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군으로 살어리랏다-203화 (203/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03화>

    ***

    “오호, 오호.”

    여긴 사정전 옆에 위치한 또 다른 편전 천추전 뜰이다.

    사실 거창하게 천추전 뜰이라고 할 것도 없다.

    사정전 바로 우측에 있는 게 바로 천추전이니까.

    결국 삼편전(三便殿), 그러니까 사정전, 천추전, 만춘전의 마당이라고 보면 된다.

    이 마당에서 형님은 보다시피 어린 아이처럼 신기해하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고 계시다.

    왜 그런지는 모두들 알겠지.

    “나는 비누만 기물인 줄 알았다만 이 대풍은 더 한 기물이로다. 아니, 천세의 귀물이로다. 호오.”

    직접 대풍의 머리빗 부분에 볏단을 집어넣고 타작을 해 보시던 형님은 격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듣자하니 금석리 사람들은 이 대풍을 이용해 벌써 타작을 다 끝냈다고 하니 과연 천세의 귀물인 듯 하옵니다.”

    “그러하옵니다. 본시 농군들의 수고로움은 각 절기마다 있는데 겨울철에 가장 큰 고충은 바로 타작이옵니다. 이 타작 때문에 농군들이 고통을 겪는 바가 매우 많은데, 이를 이용한다면 그 고충을 줄일 수가 있으니 어찌 귀물이 아니겠나이까?”

    “지금 이 대풍소풍이 전국의 농군들에게 보급이 된다면 공력(功力)이 절약되니 이 또한 나라의 이익이요, 백성을 평안하게 하는 일이 될 것이옵니다.”

    물론, 대신들도.

    대신들의 극찬이 아첨이 아니란 건, 넌씨눈인 노공필도 알 수 있을 거다.

    실제로 다른 분들은 신기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 정도로 신기한가?’

    물론 나는 긴가민가하다.

    금석리 사람들이야··· 뭐, 무시하는 건 아니어도 여기 말로 일자무식인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여도 잠깐 우쭐하고 말았지만, 머리에 먹물 깨나 넣으셨다는 분들께서도 신기해하니 우쭐하다 못 해 어깨가 승천할 것 같다.

    이 시대 기준으로 엘리트인 사람들도 못 해 낸 일을 내가 해 낸 거니까.

    “이건 어찌 만들게 된 것이냐?”

    어린 아이 장난감 만지듯, 계속해서 볏단을 집어넣고 타작을 하시던 형님은, 집어넣은 볏단의 타작이 끝나자 재빨리 다른 볏단을 또 집어넣으시고 고개만 돌린 채 물으셨다.

    형님의 질문이었지만, 만인의 공통 된 질문임은 역시 넌씨눈 노공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다들 내 입만 빤히 바라보고 있다.

    나는 잠깐 거드럭거렸다.

    “이게 또··· 제가 누구겠습니까?”

    “나의 아우가 아니냐?”

    “예, 형님의 아우기도 하지만 조선의 에디······.”

    아, 이 사람들 에디슨 모르지.

    들 떠서 깜빡해버렸다.

    “에디?”

    “···조선의 장영실 아니겠습니까?”

    “대감, 장영실은 대왕께 불경죄를 저질러 직첩을 회수당했사옵니다······.”

    꼭 초를 친다, 노공필.

    반박은 형님이 대신해주셨다.

    “지부사는 매사에 그리 부정적이니 어찌 한단 말이냐. 그리고 내 신언지를 하사하여 그놈의 입을 좀 조심하라 한 지가 며칠이나 지났다고 또 입을 놀리는가?”

    “소, 송구하옵니다··· 신은 다만 도제조께서 뭘 잘못 알고 계시는 게 계신 듯 하여······.”

    “또, 또··· 지부사가 천하에 잘하는 일은 변명과 입을 놀려대는 일 밖에 없더냐? 경청을 하는데 있어서, 말하는 자의 의도를 파악해야지 지금 경이 하는 것이 말꼬리 잡는 게 아니면 무엇이냔 말이다. 또, 지부사가 잘 못 알고 있는 게 있는데.”

    “하, 하교하시옵소서, 전하.”

    “세종대왕께서는 우리나라 제일가는··· 아니, 천하의 으뜸가는 예성(叡聖)이셨다. 또 성군이셨고 명군이셨다. 하지만 어찌 군주 혼자 명철하고 덕이 있다하여 대왕의 시대가 태평시대였겠는가? 다 장영실 같은 신하들이 때에 맞춰서 태어나고, 때에 맞춰 나타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불경죄는 무슨 불경죄냐. 내 지금 누굴 벌하고 싶지 않아 참는다만, 지부사는 필히 그놈의 입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며, 명심하겠사옵니다.”

    형님은 쯧쯧 혀를 차며 노공필을 일별하셨다.

