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군으로 살어리랏다-205화 (205/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05화>

    ***

    강녕전.

    영의정 허침, 좌의정 임사홍, 우의정 채수.

    “저, 전하!”

    “그 무슨 두려운 말씀이시란 말이옵니까.”

    “말씀을 거두어주시옵소서!”

    이 삼정승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아뢨다.

    “왜 안 된다는 것인가?”

    너무나 당돌한(?) 임금에 세 사람은 할 말을 잃었다.

    안 되는 법은 없었다.

    안 되는 법은 없는데······.

    “하지만 어찌 임금이 친정(親征)을 나선단 말이옵니까?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옵나이다.”

    임금이 친정(親政)을 하는 일은 많다.

    지금도 임금께서는 직접 정무를 돌보고 계시니까.

    하지만 임금이 친정(親征).

    그러니까, 몸소 정벌에 나서는 일은 없었다.

    그러지 말란 법?

    물론 없었다.

    경국대전에도 임금은 전쟁에 나갈 수 없다는 법조문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그런 법조문이 없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서 그렇다.

    너무 상식적인 일을 굳이 명시할 필요가 없으니까.

    상식적으로 임금이 친정을 나가리라 누가 예상이나 하겠는가?

    또 어떤 임금이 친정을 마음 먹겠나?

    그러거나 말거나.

    “내 우리 삼한의 역사를 가만히 되돌아보매, 고구려는 광개토대왕이 일군을 이끌었고, 백제는 근초고왕이 군사를 일으켜 고구려로 쳐들어간 일이 있소. 이 뿐인가? 신라는 무열왕이 대군을 일으켜서 이례성을 함락시키기까지 했으니 어디 삼한만 그러했겠소이까? 우리 태조대왕과 태종대왕께서도 그러하셨소.”

    “···”

    역시나 세 사람은 할 말을 잃었다.

    할 말 잃은 세 사람에 융은 계면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뿐인가? 세조대왕께서도 몸소 역적을 토벌하러 가셨으니 어찌 내 대에만 안 되겠소이까.”

    “하지만 세 대왕의 일과 지금을 연관 지을 수 없사옵니다.”

    “아오. 내 어찌 모르겠소.”

    “게다가 파병이라 함은 못 해도 1~2년은 걸릴 일인데 임금이 그 긴 기간 궁을 비운다는 것이 어찌 가당한 일이겠나이까?”

    융의 말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옳소를 외치던 임사홍.

    그마저도 부당함을 아뢰고 있었다.

    그에 융은 역시나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내 그래서 국본을 세운지 오래된 것 아니겠는가?”

    “···”

    세 사람은 또 할 말을 잃었다.

    전하께서 국본이라 말씀하시는 그 분은, 비록 나이에 비해 영특한 바가 있으시지만 이제 열 살을 앞두고 계셨다.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융도 뒤늦게 세자 황이의 나이를 떠올렸는지 헛기침을 터뜨렸다.

    “세자에게 잠시 정사를 맡긴다면, 비록 세자가 나이가 어리다 한들 대비가 계시니 불가한 일만도 아닌 것 같은데······.”

    라고, 은근하게 묻자 삼정승들은 속된 말로 벙이 쪄버렸다.

    “대비께서는··· 대비께서는 분명 자애로우시고 또한 나라의 큰 어른이시오며 덕이 있으면서도 위엄을 두루 갖추고 계셔서 전하의 말씀대로 불가하진 않겠사옵니다만······.”

    말을 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는지 임사홍은 말끝을 흐렸다.

    “하오나 어찌······.”

    “진성대군도 있으니 세자의 섭정이 무에 어려울까?”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어찌 친정을 마음에 두시고 계시옵니까?”

    “모름지기 열국(여러나라)의 왕들 중에서 친정하지 않고 왕으로서 위엄을 뽐내지 않은 자가 없었소.”

    “···개중에는 당 태종 이세민 같은 자도 있었사옵니다.”

    “중국의 역사를 보지 말고 삼한의 역사를 돌아보시오.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친히 기마를 타고 나가 사해를 평정했소이다. 백제. 근초고왕이 그러했고. 신라? 무열왕이 있었소. 그뿐인가. 망조(고려)의 왕건 역시 그랬소이다.”

    “···전하께서 언급한 이들중에 바다를 건넌 임금은 없었사옵니다.”

