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군으로 살어리랏다-198화 (198/365)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198화>

***

“그건 좀······.”

우참찬 김수동(金壽童)을 시작으로 이곳저곳에서 안 된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운반비 절감으로 육로를 언급하셨습니다만 이는 그른 말씀이십니다. 수로에 비해 육로가 편하다면 개국초 어찌 수운만 고집했겠습니까?”

“선군(船軍)이나 조군(漕軍)의 역이 과하고 격해 도망하는 이들이 있긴 합니다만 이를 육로로 치환한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닙니다. 육로로 운반한다면 그 과로함이 곱절은 더 될 터인데 선군과 조군처럼 어찌 도망치 않겠습니까?”

“몇 년 전 홍길동의 무리가 발호할 우려도 있습니다. 이놈들은 감히 관의 이름을 빌려 참람한 짓을 서슴치 않고 저질렀습니다만 만약 육로로 조세를 운반하게 한다면 산적들이 각처에 들끓을지도 모르고, 이를 방지하려면 운반에 군사를 붙여야 하는데 군사는 어찌 충당하겠습니까?”

“예. 오죽하면 수운이 고금을 통해서 이익이 된다는 말도 있겠습니까?”

“더욱이 도로를 설계하는 일은 국역(國役)의 일환이라 할 수 있는데 고금을 통틀어 토목을 크게 일으키는 일은 백성의 원성을 샀습니다. 지금 도로는 수로에 비해 백해무익하기까지 한데 굳이 백성의 원성을 사면서까지 설계할 까닭이 있겠습니까?”

“맞습니다. 태종때의 일을 상고해보자면 대왕께서 조세를 육로를 통해 운반케 하시자······.”

나는 가만히 다른 분들의 말을 경청했다.

다른 분들은 장장 한식경 가까이 도로 설계의 부당함을 설파(?)하셨다.

“이같은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결국 도로를 설계해도 문제입니다. 외적이 쳐들어오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 텐데 수운의 이점에 기대서 살펴본다면 어떤 이로움이 있겠으며, 만에 하나라도 외적이 쳐들어온다면 그 책임을 누가 지겠습니까?”

한식경 뒤.

김수동에서부터 시작 된 설파가 노공필의 말로 끝나자 더 이상의 설파는 없었다.

다들 하실 말씀들은 하셨단 소리다.

“여러분들이 말씀해주신 건, 저도 다 아는 것들인데요.”

사람들이 넋이 나간 것 같다.

표정들이 마치 다 알고 있었으면서 왜 도로를 설계하잔 소리를 했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뭐, 어쨌건.

저분들이 말한 건 나도 다 아는 사실들이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나 조선에서 원데이, 투데이 살지 않았다.

햇수로 4년을 살았다.

저분들이 말씀하신 건, 서당개도 알 만한 것들이다.

다만 개중에서 좀 한심한 의견이 있다면······.

“말씀드리기에 앞서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겠는데요. 지부사(노공필).”

다른 사람 젖혀두고 본인에게 화살이 날아들자 노공필은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이다가 조용히 고개를 조아렸다.

“예, 대감.”

“도로를 설계해서 외적이 쳐들어오면요.”

“예예.”

“우리도 그 도로를 따라서 외적을 무찌를 수가 있다는 말이 되잖습니까? 근데 왜 외적 때문에 도로를 설계해선 안 된다고 하십니까?”

“에··· 그건 일단 외적들이라 함은 보통 왜구와 오랑캐들을 말하는데··· 그, 대감께서도 아시다시피 왜구는 날쌔기로 정평이 자자하고, 오랑캐들 역시······.”

“그게 구더기 무서워서 장 담그지 말잔 소리랑 뭐가 다릅니까?”

“···”

지부사를 일별한 나는 형님을 바라봤다.

가만히 대신들과 나의 언쟁 아닌 언쟁을 듣고만 계시던 형님은 내가 똑바로 바라보자, 옷매무새를 가다듬으셨다.

“전하. 신은 다른 분들이 하신 말씀을 모르고서 도로 설계를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대사간 김굉필을 바라봤다.

“대사간이 말한 것처럼 수운이 육운에 비해 운송비가 절감 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사옵고······.”

이번에는 홍문관 전한 이행이다.

“전한의 말처럼 선군이나 조군의 역이 과해 도망하는 자들이 있을지경인데, 이를 육로로 대체한다고 해서 이들의 과로함이 줄어들진 않는다는 말도 알고 있사옵고······.”

그리고 우참찬 김수동.

“우참찬의 말처럼 육운을 하려면 군사가 필요한데 그 일 또한 문제가 되는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또 누가 있었더라?

아, 병조판서 한사문도 있었네.

“또한 병판의 말처럼 수운이 육운보다 이로웠다면, 선왕들이 육운을 택했을 것이고 실제로 태종대왕께오서도 육운을 집행하셨다가 큰 손실만 입고 다시 수운으로 대체하셨다는 일화 역시, 신이 모르지 않사옵니다.”

