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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197화 (197/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197화>

    ***

    빛이 쏟아진다.

    무슨 빛이냐고 묻는다면······.

    “스승님······.”

    “대감마님······.”

    날 경외하는 사람들의 눈빛.

    나는 경외심 가득한 사람들의 눈빛을 굳이 부정하진 않았다.

    오히려 심취해(?) 두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나는 고작 쇠와 나무를 이용해 너희의 타작하는 고단함을 줄여주었다. 나의 손이 모세가 되고, 이 쇠와 나무가 기적이 되니 이게 바로 모세의 기적이다.”

    할렐루야!

    라고 하면 신성모독이겠지?

    잠시, 모세의 기적을 보고 당시 히브리인들이 느꼈던 경외심이 지금 이 사람들이 나에게 느끼는 경외심과 같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너무 멀리 나갔다.

    “···스승님. 잠시라도 스승님을 의심한 이 제자는 접시물에 코를 박겠습니다.”

    “경덕아. 이놈 경덕아. 사리불(사리붓다)이 어찌 석씨(석가모니)의 설법 한 번만 듣고 귀의했겠느냐. 석씨가 사리불에게 기적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너에게 보여준 것이 그것과 같으니 너는 사리불이 석씨의 제자를 자처한 뒤 석씨를 단 한차례도 의심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나의 제자를 자처했으므로 나를 의심하면 안 된······.”

    크흠.

    모세의 기적과 홀테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 했다는 게, 내가 생각해도 너무 멀리 나갔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경덕이가 날 무슨 심오한 말씀을 남긴 성인의 그것처럼 띄워줘서 또 심취하고 말았다.

    제기랄.

    여기서 사리불이 왜 나와?

    창피한 마음에 얼른 두 팔을 내렸다.

    “예?”

    “아니다. 순간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혼란이요?”

    사이비 교주로 잠깐 빙의 했다는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어차피 알아 듣지도 못 할 텐데, 경덕이는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다.

    사이비 교주가 뭐냐고 삼일 밤낮을 쫓아다니며 캐물을 게 뻔하다.

    “날 잠깐이라도 의심한 죄로 접시물에 코박겠다며 이 자식아! 뭘 그리 꼬치꼬치 캐물어?”

    “아! 송구합니다!”

    내 말에 늘 토를 달며 싸가지 없이 굴던 경덕이가 맞는지 의심이 된다.

    날 바라보는 눈빛도··· 초심을 되찾은 것 같다.

    처음에 제자로 받아달라며 들이댈 때가 딱 저런 눈빛이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본색(?)을 드러냈었는데 이제라도 초심을 되찾은 것 같으니 천만다행이다.

    “자. 그럼 이게 뭐냐, 홀······.”

    사람들에게 홀테랑 그네라고 소개하려다가 관뒀다.

    그렇잖아?

    내가 이 조잡한 기구들의 이름을 홀테와 그네라 알고 있는 것은 농촌봉사 나갔을 때, 어르신이 이 기구들의 이름이 홀테와 그네라고 말씀해주셨기 때문이다.

    근데 지금은?

    내가 발명한 기구다. 내가 홀테는 똥이고 그네는 된장이라고 이름 붙이면 누가 뭐라 할 건데?

    “이건 소풍이고 저건 대풍이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홀테는 소풍으로, 그네는 대풍으로 소개했다.

    이유? 간단해.

    농기구니까.

    흔히 대풍(大豐)을 기원한다는 말이 있잖나?

    그래서 소풍이고 대풍이다.

    “소, 소풍대풍··· 이요?”

    경덕이의 눈빛이 흔들린다. 이 녀석 날 의심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자식, 지금 스승을 또 의심하는 것이냐!”

    “아, 아닙니다. 단지 이름이 특이하여······.”

    “소풍대풍이 맞다. 앞으로 이건 소풍이라 부르고, 이건 대풍이라고 부르면 된다.”

    “예.”

    “과연 타작에 용이해보이온데 이걸로 타작을 하면 능률이 얼마나 오르는 것이옵니까?”

    자, 삼천포로 잠깐만 새겠다.

    경덕이랑 석평이는 1+1같은 존재다.

    한마디로 경덕이가 있으면 석평이가 있고, 석평이가 있으면 늘 경덕이가 있다.

    +-그리고, ×÷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란 거다.

    그런 의미에서 경덕이가 골치 아픈 덧셈 뺄쌤이라면, 석평이는 문돌이들이 보기만 해도 학을 떼는 곱셈, 나눗셈 같은 존재다.

    늘 이렇게 사람 허를 찔러버린다.

    무슨 허가 찔렸냐고?