    “예전에 없었다 해서 지금에도 없으란 법이 있단 말인가. 그야말로 궤변이다. 내 지금 직접 친정을 나서려는 까닭은······.”

    “···”

    “까닭은, 그러니까······.”

    사실 거창한 명분 같은 게 있을 리는 없었다.

    그냥 직접 일군을 이끌고 적을 토벌하고 싶었다.

    옛날에 위엄을 떨친 대왕들처럼 말이다.

    철없는 생각인 건 알지만, 그럴 여건이 안 되는 것도 아니잖은가?

    국내의 일은 왕실의 어른이신 대비마마와 진성에게 맡겨도 되니까.

    하지만 단순히 옛날에 위엄을 떨친 대왕들처럼, 본인이 직접 위엄을 떨치고 싶다는 말을 삼정승들에게 하기란, 면이 서질 않았다.

    “그, 우리나라 사족들은 참으로 궁색하고 비열하더이다. 저번에 북정만 해도 그래. 제 자식 전장터에 내보낸 이들이 얼마나 되겠소.”

    “별충위가······.”

    “아, 물론. 그래서 별충위가 만들어진 거긴 하오만 내가 말하려는 바는 그게 아니오. 내 윽박지르지 않았더라면, 아니··· 진성이 자원해서 전장터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사족들이 어찌 제 자식들을 별충위에 입대 시켰겠소이까? 가정을 해봅시다, 가정을.”

    “···”

    “아마 한 사람도 없었을 거요. 진성이 자원하니 그제야 별충위에 입대를 시킨 게지. 그런 의미에서 왕이 나선다면 원병군의 사기도 진작 될 것이거니와, 사족들에게도 명분이 바로 서지 않겠소이까?”

    친정에 나간 본인을 상상이라도 하듯 헤벌쭉 입을 벌린 임금에 삼정승들은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전하의 말씀을 신들은 잘 알아 들었사옵니다. 지금은 칙사의 영접 문제도 있고··· 연변의 일도 있으며, 또한 대마도의 일도 있으니 차제에 논함이 어떻겠나이까?”

    “차제에?”

    “예.”

    “흐음. 알았소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매듭을 짓고 싶단 말씀을 하시면 어쩌나, 가슴 졸이던 삼정승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삼정승들은 혹여라도 임금이 나중으로 미룬 친정을 또 언급할까, 급히 인사를 올리고 허둥지둥 강녕전을 빠져나갔다.

    강녕전에는 상선과 융만 남게 되었다.

    융은 상선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니,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

    “상선이 생각하기에도 안 되는 것인가?”

    “사, 삼정승들이 반대한 일인지라······.”

    “그래도 사람에겐 주관이란 게 있는데··· 상선의 주견은 어떠한가?”

    “소, 송구하옵니다, 전하.”

    안 된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하는 상선에 융은 침음을 흘렸다.

    ***

    이번에 내가 맡게 된 파병부대의 이름은 봉해위(鳳海衛)로 정해졌다.

    봉새 봉(鳳)에 바다 해(海)를 합쳐서 봉해위.

    일단 명심할 게 있는데 이 부대의 이름은 절대적으로다가 내가 지은 게 아니다.

    형님이 지으신 거다.

    부대에 속한 군사들이 봉황에 비견된다 해서 봉새 봉.

    봉황들이 바다를 건너간다 해서 바다 해.

    조금 오그라드는 표현인 건 나도 아는데 어쩔 수 없다.

    형님은 파병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계셨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조선에서는 바다 건너 원군을 보낸 일이 한 번도 없었단다.

    그나마 고려 때는 원나라군 따라 일본 간 적이 있다고는 하는데, 어쨌든 우리 조선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라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

    그걸 증명하는 건, 봉해위 정병들의 상태였다.

    상태가 무슨 말이냐고?

    이들은 진짜 정병들이었다.

    비록 외교적 거래에 의한 원군이라지만, 형님은 우호국인 오키나와에 실망을 안겨 줄 수 없다면서 전군에 최정예군만 선발토록 하셨다.

    그 결과.

    1,034명에 달하는 정병들이 각군에서 선발이 됐다.

    삼수갑산에서 물 건너 온 갑사도 있었고, 함경도를 수호하던 토병들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경복궁을 숙위하던 금군들도 있었다.

    그리고 나?

    정병들이라 해서 훈련이 따로 필요 없는 건 아니다.

    내가 예전에 훈련시켰던 별충위만 해도 그래.

