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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206화 (206/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06화>

    ***

    “···송구하지만 지금의 훈련 방법이 통하겠사옵··· 아니, 통하겠습니까?”

    나는 조교들 역시 앞으로는 다나까만 사용하라는 지시를 내렸었다.

    다만 아직은 다나까가 익숙지 않은지 조교의 입에서 경어가 튀어나오려고 한다.

    아, 이 조교들은 별충위에서 데려왔다.

    문제가 있다면, 내가 별충위를 훈련 시켰을 땐, 봉해위처럼 과격(?)하게 훈련시키지 않았었다.

    위사들 한 명, 한 명에게 꼭 존대를 사용했었고 박원종이 난을 일으켜서 회군할 때랑 서대문에 파진했을 때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사용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윽박지르면서 욕하고, 다나까만 사용하게 하는 괴상한 훈련방식에 대해 반신반의 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나라고 확신을 갖고 있는 건 당연히 아니다.

    내가 신도 아니고 어떻게 확신을 해?

    다만 나는 봉해위가 상경하기 직전까지 훈련 방식을 고찰했었다.

    그 결과, 이게 최상이라는 결론을 내렸던 거고.

    하지만 반신반의하며 묻는 조교들 앞에 “나도 확신 같은 건 없는데?” 라고 하는 건, 너무 무책임함과 동시에 불안을 증폭 시킬 수가 있었다.

    나는 최대한 확신에 가득찬 어조로 답했다.

    “통합니다. 무조건.”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자자. 지금은 훈련 방식을 따질 때가 아닙니다. 앞으로 처리할 일이 산더미니까.”

    각 훈련병들의 이력을 재차 확인하는 일.

    각 훈련병들의 특성을 재차 파악하는 일.

    각 훈련병들의 부대를 편성하는 일.

    제식훈련과 진법훈련에 대한 계획.

    등등.

    빈 말이 아니라 할 일이 진짜 산더미였다.

    이 훈련 방법이 통할지 말지는 시간이 해결해 줄 터였다.

    “일들 합시다, 일들.”

    ***

    “서··· 흐읍!”

    씨익!

    저벅저벅.

    나는 막 서른을 외치려던 훈련병에게 다가갔다.

    얼굴이 기억에 남는 걸 보면, 몇 번 실수를 했던 훈련병 같다.

    “2, 234번 훈련병 최철동!”

    “234번 훈련병. 내가 마지막 구호는 생략한다고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했을 텐데?”

    “죄송합니다!”

    나는 바짝 얼어붙은 234번 훈련병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내 얼굴을 들이밀었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본관 말이 우습지?! 엉!”

    “아, 아닙니다!”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나! 마지막 구호는 생략! 생략! 생략! 생략이란 말이 어려워!?”

    “죄송합니다!”

    후.

    한숨을 내쉰 나는 구령대로 올라갔다.

    “50회 실시한다. 몇 회?”

    “50회!”

    “목소리가 네놈들 고추 보다 작다! 70회! 몇 회?!”

    “70회!”

    “이 새끼들! 밥 안 쳐먹었어!? 100회! 몇 회?!”

    “100회!”

    “이 새끼들 진짜 목소리 봐라··· 엎드려 뻗쳐!”

    지난 사흘간 나한테 갈릴대로 갈려버린(?) 불쌍한 영··· 아니, 훈련병들은 재빨리 엎드려 뻗쳐 자세를 취했다.

    “일어나!”

    역시나 재빨리 일어나는 훈련병들.

    “몇 회?”

    “100회!”

    “좋다. 이번에도 마지막 구호는 생략한다. 이번에도 234번 훈련병처럼 멍청하게 마지막 구호 외치는 놈이 있으면, 아마 죽었다고 복창하게 될 거다. 피튀 체조 70회 실시!”

    훈련병들이 곧 피튀 체조를 시작했다.

    왜, PT체조가 아니라 피튀 체조냐 한다면 이 훈련병들한테 PT를 어떻게 설명하겠어?

    간단하게 피가 튀는 체조를 줄여서 피튀라고 이름 붙였다.

    물론.

    조교들의 시범을 보고 피튀를 가볍게 생각하던 훈련병들은······.

    그 뒤는 생략하겠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처참했거든.

    “대대장.”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갈려지고 있는 훈련병들을 일별한 나는 1대대를 맡은 대대장을 불렀다.

    예전에, 아주 예전에 내가 내이포로 내려갈 때, 내 호위를 책임지던 별충위 종사관 소기파(蘇起坡).

