부농이 아닌 이상 쇠로 만든 소풍대풍을 개인이 사가긴 어렵지만, 여긴 마을 공동체 생활을 한다.

    리(里) 단위로 십시일반해서 사가는 건 어렵지 않을 거란 소리다.

    여기에 더해 앞으로 있을 치수사업과 토지조사와 무역.

    여러 가지 국책 사업을 통해 국고가 늘 거라는 호조의 전망도 있었으니 만큼, 학교를 운영하는 게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안 됩니다. 하지만 된다고 생각하면 되게 만드는 쪽으로 생각하게 되죠. 지금 지방의 학궁에서 들어가는 경비가 얼마나 되시는지 여러분들은 아십니까?”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소위 말하는 향교의 경비들을 산출해왔다.

    “여기 이건 지출 목록입니다.”

    나는 미리 가져온 산출한 향교의 지출 목록 필사본을 대신들에게 나눠주었다.

    물론 황이한테도.

    “다른 건 다 차치하고, 가장 크게 발생하는 지출을 보시면 제사입니다. 뭔 놈의 학교에 제사가 이리 많답니까?”

    공자나 주자 같은 성현들한테 지내는 제사만 1년에 10차례가 넘는다.

    “여기서 소요되는 경비가 과연 얼마겠습니까?”

    “하지만 보통 학궁에 소요되는 경비는 학전(學田)으로 대체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발끈하신 분은 대사성 이점(李坫)이란 분이다.

    김전이 대사헌으로 자리를 옮겨가면서 새로 대사성 자리에 오른 분이기도 한데, 김전 못 지 않는 꼰읍이기도 하다.

    “학전만으로 대체한다는 건 원칙적인 일이죠.”

    뭐든 원칙만 따르면 돈 들어갈 일이 없다.

    문제는 원칙대로 움직이는 일이 전혀 없다는 거지.

    학궁의 학생들이 지방 수령들한테 올리는 글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뭔줄 아나?

    돈 달라는 거다, 돈 달라는 거.

    지방 수령이, 너네들한테 그러라고 나라에서 학전 준 거 아니냐?

    하면 이 수령은 학궁에 찍혀버린다.

    찍히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씹선비들은 그대로 상소를 올려버리는데 상소 내용이 가관이다.

    -지금 XX고을 수령 XXX이 수령칠사중 하나인 학교흥(學校興)을 지키긴 커녕 탄압하고 있습니다. 조속히 처리해주시기 바랍니다.

    얼추 이런 내용을 올려버리는 거다.

    수령칠사는 수령의 인사고과와도 밀접하게 연관이 돼있다.

    아무리 청렴결백한 수령일지라도 압박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향교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 지역 유지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향교생들의 부탁을 수령으로서 거절하는 건, 지역 유지의 청을 거절한다는 거나 다름이 없다.

    이건 또 다른 부담감으로 작용을 하는 거지.

    결국 대다수 수령들은 갖가지 명목으로 돈 달라고 떼쓰는 학궁의 부탁을 거절 못 하고 돈을 내준다.

    제사비면 제사비.

    노비면 노비.

    학교 보수비면 보수비.

    등등.

    이 말이 뭘 의미하느냐?

    “결국 지금 지방의 향교들을 예로 들자면, 각각의 향교에는 규모에 걸맞는 학전, 즉 재물을 주었습니다. 학전에서 나오는 소출이 1만석이라 가정을 한다면, 이 1만석으로 학교를 운영해야 하는 건데 이들은 갖가지 명목으로 고을의 재정을 탐냅니다. 그럼 1만석 들어갈 학교 운영비에, 수령으로부터 받는 재물까지 더해져서 약 2만석이 들어가버리는 거죠.”

    “하지만 그건 애당초 학궁에 주어지는 학전에 모자라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지요. 하지만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운영을 하던가, 따지고 보면 불필요한 일에 재물을 소모하는 격 아닙니까?”

    “향사(享祀)를 받드는 일에 들어가는 경비가 어찌 불필요한 일에 소모되는 재물이겠습니까?”

    “중국 사람을 받드는 일에 들어가는 경비니까 아까운 거죠.”

    내 발언에 편전이 도떼기 시장처럼 시끄러워졌다.

    내가 말한 중국 사람이 공자와 주자 같은 성현들이기 때문인 건데, 난 내 발언을 철회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막말로 공자 받들면 쌀이 나옵니까, 떡이 나옵니까?”

    “학자들의 배움은 결국 교화를 위해서이고, 향교의 학생들이 성현을 향사하는 것은 교화를 위해서입니다. 향사하는 일에 교화가 있으니 어찌 단순한 득실로 계산 할 수 있겠습니까?”

    “예예, 대사성 말씀 다 맞는데요. 그래서 향교에서 무슨 교화를 하고 있는데요? 예 하나만 들어봅시다. 무슨 교화를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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