    그들 개개인은 전부 뛰어난 활솜씨와 기마 실력을 갖고 있었다.

    사실 취미란 게 전무한 시대에서, 사족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대개 활을 쏘거나 말을 타곤 하니 무리도 아니었다.

    때문에 징집 초반 별충위의 위사들은 개개인만 보면 정병까진 아니어도 제법 무예가 뛰어난 자들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다 같이 하는 거지.

    봉해위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아무리 일당백의 용사들이라 해도 체계가 잡히지 않거나 합을 맞추지 않는 상태에서 실전에 투입되면, 오합지졸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정병들의 훈련을 맡은 나는 하루가 멀다하고 이 사람들을 어떻게 훈련 시키면 좋을지, 조교적인 관점에서 고찰을 하게 됐다.

    사실,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별충위는 너무 주먹구구식인 경향이 있었거든.

    그리고 연구(?)가 얼추 끝났을 즈음.

    전국각지에서 봉해위에 선발된 정병들이 상경했다.

    훈련소라고 해야할까, 훈련장이라고 해야할까.

    어쨌든 이들을 조교시킬 장소는 한강변에 세워졌고, 오늘은 입소식(?) 같은 개념으로, 이들을 처음 대면하는 날이기도 했다.

    “흐음.”

    긴장된 마음과 함께 구령대(?)에 오른 나는 봉해위 정병들을 쓱- 훑어봤다.

    모두 각 진영에서 난다 긴다 하는 이들이 뽑혀왔지만, 아무래도 어리숙한 모습들이 틈틈이 보인다.

    “본관은 봉해위의 훈련을 맡은 이역이다.”

    그들을 한참 훑어보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봉해위를 맡는다는 소문은 들었어도, 설마하니 진짜로 일국의 왕자인 내가 자신들을 교육시킬 거란 건 예상치 못 했는지 이름을 밝히자마자 훈련소 전체가 술렁거렸다.

    “모두 조용.”

    조용히 하라고 했지만 조용해질 기미는 안 보였다.

    “모두 조용, 이 개새끼들아!”

    “···”

    이제 좀 조용해진다.

    조용해진 상태에서 크흠, 크흠.

    나는 목청부터 가다듬었다.

    “본관이 말할 땐 무조건 입 닥치고 경청하도록. 알겠나?”

    “···”

    “알겠나!”

    “···예.”

    “어쭈. 목소리 봐라. 알겠나?”

    “예!”

    “자. 이제부터 너희 개새끼들이 어디서 굴러 먹다 왔는지, 본관이 알 바가 아니다. 너희 새끼들 다 내 눈에는 개새끼야, 개새끼.”

    “···!”

    지체 높으신 왕자대군의 입에서 걸쭉한 욕설은 또 처음 듣는지, 1,034명의 정병들이 놀란 듯 눈을 치켜 떴다.

    그러거나 말거나.

    구령대를 내려온 나는 제일 앞줄에 서있는, 어쩌면 제일 만만해보이는 훈련병에게 다가갔다.

    “너.”

    “예, 대감.”

    “어디서 복무하다 상경했지?”

    “소, 소인은 의흥위의 갑사로 개성에 있다가 선발되어 상경했사옵니다.”

    “앞으로 경어는 생략한다. 알겠나?”

    “무, 무슨 말씀이시온지······.”

    “앞으로는 다나까로만 대답하도록.”

    “···?”

    “내 말이 어려운가?”

    “아, 아니옵니다, 대감.”

    “경어는 생략하라니까? 알아듣기 쉽게 몽둥이질 좀 하고 시작할까? 엉!?”

    “아, 알겠소······.”

    “알겠소? 알겠소오오오!?”

    “겨, 경어는 생략하라 하셔서······.”

    연구가 잘못 된 건 아니다.

    이것도 다 예상한 일이다.

    이 친구(?)들이 21세기에서 살다온 것도 아닐 테고, 하다못해 tvN에서 하던 푸른거탑을 본 것도 아닐 테니 다나까만 사용하라는 게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

    “딱 한 번만 설명해줄테니까, 잘 듣도록.”

    “에, 예!”

    나는 여전히 고압적인 분위기와 함께 경어를 생략하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자세히 설명해줬다.

    “···?”

    표정을 보니 그래도 못 알아듣는 것 같긴 했는데, 어쩌겠나.

    친절히 설명해줬는데도 또 경어 쓰면 뺑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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