    그가 바로 지금 1대대의 대대장이었다.

    “예, 장군.”

    알다시피 봉해위의 병력은 도합 1000명이 약간 넘는다.

    21세기의 중대급으로 나누면 대략 6개~10개 중대가 나오는 셈이다.

    봉해위도 마찬가지다.

    지금 봉해위에는 총 8개 중대가 있었다.

    왜 굳이 8개 중대나 되게 나눴냐고 한다면 아주 간단하다.

    병종 때문이다.

    원래는 살수면 살수, 궁수면 궁수, 팽배수면 팽배수, 화포수면 화포수를 한데 섞어, 그러니까 일개중대의 구성원들을 각기 다른 병종으로 어우러지게끔 해서 부대를 편성하려고 했다.

    중대 병력도 넉넉히 200명 정도를 1개중대로 삼아서 총 5개 중대를 두는 식으로 말이지.

    다만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예 병종별로 부대를 나눠버렸고, 그 결과 총 8개 중대가 탄생했고, 500명을 1개 대대로 하는 대대 2개가 탄생했다.

    그러다 보니 호칭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었는데, 무슨 말인고 하면 사람들이 날 부르는 호칭이 문제였다.

    어떤 사람은 대감, 어떤 사람은 합하, 어떤 사람은 교관님··· 통일되지 못 해서 아예 장군이라 부르도록 지시했다.

    훈련병들 뿐만 아니라 장교들까지 전부.

    뭔가 꼬꼬마들 군대놀이 같긴 한데··· 어쩌겠어?

    “체조 끝내면 제식훈련 시키고 밥 먹이러 보내세요.”

    “알겠습니다.”

    소기파에게 지시한 나는 내 막사로 돌아왔다.

    하루종일 밖에서 훈련병들하고 나뒹굴었더니 피곤하다.

    대충 만든 막사 침상에 드러눕자, 살짝 열린 장막 틈사이로 훈련병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식들 고생많네.”

    고생많은 훈련병들을 보니 노래 하나가 불쑥 떠오른다.

    “집 떠나와~ 열차타고··· 훈련소오오로 가는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이등대군이 될 뻔한 시절 자주 불렀던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다.

    몇 번을 들어도, 불러도 띵곡이란 말이지.

    그렇게 이등병의 편지를 흥얼거리던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존나 갑자기 머릿속에 번뜩 스치고 지나가는 게 있었다.

    “그래, 시발! 그걸 잊고 있었네.”

    아, 욕은 미안하다. 내가 요새 훈련병들 갈구느라 입이 걸어졌거든.

    이러다가 편전에서도 시발새발거릴지도 모르겠는데,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그걸 왜 까먹고 있었을까.

    모름지기 군인이라면···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난 사람이라면 다 알 법한 그 저주 받은(?) 노래들을······.

    나는 얼른 기억을 더듬어봤다.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눈 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 젊은 넋 숨져간~ 그때 그 자리! 상처 입은 노송은! 말을 잊었네······.”

    시발.

    아니, 시발! 이게 말이 돼?

    다시 기억을 더듬어봤다.

    “겨레의 늠름한 아들로 태어나! 조국을 지키는 보람찬 길에서! 우리는 젊음을 함께······.”

    쓰으발.

    내가 진짜 욕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조선 생활 포함하면 전역한지 6~7년은 지난 것 같은데 이것들을 기억하고 있다니······.

    어쨌든 훈련병들을 훈련시키면서도 자꾸 뭘 빼먹은 것 같고, 2%가 부족한 어떤 느낌적인 느낌이 있더라니 군가를 까먹고 있었다.

    군가.

    이걸 왜 까먹고 있었을까?

    나는 얼른 지필묵을 대령시킨 다음, 내가 기억하는 선에서 가사들을 적어나갔다.

    적다보니 또 욕이 나온다.

    “왜 다 기억하고 있어? 제기랄.”

    ***

    훈련 한달째.

    21세기였다면 자대배치를 곧 앞두고, 본인들의 비참한 운명도 모른 채 말년병장에 빙의해, 이제 막 입소한 신참 훈련병들을 비웃고 있었을 테지만, 불쌍한 우리 봉해위 훈련병들의 훈련기간은 12주였다.

    그런 의미에서 잠시 묵념··· 이 아니고.

    초반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던 조교들의 염려는 기우에 그쳤다.

    훈련은 아주 잘 되고 있었다.

