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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220화 (220/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20화>

    ***

    환동이가 돌아간지 벌써 사흘.

    그 녀석 잘 가고 있긴 한 건지, 아프진 않은지 걱정 되긴 개뿔이고··· 지금은 내 코가 석자다.

    “난 이제 죽었다.”

    편전 입구에 선 나는 죽었다고 복창을 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드소서.”

    나를 안내하러 온 내관은 얼른 들어 가라고 떠밀었다.

    결국 편전 안으로 발을 내딛을 수 밖에 없었다.

    편전 안으로 발을 딛자······.

    “섭정승(攝政丞) 드시오, 예를 갖추시오!”

    예의 내관이 가갈을 했다.

    듣기 민망한 가갈이었지만, 여긴 예에 죽고 예에 사는 조선이다.

    궁궐의 법도는 더 심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안으로 들자, 시립해 있던 대신들이 일제히 고개를 조아렸다.

    고작(?) 섭정승이라는 타이틀 하나 더 붙었을 뿐인데 모두들 극도의 예를 차린다.

    “내 자리는 어딥니까?”

    “어좌에서 바라볼 때, 오른쪽이옵니다.”

    그럼, 내가 바라보는 곳에서는 왼쪽이겠군.

    나는 쭈뼛거리며 내 자리에 가서 앉았다.

    어좌는 아니지만 그 바로 밑에서 바라보는 편전의 풍경은 뭐랄까··· 평화롭다? 아니지, 널찍하다?

    음.

    나의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환동이의 속처럼 좁은 어휘력으론 표현이 안 되네.

    “주상 전하와 세자 저하 납시오!”

    민망한 마음에 표정 관리가 전혀 안 되고 있던 즈음.

    상선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형님과 황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형님은 자연스럽게 어좌에 가서 앉았고, 황이는 쭈뼛거리다가 형님의 왼쪽 자리에 앉았다.

    “좌세자 우대군인가?”

    나 빼고 다른 사람들 모두 실실 웃는 거 보면, 우스개소리로 하신 말씀 같은데 긴장돼서 웃질 못 하겠다.

    도대체 뭔데 웃지조차 못 하겠냐고 한다면 오늘부터다.

    내가 섭정승으로 편전에 들게 된 것이.

    이 말은 즉슨, 이제 정사는 황이와 내가 보게됐단 말이나 다름이 없다.

    형님은 오늘 첫 대리청정을 참관하겠답시고 찾아오신 거고, 아마 내일부터는 아예 안 나오실지도 모른다.

    아닌 게 아니라, 환동이가 돌아간 직후부터 바로 어제까지.

    형님은 봉해위의 훈련소만 찾아가셨다.

    그리고 봉해위의 군사들과 줄창 축구만 하셨었다.

    친목 다지기라나 뭐라나.

    아마 내일도 가서 축구를 하실 거다.

    “시작하라.”

    시작하라는 말씀에 나는 쭈뼛거리며 형님을 힐끗거렸다.

    황이도 마찬가지였다.

    나나 황이나 머쓱한 건 매한가지인데, 다른 분들은 아닌 모양이다.

    “작년에 전하께서 특지를 내리시어 중추(음력 8월)에 구나(驅儺)를 행하였는데, 올해 8월에도 똑같이 구나를 행한다 하시니 이에 대해 성균관에서 불만이 많은 듯 합니다.”

    섭정승좌(?)에서 바라보는 대사헌 김전은 뭔가 심술이 나있는 모습인 것 같다.

    아니면 정말로 심술이 났거나?

    “구나는··· 아바마마께서 특지를 내리시어 행하는 건데 어찌 성균관에서 불만을 갖는단 말입니까?”

    아, 구나는 악귀를 쫓는 의식이다.

    다른 말로는 나례(儺禮)라고도 하는데, 사실 형님이 가장 좋아하는 의식이기도 하다.

    이때 직접 처용무를 치기도 하시니까.

    그러다가 작년부터는 중추에도 의식을 행하게 됐는데 이게 성균관 씹선비들의 불만을 산 것 같다.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태학생들이 주장하는 바인즉, ‘주례(周禮)와 문헌통고(文獻通考)에서 말하기를 구나는 천자와 제후 모두 행할 수 있지만 음력 8월, 그러니까 중추에 행하는 구나는 천자만 행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데 전하께서 올해도 중추에 이어 행한다 하니 이는 참칭과 다르지 않다’ 라는 주장이었습니다.”

    나와 황이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형님에게로 옮겨졌다.

    마치 어미새 찾는 아기새처럼.

    하지만 형님은 어깨만 으쓱거리셨다. 너희 둘이 알아서 잘 해보라는 듯.

    그러자 황이는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날 쳐다봤다.

    숙부님이 좀 도와주세요, 라고 말하는 것 같다.

    “크흠. 구나를 중추에 행하는 건 천자의 예라서 안 된다고 하는데 그럼 성균관 태학생들은 앞으로, 선대왕들을 묘호로 부르지 말도록 하십시오.”