자, 그리고······.

아!

“예조판서(신수영)의 주장대로 토목은 공사이온데 하물며 도로 설계는 국역(國役)이니 인민들에게 해가 갈 거란 사실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자, 대망의 마지막은······.

노공필이다.

근데 노공필은 패스하자.

저 양반 말은 알고 있고, 모르고 있고를 떠나 개소리니까.

“삼척동자들도 다 알 만한 사실인데 이같은 사실들을 어찌 신이 모르겠사옵니까?”

“하지만 대감께서는······.”

그걸 알면서도 도로 설계를 주장하지 않으셨습니까?

라고 할 참이었을 거다, 예조판서 신수영은.

다만 형님이 손을 쓰윽- 위엄있게 들어올리며 그런 신수영을 제지하셨다.

신수영이 읍을 한 채 뒷걸음질 치자, 형님이 말씀하셨다.

“제신들은 들어라.”

“···”

“세간에 진성대군은 어질지 못 한 바가 있고 총기가 없다는 말이 있다만 나는 그 반대로 생각한다. 어질지 못 한 사람이 어찌 집안을 잘 다스리고, 총기가 없는 사람이 어찌 직임을 다 했겠는가? 하물며 공신이기 까지 하겠는가? 대군은 경들의 말을 장장 한식경 듣고 있었는데, 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온당치 못 한 일이고, 공신에 대한 예가 아니다.

“전하의 분부가 지당하시옵니다.”

척하면 탁.

김감이 형님의 말을 받자, 형님은 흡족한 듯 고개를 주억거리셨다.

그러고는 내게 눈짓을 하셨다.

밑밥은 잘 깔아뒀으니 왜 그같은 주장을 했는지 말해 보라는 뜻일 게다.

“전하. 우리나라는 사통팔달이 안 되옵니다.”

“사통팔달?”

“예. 산지가 70%······.”

아오.

이놈의 주둥아리.

“국지 전체를 살펴보면 산지가 7할이니 고을과 고을을 지나치려면 십중팔구는 산을 넘어야 하는 것이옵니다.”

“맞다.”

“그래서 사통팔달이 어렵사옵니다. 바로 이웃한 고을도 길을 뱅뱅 돌아서 가게 되고, 또 산에는 호랑이까지 있으니 심심찮게 호환이 터지옵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도로라는 것을 살펴보면 대개 오솔길과 다름이 없기 때문인 것이옵니다.”

“계속하라.”

“도로를 설계하는 것은 과연 국역이옵니다. 국책인 셈이지요. 하지만 전하께서는 생각해보시옵소서. 역대 국역이라 일컫는 것들 일중에 백성이 편한 것이 있었사옵니까?”

“백성이 편한 것이라니 무슨 말이냐?”

“국역은 대개 토목에 관계됩니다. 궁궐을 증수하는 일이나 성벽을 보수하는 일이나··· 최근의 일을 상고해보자면 몇 년 전, 도성을 수축하는 일로 충청도와 경기도의 백성들을 상경시켜 부역에 동원한 일을 바로 국역이라 볼 수가 있는 것이옵니다.”

형님과 다른 분들의 얼굴에 의문문이 떠올랐다.

당연히 그게 국역이지, 라는 반응들이다.

“하지만 이중에 백성이 편한 것이 있었사옵니까? 백성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하나라도 있냐는 말씀이옵니다.”

“대감. 말씀을 삼가십시오. 궁궐을 증수하는 일은 임금의 권위와 연관된 일이고, 도성을 수축하는 일은 종묘사직의 생과 사가 달린 일이거늘 어찌······.”

“지부사.”

“예, 전하.”

“너는 그놈의 주둥아리가 문제다.”

“하오나 신은 대감께서 해괴한 말을······.”

“상선.”

“예, 전하.”

“지필묵좀 내어와라.”

부랴부랴 상선이 지필묵을 가져왔다.

형님은 일필휘지로 뭔가를 써내려갔다.

뭔가 살펴보니 종이에는 신언(愼言)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형님은 신언이라 써진 종이를 노공필에게 하사(?)했다.

앞으로는 말을 좀 삼가겠지.

“지부사는 편전에 들 때 마다 늘 이것을 품에 지녀라. 그놈의 입이 멸문을 부를지도 모르니 내 너를 어여삐 여겨 주는 것이니라.”

“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도제조는 계속하라.”

“아, 예. 그래서 일을 헤아려본다면 백성이 편한 국역은 하나도 없었사옵니다. 도성을 수축하는 것은 도성 백성에겐 편한 일이겠지만 충청도와 경기도의 백성들에게 어찌 편한 일이 되겠으며, 궁궐을 증수하는 일은 군주의 위엄을 떠나 궁인들과 종친들에게는 편한 일이겠지만 백성에게 어찌 편한 일이 되겠사옵니까? 하물며 성벽을 보수하는 일도 마찬가지옵니다.”