    물론 훈련병들이 곧잘 따라와준 건 아니었다.

    21세기 미필들은 제식 흉내라도 낸다지만, 봉해위 훈련병들은 제식의 제자를 몰랐다. 그러니까, 제식이 무슨 의미인지 조차 아예 몰랐다.

    이걸 일일이 가르치고, 타이른다는 건 보통 노고가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의외로 제식이나 다른 훈련보다 가장 힘이 덜 들어갔던 건, 군가였다.

    난 군가를 못 따라부를 줄 알았더랬다.

    잠깐 문학도로서 잘난 체를 해보자면, 어떤 의미에서의 문화건 결국 문화라는 건 시대에 맞게 발전하거나 퇴보하기 마련이었다.

    단적인 예로 20세기 초반의 문학과 21세기의 문학이 같을 순 없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문화는 그 시대의 전반적인 분위기 속에 탄생해서, 그 분위기 속에서 향유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노래도 같았다.

    특히 이 시대는 템포 느린 노래가 태반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 사람들한테는 문화충격일 군가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으려나, 따라 부를 수 있으려나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웬 걸?

    “구보간에 군가한다! 군가는 전선을 간다! 핫, 둘, 셋, 넷!”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눈 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 젊은 넋 숨져간~ 그때 그 자리~ 상처 입은 노송은~ 말을 잊었네!”

    “핫, 둘!”

    “전우여~ 들리는가! 그 성난 목소리! 전우여~ 보이는가~ 한 맺힌 눈동자!”

    어때?

    겁나 잘 부르지 않는가?

    적응하기까지의 과정이 현대인들보다 좀 어려웠지, 막상 따라 부르는 건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군가 특유의 템포와 박력 때문에 중독성까지 느낀 훈련병들이 속출(?)했었다.

    그리고, 군가 특유의 템포와 박력에 매료된 사람은 훈련병들 뿐만이 아니었다.

    “저, 저건 무슨 가락인 것이냐?”

    오늘은 훈련병들의 상태를 중간 점검할 겸, 형님을 필두로한 조정대신들이 훈련을 참관하고 있었다.

    훈련병들의 상태에 썩 만족한 듯 흡족해 하시던 형님은 다짜고짜 훈련병들이 노래를 부르자 잠시 벙이 찐 표정을 짓다가, 뒤늦게 물으셨다.

    “군가입니다.”

    “구, 군가?”

    “예.”

    군가라는 말에도 아리송한 표정을 짓던 형님에, 함께 벙 쪄있던 임사홍이 말했다.

    “아, 아무래도 기휘가(조선의 군가)나 고진금퇴가(조선의 군가) 같은 가락 같사옵니다.”

    “으음, 기휘가와는 다르게 가락이 신명나서 듣는 맛이 있도다.”

    기휘가? 고진금퇴가?

    사실 난 그런 노래가 있는지도 몰랐다.

    조선판 군가 인가보지?

    그렇다면 훈련병들이 내 예상보다 군가에 쉽게 적응 할 수 있었던 이유도 중독성 때문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던 기휘가나 고진금퇴가 같은 군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뭐, 어쨌든.

    “이 가락은 누가 지은 것인고?”

    작곡가가 누구인지는 사실 기억이 잘 안 난다.

    물론 작곡가가 누군지 기억이 난다 해도, 큰 상관은 없다.

    “제가요.”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되고, 특허권 약탈자(?)가 저작권 약탈자 되는 법이다.

    이제는 별로 양심에 찔리지도 않는다.

    당연하다는 듯 내가 지었다고 말하자, 형님은 ‘호오, 과연’ 감탄하셨다.

    “한데 어찌 가락을 가르쳐서 부르게 하는 것이냐? 저리 뜀박질하면서 가락을 부르면 숨이 찰 텐데.”

    “사기 고양 차원이라고나 할까요?”

    “사기 고양?”

    “노래를 딱 들어보시면 이, 뭐랄까. 가슴에서 이··· 딱, 그런 뜨거운, 막, 예? 안 느껴지십니까?”

    끔뻑끔뻑.

    눈치를 보니 안 느껴지시는 모양이다.

    “···노래를 같이 부르면서 전우애도 다지구요.”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긴, 논밭에 나간 농군들도 보통 가락을 부르곤 하니까.”

    “예, 뭐. 비슷합니다.”

    알아서 이해해주신 형님에 감사해하며 다음 대열(大閱, 임금이 친히 검열함)을 준비했다.

    다음은 훈련소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제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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