    태조, 태종, 세종.

    이런 게 묘호다.

    근데 이건 원칙적으로 천자의 나라에서만 올릴 수 있는 거다.

    알다시피 우리 나란 태조 대왕때부터 마이웨이로 올리고 있지만.

    “섭증승의 말이 옳다. 천자의 예라서 중추에 나례를 할 수 없다는 논리라면, 태학생들은 앞으로 선대왕들을 묘호로 부르지 말도록 하고 명에서 준 시호로만 부르라 하라.”

    “···”

    “계속하라.”

    성균관 태학생 문제는 얼추 매듭 지어졌다.

    “성균관에서 임금이 경연을 열지 않음에 분개 하고 있으니 경연을 다시 재개함이 어떨는지요?”

    경연은 민감한 주제다.

    나와 황이는 자연스레 형님을 바라봤지만······.

    으쓱.

    아까처럼 둘이 알아서 하라는 제스쳐다.

    “하지만 경연의 존폐에 관한 건, 일전에 매듭 지어진 걸로 압니다. 성균관에서는 왜 이제 문제를 제기한 겁니까?”

    황이가 안건을 가져온 대제학 김감에게 핵심을 물었다.

    그런 의미에서 난 보람을 느낀다.

    쌩뚱맞게 뭔 보람이냐고?

    조선 생활 헛되진 않았구나··· 하는 보람.

    성균관 씹선비들이 이제야 경연을 문제 제기하는 건, 아마 대리청정+친정 때문일 거다.

    이미 대신들이 대리청정과 친정을 반대했다가 묵사발(?)이 났는데, 저희들이 또 대리청정 하지말고, 친정도 하지 말라하면 어떻게 되겠나?

    성균관에 폐교령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결국 대리청정이나 친정이나··· 다 됐고, 임금으로 할 일이나 똑바로 하라는 걸, 경연으로 에둘러 표현한 거다.

    새끼들, 누가 씹선비들 아니랄까봐 말이지.

    “그것까진 알 길이 없사옵니다.”

    김감 아저씨는 차마 어린 황이에게 ‘네 아빠가 대리청정한다고 해서 씹선비들 또 지랄병 도짐’ 이라고 말할 수 없었던지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얼버무렸다.

    “음. 내가 알기로 임금이 경연을 여는 것은 상하가 함께 소통하고, 과거의 치란을 알기 위함입니다.”

    형님을 바라보자 초조해하시는 형님이 보인다.

    황이가 말실수 할까봐 저러시는 것 같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하지만 상하가 소통하는 일이 어찌 태학생들의 주장대로 경연에만 국한되겠습니까? 우리나라는 조종조 이래로 상언과 상소라는 아름다운 제도가 있고, 제신들이 조참과 조하 등으로 임금을 뵙는데 어찌 상하가 소통하지 못 하는 일이 되겠습니까? 또 아바마마께서 지금 보위에 오르신지 10년이 훌쩍 지났는데, 그 기간이면 태학생들이 주장하는 고금의 치란도 대략 알고 계실 듯 합니다.”

    “하면 태학생들에겐 전하의 학문이 높고 밝으니 경연을 열 필요는 없겠다, 라고 전하겠습니다.”

    “그리하세요.”

    “또 다른 문제로 지금 평안도에······.”

    이후 자잘한 사안들이 논의됐다.

    처음에는 나나 황이나 긴장해서 입도 제대로 못 열었지만, 회의가 어느 정도 진행되자 막힘이 없었다.

    딱히 어려운 문제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장장 한시진 가까이 이어지던 회의가 끝이 날 즈음.

    “오늘 처음으로 세자에게 정사를 맡기고 진성대군에게는 이를 보좌케 하였는데, 내가 보건대 세자와 진성대군의 콤비가 이처럼 좋으니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어보인다. 경들은 어떤가?”

    “신하로서 어찌 떳떳하게 말씀 아뢸 수 있겠사옵니까? 다만 전하께서 마음을 놓으신 듯 하니 신들로서는 다행한 일이옵니다.”

    “좌상이 그리 말해주니 내 기쁘기 한량없도다. 지금이야 내 편전에 나와 두 사람의 하는 모습을 지켜 볼 수 있다지만, 바다를 건너 가게 되면 조언을 하고 싶어도 못 하고, 결단을 내리고 싶어도 내리지 못 하니 경들은 내가 친정 나간 사이 두 사람을 나라 생각하고 대해야 할 것이다.”

    “예, 전하.”

    “자, 오늘은 참으로 뜻깊은 날이로다. 뜻깊은 날에는 산호천세가 빠질 수 없다. 산호하라.”

    갑작스런 하명에 나를 포함한 대신들이 당혹을 금치 못 했다.

    갑만삼.

    갑자기 만세 삼창이라니······.

    “처, 천세!”