“하지만 성벽을 보수하는 일은 그들의 안위를 위함이다.”

언더도그마.

약자는 절대 선하지 않다.

강자도 절대 악하지 않다.

결국 케바케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성벽을 보수하는 일이 본인들 안위와 관련된 일이란 건 알겠지만 있을지 모르는 외침에 대비해서 성을 쌓는 것이 과연 백성에게 편한 일이겠사옵니까?”

“흐음.”

“하지만 도로는 다르옵니다. 무엇보다 백성에게 편한 일이옵니다.”

“편해진다.”

“예. 예를 들면······.”

나는 도로의 개설로 인한 기회비용을 설명드렸다.

사실 도로라는 자체만 놓고 본다면 조선에서는 절대 도로를 깔면 안 된다.

유지보수 비용도 비용이지만, 개설 자체에 들어가는 비용도 간과 할 수가 없거든.

그런 거 따지면 수운을 유지하는 게 훨씬 이득이다.

조운선이야 증선을 하면 되고, 조군도 증군을 하면 되니까.

하지만 수로와 다르게 육로에는 여러 기회비용이 따라온다.

자, 경상도를 보자.

경상도에서 세곡선을 보내올 때 어떻게 올려보내는지 아나?

남해를 돌아 서해에서 북상하고 거기서 강화도 일대를 거쳐 한강을 통해 들어온다.

당연히 이게 육운보다 이득이니 이렇게 하는 걸 테지만··· 관에서는 이렇게 집행한다 쳐도 민간에서는?

소위 말하는 소상(小商)들은 육로를 이용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물론 말이다?

“물론 제가 말씀드린 소상들은 적습니다. 또, 이렇게 도로를 개설한다고 해도 당장 부가적인 효과가 나타나진 않겠죠.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이득이 될 겁니다. 도로라는 건 소용에 따라 폐로가 되기도 하지만, 보수만 잘 한다면 결국 수십년, 수백년을 걸쳐서 사용하게 될 테니까요.”

“흐음.”

“저는 지금 조선 방방곡곡에 도로를 닦자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추이를 보면 대개 하삼도에 의존하는 바가 큽니다.”

16세기의 경제란 개념은 결국 농사와 관련이 돼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조선은 국가경제 전체를 하삼도에 의존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말은 즉슨, 다른 지역보다 잘 먹고, 잘 사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이 하삼도에 많다는 뜻이다.

“이 하삼도··· 아니, 일개 도만 채택해서 도로를 닦아도 어디겠습니까?”

“대감이 하신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재물이란 것도 곳간이 여유로운 사람이라야 쓸 수 있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곳간에 쟁여놓기만 하지, 좀처럼 돈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그런데 과연 도로만 닦는다고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일단은······.”

“하지만 대감의 말씀이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요지는··· 결국 일반 민초의 삶이 여유로와져야 재물이 돈다는 말씀 같으신데, 그래서 도로를 닦자는 것 같으신데 하삼도라 한들 민초의 삶이 저 북방과 다를 게 얼마나 있겠습니까?”

“···”

“도로를 닦는데에는 얼마의 비용이 들어갑니까?”

갑작스러운 김전의 질문이다.

이건 산출해보지 않았다.

“에··· 그건 아직······.”

“경상도에 도로 닦는 데에만 십만석이 들어간다고 가정을 해보지요.”

“···”

“십만석이면 절대 적은 재물이 아닙니다. 사람 수천을 일시에 부릴 수 있는 재물이지요. 어차피 돈을 써야 한다면, 그래서 백성이 편리한 정치를 꾀하고자 한다면 치수(治水)에 사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치수?

잠깐 치수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 옆에 있는 숭재 씨에게 물을 뻔 했지만, 금방 떠올랐다.

저수지나 제방 같은 걸 말한다.

“치수 말인가?”

형님께서도 관심을 보이신다.

“예. 대감의 말씀처럼 도로를 닦는 일은 후세에도 요긴한 일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나라의 정책이란 것 중에 필요치 않는 것이 어디에 있겠사옵니까? 다만 우선과 차선을 둘 뿐인데, 지금의 우선은 치수가 아니겠는지요?”

“흐음.”

“하삼도에서는 암암리에 이앙(모내기법) 하는 이들이 많은 걸로 아옵니다. 이앙의 이로움을 모르진 않지만 어찌 나라에서 금했겠사옵니까? 이는 가뭄을 우려해서인데, 치수를 한다면 어찌 가뭄을 두려워하면서 이앙을 금지 시키겠사옵니까?”

“대사헌. 이앙을 나라에서 공인하자는 거요?”

방금 신언지(愼言紙)를 받았으면서 또 입방정인 노공필이다.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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