    내가 개상인지 진상인지도 모를 타작 도구를 이틀 전에 처음 봤는데, 개상으로 타작할 때랑 홀테로 타작할 때랑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어떻게 알겠나?

    허를 제대로 찔려버렸다.

    “이, 이거 완전히··· 석평이 너도 경덕이 물 들었냐! 밥 차려줬으면 됐지, 아예 떠먹여달라고?”

    “그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 궁금해하는 것 같아서······.”

    반짝반짝.

    대충 얼버무리려고 했는데 과연 다른 사람들도 궁금해하는 눈초리들이다.

    “뱁새가 봉황의 뜻을 어찌 알리오··· 내가 말해준다 한들 너희 어리석은 두 제자 놈은 모를 게 뻔하잖아.”

    “아니, 능률만······.”

    “해보지도 않고 답부터 알려달라는 것이 선비의 도리냐?”

    “아······.”

    옛말에 그런 말이 있다지.

    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사람들은 당신이 똥을 싸도 박수를 쳐줄 것이다.

    석평이가 그랬다.

    내 말을 무슨 심오한 의미가 함축된 뜻으로 이해 한 것 같았다.

    “송애. 스승님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이해 못 하겠는가? 얼른 해보세.”

    다행히 경덕이도 내 말을 심오한 의미가 함축된 뜻으로 이해한 것 같다.

    경덕이가 채근하자 석평이는 낑낑거리며 대풍이를 날랐다.

    머잖아 두 사람이 타작을 시작하자, 나와 두 제자의 개똥 같은 선문답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도 하나, 둘 소풍이와 대풍이를 갖고 타작을 시작했다.

    나?

    나는 할 일이 있다.

    “덕산아.”

    “예, 대감마님.”

    “저 개상인지 진상인지 하는 것들, 의자랑 땔감으로 쓰게 집에 도로 갖다 놔라.”

    쓰레기 버리는 일이다.

    ***

    지난 사흘.

    죽어라 타작을 했다.

    소풍대풍이 없었다면 어깨가 남아나지 않을 뻔 했다.

    아니, 어깨가 뭐야?

    파스도 없는 여기서는 며칠 앓아 누웠을 거다.

    생각해봐라.

    기존 타작은 웬 벤치 같은 통나무에 볏단을 내리꽃는 원시적인 방식이다.

    볏단이 아무리 가벼워도 그걸 한뭉퉁이로 들쳐메고 수백번을 내려찍는 반복 노동을 한다는 건, 천하장사도 입에 거품 물게 할 일이다.

    그런데 소풍대풍은 볏단을 쇠이빨에 끼고 쭉- 잡아 당기기만 하면 된다.

    얼마나 쉬워?

    지난 사흘 동안 데이터도 조금 쌓였다.

    무슨 데이터냐고?

    거창한 건 아니고······.

    왜, 석평이가 이걸로 타작하면 얼마나 효율이 있냐고 묻지 않았나.

    지난 사흘간의 데이터를 통해 비교, 분석해보면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3~4배 정도 능률이 올랐다.

    아닌 게 아니라 기존 방식으로는 한 사람이 하루에 2가마니 정도를 타작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소풍대풍을 이용한 뒤로는 적게는 6가마니에서 많게는 8가마니까지 타작을 할 수 있게 됐다.

    모든 걸 인력으로 해결하는 이 시대 기준으로는 소풍대풍이 자동화 설비와 맞먹는 셈이다.

    그래서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긴 뭐하지만, 금석리에는 그 자동화 설비를 탄생(?) 시킨 내 칭송이 아직도 끊이질 않고 있다.

    ‘나중에 진짜 신으로 묘사 되는 거 아니야?’

    진지하게 고민해봤다.

    여기 사람들 사고 방식을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지도 않을 것 같다.

    진성대군이 ~했다더라 하는 일이 시간이 차차 흐르면서 미화되고, 또 미화되고 미화돼서, 진성대군이 ~ 행하셨다. 가 될지도 모르지.

    내가 생각없이 내뱉은 말들은 어록으로 전해질지도 모르고?

    ‘그럼 곤란한데··· 흐헤.’

    망상의 나래를 잔뜩 펼치고 있던 그 순간.

    “도제조.”

    형님의 부름을 미처 듣지 못 했다.

    옆에 함께 시립해있던 숭재 씨가 어깨를 툭- 쳐주지 않았다면 끝까지 못 들을 뻔 했다.

    “에?”

    “무슨 즐거운 생각을 하길래 미소가 그리 잔뜩이냐?”

    아, 여기가 편전인 걸 깜빡하고 망상의 나래를 펼쳐버렸다.

    “송구합니다, 전하. 제가 기분 좋은 일이 있어가지고······.”