    진짜 가만보면 노공필도 대단해.

    누차 말하지만 아직까지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어쩌면 염라대왕도 저놈의 입방정 듣기 싫어서 저승사자 안 보내는 걸지도 모르지.

    뭐, 어쨌거나.

    “진성이 네 말이 맞다. 네가 바로 당금의 장영실이니 이런 귀물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 어찌 만들었다 했더냐?”

    “제가 타작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이번 기회에 타작을 좀 해볼까 싶어 금석리를 찾아 갔사옵니다. 그래서 제 땅을 소작 부쳐 사는 소작농들과, 의 도령(개똥이)에게 물어 타작하는 방법을 물었더니 웬 이상한 통나무에 볏단을 내리쳐서 타작을 한다지 않겠사옵니까?”

    “여, 여태 타작을 어찌 하는지 모르고 살았단 말이냐?”

    “부끄럽지만 그렇사옵니다.”

    “허어. 그렇다면 더 대단한 일이다. 글을 아는 사람에게 하늘 천(天)자를 답하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글을 모르는 사람에게 묻는다 한들 한 일(一)자나 제대로 답할 수 있단 말인가? 하물며 타작을 어찌 하는지도 몰랐던 네가 이런 도구를 고안하였으니 가히 천고에 으뜸가는 머리다. 아니 그러한가?”

    형님이 의견이라 읽고 동의라 쓰는 질문을 대신들에게 하자 이곳저곳에서 그러하다는 말이 날아들었다.

    가만보면 형님도 사람 부끄럽게 만드는데 재주가 있으시다.

    “아무튼 그 방식이 힘은 힘대로 들이지만 타작은 많이 하지 못 하니 비효율적 같았사옵니다. 소작 하나에게 물어보니 그렇게 타작을 하면 하루에 2~3가마니를 타작 할 수 있다고 답했사옵니다. 이게 땅을 가진 사람이나, 땅을 부쳐 먹는 사람, 둘 모두에게 얼마나 비효율적인 일이겠사옵니까?”

    물론 따지고 보면 지주는 노상관이다.

    지주 본인은 가만 있어도 소작이나 노비에게 시키면 알아서 타작을 해 올 테니까.

    “그래서 고안을 하게 됐다?”

    “예.”

    살짝 찔리지만 특허권이란 게 없는 시댄데 뭐, 어때?

    “과연, 과연 내 아우다. 경들은 모두 본바도록 하고, 이 머리빗 부분은 쇠창살을 이용하는 듯 하니 합심해서 팔도에 보급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오도록 하라.”

    “예, 전하.”

    소풍대풍이 신기한지 계속해서 들여다보시는 형님과 대신들에 흐뭇해하던 내 눈에 아까 그 사관이 들어왔다.

    쓱싹쓱싹-.

    붓을 마구 놀리고 있는 게 역시 이 장면을 사초로 남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다가······.

    “흡!”

    또 나랑 눈 마주쳤다.

    저벅저벅.

    나는 형님과 다른 대신들이 소풍대풍에 한 눈(?) 판 사이 사관에게 다가갔다.

    “저기.”

    “예, 대감.”

    긁적긁적.

    “거기에 내 욕 쓴 거 아니죠?”

    “에?”

    멍청한 표정을 짓던 사관은 깜짝 놀란 듯 사초를 가렸다.

    “아, 아니옵니다.”

    “크흠. 쓴 것 같은데?”

    “아, 아니옵니다, 대감.”

    “그래? 이름이나 압시다.”

    절대 춘추관에 압력 넣으려는 거 아니다.

    순수히, 진짜 순수하게 이름이 알고 싶었다.

    “소, 소인은 김구오(金句汚)라 하옵니다.”

    “김구오?”

    “예······.”

    이름 한 번 특이하다.

    그러면서도 뭔가 익숙한 이름이다.

    구오라··· 구오.

    어디서 봤었나?

    “이런 거 실례인거 알지만은 무슨 구에 무슨 오입니까?”

    “그, 글귀 구(句)에 더러울 오(汚)자를 쓰옵니다.”

    “구오? 글이 더럽다? 푸하하하하하.”

    사초 쓰는 사관 이름 뜻이, 글이 더럽단다.

    안 웃기고 배겨?

    배꼽 잡고 한참을 웃다가 정색한 사관에, 뻘쭘해졌다.

    “···”

    “아, 미안합니다. 이름 갖고 웃으면 안 되는데 왠지 웃겨서.”

    “···”

    “그보다, 내 욕은 빼고 잘 씁시다, 잘. 예?”

    《무종실록(武宗實錄) 1506년 11월 24일 기사》

    .

    .

    .

    ···하므로 진성대군 이역이 대뜸 말하기를,

    “내 욕은 빼고 잘 씁시다, 잘.”