    머뭇거리던 대신들 중에 사홍 아저씨가 제일 먼저 손을 번쩍 들어올려 천세를 외치자, 그 다음은 김감 아저씨였다.

    “천세!”

    “재산호하라.”

    “처, 천천세!”

    이게 말로만 듣던 푸쳐 핸섭인가 보다.

    ***

    의외다.

    뭐가 의외냐.

    섭정승 직이 의외로 쉽다는 게 의외다.

    사헌부에서 일했던 것보다.

    병무도감 도제조로 일하는 것보다.

    봉해위에서 훈련병들 갈구는 것보다.

    훨씬 쉽다.

    이건 의외일 수 밖에 없었다. 공무의 총량은 지금이 훨씬 많다.

    그런데 어째 하는 일은 지금이 더 쉬운지 모르겠다.

    몸이 편해서 그런가?

    어쩌면 임금 한 사람이 할 일을 두 사람이 분담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예컨대 형님은 꼭두새벽에 일어나셔서 7시부터 업무를 보셨다. 이걸 출근이라 친다면 퇴근은 오후 11시쯤에 하셨었다.

    중간에, 밥 먹는 시간, 쉬는 시간을 빼도 최소 13~4시간은 근무를 하신 셈이었다.

    그런데 이걸 지금은 나, 황이, 두 사람이 나눠서 하고 있었다.

    일의 총량은 이전보다 늘었어도 육체적으로 편한데다 업무 시간이 줄어서 쉽게 느껴지는 것 같다.

    물론 일이 만날 편한 건 아니었다.

    예를 들면 일주일 전에는 벽서가 붙어버렸었다.

    이때는 황이가 궐에서 지시하고, 내가 밖에서 진두지휘하는 식으로 벽서를 붙인 죄인들을 추포했었다.

    죄인 놈들이 어찌나 멀리 도망갔던지, 자칫 잘못했으면 강화도까지 수색에 나설 뻔한 일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범인은 성균관 씹선비 두 명으로 밝혀졌다.

    어쨌거나 저쟀거나.

    그럼 내가 쉬운 듯 어렵고, 어려운 듯 쉬운 듯한 섭정승일을 하는 동안 형님은 뭐하시냐.

    살 판 나셨다.

    형님은 왜 이 편한 걸 옛날에 안 했는지 후회가 될 지경이라는 말을 무려 편전에서 하셨었는데, 그 말처럼 진짜 팔자 늘어지게 보내고 계셨다.

    궐에서 축구 경기 여시는 건 기본이고, 경회루에서 꼭두새벽까지 진탕 부어라 마셔라 해대시는 건 하루 건너, 한 번 있는 일이었다.

    사냥?

    이것도 빼놓을 수가 없지.

    내가 섭정승 직을 수행하게 된 지 오늘로 어언 32일째인데 그 32일 중 11일은 사냥 나가셨었다.

    이것 뿐이면 팔자 늘어졌다고 말을 안 하지.

    언제였지, 2주 전이었나?

    조정이 들썩였던 적이 있었다.

    2주 전, 누군가 기방에서 난동을 부린 일이 발생했다.

    난동을 부린 사람은 금방 포청으로 압송이 됐는데··· 웬 걸.

    알고보니 압송된 이 사람이 형님이셨다.

    기방에서 난동 부리는 한량들이 어떻게 포청에까지 끌려오나··· 체험해보고 싶으시다면서 포졸들이 출동할 때 까지 신분을 밝히지 않다가 포청에 끌려온(?) 뒤에 ‘내가 왕이다!’ 정체를 밝히신 것이다.

    또, 엿새 전.

    이땐 정말 어떤 의미로 대단했다.

    ···본인이 광화문 수문을 서셨거든.

    체포(?) 당한 뒤에 밝히신 바로는 수문군들의 고충을 헤아리기 위해서라고 하셨지만 암만 봐도 수문군 ‘놀이’를 하신 거였다.

    그게 아니면 굳이 수문군들처럼 무거운 갑주를 입고 있진 않았을 테니까.

    이렇게, 온갖 기행과··· 또, 한량처럼 놀고 계신 형님이지만 누구도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게 10년만에 주어진 장기 휴가란 걸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까.

    대신들도 말로는 ‘그러지 말라’, ‘군왕의 체통을 지켜야 한다’라고 하지만 크게 제지하진 않고, 걱정된다며 호위만 더 늘리게 하는 걸 보면 내심은 형님의 지난 10년간의 고단함을 간접적으로 느끼는 것 같았다.

    오죽 했으면 저리 신나게 놀까··· 라는, 안타까움반, 애틋함 반이랄까?

    어찌됐건, 이리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놀고 계신 형님이지만, 형님이 기대하고 계신 건 역시 친정이었다.

    본인이 이렇게 노는 건, 시간이 너무 안 가서 그렇다라고 하실 정도였으니까, 말해 뭐하겠어?

    하지만 아무리 더디게 가는 국방부 시계라 해도 결국은 돌아가기 마련.

    4월 8일.

    출정날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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