    오늘 편전에 온 건, 이름하여 대동법이라고 명명 된 프로젝트의 중간 브리핑을 위해서였다.

    망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깜빡하고 있었다.

    “에··· 해서 대동법에 관해 말씀을 드리자면 말입니다. 먼젓번에 말씀 아뢴 것처럼··· 일단 대사헌(김전)의 묘안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음.”

    “다만 거기서 약간의 수정을 거쳤는데··· 같은 군(郡)의 이름을 달고 있다고 해서 모두 쌀농사를 짓는 건 아닐 것입니다.”

    “맞다.”

    “함경도 같은 곳은 쌀 농사 보다는 잡곡 위주의 농사를 짓고 있으니 쌀을 내게 할 순 없는 것입니다.”

    생각하면 이게 당연하다.

    A라는 고을에서 과거 특산물이 배였다고 공물을 배로 내라고 한다.

    지금은 배가 전혀 나지 않는 A 고을에서는 울며겨자 먹기 식으로 이웃 B 고을에서 돈을 주고 배를 사오고, 그걸 공물로 올려보낸다.

    이 과정에서 A 고을은 백성의 착취가 불가피해진다.

    이걸 막기 위한 게 대동법인데, 함경도처럼 태생적으로 쌀이 나지 않는 지역에 똑같이 백미 100석을 납부하라고는 할 수는 없잖아?

    그럼 쌀이 나지 않는 함경도의 군현들은 다른 도에서 쌀을 사와야하니까.

    게다가 여긴 21세기가 아니다.

    함경도에 속한 고을들에서는 단순히 쌀을 사오는 문제만 있는 게 아니라 그걸 운반하는 것도 큰 돈이 들어버린다.

    “그렇겠구나.”

    “또 지금 삼남은 쌀을 내게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지만, 삼남에 속한 군현들이라고 해서 쌀이 넘쳐 나겠습니까? 아닌 경우도 있을 테니 이처럼 불가피한 경우는··· 대략 지금 백미 1말이 조 3말의 가격과 맞먹으니 백미 1말 낼 걸, 3말로 내게 하거나 무명(면포)으로 대신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음. 네 말이 맞다.”

    “각 고을마다 등급을 매기는 것은 김전의 안 대로 그 고을의 결수와 호구에 따라 차등을 두어 납세케 하기로 논의가 되었습니다. 다만 문제는······.”

    “문제?”

    사실 앞전에 언급한 문제들은 문제 축에도 끼지 않았다.

    쌀 못 내는 고을들은 면포나 잡곡으로 대신 할 수 있게 해버리면 되니까.

    고을마다 등급을 매기는 것도 결수의 경우는 양안을, 호구의 경우는 호구대장을 참고하면 되니까.

    다만.

    “뭐가 있더냐?”

    “운반 문제가 제일 큽니다.”

    “운반?”

    “예. 예를 들어 삼남에서 올려보낸 오곡들이, 대동법을 시행하기 전에는 10만석 정도였다면 대동법을 시행한 뒤에는 2~3할이 더 증대 할 것이옵니다.”

    간단하게, 10만석의 곡식들을 조운선 100대로 운반했었다고 치자.

    삼남에 있는 조운선은 결국 100대다.

    조군들도 그 쯤 되고.

    근데 대동법을 시행한 다음 해에 13만석이 걷히게 된다면?

    운반에 어려움이 발생할 것이다.

    “그럼 나머지는 올라오다가 모두 썩거나 버려지는 것 아니냐?”

    “예. 조운선과 조군들을 늘리는 것이 상책입니다만, 이게 또 신이 생각을 해보니 말입니다?”

    물론 가장 큰 상책은 화페가 있으면 된다.

    쌀 같은 곡물보다 부피가 현저히 작으니 운반하는 데 드는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감소 될 테니까.

    이건 경알못인 나도 알 만한 거지만, 문제는 경알못인 나는 화폐를 유통시킬 자신이 없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지금 우리나라는 모든 걸 수로로 해결하는데 사실 수로를 이용하는 게 운반비도 가장 많이 절감 할 수 있고, 에··· 여러모로 좋습니다. 한데 세수가 해년마다 꾸준히 늘어나게 될 텐데, 그때마다 조운선을 증선하고, 조군을 증군 시킬 순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에··· 그래서 말인데 도로를 좀 닦아보는 게 어떨까 해서······.”

    나는 이 말을 내뱉기 전에 한 가지 예상을 한 게 있다.

    아마 편전이 갑분싸 할 거라는 예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는 돗자리 깔아도 된다.

    내 예상을 한치도 안 벗어나고 편전 분위기가 갑뿐사돼버렸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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