    이라고 말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과연 세간의 평대로 사람됨이 우스운 자다.

    분하다.

    ***

    “하지만 전하. 지금 감조관(監造官)들이 권설직(임시직)이라 하나 전례를 살펴보면 관아의 장차관들이 맡는 것이 상례(常例)였사옵니다. 비록 대마도는 도감의 감조관들과 다르다고는 하나 어찌······.”

    임금의 파격적인 인사 조치에 편전이 들썩였다.

    “경이 말한대로 대마도는 다른 아문의 감조관들과는 다르다. 기존에 대마도에 보내던 경차관(지방에 임시로 보내던 관리)과는 다르다, 이 말이다. 그리고 경이 장차관을 말했다만, 억수 역시 별충위의 장관이다. 무에 다른가?”

    “···”

    난감한 표정을 짓던 김전은 이내 고개를 조아렸다.

    지금의 임금은 한 번 말해도 듣지 않으시면 백번을 말한다 한들 고집을 꺾지 않으실 분이었다.

    “···전하의 뜻대로 하소서.”

    “그럼, 대마감조관으로는 별충위장 김억수를, 안핵사로는 안처직을 제수 할 것이니 대마도 문제는 이걸로 일단락 짓겠다.”

    “···”

    “예판.”

    “예, 전하.”

    “동평관은 어떠하던가?”

    단순히 동평관이라는 건축물 자체를 물었을 리 없었다.

    “동평관에서 한 발 자국도 아니 나오고 있사옵니다. 다만 동평관에 배속 된 통사(역관)들에게 부탁하여 서책을 좀 구하고 있는 듯 하옵니다.”

    “서책? 무슨 서책 말인가?”

    “불경(佛經)들인 듯 하옵니다. 말리오리까?”

    대장경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불경을 구하는 것 정도는 용인 할 만 한 일이었다.

    “됐다.”

    “예.”

    “도주에게는 이틀 뒤에 하직하라 전하라. 김억수와 안처직은 달포 뒤에 하직해서 대마도로 갈 수 있도록 차비를 하라 하고.”

    “예, 전하.”

    “한데······.”

    융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진성대군은 어디에 있는 것인고?”

    “거중기와 녹로 때문에 군기시에 계신 줄로 아옵니다.”

    “군기시?”

    “예.”

    “흐음, 그러고 보니 오늘이 예정일이었던가?”

    거중기와 녹로의 설계를 받아본 군기시에서는 일체의 모든 작업을 중지하고 거중기와 녹로에 매달렸다.

    그러면서, 바로 오늘.

    12월 20일 정도면 완성을 시킬 수 있다는 말을 전해왔었다.

    그게 오늘인 것이다.

    “예.”

    “모두들 이런저런 일로 공사가 다망한 건 내 안다만, 같이들 가지.”

    라고 말한 융은 대신들을 이끌고 편전을 나섰다.

    목적지는 당연히 군기시였다.

    ***

    “뭐합니까, 떨어지잖아! 피해요!”

    “어어!”

    쿵!

    네모반듯한 바위가 떨어지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바닥이 흔들렸다.

    달려가서 확인해보니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사상자 없게 하려고 만든 기구가 사람 잡을 뻔 했다.

    아직 사용법에 익숙하지 않아 바위를 묶는 과정에서 실수를 한 것 같았다.

    아, 지금은 녹로를 테스트 하고 있는 중이다.

    거중기의 테스트는 이미 끝냈다.

    물론 시행착오가 없었던 건 아니고··· 거중기를 시범 테스트 하다가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둥이 맥없이 부러진 적도 있었고, 도르래와 연결된 끈이 끊어져버려서 사람이 다칠 뻔 한 적도 있었다.

    다행히 지금은 모든 테스트를 마치고 군기시 마당 한켠에 잘 보관해뒀다만······.

    문제는 거중기의 시행착오를 녹로 때문에 또 겪고 싶진 않았다.

    “잘 묶었습니까?”

    “예, 대감.”

    과연 살펴보니 이번에는 잘 묶은 것 같다.

    나는 녹로의 뒤로 가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얼레를 돌렸다.

    우르르릉.

    팽팽히 밧줄 담기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예감이 좋다.

    밧줄에 묶인 돌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쿵!

    약 10m에 달하는 간목 끝까지 올라갔다.

    “대감, 성공인 듯 하옵니다!”

    비격진천뢰도 모자라, 이번에는 거중기와 녹로 만드는데 큰 힘을 보태준 갑동 씨가 웃으며 말하자, 나 역시 환히 웃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기뻐하던 그때.

    짝짝짝!

    뒤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넋이 나간 듯 물개 박수(?)를 치고 있는 형님과 마찬가지로 넋이 나간 채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대신들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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